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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04 걷다보니 남미였어
  2. 2016.08.16 발원
  3. 2016.08.15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4. 2016.08.08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5. 2016.08.05 칼과 입술
  6. 2016.08.04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7. 2016.06.21 늦게 만난 조지 오웰
  8. 2016.03.17 피에로들의 집
  9. 2016.02.15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10. 2016.01.05 실내인간
비밀같은바람2016. 9. 4. 17:16

뭐 때문인지 출간 1년도 안 된 책을 꽤 할인하기에 남미여행기 하나 챙겨둔다는 기분으로 덥썩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뭔가 전형적이면서 허세가 느껴지는 제목에 별 기대는 없었다. 날씨 좋은 주말 밤, 남미는커녕 가까운 바다 여행도 당장은 엄두 낼 수 없는 답답함이나 날려보자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고작 이렇게 '포장'했을까 싶게, 재미나게 읽었다.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심드렁했던 "걷다보니 남미였어"라는 제목은 세계일주 트래킹을 하는 저자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남미로 이어지는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었고,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말하자면 두 권의 여행기 중 2편인 셈인데, 지역에 따른 독립성은 있지만 얼핏 보는 도서정보로는 한 권 짜리 단행본으로 알기 십상이라 좀 의아했다.


각설- 고인이 된 이성형 교수 그리고 손호철 교수 등의 남미여행기 이후 이우일 선현경 부부, 유재현, 이지상 등 전문(?) 여행작가부터 저자이름은 기억 나지 않는 여러 권의 책들까지.. 갈수록 희미해지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남미여행기를 꽤 읽었는데. 여행기의 내용조차 기억이 가물해지는 덕인지, 오랜만에 신선한 기분이었다. 트레킹과 산행을 여행의 메인 이슈로 삼은 건 다른 여행기와 차별화된 특징이었고, 무엇보다 폼 잡지 않고 솔직하게 '나만의 여행' 경험을 기록한 것은 큰 매력이었다. 

여행지의 삶과 풍경을 관조하는 여유롭고 우아한 여행, 경험과 정보를 집약해 성취하는 효율의 여행, 일상의 자장 밖에서의 이색적인 경험과 감상으로 채색된 환상적인 여행.. 사실 그런 여행 '예찬'으로 가득한 책들은 이미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선지 호들갑스럽지 읺으면서도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자신만의 필터로 정리를 하고, 좌충우돌 실수를 스스럼 없이 드러내면서 때로는 장기여행의 매너리즘을 토로하기도 하는 저자의 글이 편안하고 마음에 들었다. 

특히 세계일주의 말로와 후기를 적은 후반부는 다른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성이었다. 무려 297일의 세계일주여행을 마친 뒤에 남은 것들과 삶의 변화들에 대한 기록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진솔하고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직장, 자동차, 보험 등  오히려 나도 언젠가 남미여행의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꽤 좋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가볼 생각할 일도 없을 것 같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편을 다룬 저자의 여행기 1권도 구해서 읽어볼까 싶다.


김동우

2015.10.1 초판1쇄 

지식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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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8. 16. 02:02


열대야가 계속되는 잠 못 드는 새벽, 김선우의 <발원>을 읽었다. 언젠가 <게공선>을 읽을 때처럼 활자를 둘러 빙빙 도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한 느낌이었는데.. 책장을 덮고서는 여러 장면들이 갖은 생각들과 얽혀 며칠을 맴돈다. 책을 소개해 준 이는 감옥에 있다. 이런 소설이 있는지도, 김선우 시인이 소설을 쓰는지도 몰랐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트윗으로 전한 감옥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편지 말미의 언급으로 이 책의 존재를 알았다. 마침 별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나가떨어지기 직전으로 지쳐 여름휴가에 안식휴가까지 이어붙인 긴 휴식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두 권 이상의 소설, 특히나 역사를 소재로 한 국내소설을 읽는 건 오랜만. 받아든 책날개에는 “이 소설은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신문>이 공동 기획하였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민망하게도, 지난겨울 ytn을 통해 본 추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2권 말미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소설은 2012년 봄부터 1년간의 연재를 묶어 퇴고한 것이라 한다.

불교에 대한 지식도 친화적인 감성도 없다. 원효하면 해골물과 ‘일체유심조’, 그래도 주인공인데 정말 뭐가 더 없었나 생각해 보니, 지난해 하루 꼬박 앓다가 온 골굴사에서 원효가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경내 혈사 소개를 마주치고 엔터테인먼트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절집과 꽤 어울린다 싶어 웃었던 기억이 났다. 있지도 않은 기억에 욕심을 내며 부제로 함께 이름 올린 요석과의 뭔가를 상상하다 보니, 이두 만든 설총이 아들 맞나 뭐 그런 생각. 짧은 추천사의 뉘앙스는 물론 좀 더 교훈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딱 그 수준에서 읽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에 ‘신라왕경도’가 등장하고, 635년 서라벌로부터 660년 압량주까지 실재했던 시공간이 구체적인 바운더리로 제시된다. 소설을 읽으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걸까 하는 궁금증을 떨치기 어려웠다. 물론 소설이 다루는 25년도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절로부터 천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고 통일을 이룬 신라여서 그나마 기록이 좀 남았다 해도 왕이 아닌 이들의 행적이 자세히 전해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맥락을 알 수 없이 급박한 상황으로 이야기를 여는 것부터가 ‘이것은 픽션’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지만, 실존 인물의 무게와 힘은 자꾸만 팩트와 관련된 궁금증을 유발했다.


