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7. 12. 6. 01:22


100주년을 '기념'하는 소소한 분위기에 휩쓸려 한 번은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싶어 부산국제영화제 내려가는 길에 챙겨넣었지만 10%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한참이 지났다. 공중캠프 알콜토크의 참고도서에도 오르지 못했기에 박노자의 [러시아 혁명사 강의]를 먼저 읽고,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정독해보고 싶어 숙제하듯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R.W.데이비스의 긴 해제에 따르면 이 책은 E.H.카가 1944년부터 1977년까지 14권으로 펴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를 압축해 1979년에 대중서로 펴낸 책이라고 한다. 역자 유강은에 따르면 1980년대에 한국에서 출간된 적이 있지만 '감정과 교조를 배제하면서도 공감하는 방식으로 혁명의 성과와 오류를 기록'한 탓인지 당시엔, 1969년 소련 사회과학원에서 쳐냈던 [소련공산당사](한국어판은 [러시아혁명사]에 비해 별 반향이 없었다고 한다. 

책은 '1917년에서 시작해서 1929년으로 끝나는 서술은 혁명의 발발부터 전쟁과 내전, 전시공산주의, 신경제정책, 5개년 계획, 농업 집단화, 독재의 시작 등으로 이어지는 혁명 직후 10여 년의 기간'에 대한 기록이다. 혁명에서 중핵적 역할을 담당했던 통치세력의 정책 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고 장기간의 복합적인 상황이 한 권으로 압축되다보니 사실 러시아혁명에 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로서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박노자의 책을 얼마 전에 읽은 덕인지, 서술의 관점과 접근은 매우 다르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해를 돕는 측면이 있었다.

러시아혁명- 이라고 할 때, 제대로 읽거나 아는 바는 없으나 뭔가 마냥 뜨겁고 열정적이되 폭력적인 광풍같은 느낌이 지배적이었는데.. 사회경제적인 조건과 대중의 요구 그리고 변혁의 전망을 리더십으로 체현한 지도자들이 기존의 질서를 뒤엎고 권력을 손에 넣고, 건설한 하나의 '국가 경영'과 '체제 방어'를 위해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행정으로 집행하는 과정들. 그러니까 심하게 단순화하자면 혁명의 과정 역시 '일상'의 연속이자 재조직 과정이었다는 새삼스러운 확인을 했다. 

E.H.카의 서술은 '개인'이나 신념과 이념 같은 부분에는 거의 초점을 두지 않지만, 러시아혁명이라는 인류세계의 충격파를 만들어낸 근본적인 힘은 아마도 이러한 것들로부터 나왔을 터.. 이따금 투쟁과 원칙과 타협과 현실과.. 나에게 아무런 결정의 압력이 없는 사안에서도 고민하게 되는 문제들, 투쟁과 관계 혹은 저항과 권력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곱씹어보는 독서이기도 했다.

대체로 긴 문장들이었음에도 명료하게 잘 읽히는 문체였고 긴 해제 이후에 단정하게 덧붙여진 '옮긴이의 말'이 참 좋았는데, 책날개 말미에 붙은 역서들의 목록을 보며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좀 미안해졌다. 


[E.H.카 러시아혁명 1917-1929] 유강은 옮김

2017.7.15 초판1쇄 발행, 이데아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7. 11. 20. 00:21


이름만 알았던 재일한국인 2세 정치철학자 강상중의 책을 처음 접했다. 처세나 자기계발을 위한 책은 아니기를 바라며, 너무 오래 계속되는 '일'에 대한 무기력을 탈피하기 위한 소극적인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고.. 무심결에 궁금증이 일었던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정보 덕이기도 했다.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비즈니스 퍼슨이라는 말이 좀 생경했지만, 자신의 경험을 겸허하게 고백하며 오늘날의 현실 타개를 위한 조언을 건네는 글들은 나쁘지 않았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사회와 후대에 대한 책임감을 피력하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의 이야기, 이념의 방향성이 없으니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며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천착하는 고찰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실은 이 정도만 되어도 매우 인간적이고 또한 살아갈 만한 세상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럭저럭 읽히는 독서이기는 했지만 궁금했던 이름 강상중,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 될 듯한 예감.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2017.9.1 1판1쇄 10.23 1판3쇄, (주)사계절출판사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7. 11. 17. 02:20


공중캠프 알콜토크의 참고도서로 되어 있어 집어들었다. 러시아혁명 관련해 읽은 거라곤 옛날옛날 존리드의 책 뿐이어서 E.H.카의 [러시아 혁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배경지식이 없어선지 뭔가 고답적인 기술이 답답하고 영 진도가 안 나가던 차였다.

