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5. 3. 19. 03:00


부록의 투병일기 등의 부분을 몇 달 전에 먼저 읽고, 다시 잡아 열흘 남짓 띄엄띄엄 읽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기존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은 것이어서 이따금 중복되는 내용도 있는데 아마 그것들이 저자가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인 것 같다.

역사는 그런대로 좋아하지만 산은 정말이지 무관심한 터라 역사와 산을 염두에 둔 적도 사실 없었는데, 책을 읽으며 역사기행에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행도 좋겠지만 거의 평생을 자기 방식으로 운동에 복무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런 활동의 밑바탕이 되었을 역사인식과 낙관주의를 배우고 싶기도 하다. 

운동한다고 별로 생각도 않지만 어쨌든 운동단체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입장에서, 언제나 간극과 괴리와 불균형 들을 유독 도드라지게 감지하고 무시로 흔들리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자꾸만 겹쳐진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운동의 전제는 집단성이고 '시시한 개인'들이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집단의 동학으로 조직되고 움직이며 발휘하는 활력이, 원동력이다. 이제 조금이나마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개인들에 대한 실망을 활동의 한계를 만드는 핑계로 삼지 말자고 생각하는 수준일 뿐이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학시절 읽었던 책들이 겹쳐 떠오르며 어쩌면 역사적 전망에 대한 결의와 신뢰는 많이 알고 되새기는 것으로 얻어질 수 없는, 생래적이고 성향에 기반한 게 아닐까 되묻는 내 모습이 어렸을 적과 너무 똑같다.


박준성

이후, 2009.6.30 / 2010.5.20재판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탐욕소년표류기  (0) 2015.05.25
한국노동운동사1  (0) 2015.04.16
백석 평전  (0) 2015.02.22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  (0) 2015.02.12
적군파_내부폭력의 사회심리학  (0) 2015.02.03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5. 2. 22. 03:23


안도현 시인이 삼십년 짝사랑해왔다는, 성실한 흠모의 결정체가 책으로 거듭났다는 느낌. 잊고 지냈던 두 권의 평전에 대한 바람을 오랜만에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순정하고 정갈한 향수의 시편, 빛바랜 사진이 주는 첫 인상과 달리 갈구하고 절망하는 여러 겹의 연정 속에서 분방한 자기모순을 끌어안고 살았던 청년 백석의 삶이 반가웠다. 하지만 그 어떤 개인도 시대를 비껴갈 수 없듯이, 낭만과 모던으로 상징되는 해사하게 빛나는 시절은 짧았다.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민족과 신념을 온 삶으로 받아들여 결과적으로는 부화뇌동했던 다수의 식민지 지식인들과 꽤나 결이 다른 길을 걸었지만.. 문학적 순결함을 지키고 인간적 자존을 지키기 위한 고뇌와 침묵, 더불어 살아내기 위해 감내해야 할 가난과 곤궁이 깊은 삶이기도 했다.

드문드문 알려진 행적과 작품으로 재구성한 북한 시절의 이야기에는 시스템이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굴절시키고, 영혼을 어떻게 복속시키는지가 너무 참담하게 드러나 읽어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창작생활이 끝난 1962년에 멈춰 있고, 여전히 복권되지 못한 그의 인생 마지막 삼십여 년은 '전원생활'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구는 잘 알려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흰 바람벽이 있어", 거의 전율에 가까운 공감을 부르는 몇 구절이었다. 독특한 향토색을 구현하는 방언과 고향의 이미지화 같은 부분은 실은 관심 밖이고, 시에 대한 소양이 없으니 미학적으로 매료된 적도 없다.

안도현 시인의 복기로 되살아 난 시인 백석은, 내게 시보다 외모보다 어쩌면 감성과 성정과 처신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듯 하지만 첫 눈에 반한 여인에게 뜨겁게 몰입하고 도덕적 딜레마를 떨치고 동거까지 불사했던 열정, 문단의 대다수가 이름이라도 거는 친일에 가담하고야 말았을 때 스스로를 지키고자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을 두고 만주로 떠난 강직함과 용기, 결국은 피할 수 없었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끝내 일본말로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자존심 같은 것들 말이다.

안도현 시인은 백석 시인을 정말 사랑한 것 같다. 사랑을 동력으로, 그 대상을 되살려낼 수 있다는 건 부럽고도 고마운 일이다. 활자든 환상이든 현혹이든 말이다.


