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2. 3. 25. 23:2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실화에 기반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자막과 함께 군사작전처럼 도로를 줄지어 달리는 차량들이 보인다. 차량이 지나는 도로 위에 떨어진 꿩 한 마리가 연달아 지나가는 바퀴들 사이에서 치이는 위태한 모습이 클로즈업되고, 또 다른 길을 달리는 오픈카에서 내린 다이애나가 어느 식당에 들어가 "여기가 어디죠?" 묻는다. 도로 위에서 죽어가는 꿩과 길을 잃은 다이애나, 영화는 인트로에서부터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장면들을 부각시키며 결혼 10년차쯤의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크리스마스 다음 날까지의 사흘의 이야기를 다룬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영국 왕실 일가들이 모이는 곳은 다이애나가 자란 집과 아주 가까운 샌드링엄궁이다. 며칠간의 만찬을 위해 수많은 차량들이 식재료를 싣고 왔고, 길을 헤매던 다이애나는 셰프 대런을 마주치고서야 그곳을 알아본다. 이미 늦었음에도 멀리 서 있는 허수아비가 걸치고 있는 아버지의 겉옷을 발견하고 챙기는 다이애나는 불안하고 초조해보인다. 여왕을 비롯해 모두가 도착해 있는 궁에 뒤늦게 당도한 다이애나는 고압적인 태도로 입구를 지키는 그레고리 소령을 마주해 체중 체크를 강권당한다. 재미로 시작되어 전통으로 자리잡은 이상한 관습들은 왕실에 즐비하고, 아무 의미 없이 강요되는 많은 것들에 다이애나는 기가 질린다.

 

침실에는 보란듯이 [앤 불린]에 대한 책이 놓여 있다. 헨리 8세가 이혼을 불사하며 결혼해 엘리자베스 1세를 낳았지만 부정하다는 혐의로 죽임을 당한 그 앤 불린이다. 찰스 왕세자와 별거 중인 다이애나는 왕실의 무시와 감시에 숨이 막히고, 앤 불린은 자신의 처지를 환기시킨다. 대놓고 불륜을 지속하는 찰스와의 불화와 다이애나의 인간적이고 솔직한 반응은 이상한 소문이 되어 떠돌고 있고, 그나마 대화를 나눌 만한 수행원 매기를 만나 반색했지만 찰스의 명령으로 곧 떠나버렸다. 경직된 만찬에서 곤욕스럽게 밀어넣은 음식은 몸이 거부해 토하기 일쑤고, 한밤 중 허기를 달래려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먹는 현장에는 그레고리가 떡하니 나타나 불쾌한 경고를 날린다. 지옥 같은 사흘을 각오하고 궁에 합류한 다이애나의 침실에 놓인 앤 불린은, 망령처럼 수호성인처럼 뇌리를 맴돌며 때때로 환영으로 나타난다.

 

스트레스에 잠식된, 냉소적이고 우울한 다이애나의 구원은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다. 왕실의 기만과 위선에 질린 다이애나는 두 아들이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발산하고, 소박하고 평범한 기쁨을 누리며 자라기를 바란다. 다이애나는 두 아들에게만은 다정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그들로부터 안간힘을 얻는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진행되는 만찬과 행사들, 의사와 무관하게 때마다 꼭두각시처럼 갈아 입어야 하는 의상들, 파파라치로부터의 보호를 명분으로 가해지는 감시와 제재, 자신의 모든 언행이 일일이 보고되고 경고로 되돌아오는 상황은 어김없이 반복된다. 돌기 직전인 다이애나는 찰스에게 따지기도 하고 자해를 하기도 하며 맞서보지만 역부족이다.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이 숨막히는 궁의 공기에 짓눌리면서 버티던 다이애나는 성탄절 미사에서 찰스의 불륜 상대를 목격하고 경악한다. 다이애나에게 그는 앤 불린의 사형 후 11일 만에 헨리 8세와 결혼했다고 알려진 제인 시모어의 환생이다. 강박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다이애나는 수행원들의 방임을 틈타 자신이 자란 집으로 들어간다. 폐가처럼 방치된 어두운 실내지만 공간의 기억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소환하고, 환한 얼굴로 웃고 뛰고 발레하는 소녀의 모습은 지금과 달리 생기와 활력이 가득하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과거의 환상과 고통스러운 현재가 뒤범벅된 혼란 속에서 계단으로 쏟아져 내리려는 다이애나를 구하는 것은 앤 불린의 환영이다.