어머니 기일과 생일이 같은 아이 새벽은, 탄생과 함께 시작된 결핍의 운명을 따라 남달리 총명하지만 사색적이고 진중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스스로 원효라 이름 짓고 화랑이 되기 위해 서라벌로 떠나 보현지도에 들어간 청년은 빼어난 학문과 출중한 기량을 더욱 닦아나갔지만, 무기와 살생을 거부한 탓에 그를 시기하던 야신이 놓은 덫에 빠지고 만다. 살아남았지만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 야신의 계략에 원효는 살생을 거부하는 반란을 택하고, 죽음을 목전에 둔 자신을 구해주었지만 야신의 도발에 중상을 입은 백제의 의료병 소년 수파현을 들쳐 업고 목숨을 건 서라벌로의 도주를 감행한다. 

현실에 가득한 모순과 신분적 제약을 한탄하며 앞길을 일러주고 떠난 숙부의 애잔한 유언을 거스르며 화랑도에 몸을 담았던 원효는 끊이지 않는 갈등과 번민에 시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승려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가 선택한 불교의 길은 국교화를 통해 왕권을 확립하고 삼국의 통일을 도모하는 권력지향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 부처의 마음이 뿌리내린 불국토를 위해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실천이었다. 당시 신라불교의 중심은 왕족과 귀족 들의 신정정치를 뒷받침하며 불교의 가르침과 민심을 이반하는 황룡사. 그리고 그의 스승이자 도반은 저잣거리 밥집에서 환자를 돌보고 서라벌 언저리 숲에 집을 짓고 땅을 일궈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과 환자들, 혼혈인들, 가난뱅이들 등 신라에서 마땅히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공동체 아미타림을 일궈온 '부개화상' 혜공이었다. 

그리고 요석이 있다. 왕이었던 조부의 불명예 실각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훗날을 철저히 준비하는 김춘추의 딸, 어머니는 김춘추가 사랑한 여인이었지만 원효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요석을 낳으며 숨졌다. 귀족의 자제로 자라났지만 외롭고 영민한 ‘고아’였던 소녀는, 여왕과의 돈독한 관계유지를 계산한 아버지에 의해 열 살에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오히려 그러한 조건을 이용해 정략결혼의 도구로 성장하는 여느 귀족의 딸들과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원효가 모르는 사이, 보현지도의 경연에서 그에게 한 눈에 사로잡힌 요석은 오누이처럼 가까이 지내며 오랜 연정으로 자신을 지켜온 보현 대신 머지않아 승려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화랑 원효’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꾼다. 


책 속에는 혜공, 선덕여왕, 비담, 김춘추, 의상, 자장 등 역사소설과 사극드라마를 통해 알려졌던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더불어 작가가 창조해냈을 바유와 흰새, 수파현, 단이, 대안, 보현, 휘소 등이 어우러져 원효와 요석을 둘러싼 세계를 구성한다. 역사와 가상을 잇는 사건의 주요 배경은 황룡사 옆 분황사와 비두골의 첨성대, 유토피아 같은 아미타림 등이다. 끊이지 않았던 삼국의 전쟁, 복마전처럼 일상이었던 신라 내부의 권력쟁탈전,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염원하는 이들의 바쁜 움직임과 공명한 백성들이 함께하는 이따금의 궐기는 소설의 분위기를 꽤 역동적으로 이끈다. 

특히 단이의 고공농성과 죽음 그리고 1주기를 맞은 백성들의 저항과 추모, 아미타림과 선덕여왕이 함께 만들어낸 ‘하늘우물’ 첨성대를 둘러싼 '천지간'의 소통과 화합은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현실이 어떻게 문학적 상상력과 만나 지평을 넓히는지를 꿈처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그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2011년 부산의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던 수차례의 희망버스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눈물과 분노로 뜨거웠던 거리의 이미지들과 겹쳐졌다. 그러자 떠오르는 기억은 5년 전 늦봄 85크레인을 향하는 희망버스 뒷자리에 탔던 작가의 존재, 10호차였던가. 기획단의 다수가 함께 탔던 그 버스에서, 마침 <물 밑에 달이 열릴 때>를 잘 읽었던 나는 혼자 좀 반가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려가 마술처럼 내려온 사다리를 넘어 담을 타고 크레인과 만났던 이들이 다음엔 봉래교차로에서 또 그 다음엔 영도수변공원에서, 저항인 듯 축제인 듯 물결을 이루며 싸웠었다. 

작가는 단이의 1주기를 맞아 비두골에 모여 밤을 지키는 이들의 싸움을 마치, 모든 저항의 원형처럼, 그러나 현실에서는 차마 꿈꿀 수 없는 권력과 백성이 공모하는 작은 승리로 되살려낸다. 주인공은 원효와 요석이되, 그들이 행하고 향하는 바탕과 궁극에 자리한 백성들의 삶과 공동체의 이상이 늘 함께 빛난다. 


