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주인공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다큐 [모어]를 보며 오랜만에 멀리 있는 대상에 대한 과몰입을 경험하였다. 강렬하고 화려한 비주얼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면에 가득한 욕망을 외면에 그대로 투사함으로써 온전함을 느끼는 듯한 모어의 존재감에 사로잡혔고 무엇보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좇으며 살아온 듯한 그의 삶에서 느껴지는 진정성과 처연함 같은 것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다큐 작업이 전기가 된 것인지, 개봉 전에 에세이가 출간되어 있었고 반가운 마음으로 주문했다. 7월부터 갑자기 달라진 일상의 리듬 때문에 몸과 마음이 최적화된 상태에서 읽으려다 보니 조금 늦어졌지만, 다행히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읽을 수 있었다.
다큐의 연출과 편집은 감독의 몫이겠지만 내용이나 형식에 주인공의 개성과 특징이 결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책도 다큐 [모어]처럼 무규칙하고 분방하게 자유로운 형식을 취한 글들의 모음이었고 다큐보다 더 구체적이고 내밀하고 다양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다큐에서 주인공이 무언가에 빙의한듯 여러 버전으로 낭독한 글의 원전들을 마주할 때면 음성지원이 되는 느낌이었고, 다큐에서는 소상히 알 수 없었던 저자의 과거와 가까운 인물들의 에피소드들 덕분에 어른이 되어 새로 알게 된 누군가의 지난 이야기들을 읽는 기분이기도 했다.
살면서 때로는 특출난 누군가에 몰입하고 열광하며 가슴이 쿵쾅거리고는 했지만, 이미 오래 살아온 탓인지 결국 사람 다 거기서 거기고 하나의 개인으로서는 누구나 시시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굳어져 있는 편이다. 그런 시큰둥한 마음에 간만에 빤짝빤짝 빤짝이가루를 배경으로 블링블링 고밀도 화장과 우아한 날갯짓으로 나타난 기괴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영접한 느낌. 물론 글은 기발함과 독특함으로만 점철되어 있지 않았고 소탈하고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면모들도 많이 담겨 있어 다큐에서 느꼈던 한 기념비적 인간에 대한 도저한 거리감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건 그냥 내 몫이고. 그가 '나는 없다'는 의심을 던져버리고 어디서든 기깔나게 발광하며 원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극히 자전적인 경험과 드라마틱한 사건 들은 그의 삶을 참 특별하다고 느끼게도 했지만,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기록한 성소수자의 현실과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는 그 특별함 뒤에 얼마나 깊은 우물과 짙은 그늘이 놓여 있을지 상상하게도 했다.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담겨 있고 일면식도 없는 내가 읽고 알아도 되나 싶은 이야기들도 있어 그 솔직함에 신기했는데, 그가 부려놓은 수많은 글들 중 한 부분에 대해 답해주고 싶기도 하다, 큰 꿈이 이루어졌다고. 그리고 글들을 세상에 내놓아주어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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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때리거나 심장을 두들겨 패거나 차라리 웃겨 디졌으면
꿈도 큰 법
(235쪽)
* 책에는 패겨나로 오타가 났다는 점도 더불어
모지민
2022.4.8.1판1쇄발행, (주)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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