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경찰서여, 안녕'은 그즈음 비슷비슷한 소설들에 지루해있던 내게 반갑고 새로운 발견이었다. 농사짓는 어버이께 첫 소설집을 헌정하는, 문학노동자를 자임하는 작가의 겸허함이 작품 속에 녹아난 현실에 대한 충실성과 진정성을 더욱 빛나게 했고 나는 순순히 감동했다. 다중의 화자과 입체적인 형식으로 기존의 후일담 소설이 범했던 우를 피해가려 애쓴 흔적이 엿보였던 '71년생 다인이'는 지지부진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두번째 중단편집인 '모내기 블루스'를 읽으며 여전히 탄탄한 작가의 현실을 향한 긴장감과 기층을 향한 연대의 시선을 재확인할 수 있어 든든한 느낌이다.
표제작 '모내기 블루스'를 포함한 아홉편의 소설은 일단 소재적 측면에서 작가의 관심이 향하고 있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소설들은 작가 특유의 유머와 눙치는 충청도 사투리의 여유로움으로 시골을 모르는 서울살이들에게 땅의 진솔함과 고향의 따스함을 전해주면서도 지금 우리 농촌이 겪고 있는 갖은 문제들에 대한 냉정한 직시를 잃지 않는다. 중소도시 혹은 서울 어느 변두리를 배경으로 한 경우, 지리멸렬한 인생들의 부박한 현실의 밑바닥을 훑어내는 작가는 인물 각자가 처한 자체의 모순과 관계의 갈등을 거침없이 짚어낸다. 하지만 작가가 더욱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주변인의 삶을 사는 그들에 대한 냉철한 묘사가 아닌 그들의 혹은 우리의 삶이 이토록 황폐해진 근원에 대한 조금은 거친 파헤침이다.
김종광의 소설은, 그간 발표된 십여편의 중단편들로 볼 때 여느 신세대(?) 작가들과는 다른 개성으로 정형화되는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회가 흩어버린 개인 속으로 침잠하여 사소하고 미세한 부분에 천착하고 있는 반면, 김종광은 여전히 '사회'라는 거대한 화두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소설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형식 실험으로 작품의 밀도를 높이는데 충실하고 있다. 물론 아홉 편의 소설 모두가 고른 작품성과 재미를 담보해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작품간의 편차 역시 아직은 시작선상에 더 가까이 있는 젊은 작가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2003-06-14 14:32,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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