책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의 저자 강의녹취록을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때문인지 러시아 혁명에 대한 연대기적 기술 같은 건 없다.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야기와 유럽의 좌파 정당들 그리고 아시아에 미친 혁명의 영향 및 혁명 이후의 적색 개발주의 등의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를 보고서는 러시아 혁명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좀 난감하다 싶었는데, 읽다 보니 의외로 혁명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이나 종횡하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유기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저자가 방점을 두는 것은 혁명이 이랬고 저랬다 라는 부분이 아니라, 혁명이 인간의 삶과 세계에 미친 현재적 영향 그리고 그야말로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교훈 같은 것이다 보니, 100년 전의 사건이라는 역사적 거리감보다는 지금의 현실과 연관지어 볼 만한 부분들이 많이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러시아 혁명사 강의] 박노자

2017.9.27발행, 도서출판 나무연필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7. 11. 13. 00:24


좀 부담스러운 제목이었지만 ㅇㅁㅇ와의 관계에서 고민돠는 지점들이 많아 입문서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다. 안 좋은 상황에서 읽게 됐는데, 초반에 배치된 글들에서는 페미니즘 별 거 아니네?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지금의 내 생각이나 생활과 크게 차이 없는 소소한 이야기들이라 그냥 에세이집처럼 느껴졌다. 근데 읽다 보니, 기존에 십수년 간 나왔던 글을 선별한 것이라 글마다의 온도차와 필자의 경험치에 따라 매우 다양한 페미니즘/여성주의 시각과 접근 그리고 내재화 혹은 생활화의 사례가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후반부, "그냥 이렇게 살아 있는 그대로"에서는 약간 맥락 실종스럽기는 했지만 나의 ㅇㅁㅇ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도 됐다. 페미니즘은 물론 모든 차별에 반응하고 저항하는 이들의 연대로 나아가는 것이겠지만, 뭐랄까.. 어떤 문제가 악의적인 의도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각자 살아온 조건과 환경에 따른 한계와 현실을 인정하며 상대를 대하는 노력 역시 필수적인 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찌됐든 나는 편협하고, 편협함을 부린 뒤에야 나의 편협함에 생각이 미치는 아둔함까지 겸비하였으니.. 얼마나 노력해야 편협함이 발휘되는 순간 반성적 성찰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페미니즘이 좀은 부담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했던 내게는 나름 유용한 책이었다.

성격도 정치적 지향도 취향도 참 다르지만 이야기가 통하고 계속 연락을 하게 되는 좋은 지인 한 명의 이력을 떠올리며,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지속될 수 있는 이유가 그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라는 새삼 깨달음은 덤- 

공부한 바도 없으면서, 분명 필요하겠지만 까칠하고 부담스럽고 유난스러운 무언가로 느끼며 거리를 두었던 한 세계를 향한 작은 창이 아주 조금은 열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페미니스트가 될 것도 아니고 '어떤 주의자되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 역시 여전하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독립적이고도 수평적인 그리고 따뜻한 관계를 위한 좋은 참고서 한 권을 만난 기분이다. 단, 이 역시 소위 대학 정도는 나오거나 이러한 문화적 자장 안에 있지 않은 누군가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건, 페미니즘이든 아니든 당사자의 수용노력이 없다면 마찬가지겠지.

암튼 한밤의 독서 덕에 마음이 좀은 편해졌다.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 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한국여성민우회

2017.9.12 1판1쇄 찍음 9.18펴냄, 궁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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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7. 11. 13. 00:06


그토록 화제가 됐던 책을 이제 읽었다. 페미니스트라 자칭할 수 없는 의식을 가진 여성인 내게, 트윗 타임라인으로 전해지는 코멘트들은 때로 거부감을 일게 했고 버젓한 '여혐'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그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기에는 무언가 마뜩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읽어보는 게 좋겠다 생각한 계기는 ㅇㅁㅇ, 그와 오랜만에 싸움-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 달음에 읽어버렸다.

