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가 계속되는 잠 못 드는 새벽, 김선우의 <발원>을 읽었다. 언젠가 <게공선>을 읽을 때처럼 활자를 둘러 빙빙 도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한 느낌이었는데.. 책장을 덮고서는 여러 장면들이 갖은 생각들과 얽혀 며칠을 맴돈다. 책을 소개해 준 이는 감옥에 있다. 이런 소설이 있는지도, 김선우 시인이 소설을 쓰는지도 몰랐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트윗으로 전한 감옥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편지 말미의 언급으로 이 책의 존재를 알았다. 마침 별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나가떨어지기 직전으로 지쳐 여름휴가에 안식휴가까지 이어붙인 긴 휴식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두 권 이상의 소설, 특히나 역사를 소재로 한 국내소설을 읽는 건 오랜만. 받아든 책날개에는 “이 소설은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신문>이 공동 기획하였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민망하게도, 지난겨울 ytn을 통해 본 추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2권 말미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소설은 2012년 봄부터 1년간의 연재를 묶어 퇴고한 것이라 한다.
불교에 대한 지식도 친화적인 감성도 없다. 원효하면 해골물과 ‘일체유심조’, 그래도 주인공인데 정말 뭐가 더 없었나 생각해 보니, 지난해 하루 꼬박 앓다가 온 골굴사에서 원효가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경내 혈사 소개를 마주치고 엔터테인먼트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절집과 꽤 어울린다 싶어 웃었던 기억이 났다. 있지도 않은 기억에 욕심을 내며 부제로 함께 이름 올린 요석과의 뭔가를 상상하다 보니, 이두 만든 설총이 아들 맞나 뭐 그런 생각. 짧은 추천사의 뉘앙스는 물론 좀 더 교훈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딱 그 수준에서 읽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에 ‘신라왕경도’가 등장하고, 635년 서라벌로부터 660년 압량주까지 실재했던 시공간이 구체적인 바운더리로 제시된다. 소설을 읽으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걸까 하는 궁금증을 떨치기 어려웠다. 물론 소설이 다루는 25년도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절로부터 천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고 통일을 이룬 신라여서 그나마 기록이 좀 남았다 해도 왕이 아닌 이들의 행적이 자세히 전해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맥락을 알 수 없이 급박한 상황으로 이야기를 여는 것부터가 ‘이것은 픽션’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지만, 실존 인물의 무게와 힘은 자꾸만 팩트와 관련된 궁금증을 유발했다.
어머니 기일과 생일이 같은 아이 새벽은, 탄생과 함께 시작된 결핍의 운명을 따라 남달리 총명하지만 사색적이고 진중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스스로 원효라 이름 짓고 화랑이 되기 위해 서라벌로 떠나 보현지도에 들어간 청년은 빼어난 학문과 출중한 기량을 더욱 닦아나갔지만, 무기와 살생을 거부한 탓에 그를 시기하던 야신이 놓은 덫에 빠지고 만다. 살아남았지만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 야신의 계략에 원효는 살생을 거부하는 반란을 택하고, 죽음을 목전에 둔 자신을 구해주었지만 야신의 도발에 중상을 입은 백제의 의료병 소년 수파현을 들쳐 업고 목숨을 건 서라벌로의 도주를 감행한다.
현실에 가득한 모순과 신분적 제약을 한탄하며 앞길을 일러주고 떠난 숙부의 애잔한 유언을 거스르며 화랑도에 몸을 담았던 원효는 끊이지 않는 갈등과 번민에 시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승려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가 선택한 불교의 길은 국교화를 통해 왕권을 확립하고 삼국의 통일을 도모하는 권력지향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 부처의 마음이 뿌리내린 불국토를 위해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실천이었다. 당시 신라불교의 중심은 왕족과 귀족 들의 신정정치를 뒷받침하며 불교의 가르침과 민심을 이반하는 황룡사. 그리고 그의 스승이자 도반은 저잣거리 밥집에서 환자를 돌보고 서라벌 언저리 숲에 집을 짓고 땅을 일궈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과 환자들, 혼혈인들, 가난뱅이들 등 신라에서 마땅히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공동체 아미타림을 일궈온 '부개화상' 혜공이었다.
그리고 요석이 있다. 왕이었던 조부의 불명예 실각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훗날을 철저히 준비하는 김춘추의 딸, 어머니는 김춘추가 사랑한 여인이었지만 원효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요석을 낳으며 숨졌다. 귀족의 자제로 자라났지만 외롭고 영민한 ‘고아’였던 소녀는, 여왕과의 돈독한 관계유지를 계산한 아버지에 의해 열 살에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오히려 그러한 조건을 이용해 정략결혼의 도구로 성장하는 여느 귀족의 딸들과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원효가 모르는 사이, 보현지도의 경연에서 그에게 한 눈에 사로잡힌 요석은 오누이처럼 가까이 지내며 오랜 연정으로 자신을 지켜온 보현 대신 머지않아 승려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화랑 원효’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꾼다.