‘사람의 눈’으로 읽는 이야기의 표피는 고통과 모순이 가득하다.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짊어 매고 지혜를 구하려 좌충우돌하는 원효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한계에 직면하고, 가까이서 자신을 지켜준 이들의 삶에 자신도 모르는 새 깊은 슬픔과 비극을 안긴다. 속세의 은인으로 원효를 신뢰하며 오랜 은애를 접은 보현의 사랑, 영혼의 연인으로 원효를 보듬고 지켜낸 요석의 삶, 도반이자 스승으로 원효를 살리고 지지해온 혜공의 죽음, 이 모두에 의도하지 않았으나 원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수행자 원효의 삶은 끊임없이 덫에 빠지고 때로 절망하며 나아간다.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행보와 함께 이름이 드높아지고 또 그만큼 오해와 억측의 절벽으로 몰리면서도 원효는 한 사람씩을 구한다. 야신이 은 한 냥에 산 어린 노비를, 신라의 포로가 된 백제 소년을, 생활고에 가족들을 제 손으로 보내고 나무에 목을 매려는 염부를, 승려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요석을.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스스로를. 그리고 소성으로 거듭난 그는 말한다. “ …… 나는 중생 바깥에서 중생을 가르치고 살았습니다. 장애가 없이 무애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그대는 온몸으로 나를 깨우쳤어요, 요석! 그대가 내게 준 이 삶이 나는 정녕 기쁩니다. 나는 진정 자유로워졌어요.”


책에는 ‘눈부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마주한 상대의 눈 속에 비친 나의 모습,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의 부처는 결코 어떤 높고 유일한 존재만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을 통해, 그렇게 타인과 스스로를 함께 마주하며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일까. 자신을 해하는 이의 눈을 마주보고 고통에 함께 슬퍼하며 더 이상의 비극을 온몸으로 막은 채 스러져간 혜공의 죽음 같은 건, 상상으로라도 이해하는 척하기 힘든 경지이지만, 아무려나 이렇게까지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살아갔던 이들의 삶에 세계와 지금의 내가 빚지고 있다는 것만은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예전 여수에서 올라와 잔뜩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다가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고서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고 활기가 생겨났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도, 문장도, 함께 그려내는 세계도, 지치고 불만에 가득 찬 스스로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거대하고 극진한 간구가 마음을 부축해주는 느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가 된 기분이다. 참 고맙다. 



2015.9.14 1쇄펴냄 11.10 4쇄펴냄, 

민음사 특별보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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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8. 15. 20:47


오래 묵혀뒀던 책을 집구석 여름휴가에 여행 기분이라도 내보자 싶어 집어 들었다. 평이하지만 취향을 겨냥하는 듯한 제목과 사진이 많이 들어간 화려한 장정에 그저 대략 시류를 탄 책인가 했는데, 책머리에 실린 펴내는 글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초판 발행이 2008년이니 대략 십년 전에는 글이 쓰였을 테고, 파리에서 공부하고 전공과 관련해 유럽을 자주 오가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마을들도 이미 방문한 경우가 많았다는 저자의 진지함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유럽 곳곳에 책마을이 있다. 소개하는 스무 개 중에 들어본 이름은 헤이온와이 뿐, 책마을도 책마을운동도 그저 익숙한 단어가 주는 피상적인 이미지로 상상했는데… 이면에는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른 지역과 주민과 책의 운명이 갈림길에 처한 난관이 있었다. 산업화가 동반하는 농촌의 공동화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젠트리피케이션은 공간을 막론하고 기술과 자본이 압박하는 속도의 흐름 위에 삶들을 얹었다. 

따로 밝힌 바는 없지만 아마도 오랫동안 책과 활자로 된 기록의 세계에서 꿈꾸고 성장하며 너르고 깊은 인문학적 소양과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안을 지니게 된 듯한, 저자의 마음과 이력과 지식이 그대로 담겨있는 책이었다. 미술비평의 스페셜리스트이자 미학과 인문학적 교양의 제너럴이스트이기도 한 듯한 저자의 방대한 지적 스펙트럼은 곳곳의 책마을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책들에 얽힌 역사적이고도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곧잘 불러내며, 그를 통해 인문과 예술 그리고 출판계를 둘러싼 현실을 비춘다. 

역사의 전환기에 새로운 사상과 정보를 전파했던 '행상'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주목, 대자본에 잠식되고 다원성을 상실해가는 책의 유통과 전달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 오랜 세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책과 출판계의 가려졌던 역사, 도구화되고 기능주의적으로 협소해진 오늘날 책의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토로하는 저자의 진심이 행간으로 전해져왔다. 인간정신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이 사라지고 물신과 자본의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인 오늘날의 세태와 무관할 수 없는 문화와 예술의 척박함에 대한 탄식과 안타까움 역시 자주 터져 나온다.