안도현

다산책방, 2014.6.11초판2쇄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5. 2. 12. 03:06


여행작가인 저자가 2002년 아내와 함께 한 동유럽을 1부로, 1992년 홀로 여행한 동유럽을 2부로 기록한 책이다.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이 중 일부는 2000년 가을 나도 여행했던 터라 15년 가까이 지난 기억이지만 때로 반갑고,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산문집이 마구 쏟아져나오기 전, 좀은 촌스럽고 소박한 개인적 감회를 담은 기록인데 여행자로서 함부로 나라와 사람들을 재단하지 않고 너무 많은 걸 전달하려 애쓰지 않아 부담없이 읽혔다. 때로는 고독하고 외로운 여행의 민낯을 마주하고 때로는 일상을 떠난 황홀경을 선사하는 여행의 황홀에 매료되며 그 과정 자체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러면서도 그때그때 현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솔직한 여행기였다.

2-3년 후쯤으로 막연히 생각하면서도 혼자는 사실 좀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 과연 이전처럼 나름 꼼꼼히 준비해 떠알 수 있을까 자신이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유럽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 그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으면 하는 바람. 당장 떠날 수 없을 때 누군가의 기록 속에서 아련해지는 나의 추억을 되새기고 기억을 들춰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이따금 여행기를 읽어야겠다.


이지상

북하우스, 2004.5.20.초판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  (0) 2015.03.19
백석 평전  (0) 2015.02.22
적군파_내부폭력의 사회심리학  (0) 2015.02.03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0) 2015.01.31
저지대  (0) 2015.01.30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5. 2. 3. 03:10


소재가 된 팩트 자체가 주는 공포와 충격이 너무나 크지만, 그럼에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연민을 견지한 섬세한 저자와 꼼꼼하고 성실한 번역과 편집이 빚어낸 좋은 연구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게노부 후사코의 책을 읽은 후에도 모호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많아 이참에 말로만 들었던 '적군파'에 대해 알아보자는 심산이었는데 빙산의 일각치고는 훌륭한 입문서를 만난 듯 하다.

역시 말로만 들었던, '전공투' 이후 일본의 학생운동이 몰락(?)한 실마리가 되는 사건이기도 하고... 책에서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두 달 간의 연합적군 숙청사건과 이후 아시마산장 농성을 다루고 있어 공통의 인물들이 벌인 사건의 인과관계와 실체를 좀더 이해하기에 용이했다. 더불어 도입부 야마가타 고지의 인터뷰 덕분에 연합적군 숙청사건 이후 통칭 '적군파'의 위상과 기세를 떨치기 위해 기획 감행한 텔아비브공항 테러도 운동 역학의 맥락 속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운동의 흐름과 부침이라는 측면에서, 대규모 평화시위와 일련의 비폭력 진압이라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그러면서도 실제적인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회운동에 한계를 느낀 청년들이 폭력과 무장혁명으로까지 경도되는 과정의 해석은 지난한 장기투쟁이 이어지고 세월호참사 등으로 비슷한 국면의 운동적 정체가 지속되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교양인, 2014.1.20초판2쇄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평전  (0) 2015.02.22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  (0) 2015.02.12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0) 2015.01.31
저지대  (0) 2015.01.30
축복 받은 집  (0) 2015.01.15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5. 1. 31. 03:13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재일조선인 등 주변인들의 가난과 이들에 대한 차별을 목격하고, 이후 사회 생활에서 자신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경험한 시게노부 후사코. 대학에 진학한 뒤, 당시 베트남전 등 국제정세에 크게 영향 받은 학생운동을 통해 일본 적군파로서 활동했다.

 

1970년대 초, 일본에서의 혁명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당시의 국제주의 노선에 따라 레바논 배이루트로 거점을 옮겨 일본 적군파 리더의 한 사람으로 아랍 해방을 위한 무장투쟁과 다양한 활동을 하던 중 1973년 딸 메이를 출산한다. 오랫동안 국제 지명수배자로 활동하며 살다가 2000년 일본 입국 후 체포되었으며, 27년간 무국적으로 살아온 딸 메이의 국적 취득을 위한 탄원으로 자전적인 이 글을 펴냈다고 한다.

 

오십여 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석 달여의 짧은 기간 동안 반추하며 써내려간 비망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또한 당시의 정세와 적군파 혹은 세계혁명에 복무하는 이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치열한 전사이자 평범한 인간이었던 한 여성의 내면을 다 드러내기에는 구멍이 많고 헐렁한 글들이었다. 게다가 교정 작업을 거치지 않은 듯 적잖은 오타와 오기, 비문 덕분에 물론 십여 년 전 출간된 책이기는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허나 어떤 형태이든 어떤 방식이든 '운동'에 나서는 인간의 초심은 결국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바람이라는 확인, 시대와 세대와 조건의 상이함을 상쇄하는 보편의 지향과 그에 따르는 개별자로서의 크든 작든 번민과 갈등은 결국 그의 몫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더불어 사랑 또는 애정, 남녀간의 가장 내밀한 그러면서도 인류로 향해 무한정 확장되는 그 감정의 불가사의한 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조금 불안한 사랑의 결과였을 생명을 세상과 연결하기로 한 사과나무 아래에서의 결정은, 먼저 간 동지와 혁명투쟁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무거운 것이었지만 그를 통해 필자에게는 새로운 감응의 방식과 세상이 펼쳐졌다. 모두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한순간도 경험하지 못한 치열한 생애를 살아낸 필자와 그의 시대 그리고 세대가 좀 더 궁금해졌다.