책 속에는 혜공, 선덕여왕, 비담, 김춘추, 의상, 자장 등 역사소설과 사극드라마를 통해 알려졌던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더불어 작가가 창조해냈을 바유와 흰새, 수파현, 단이, 대안, 보현, 휘소 등이 어우러져 원효와 요석을 둘러싼 세계를 구성한다. 역사와 가상을 잇는 사건의 주요 배경은 황룡사 옆 분황사와 비두골의 첨성대, 유토피아 같은 아미타림 등이다. 끊이지 않았던 삼국의 전쟁, 복마전처럼 일상이었던 신라 내부의 권력쟁탈전,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염원하는 이들의 바쁜 움직임과 공명한 백성들이 함께하는 이따금의 궐기는 소설의 분위기를 꽤 역동적으로 이끈다.
특히 단이의 고공농성과 죽음 그리고 1주기를 맞은 백성들의 저항과 추모, 아미타림과 선덕여왕이 함께 만들어낸 ‘하늘우물’ 첨성대를 둘러싼 '천지간'의 소통과 화합은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현실이 어떻게 문학적 상상력과 만나 지평을 넓히는지를 꿈처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그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2011년 부산의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던 수차례의 희망버스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눈물과 분노로 뜨거웠던 거리의 이미지들과 겹쳐졌다. 그러자 떠오르는 기억은 5년 전 늦봄 85크레인을 향하는 희망버스 뒷자리에 탔던 작가의 존재, 10호차였던가. 기획단의 다수가 함께 탔던 그 버스에서, 마침 <물 밑에 달이 열릴 때>를 잘 읽었던 나는 혼자 좀 반가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려가 마술처럼 내려온 사다리를 넘어 담을 타고 크레인과 만났던 이들이 다음엔 봉래교차로에서 또 그 다음엔 영도수변공원에서, 저항인 듯 축제인 듯 물결을 이루며 싸웠었다.
작가는 단이의 1주기를 맞아 비두골에 모여 밤을 지키는 이들의 싸움을 마치, 모든 저항의 원형처럼, 그러나 현실에서는 차마 꿈꿀 수 없는 권력과 백성이 공모하는 작은 승리로 되살려낸다. 주인공은 원효와 요석이되, 그들이 행하고 향하는 바탕과 궁극에 자리한 백성들의 삶과 공동체의 이상이 늘 함께 빛난다.
‘사람의 눈’으로 읽는 이야기의 표피는 고통과 모순이 가득하다.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짊어 매고 지혜를 구하려 좌충우돌하는 원효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한계에 직면하고, 가까이서 자신을 지켜준 이들의 삶에 자신도 모르는 새 깊은 슬픔과 비극을 안긴다. 속세의 은인으로 원효를 신뢰하며 오랜 은애를 접은 보현의 사랑, 영혼의 연인으로 원효를 보듬고 지켜낸 요석의 삶, 도반이자 스승으로 원효를 살리고 지지해온 혜공의 죽음, 이 모두에 의도하지 않았으나 원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수행자 원효의 삶은 끊임없이 덫에 빠지고 때로 절망하며 나아간다.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행보와 함께 이름이 드높아지고 또 그만큼 오해와 억측의 절벽으로 몰리면서도 원효는 한 사람씩을 구한다. 야신이 은 한 냥에 산 어린 노비를, 신라의 포로가 된 백제 소년을, 생활고에 가족들을 제 손으로 보내고 나무에 목을 매려는 염부를, 승려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요석을.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스스로를. 그리고 소성으로 거듭난 그는 말한다. “ …… 나는 중생 바깥에서 중생을 가르치고 살았습니다. 장애가 없이 무애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그대는 온몸으로 나를 깨우쳤어요, 요석! 그대가 내게 준 이 삶이 나는 정녕 기쁩니다. 나는 진정 자유로워졌어요.”
책에는 ‘눈부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마주한 상대의 눈 속에 비친 나의 모습,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의 부처는 결코 어떤 높고 유일한 존재만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을 통해, 그렇게 타인과 스스로를 함께 마주하며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일까. 자신을 해하는 이의 눈을 마주보고 고통에 함께 슬퍼하며 더 이상의 비극을 온몸으로 막은 채 스러져간 혜공의 죽음 같은 건, 상상으로라도 이해하는 척하기 힘든 경지이지만, 아무려나 이렇게까지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살아갔던 이들의 삶에 세계와 지금의 내가 빚지고 있다는 것만은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예전 여수에서 올라와 잔뜩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다가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고서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고 활기가 생겨났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도, 문장도, 함께 그려내는 세계도, 지치고 불만에 가득 찬 스스로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거대하고 극진한 간구가 마음을 부축해주는 느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가 된 기분이다. 참 고맙다.
2015.9.14 1쇄펴냄 11.10 4쇄펴냄,
민음사 특별보급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