저자와 관심 분야가 일치하거나 몸이나 마음이 젊은 독자라면, 낯설고 쉬이 기억되지 않는 이름들을 메모하고 외워가며 언젠가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은 책이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원하는 것 이상의 너무 많은 정보가 전달되는 느낌이어서 조금 버거웠는데, 이건 분명히 저자나 책의 문제가 아니라 게으르고 늙은 독자인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책 자체에 아쉬운 점들이 없지는 않았다. 성의와 세심함이 느껴지는 편집이었지만 사진설명 글자의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 간지를 만날 때마다 굳이 이렇게까지? 싶었다. 번역된 비문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나 호흡이 너무 길어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장도 아주 가끔 마주치게 되어 좀 아쉬웠다. 

무엇보다 본문에서 자세히 묘사하거나 서술하는,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대상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궁금해서 책장을 뒤로 넘겨도 사진이 없거나 다른 장면이 펼쳐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마을의 자연풍광이나 성채 등을 그림 설명하듯이 묘사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는데 사진이 적잖이 들어간 이 책에 거기에 맞는 사진 한 장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 제일 아쉬웠던 건 빈센트의 편지, 눈으로 보고 있는 듯이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사진이 없다니 좀 이상했다. 혹시 딱히 이 책을 펴내기 위한 여행을 한 게 아니어서 글과 사진의 조화로움에 대한 계산이나 준비를 제대로 못한 걸까 싶기도 했고. 어쨌든 인문에세이면서 여행기이기도 한 책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누락이다 싶다. 찾아보니 2014년에 개정판이 나왔던데, 거기서는 보완이 됐기를 바란다.


2008.5.1초판1쇄 2010.2.1개정판1쇄,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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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8. 8. 23:21


지난해와 올해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를 차례로 읽고 책은 팔아치웠다. 소장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지만 다시 통독할 일은 없겠다 싶어서였는데, 푸념 같은 경쾌한 이야기가 가끔 떠올랐더랬다. 동화책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챙겨 읽는 편은 아닌데, 십여 년 전 읽은 <천만 번 산 고양이>는 각별했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에 메모라도 해놨을 텐데 싶어 휴대폰을 뒤져보니, 2월 말에 <죽는 게 뭐라고>를 읽고 끄적인 흔적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깜짝, 나랑 똑같애.. 생각하며 책장을 펼친 게 작년 12월 17일, 그로부터 두 달 열흘이 지난 뒤에야 다 읽었다. 사노 요코의 발랄한 문장의 매력은 여전했지만, 읽던 도중 무심결에 느껴진 그녀의 보수성이 탐탁지 않아 덮어두고 시간이 한참 지난 덕이다. 그리고 이는 한낱 독서에서도 드러나는 나의 편협함 탓이다. 아무려나, 그녀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반짝하는 찰나의 공감 그리고 인생의 맥락 속에서 발하는 진솔함이 주는 유쾌함은 흔치 않은 매력이다. 


이 책 역시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라는 수식을 단 이 책은 필자가 40대에 쓴 에세이들, <뭐라고> 시리즈 두 권을 먼저 읽고 작가의 삶과 죽음 그리고 노년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 대략 알고 있었던 덕에.. 약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여자는, 엄마는, 작가는, ㅇㅇ는 '그래야 한다'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혹은 거리를 둔 작가의 글은 부담이 없고 편안하다. 성격과 외모, 가난에 대한 컴플렉스를 달고 성장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두고 한편 당당하고 초연하게 살아온 그녀의 삶에서는 자기애나 자존감 따위를 굳이 입에 올릴 필요 없는 유쾌한 생명력이 느껴져 읽으며 자주 웃고 기분이 좋아진다. 

스스로를 거리낌 없이 '추녀'로 단정하고 '소녀소설이 인류에 비친 영향'을 빌어 소싯적부터 안고 살아온 삐딱한 가치관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작부터, '범인'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그런 일상을 펴낼 적당한 지면으로 '서점 한구석에서 남몰래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고 있는' 것만 같은 <책의 잡지>에서 책을 내게 되어 고맙고 기쁘다 말하는 "후기"까지. 한결같다.

스스로를 꽤나 심술궂고 비뚤어진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간결하고 담백하고 직관적인 묘사와 표현들 속에 빛나는 유머 중에 다른 존재에 대한 무시나 차별의 정서는 거의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어린 날의 기억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지난 시절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정과 추억을 소중히 기록한 글을 통해 만나는 작가는 좋은 사람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불평불만은 많지만 살아가는 일에 대한 무구한 낙관이 느껴지고 돌아서 욕을 할 때도 있지만 나 아닌 개체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깔려 있다는 느낌, 글 속에 드러나는 이런 느낌은 문체로 완성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다.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모여 있지만 누구의 삶인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크게 욕심 내지 않고, 시련이 있지만 크게 절망하지도 않고. 죽음으로 마치는 순간까지는 어쨌든 '일상'인 삶이 계속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고 때로 남을 통해 확인하는 게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엔 책을 간직할 작정으로 밑줄도 긋고 꺾쇠도 그려가며 읽었다. 다시 펼쳐볼 날도 있을 것만 같다.



