비밀같은바람2011. 5. 17. 21:02


173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은 대략 3세기 이전에 오랜 기간동안 다종다양한 하인들의 행태를 관찰한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기록이라 한다.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과 집사, 요리사, 정복 착용 하인, 마차꾼, 말구종 등 열 다섯 가지 직종의 하인들에게 주는 특수 지침이라는 형식을 빌어 '나는 늬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낱낱이 알고 있다' 혹은 '당신네 하인들이 이따위로 하고 있으니 알고나 계쇼' 하며 반어와 역설로 가득찬 까발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짤막한 문단 혹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아포리즘(?) 형식을 취한 본문에서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300년쯤 전 영국 귀족 가정 하인들의 생활이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당시의 생활상과 풍속 정도이다. 이를테면 빈번하고 일상적인(?) 교수형의 집행, 귀족 집안에도 불가항력이었던 유아 사망, 의외로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던 개별 하인들의 권한, 매우 습관적인 하인들의 음주, 공고한 계급제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열려있었던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 같은 것들.
 

저자의 자전적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는, 1인칭 시점을 택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에서 화자는 7년간 정복 착용 하인으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하인들의 일상사를 꿰뚫고 있는 그는 조언하듯이 그리고 조롱하듯이 지침과 반지침을 전하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인간 본성에 대한 갖은 부정적 확신에 기반한 것들이다. 세상은 아름다워라~ 로 일관하는 어이없는 은혜로움의 찬미도 불감당이지만,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극도의 기회주의와 이기주의로 인간의 본성을 상정한 위악 역시 별로 감당할 만하지 않다. 철저하게 인간의 이중성을 파고들어 풍자의 날을 세우려했다면 좀더 깊이 들어갔어야 했을 터,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신통한 통찰력과 신랄함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인들의 악행과 악습을 통해 인간의 자기애니 이기심이니 혹은 사리사욕과 기만이니 하는 본성의 일부를 확인하고 그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성찰해 볼 수 있다는 둥의 규범적인 서술은 사실 별로 와닿지 않는다. 실은 그렇게, 꽤나 발랄한 소개에 혹해 기대를 가졌지만 정작 본문에서는 반짝거리는 새로움 같은 것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고대의 동굴 벽화에도 요즘 애들 버릇이 없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얘기를 생각하면 문명의 발전, 시대의 진보와 무관하게 인간의 본성은 늘 동시대의 인간들을 기준으로 인식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서문을 장식한 '이제 더 이상 맹렬한 분노가 그의 가슴을 찢지 못하리라.'는 저자의 묘비명,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하고 그 강렬한 선언이 이끄는 대로 기대를 얹었던 것 역시 본문에 대한 실망에 한 몫을 했던 것도 같다.
 

길지도 않은 책장을 좀은 따분하게 넘기고서 마주한 작품 해설과 저자 소개가 오히려 내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소인국 사람들로부터 붙박혀 누워 있는 거인 걸리버의 이미지와 짧은 동화의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저자의 대표작인 '걸리버 여행기'를 나는 정본(?)으로 접한 적이 없다. 어디선가 '걸리버 여행기'와 조나단 스위프트에 대한 절하된 평가와 관련한 이야기를 스치듯 들은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그 내용은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책 말미에 붙은 저자에 대한 짧은 소개로 미루어보자면, 그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대영제국을 향한 정치적 야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한 생을 살았던 인물인 듯 하다. 야심과 욕망의 근원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는 주인과 하인이 선명히 나뉘어져있던 신분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의 경계를 오가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괴로워하고 비범한 재능에 상처 받으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당시의 많은 지식인 계층이 하인들과 맺고 있었을 긴밀한 관계를 상상하자면, 이렇게 관찰보고서까지 남긴 저자의 기록열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지만 그 내용을 확대해서 굳이 현대에까지 의미를 확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문제는 언제나 시대가 아니라 사람이 아닐까. 


2006-07-11 19:08, 알라딘



하인들에게주는지침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조나단 스위프트 (평사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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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