 

 

시게노부 후사코

지원북클럽, 2001.12.22초판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  (0) 2015.02.12
적군파_내부폭력의 사회심리학  (0) 2015.02.03
저지대  (0) 2015.01.30
축복 받은 집  (0) 2015.01.15
종이배를 접는 시간  (0) 2014.10.12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5. 1. 30. 03:15


두 권의 전작에 비해 간만에 읽은 [축복받은 집]이 평이해서 바로 손이 가지는 않았는데.. 올해 두번째 책이 됐다. 만만찮은 두께가 내심 부담스러웠지만 읽기 시작하니 흥미로운 전개에 빠져들어 이틀만에 완독.

흡사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는 형제 수바시와 우다얀, 그러나 성장하면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판이한 길을 가는 그들의 아내가 된 가우리와 그들 모두의 딸인 벨라. 인도의 캘커타에서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등을 오가며 칠십여 년에 걸친 긴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주요 등장인물과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매력적이고 이타적이고 실천적이었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방향을 잃은 미숙함으로 셜과적으로는 모두를 불행으로 인도한, 어쩌면 본의 아니게 가장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 이른 삶을 마감한 우다얀. 동생에 대한 생래적인 애증 속에서 어쩌면 자신의 삶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마저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함 책임과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며 말년에나마 벨라와 앨리스를 통해 존중과 행복을 느끼는 수바시. 

...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군파_내부폭력의 사회심리학  (0) 2015.02.03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0) 2015.01.31
축복 받은 집  (0) 2015.01.15
종이배를 접는 시간  (0) 2014.10.12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0) 2014.10.08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5. 1. 15. 03:20


무엇이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실은 두 책의 내용도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잇달아 읽으며 마음 깊은 각인의 느낌을 남겼던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과 "그저 좋은 사람"은 내게 소중한 책이다.

그보다 전에 출간된 첫 소설집, 마음산책에서 재출간되었고 인기있는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가 되며 다시 회자된 모양이다. 

열 편쯤 되는 단편 중 내 마음을 직접 두드린 건 단연 "섹시"였다. 삶의 배경과 문화와 인종 등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조건을 무색하게 하는 인간 보편의 감정들, 사람에게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간주되는 그 어떤 요소들보다 상황과 상호작용이라는 고유한 조간이 보편의 공감에 지대한 결정력을 가진다는 것을, 그녀의 책에서 자주 경험한다.

다소 복잡한 마음으로 연말과 연시를 맞으며 읽은 첫 책, 그녀의 전작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조용한 위로가 되어줬다. 그리고 지난해 나온 두터운 신간 [저지대]가 기다리고 있다.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0) 2015.01.31
저지대  (0) 2015.01.30
종이배를 접는 시간  (0) 2014.10.12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0) 2014.10.08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0) 2014.10.05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4. 10. 12. 03:39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4박 5일의 부산행. 2011년 희망버스로 간만에 다시 찾게 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마침 일정을 맞출 수 있었던 반나절의 출장이 계기가 되어 한글날과 미뤄둔 여름휴가와 주말을 이어붙여 욕심껏 마련한 휴가였다. 2011년의 부산은 희망버스였고 한진중공업이었다. 6월부터 10월까지, 반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어진 네 번의 부산행에서 마음이 목표로 삼았던 곳은 언제나 85호 크레인. 

뭉클한 한마디까지 적어 건네주신, 예기치 못한 선물을 부산여행 마치고 상경하는 기차에서 읽었다. 김지도님을 만나 한진 동지들의 복직 소식을 들은 다음날, 설마 트윗을 보신 건 아니겠지만 복직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이용대 형님의 정말 간만의 연락도 받았다. 그러고보니, 참 쉽게 감동받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망각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새삼 실감이 됐다. 비록 한 사람의 연대자에 불과하더라도, 거대한 싸움의 구석구석까지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안전한 거리에서 느끼는 피상적 연민이 이끌어낸 걸음은 결국 이렇게 추상적인 공감..

이런 싸움이었고, 이런 사람들이 싸우는 거였구나. 좀 새삼스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뒤늦게 종이배를접는시간을 읽으며 교차한 만감의 여운이 짙다. 함께한다고 생각했지만 확연한 일상의 경계, 흐르는 시간 속에 녹아버린 듯한 진심을 떠올리며 좀 부끄럽고 혼란스럽다. 