2016.3.20초판1쇄 6.5초판4쇄, 

을유문화사 




유독 예쁜 일러스트가 많은데, 창립일까지 써놓은 유서 깊은 출판사의 서지정보에는 그들의 이름이 없다. 작가는 그림 그리고 글 쓰던 사람, 작가의 세심함과 다른 책의 만듦새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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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8. 5. 01:00


한창 때처럼 신간정보를 챙기거나 하지 않는 대신 언제부턴가 온라인서점 검색창에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윤대녕은 습관적으로 꼭 쳐보는 두 사람 중의 하나, 낯선 표지에 반색했는데 십년 전 출간됐던 <어머니의 수저>를 <칼과 입술>로 고쳐낸 거였다. 

'맛 산문집'이 대체 뭐냐며 그때도 혼자 툴툴거리며 책을 사봤고 사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감흥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감히) 잘 쓰면 예뻤을지 모를 테마색이 표지에서도 간지에서도 튀면서도 촌스러운 느낌이라 먼저 당황했다. 컬러만이 아니라 표지와 간지에 들어간 사진들과 배치도 딱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는 느낌에 '추억과 향수의 아른함' 정도의 관성적인 감성 표현을 목표한 걸까 싶어 읽는 내내 의아했다.

다행인 것은, 아무리 좋아한다한들 2006년 12월에 읽은 책의 내용을 내가 기억할 리 없다는 것. 드물게 어렴풋한 기시감을 주는 구절과 대목이 있었지만 대체로는 새로웠고, 그럼에도 역시나 별 감흥은 없었다.

십년 전 '맛 산문집'의 출간에 심드렁했던 이유는 분명 윤대녕 작품에 덧입혀놓은 나만의 색깔과 이미지가 방해받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연중에 구원과 회귀, 내면으로의 침잠, 방랑과 우울 따위를 그의 키워드로 새기며 십년을 꼬박 신간이 나올 때마다 필터 삼아 그의 글을 읽었고 만족스러웠던 터였다. 그러한 독서 속에서 윤대녕 혹은 그의 주인공은 입이 짧아야 했고 탐식을 해서는 안 됐으며, 현실에의 타협 없는 고뇌로 삶의 의미를 간구하는.. 식물성의 정신적인 존재로 유폐되어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윤대녕에 푹 빠졌던 90년대 중후반 이후 실은 오랫동안 그랬던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떨리며 설레어하며 처음 만난 그의 말투와 음성은 더도 덜도 아닌 윤문식 그 자체였음에도 말이다. 그렇다, 팬은 이렇게 일방적이고 또 무책임한 것이다. 

아무려나 십년 만에 고쳐써 다시 낸 책을 다시 읽어내는 것은 팬을 자처하는 독자가 성실히 수행해야 할 몫이다. 하여 열대야의 한 중간 나는, 이미 십여 년 전에 스스럼없이 '아내'와의 일화를 글로 적었던 '생활인' 윤대녕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런(?) 폐쇄적이고 소아적인 읽기를 이제는 그만 둘 때임을 자각했다. 사실 개인적인 편견과 왜곡된 로망을 걷어낸다면 책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저 글쓰는' 사람으로서 윤대녕이 어찌 나쁠 수 있겠는가.

십년 전 책의 말미에 작가는 "이 책을 어머니 몰래, 어머니께 바친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 책의 머리와 말미에 다행히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이번에는 책을 먼저 갖다드릴 생각이라고 적고 있다. 한편 '맛 산문집'이라고 심드렁해 했지만 젊어 갖은 외국음식을 즐겼던 작가가 장년의 어느 시절 심한 거식증을 앓은 이후 한국의 입맛을 통해 치유되고 길들여지고 이런 책까지 펴낸 것이 결국 어떤 회귀 그 자체인지 모르겠기도 하다. 

"수저질을 배운 순간부터 우리는 늘 불완전한 음식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그 불완전함은 곧 삶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절들 때문에 나는 그가 어떤 글을 쓰든 찾아 읽고야 만다. 다분히 윤대녕스러운 분위기는 전체를 관통하고 있지만 거론하는 음식의 내력과 유래에 쓰인 말의 어원은 물론 문화적 기원과 사회적인 분석에 이따금의 작은 제언까지, 소설이나 다른 에세이와는 색다른 글이기도 한 게 사실이다. <자산어보>와 <현산어보를 찾아서>부터 각종 음식문화를 다룬 문헌과 사료를 출처로 한 구체적인 기술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칼국수가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할 당시 들어온 유목음식이었다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십년 전 독서 때와 마찬가지로 사흘 안에 거의 다 까먹겠지만 말이다. 

두서없는 횡설수설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분명 쇄를 거듭할 테니 드물게 발견된 두 군데의 오타 지점을 기록한다. 256쪽 아래서 세 번째 줄과 273쪽 아래서 네 번째 줄을 마음산책은 유심히 봐주시기 바란다.


2016.6.15 1판1쇄인쇄 6.20 1판1쇄발행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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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8. 4. 01:14


5년간의 버마 제국경찰 일을 그만두고 제목 그대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수년 동안 경험한 작가가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발표한 자전소설이라고 적혀있다. 오웰에 대한 소개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인데 생각보다 판본이 별로 없고 많이 읽히지 않는 게 좀 의아했던, 그래선지 큰 기대 없이 집어 들었는데 다른 이름난 작품들 못지않게 멋진 글이었다.

