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알리바이2022. 10. 13. 23:00

 


내일 오후까지 부산에 있지만 서면에서 영화를 볼 것이기 때문에, 오늘로 올해 나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무리됐다. 영화를 예매한 후 아니 에르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는데, 그 때문에 고양된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첫 영화가 가장 좋았다. 영상으로든 활자로든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없었던 일처럼 사라져버렸을 과거의 시간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인 현재에 돌아볼 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흥미롭다. 두 번째 영화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무지한 시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는데, 참담한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억지스럽지 않게 희망을 품고 있어서 보는 내내 먹먹했다. 뱅상 랭동의 출연으로 기대했던 마지막 영화는 예정됐던 GV가 취소되었다. 뱅상 랭동이 올 일이야 물론 없었겠지만, 피날레에서 뭔가 바람이 빠진 느낌이었고 영화는 그 기분을 반전시켜주지 못했다.

 

마지막 영화를 보기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영화의 전당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며칠 전 G가 준 고구마와 빵 등을 숙소 냉장고에서 꺼내왔는데,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면서 저녁으로 먹으며 여유로운 기분이 되었다. 몇 년 전 부산도 괜찮겠지 막연히 생각하며 영화의 전당 주변의 아파트를 지도앱에서 찾아보며 헛꿈을 꿨었는데, 지금의 내게 가장 행복한 시공간이 부산국제영화제이다 보니 산책을 하면서도 자꾸만 주변의 아파트에 눈이 갔다. 대체로 큰 면적인 것 같고 내가 엄두를 낼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면서도, 예전에 통영 여행하며 여기쯤은 어떨까 하며 사진을 찍어둔 아파트에 지금 살고 있다 보니 무의식 중의 기대가 발현되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통영에 살면서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보이는 바다를 당연히 여기듯이, 만약에 만약에 영화의 전당이 보이는 어딘가에 살게 된다면 금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겠지. 그러나 살게 된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GV 취소의 김 빠짐과 별개로 마지막 영화가 그저 그랬던 건 아쉬운 일이었다. 클레어 드니 감독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영화는 [렛 더 션샤인 인]을 봤을 뿐이고 별 감흥이 없었던 기억인데,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도 뱅상 랭동과 줄리엣 비노쉬를 주연으로 이렇게 매력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싶었다. 영화가 끝난 후 퇴장할 때 주변에서 들렸던 대화를 생각하면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 날은 각종 수상작들과 폐막작만 상영되기 때문인지, 영화가 끝나고 건물을 나오니 광장은 이미 폐막 분위기였다. 저녁에 영화의 전당 광장을 둘러보다가 뭔가 아쉬워서 이번 영화제 포스터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 주문제작 휴대폰케이스를 구매했는데, 문 닫기 전에 잘한 일이다 싶었다. 숙소로 돌아가면 1년 후에나 오게 될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의 전당을 떠나는 게 아쉬워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딱히 할 것도 없기 때문에 사진 몇 장으로 마음을 달랬다. 다음에 영화제에 오면 커피 한 잔하자 했던 지난해 '그분'과의 온라인 대화는 다정한 추억으로 묻어두기로 한 것도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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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