나도 내 마음을 다 알 수 없는데, 나 아닌 누군가의 심정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말고, 자명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말이나 결심은 함부로 할 게 아닌데 이미 몇 번을 그랬고, 그 차원이란 게 참 어렵고 어렵다. 시한부 격정에 휩싸인 채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만- 선을 긋는 건,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비겁해지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단념과 불편함을 동력 삼는 게 부끄러움만은 아니라고, 내맘대로.


허소희.김은민.박지선.오도엽

삶창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지대  (0) 2015.01.30
축복 받은 집  (0) 2015.01.15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0) 2014.10.08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0) 2014.10.05
비긴,어게인 그리고 하늘을 듣는다  (0) 2014.10.01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4. 10. 8. 03:45


작품 속의 반전들도 적잖았지만 작가의 말 속 그의 연배가 무엇보다 반전이다, 그랬구나.. 예전 "고래"를 읽었던 듯 한데 뭔가 무겁고 괴이한, 나와 맞지 않는 느낌이 있었던 듯 하고 (아닐지도..) 첫번째 "봄, 사자의 서"가 딱 그런, 뭔가 답답하고 고답적이면서도 어울리지 않게 멋부린 듯한 상징과 비유의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 같아 심드렁했다. 근데 두번째 "동백꽃", "왕의 무덤" 등 수록작품들이 마치 다른 작가의 소설인 듯 분위기도 문체도 판이해 신기하기도 하고 빠져서 읽기 시작.

단 한 명도 행복하거나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는 주인공들, 이혼했거나 이혼한 듯 살고 있거나 가끔 등장하는 섹스는 하나같이 도구이거나 욕정이거나 가정은 온통 파탄 났거나 불화하거나. 단지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평범이란 이제 이런 것인가 싶은 개연성도 없지 않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도 작가가 미덥기도 했다. 괜찮았다.


천명관

창비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복 받은 집  (0) 2015.01.15
종이배를 접는 시간  (0) 2014.10.12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0) 2014.10.05
비긴,어게인 그리고 하늘을 듣는다  (0) 2014.10.01
메이드 인 공장  (0) 2014.09.30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4. 10. 5. 02:28

 


자캠 프로그램으로 기억한 이름, 제목이 마뜩잖았지만 아마 반값할인 중이었거나 궁금해서 산 것 같은데.. 저자가 상정한 주요독자군은 경쟁에 내몰려 허덕이는, 그럼에도 사회과학적 혹은 인문학적 교양에의 관심끈을 놓지 않은 청춘인 듯 하니 나로 말하면 좀 엉뚱한 독자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꽤 흡족한 독서였다.


분명 1권은 꽤 열심히, 2권과 3권은 대략이나마 공부했었던 [자본론]의 아슴한 기억과 여기저기서 얻어 듣고 주워 읽었던 조각조각의 마르크스가 맥락없이 떠오르곤 해서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단편이나마 내가 접했던 소위 사회주의정치조직의 활동가들의 운동과 혹은 다른 세상을 향한 갈구 속에는 왜 전혀 없을까 싶어 의아했던 '사람', '개인', '마음', '감정' 차원의 문제들을 사회관계와 결부시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편안하고 좋았다. 친근한 접근을 위해서인지 저자의 취향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설명을 위해 예로 드는 노래와 시와 영화 들도 대개 알고 있거나 반가운 것들이어서 더 좋았고.


무엇보다 저자가 책 머리와 말미에 공히 인용한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라는 말, 당연한 듯 하지만 운동의 과정에서 쉽게 잊히거나 추상화되고 마는 그 초심 위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대전 오가는 기차에서 주로 읽느라 달리 밑줄도 메모도 하지 못했는데, 엄청 과문하나마 제목으로는 친근하기까지 한 마르크스의 각종 저작들의 인덱스 역할도 어느 정도 해주는 것 같고. 아무려나 이래저래 한 번 더 꼼꼼히 읽고, [자본론]이든 다른 저작이든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역시 사회과학은 인문학과 만나야, 운동은 사람을 잃지 않아야, 적어도 내게는 설득력을 발휘하는 듯.

 

나름 신뢰하고 응원하던 어느 동지에 대한 각별함이 불현듯 사라지는 경험을 했던 지난 겨울의 어느 날,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름 마음을 담은 토로에 대해 '그건 관심 없고' 라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의 심드렁한 기분이 떠올랐다.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배제하는, 쌍방 소외의 관계로부터 나아갈 수는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느낌. 맥락없는 독서가 계속되고 있는데, 일단은 이렇게 앞뒤 없더라도 읽는 가을을 보내야겠다.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이배를 접는 시간  (0) 2014.10.12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0) 2014.10.08
비긴,어게인 그리고 하늘을 듣는다  (0) 2014.10.01
메이드 인 공장  (0) 2014.09.30
차남들의 세계사  (0) 2014.09.10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