장르 구분은 소설로 되어있지만 르포르타주 형식이라 에세이처럼 읽혔고 1인칭으로 서술되다보니 더욱 논픽션처럼 느껴져서, 읽으면서는 그냥 오웰의 이야기로 이해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파리 빈민가 골목의 싸구려 여인숙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과 그 일원으로 생활하며 겪은 가난한 삶의 민낯 그리고 최하층에서 일하는 접시닦이 경험과 그에 대한 사회적인 분석이 절반,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을 청산하고 런던으로 넘어가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부랑인으로 생활한 경험과 '부랑인'을 ‘양산하고 유지하고 시전하는’ 제도와 사회에 대한 분석이 절반을 차지한다.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까지의 경험에 기반한 기록이니 참 오래 전의 일이고 배경도 파리와 런던인데, 신기하게도 가난과 가난한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매커니즘과 그들을 분리하고 범죄화하고 차별하는 방식과 원리는 지금 여기를 떠올려도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자본주의와 함께 고안된 가난과 빈곤의 사회적 효능이랄까.. 국가가 엄연하고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 국민도 엄연하지만, 일 없는 것도 가난한 것도 부랑하는 것도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만 여기는 제도와 시선의 폭력 같은 것들 말이다. 구빈법과 구빈원이 시작된 나라답게 영국의 부랑인 정책은 더욱 신랄했는데, 한 달에 두 번 이상 같은 구호소에 찾아갈 경우 감옥에 가두기 때문에 거의 영양실조 상태인 노숙인들은 낮 시간의 대부분을 의미 없는 행진으로 보내야 했다고 한다. 다른 책에서도 얼핏 읽기는 했었는데 특정인물에 대한 묘사와 함께 자세히 서술된 이야기를 읽으니, 노숙인을 부랑인으로까지 내몰았던 시절보다 지금은 좀 나아진건가 싶어지기도 했다.

아무려나, 파리와 런던에서 주인공과 인연을 맺었거나 주의 깊게 살펴본 적잖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건은 없다 보니 어쩌면 조금 사소한 이야기들의 모음 같은 느낌도 드는 책이기는 했다. 하지만 딱히 어느 부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행간에 특유의 유머가 가득해서 무거운 이야기들임에도 때로 깔깔거리며 또 끄덕이며 재미있게 잘 읽었다. 

자신의 또 타인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따뜻한, 그리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진취적이면서도 여유로운 태도 같은 것이 그의 글에는 늘 느껴져서 읽다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읽을수록 지금 ‘우리 시대의 오웰’ 같은 작가는 누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물론 누구에게든 달갑지 않은 수식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있다면 무지 반갑게 읽게 될 것 같다.


2003.11.28초판1쇄 2012.4.18 2판3쇄발행

도서출판 삼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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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6. 21. 17:00


부록과 옮긴이의 말을 두고 [카탈로니아 찬가]와 [버마 시절]을 함께 읽어 나가며, 한 달 가까이 오웰을 읽었다. 진작에 읽었어야 할 책,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내용을 확인하며 번역본이지만 작가의 블랙유머에 공명하며.. 1946년에 예견한 1984년만은 아니겠지만, 부록 '신어의 원리'에 적은 대로 신어를 공표할 2050년쯤의 세계는 혹시, 거의 모든 가치가 전도된 세계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재미있게 읽었다.

[1984] 2003.6.16 1판1쇄, 2014.7.28 1판60쇄, 민음사


언젠가 읽다가 말았던 기억만 남아 있었는데, 그렇다면 분명 스페인 내전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별로 흥미롭지 않아서였겠지만.. 다시 펼쳐 읽기 시작하니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이라는 부제가 붙은 [스페인 내전]을 떡하니 사둔 것도, 내전을 둘러싼 정세와 정파 간의 역동에 무지한 채로 "랜드 앤 프리덤"을 보고도 괜히 들떴던 것도, 어찌됐든 관심의 증표이긴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요즘의 관심은, 어쩌면 그 동안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았을까 외려 신기해진 조지 오웰. 책장에는 그의 책이 이미 대여섯 권이나 있는데도 말이다. 개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자명한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야말로 자유와 평등의 세계를 향한 열망을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갈구하고 실천했던 한 사람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이제는 읽게 되는. 실은 h의 책 서두부터 인용된 걸 보고 다시 손길을 뻗쳤지만. 어쩌면 물론 거대하지만, 인간으로서 마주서는 것이 가능했던 마지막 세계를 증언한 인간이 아닐까 싶은. 모든 것이 자본에 잠식되고 국가에 위장된 오늘날이 도래하기 직전,의 야생적 세계와 그의 변혁을 위해 말과 글 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행동으로도 부대끼며 싸웠던.. 서구 출신의 마지막 지식인의 존재 증명 같이 느껴졌다. 물론, 모든 걸 사람으로 환원하는 나의 독서법 아래-