여성이 처한 한국사회에서의 운명(?)의 보편성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이야기 속에는 물론 내가겼은 경험도 상당히 투영되어 있다. 어린 시절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나와 오빠를 키워준 친할머니로부터 나는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지독히 차별을 당했고, 그때 겪었던 억울함과 느꼈던 반항심은 어른이 된 지금의 내 성격의 원형질을 구성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지영 씨나 또래의 여성들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경험하지 못했을 사회적 차별을 피해간 건 사실이고, 김지영 씨나 아직은 반 이상이 거쳐가는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들도 분명하다. 그러나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거나 무신경하게 넘겼던 '보편적 여성'이 당하는 '보편적 차별'을 조금은 절박하게 인식하게 되기는 했다.

그런데 한편,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와 관련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한 편의 소설이 모든 맥락을 포함할 순 없다는 것은 알지만.. 소위 '정상가정'으로 분류되는 부모님이 살아계신 집안에서 성장해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하고 어렵사리나마 사무직노동자로 살아가는 동시대의 여성의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성별불평등이라는 문제는, (부모님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대학이라는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생산직노동자로 일하는 것이 누군가(주로 남성)들에게는 거의 소구력이 없는 '남의 세상'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 조금만 길어져도 싸움이 되는 ㅇㅁㅇ와의 관계의 난항으로부터,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만한 텍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의 특별함 독후감이다.

페미니즘은 나 역시 언감생심, 그저 기본적으로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 정도를 바라는 수준에서도 어렵기만 한 이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마음이 무겁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2016.10.14 1판1쇄 2017.9.29 1판36쇄, (주)민음사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7. 8. 12. 01:16


서울역에서 안산역까지 이동하며 반 정도 읽고, 나머지도 금방 이었다, 100년 된 제주 옛집은 언감생심이나 부럽고 좋아서 마음이 두근두근~ 

둘이서 함께 한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오래 외로웠던 나는 다시 꿈을 꾸고는 한다. 책은 저자와 그의 남편 j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각자, 상대가 있었기에 100년 된 집을 고치는 무모한 일을 벌이고 또 마칠 수 있었다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물론 책장 곳곳에서 저자는 집을 고치는 갖가지 작업에 골몰하고 일취월장하는 j에 대해 적었다. 저자 또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며 은연 중 오래 품었왔을 이야기들을 집을 매개로 표현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그대로 담은 옛집은 자연과 자유와 지구를 사랑하는 젊은 부부의 오늘로 이어졌다.

책을 보고 찾아보니 이미 블로그에서 꽤 알려진 사람과 집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였다. 여러 채의 집이 있지만 방방을 모두 채워도 열 명 정도가 최대일 크지 않은 규모다. 숙박비는 성수기나 비수기, 주말과 평일의 차이가 없다. 가장 더운 한 달, 여행과 숙박 업계 성수기에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지구를 위한 소심한 반항으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 매년 여름을 나는 부부의 선택이다.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한참 못미치지만, 개인적으로 꿈꿔온 이후의 삶을 나보다 한참 어린 젊은 부부는 이미 일상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서로를 만나 가능했다는 고백들도 예뻤지만, 그들 이미 각자 그런 사람들이어서 가능했겠다 싶어 더욱 부럽기도 했고 나를 돌아보게도 됐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프로포즈로 내밀고 싶은 책인데, 본문 글씨가 너무 작다. 돋보기 옵션이 필요할 만큼 나중은 아니었으면.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내가 좀더 너르고 여유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2017.8.9초판1쇄, 상상출판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7. 1. 4. 00:57


살면서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 걸까 하는 막막함과 마주칠 때가 있다. 어려서 "너도 늙어봐라."하는 엄마의 잔소리 정도를 귓등으로 들었을 뿐, 어떻게 늙어가면 좋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물론 미리 생각한다고, 진지하게 고민한다고 잘 늙을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지만.

