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식 독서를 즐기지는 않지만, '사놓은 책 다 읽고 새책을 사자'는 현실적인 요구로 쉬운 것부터 시작하려다 잡아든 책이다. 도발적인 제목의 센세이셔널과 영화화까지, 단지 스토리만을 알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었겠지만 부담없는 한나절의 독서로는 꽤 적당한 책이었다.
예전에 한 달 남짓 활달하고 다감한 저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비판적인 소설의 제목에 얼핏 고개를 갸우뚱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구호조의 제목이 강조하는 '결혼'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스테레오 타입화된 인물들이 반영하는 세태에 대한 관찰이 아니었나 싶다.
광장과 골방으로 양분된 정신 상태에 포박당한 듯한, 타자화한 스스로를 포함해 모든 세계에 냉소를 잃지 않고 깃들이려 하지 않는 남자와 소녀적 감성으로 꿈꾸던 이미지화된 연애와 물질적으로 윤택한 결혼 생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 현실적이고 능력있는(외모도 능력이라면) 여자.
두 주인공의 만남과 연애와 그 일단락, 생동감 있는 대사와 디테일한 심리 묘사는 이들의 상황에 현실감을 잔뜩 부여하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 떠오르는 것은 조금은 공허한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드라마나 영화의 몇 장면들이었다. 물론 문제제기를 하는 듯한 제목에 혹해 소설 한 권이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리라는 순진한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려나, 책장을 넘기는 손짓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히는 이 소설의 미덕은 책 말미에 붙은 작가의 작은 바람에는 정확하게 부합했다는 느낌이고, 문학의 시대 소설의 시대는 이미 가버렸다는 개탄보다 잘 읽히고 재미있는 한 권의 소설의 출현이 반가운 독자의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책이었다.
2003-06-12 22:43,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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