[카탈로니아 찬가] 2001.5.15 1판1쇄, 2007.1.25 1판14쇄, 민음사


이 책 역시 오래 읽었다. 1936년 초, 공황기의 대량실업과 유럽 파시즘의 위기가 사회를 위협하던 시기 '레프트북클럽'이라는 운동 단체의 제안으로 영국 북부의 산업지대인 위건, 리버풀, 셰필드, 반즐리 등 랭커셔와 요크셔 일대의 탄광 지대에서 노동자들의 실상을 조사해 집필한 1부 그리고 '사회주의' 확산에 방해가 되는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과 '민주적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필자의 주장을 모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80년 전 영국 북부지방에 대한 관찰과 조사에 따른 기록이지만, 디테일은 다를지언정 산업화와 기술 발전을 떠받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과 그러한 구조적 모순의 매커니즘은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별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본주의 세계의 문제는 보편적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겠지만 소위 진보와 운동을 이끌어간다는 이들이 야기하는 폐해랄까, 필자의 주관적인 주장이 다분함에도 상당히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당대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기계적 대위법에 갇히지 않고 문제와 우려를 예각화하는 필자의 섬세하고 냉정한 비판- 그런 사고와 관점이 있었기에 "동물농장"도 "1984"도 나올 수 있었겠구니 싶은, 선명하게 어느 편에 설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설득력있게 풀어낸 것이 좋았다. 계급적 경계와 지배의 안팎을 두루 경험하며 길을 찾고자 현실의 벽을 넘나든 그의 삶의 이력이, 생동감 넘치는 글의 근육이 되었을 것이다. 

사회적 시의성이 이해에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글이었는데, 좀 길다 싶은 옮긴이의 말이 적잖이 도움이 됐다. 제목의 '위건 부두'는 글을 쓸 당시 이미 사라진 후였고 'pear'에는 강변휴양지라는 뜻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에 대한 느낌은 사뭇 달라졌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 2010.1.18 초판1쇄 2011.6.17초판6쇄,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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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3. 17. 01:30


딱히 바쁘지도 않으면서, 윤대녕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늦게 들었다. 서둘러 주문해 당도한 책은 반갑게도, 아쉽게도 아직은 초판 1쇄인 듯. 그가 책으로 엮어낸 모든 이야기를 읽었지만 물론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은어낚시통신>으로부터 줄곧 따라 붙었던 '존재의 시원을 탐구하는' 혹은 '삶의 비의를 질문하는' 작가라는 류의 수식어는 늘 맞춤한 것이었고, 그에 걸맞게 그의 이야기는 대개 한 사람 혹은 일대일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것 같다. 주관적인 감상인지 모르지만 내게 그는 늘 '개인'을 부여잡고 있는, 일대다의 관계 혹은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은 작가이기도 했다. 소싯적 송곳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니기도 했다는 인터뷰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그는 총체성과 집단이 사라진 세계의 미망과 단절하고 구체성과 개인을 통해 삶과 세계의 섭리와 어떤 구원을 간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소설 속에는 공간과 배경이 있지만 시대와 사회는 없다고 느껴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작가후기에는 세월호참사의 충격이 고백처럼 새겨져있고, 하나의 타자에 사로잡혀 나의 심연을 돌아보던 그의 주인공들과 달리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다자간의 관계 그리고 시대와 사회 속의 개인으로서 사유하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잘 나이 들어가는 것은 깊어지되 넓어지는 것,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사회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믿음을 여전히 품고 있는 내게... 그럼에도 ‘윤대녕은 예외’라고 눈 감고 열광했던 내게... 그의 변화 혹은 새로운 외화는 꽤나 반가운 일이다. 그 덕분인지 뭔지 예전 같은 ‘윤대녕표’ 내밀한 감흥’이 좀 덜하기는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장편보다는 중‧단편에 훨씬 많이 공명하는 독자이기는 하다. 올 가을 쯤에는 <도자기박물관>같은 작품집을 다시 만나고 싶다.



윤대녕

문학동네, 2016.2.25초판 발행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2. 15. 03:00


1월 강의를 듣고 생긴 조급증 탓에 난독증을 의심케하는 책들과 씨름하다가 간만에 말랑한 독서. 절반 읽었는데 '서로'라는 말 쓸 일 없어진 지 너무 오래여선지, 이미 마음이 늙어버려서인지, 를 포함해 실은 나랑 참 안 맞는 독서였다고나. 

책 출간에 관한 기사를 먼저 접했고, 둘 중 한 사람의 이름은 기사를 통해 처음 접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이름만 알고 있는 터였다. 사제지간이었던 두 시인이 비밀스러운 오랜 사랑의 결실로 선택한 결혼, 신혼여행 삼은 호주에서의 한 달, 그리고 그 한 달에 대한 각각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추천사(너무 호들갑스러워서 민망했다)를 쓰기도 한 동료시인이자 편집자의 선물이라고 한다.  

1년에 하나씩 같은 속도로 먹어왔음에도 갈수록 낯설어지는 나이와 십여 년을 혼자 잘 살아왔지만 때때로 엄습하는 앞으로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 '사랑'은커녕 마음에 드는 사람도 찾기 힘든 성마른 마음가짐이 영영 굳어질 것인지에 대한 양가감정, 갖은 스토리를 갖다붙였을 때 빛을 발하는 것과 별개로 누구에게나 일상이고 지옥이고 천국이기도 할 '관계' 그리고 일종의 '속박'을 선택한 자들에 대한 궁금함, 따위가 책과 만났다. 