'중년'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에도 눈이 갔고, 일본작가이다 보니 사노 요코의 에세이쯤을 기대했다. 소위 버블세대의 한 중간을 통과하면서 소비를 통해 존재감과 정체성을 확인하며 살아온 세대로서 '동시대 여성'을 대변하는 작가라는 점을, 소개를 읽고도 그냥 지나쳤던 건 실수였다. 물론 또래의 한국작가인들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또렷하게 해줄 수 있겠냐마는.. 저자의 의식과 인식의 토대랄 수 있는 속물성이 거의 모든 글에 배어있어서, 끝까지 읽어내는 데에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중년에 걸맞는' 너그러움과 당당함과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말하기 위해 저자가 동원하는 에피소드와 분석과 사유가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과는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출판사의 마케팅과 포장에 혹하지 않는 독서가 필요하다, 넘어가는 것 역시 내 깜냥이니 억울해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거나 취향으로든 뭐든 어지간히 검증된 작가가 아니라면 당분간 에세이를 사서 읽지는 않게 될 듯 하다, 그런 면에서는 나름 교훈적인 독서였다.


사카이 준코

2016.12.12. 초판1쇄 12.19. 초판3쇄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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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7. 1. 4. 00:48


제목과 저자 소개에 끌려 샀는데 올해 읽은 첫 책이 됐다, 공감과 함께 쉽게 읽히기도 했고 요즘 내가 고민하는 문제와도 맞닿아있는 주제들이어서 그랬을 테다. 거의 동년배인 저자는 광고업계와 문화계 전반을 두루 거치며 일해 왔고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작가이기도 하다. 독일과 한국, 베를린과 서울은 엄연히 다른 배경이지만 한편, 모두를 소비자로 만들고 그 욕망을 통해 끝없이 질주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보편성 덕분에 상당히 유사한 사회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미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부모세대에 비하면 훨씬 더디게 어른이 되고 성장과정에서 만난 급변하는 시스템의 영향을 그대로 흡수한 30-40대의 삶에 대한 고민들이 신기하리만치 비슷하게 펼쳐진다. 일과 사랑, 연애, 직업, sns와 인터넷 등을 키워드로, 자신은 물론 주변 지인과 친구의 사례를 콩트처럼 예로 들며 전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부분부분 공감되는 지점이 많기는 했지만 호들갑스러운 책소개만큼의 기대를 채워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가장 상업적인(?) 직업을 가진 이의 성찰과 통찰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저자 개인의 인기에 기반한 반향과 반응이었겠다 싶기도 하고. 자기계발서도 지침서도 아니지만,이라는 마케팅에 보기 좋게 낚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괜히 읽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됐다.


미하엘 나스트

2016.11.10. 초판발행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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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12. 25. 23:46


별 쓸모도 없는 굿즈 욕심에 함께 샀고, 별 기대없이 집어들었다가 한달음에 읽었다. 소위 진보 셀럽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인기도 누린다고 알고는 있지만 이따금 본 tv에서 그의 깐죽대는 듯한 말투가 나는 거슬리고 비호감이라고 느꼈었다. 운동진영에서조차 유명연예인의 행보에 열광하는 모습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도 없지 않아 그에 대해 더욱 무관심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갈수록 메마르고 강팍한 사람으로 늙어가는 나를 자꾸만 돌아보게 됐다. 운동이든 활동이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하고는 있지만, 실제 하는 것에 비해 과하게 비판적이고 무엇에든 인색하고 신랄해지는 내 모습이 반사적으로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악조건에서 갈수록 고립되고 그래서 안타깝고 그러나 쉽게 활로를 찾을 수 없는 투쟁사업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균형을 잃은 감정이입과 편 가르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언젠가부터 인간애라는 보편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자각을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독서였다.

인생을, 일상의 가치와 무게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그것이 내 것이 아님에도 나는, 중심없이 함부로 남들의 삶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아온 시간이 오래고 너그럽거나 지혜롭지 못한 나는 그 시간만큼 편협해지고 날카로워지고 내 속으로만 침잠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는 무엇보다 따뜻했다. 어쩌면 그건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성장과정과 환경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려나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용기냄과 솔직함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덕목일 것이다. 

