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점이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만... 줘놓고도 세 개는 마음 아프다. 하지만 이 책, 절반의 포인트는 기획에 있다는 자의적 판단 하에, 굳이 이런 형식을 빌지 않더라도 그는 충분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꾼인 것을. 나는 그의 글이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 고유한 아우라로 인해 반짝반짝 빛나기를 꽤 진지하게 바라마지 않는 순진한(?) 독자다. 헌데, 아무리 그가 트렌드에 민감한 얼리어덥터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하여, 영리하게도 서문을 빌어 친구의 빈 방에서 이것저것 슬쩍 훔쳐보는 수준으로 슬며시 이 책의 기능을 규정했다고 해도... 또한,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마음산책에서 나왔다고 해도. 다소간은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서는 개인적으로 노출증과 관음증의 행복한 만남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게다가 인터넷의 익명성에 비하면 대체로 실명이 드러난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어떤 진정성까지 겸비한, 싸이라는 대중적인 매개물을 통해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들은, 온전하게(?) 활자화되었을 때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날릴 수도 또 개인적인 메세지로 다가갈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싸이의 위력에 기대지 않아도 김영하만이 가진, 의심의 여지 없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독특한 비틀기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부담없는 촌철살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싸이의 패러디인지 오마쥬(설마~)인지는 모르나 마음산책답지 않게 조잡스럽고 뭔가 헐렁한 표지와 편집에서 나는 솔직히 빈정이 상해버렸다. 이러려면 차라리 전자책으로 낼 것이지.
물론 주절주절 늘어놓은 불만만큼 이 책이 영 형편 없지는 않다. 태생이 승부욕이라고는 없는 주제에 선착순 사인본 백 권에 도전하고 당시 지리멸렬한 일상에 대한 환기의 돌파구로 이 책의 독서를 선뜻 결정할 만큼 개인적인 기대가 높았던 탓에, 책장을 넘기면서 '이건 좀? 이건 아닌 듯...' 했던 느낌들이 증폭이 되어버린 감도 있다. 책 출간과 함께 낭독회를 열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나름 실천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는 반가움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싸이스럽게 너무 날려주시는 짧고 쿨한 이야기들이 뭔가 완결점이 없고 부유하는 느낌이어서 문득, '정육점 여인에게서'를 읽었을 때의 그 허탈감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혹시 이 양반도 늙어가나' 하는 매우 주제넘는 우려도 잠깐씩 고개를 들기는 했다. 차라리 한참을 잊었다가, 매우 무료한 어느 날 방바닥 긁으며 뒹굴거리다 조우한 채로 다시 본다면 더 낫지 않을까.
2005-10-06 01:17,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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