걸어본다 시리즈의 첫번째였던 용산 편을 나쁘지 않게 읽은 터였는데, '걸어본다'는 시리즈명 외에 시리즈북에 부과된 공통의 사명은 없는 듯 책은 p와 jj의 시드니에서의 한 달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이다. 이런 식의 기획서를 읽은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은 듯도 아닌 듯도 한데, 암튼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함께 겪은 경험이 각각의 감성과 필터를 통해 전혀 다른 질감의 글로 펼쳐졌다는 것이 재미있기는 했다.

전반부는 p의 글- 오래고 비밀스러운 사랑과 일생의 선택. 살아가는 한 늘 모든 것이 처음이지만 또한 '처음의 처음'으로 경험하는 jj와의 시드니 체류를 기록하는 데에 충실하다. 낯선 곳에서 일상을 보내며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과 경이로운 체험들, 그와 함께 때때로 찾아오는 독특한 유년의 기억, 일생의 동반자가 된 jj와 자신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응시 같은 것들이 익숙한 여행기처럼 담겨 있다.

후반부는 jj의 글-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 해도 p의 글을 통해 한 달 간의 주요 행선지와 행적이 이미 머릿 속에 입력된 터라 부득이 두 사람의 글이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실은 몰랐더라도 그들의 글은 확연히 다른 결이었다. 좀은 고답적이고 많이 관념적이고 '걸어본다-시드니' 시리즈에 담긴다는 것을 너무 많이 의식한 듯한, p의 글이 오롯이 자신에 집중한 산뜻함 덕분에 마음의 공명을 일으켰다면 jj의 글은 나로서는 많이 답답한 지루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명의 냉정한 독자로서 '소설도 아닌 산문'에서 짜내는 갖은 과도한 은유와 과잉된 의미부여가 나는 무척 불편했다는 게 맞겠다. 일생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다듬어온 삶이니 그 깊이를 한 번의 독서로 가늠할 수야 없겠지만 이미 너무 많이 널려 있는 이런 류의 책에서까지, 별로 납득되지도 않는 저자의 주관 속 세계의 비의와 총체를 꿰뚫어보는 듯한 사변과 형이상학과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p와 jj 모두 내게는 처음인 작가들이다. 그나마 p의 글은 무게 잡지 않은 발랄함 덕에 잘 읽혔지만 jj의 글은 솔직히 말하면 읽는 동안 다수의 저항감을 불러왔다. 툭하면 갖다붙이는 관광객과 여행자의 이분법의 저열함이 그러했고 특히 '고층빌딩들의 윤리적인 비율' 같은 표현이 불쾌하고 시덥잖다고 느껴졌다. 어떤 기준을 통한 가치평가나 어떤 단어를 수식어로 차용하는 건 필자의 자유겠지만 단지 인식의 세계 안에서만 길어올린 자신만의 사유를 보증하고 문장 미학을 완수하기 위해 근본없이 갖다쓴 겉멋부리기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작가가 사회/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참여하고 고발의 태세를 취할 필요는 당연히 없겠지만, 유람선에 오르며 떠올리는 세월호에 대한 장치적 언급이나 경의선숲길공원 주변의 카페가 주는 여유와 서정까지만이 자신이 감응하는 세계인 작가들에게 보낼 신뢰나 아량은 내게 없다는 걸 심드렁하게 깨닫는 독서였다고나 할까. 어떤 사물과 상황으로부터도 과잉한 관념적 사유로 뻗어가는 서술에 질려가며 내내 엄습하는 심드렁함은, 종반부에 '동아일보 인문학강의' 운운에서 작은 폭발로 확증됐다. 우리 시대의 인문학과 인문학적 사유를 한다는 문필가들의 자명한 한계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부정적인 독후감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머리와 마음을 편안히 하고프다는 말랑한 독서에서조차 피해갈 수 없는, 세계의 축소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와는 참으로 안 맞았던 책.


박연준 장석주

난다 2016.2.1초판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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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6. 1. 5. 02:00


참 오래도 읽었다. 별 기대 없었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의외로 좋아서 뒤늦게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일방적으로 내가 가진 이미지이지만) 작가의 면면을 여럿으로 나눠놓은 듯한 인물들에 에피소드들은 작위적이고 산만하면서 결정적으로 전개가 지루해서 한참을 덮어놨었다.

그나마 후반부의 20% 정도를 한 번에 속도감 있게 읽고 나니 좀 낫기는 한데, 이 작품은 나랑은 아닌 것 같다. 용휘도 용우도 제롬도 소영도 권도 온통 별로 납득되지 않는 캐릭터였고, 사건이나 설정 들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딱히 마음을 울리는 대목도 없었네. 

그러나 4년이나 썼다니, 고생 많았을 것 같고.. 어쩌면 그런 과정이 있었으니 "언제 들어도 좋은 말"처럼 (내가 느끼기에는) 짜임새 있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도 쓰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읽다 말고 덮어두기는 아까워 좀은 정리하듯 읽어낸, 새해의 두 번째 책.


이석원

2015.10.30 1판 7쇄, 달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