자신의 위상의 양면성과 권력의 접근에 대한 객관적인 거리감 그리고 사회적인 염치를 인식할 줄 아는, 마이크 잡는 사람들 중에 힘없는 사람 편 들어주는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그의 사고와 행동은 어지간한 숙고와 성찰로 쉽게 얻을 수 없늠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한달음에 읽어버려서 적잖은 이야기들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갖은 비난과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말과 실천을 아끼지 않는 그가 바라는 것 또 움직이는 이유는,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작게는 자신은 물론 누구에게라도 밖에서 치이고 들어왔을 때 마음을 알아주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는 이가 있는 세상을 위해서 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실은 내가 바라는 삶도 단지 그런 것이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개인적인 안온함과 사회적인 평온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지지고 볶고 때로는 갈등하고 반복하면서도 결국은 함께하는 삶과 세상, 그런 것 말이다.


가끔은 나도 종일 일하고 지쳐 돌아온 혼자인 집에서 누군가와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그런 날들과는 무관한 생활이 너무 오래다 보니 때로는 일로 나누는 텔레그램 대화 한 마디에 사람의 온기를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건, 외로운 거구나 실감한다. 사람과 따뜻함에 대한 이야기가 한 가득인 책을 새벽까지 읽고 잠든 오늘, 많이 좋아했던 이가 꿈에 나왔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지만, 앞으로 누군가와 다시 그런 시간을 만들게 된다면 사람과 따뜻함을 소중히 할 줄 아는 나이기를 싶었다. 


그는 학교를 짓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가 만드는 학교는 바르고 상식적이고 따뜻한 배움의 공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책 한 권으로 새삼 그를 좋아하게 된다거나 그의 행보를 주목하며 열광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그에게 고맙다. 어딘가에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는 걸 알게됨으로써 느끼는 든든함과 위로, 나는 나대로 좀 더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작은 다짐. 무엇보다 나에게, 너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김제동

216.10.25. 1판1쇄 10.28.2쇄

(주)나무의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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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9. 4. 17:16


꾸역꾸역 읽어낸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원효길은 없다", 시작부터 왜 '우리'에게는 산티아고길이 없는가 운운하더니.. 원효길을 국토대장정의 길로 재구성했다느니, 원효랑 이무 상관없는 농촌마을들을 소개하면서는 웰빙체험이니 그린로드니 말이 길었고, 역사유적을 소개하면서는 억지스럽게 연결 지어 의미 부여를 하는 통에 민망했다. 농촌마을이나 역사유적 소개가 의미 없는 것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에 떡하니 원효를 붙여놓고 할 일은 아니다.

얼마 없는 사료라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원효의 흔적이 남은 현주소를 찾아가는 성실한 기행에세이를 기대했는데, 구체적인 내용도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도 나와는 영 맞지 않았다. 그래도 관련된 사찰 정보라도 챙겨볼 셈으로 체크해가며 읽기는 했고, 나처럼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눈여겨볼 정보가 물론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전조사도 취재도 분명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텐데.. 불교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깊이도 없고 통찰도 없는 얕은 관점과 기술이 일관되어 적잖이 당황스러웠디. 유적의 가치를 논하는 기준은 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여부이고, 아쉬운 점은 거의 대중성과 상품성을 계발하지 않는 지자체와 행정의 무관심이고, 자부심의 발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니 고은 시인이니 하는 유명인의 행차와 거주 사실 정도를 꼽는.. 물론 내내 그렇지야 않았겠지만 책장을 넘기며 쌓인 거부감은 결국 이런 정도의 부정적인 단상을 남겼다. 

그렇게 막판까지 와서 진정으로 빵 터진, 대목은 '효'에 관한 용주사 주지의 인터뷰였는데.. 생각해보니 나름 가르침이라고 그런 말을 하고 그걸 또 큰따옴표에 담아 그대로 옮기고, 이 정도의 글에 불교계는 상을 주고. 이게 바로 지금의 현실이구나 싶기도 했다. 어렵겠거니 지레 짐작하고 쉬운 길을 택한 나의 잘못이려니, 고영섭 교수의 <분황 원효>를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전상천•조형기

2012.4.20초판1쇄인쇄 4.27발행

형설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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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