 

불안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다이애나에게 매기가 돌아온다. 찰스의 미심쩍은 언질이 있었지만 유일한 말 상대이자 진심어린 조언자인 매기와 다이애나는 둘만의 드라이브와 해안가 산책으로 잠시 자유로운 공기를 만끽하며 진심을 나눈다. 다이애나를 사랑한다는 매기의 고백은 아무래도 중의적이거나 지지의 의도를 담은 것으로 느껴졌지만, 아무려나 다행이었다. 궁으로 돌아온 다이애나는 아빠의 허수아비옷을 입고 왕실의 사냥 현장에 난입해 무고한 생명을 재미로 죽이는 폭력으로부터, 그러한 폭력을 오락거리로 즐기는 왕실로부터 두 아들을 구해낸다. 어른들의 눈치를 한참 보다가 찰스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윌리엄과 해리는 다이애나에게 가지만, 마침내 궁에서 빠져나온 세 사람의 표정에서는 해방감이 느껴진다. 맛있는 걸 먹자며 그들이 들른 곳은 KFC 드라이브쓰루, 주문자 이름을 묻자 다이애나는 “스펜서”라고 답한다.

 

 

어릴 적 뉴스에서 가끔 다이애나비의 소식을 접한 기억이 있고 그의 죽음에 잠시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던 것도 같지만, 각별한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3월에 부산에서 예고편을 몇 차례 보게 됐는데 "Perfect Day"가 흐르는 화면 속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그늘진 얼굴과 분노와 절망이 교차하는 표정,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 그렁그렁한 눈이 마음에 남았다. 덕분에 나직하고 쓸쓸한 루 리드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찾아 들으며 기꺼이 거제까지 보러 갔다. 영화에서는 "Perfect Day"를 듣지 못한 것 같지만 짧은 예고편에서 느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임팩트는 변함없었고, 그의 연기로 되살아난 다이애나의 한 시절을 통해 이제는 사라진 하나의 우주를 알게 된 느낌이다.

 

영화는 '실화에 기반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되지만 특정 배경과 실존인물, 그럴싸한 사건과 상황이 주는 박진감 덕분에 보는 입장에서는 '꾸며낸 이야기'보다 '실화에 기반해'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한편 꼭 영국 왕실과 다이애나가 아니더라도, 억압적이고 형식적인 권위와 기만이 난무하는 시공간에 떨어진 힘없는 개인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감각과 일상을 상실한 채 겪는 고난의 분투기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특히 부조리한 전통 혹은 수구적인 가치의 수호자로서 왕실에 대한 충성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맹목적이고 일관된 행태를 보이는 그레고리는, 실제 인물인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창조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존재감과 현실감이 상당해서 그가 등장할 때마다 막막한 느낌이 배가되었던 것 같다.

 

불안하고 위태하고 강박적으로 보이는 다이애나, 그를 그렇게 만들고 몰아간 이들의 침착함과 평화로움의 대비가 극명한 영화였다. 왕실 일가의 오락을 위한 사냥감으로 키워져 총에 맞거나 길가에 떨어져 차에 치여 죽거나 할, 순간의 쾌감에 복무하거나 무의미한 죽음을 위해 존재하는 꿩의 운명은 그 자체로도 부당하고 부조리할 뿐 아니라 앤 불린만큼이나 다이애나가 자신을 이입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마음 둘 곳 없이 피폐해진, 만찬에 억지로 참석하기 위해 용을 쓰다가 포기하는 다이애나에게 “엄마, 잠시만 마음을 꺼줘요”라고 애원하던 어린 윌리엄의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예요.”라고 말해줬던 매기가 전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예요.”라는 쪽지는 정말 힘이 되었을까. 강박과 분노로 사그라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해방감과 자연스러운 일상임을 실감케하는, 수심에 찬 다이애나의 깊은 눈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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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3. 25. 23:18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상위권 성적의 배경 좋은 집안 아이들이 절대다수인 동훈고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한 지우는 마음이 무겁다. 선행 학습을 마친 동급생들 사이에서 뒤처진 성적이 고민이고, 성적 지상주의와 빈부 격차에 대한 차별에 의기소침하고, 최하위권 성적인 수학을 담당하는 담임은 그런 지우를 걱정하는 척하며 전학을 권한다. '사배자'임이 알려져 은근히 왕따이기도 한 지우는 술과 야식을 배달시키는 룸메이트와 친구들 사이에 마지못해 끼었다가 야간 순찰을 도는 경비 노동자에게 딱 걸린다. 주류 반입 행위를 혼자 뒤집어쓰고 한 달간 기숙사 퇴사 벌칙을 받은 지우에게 동훈고는, 10년 전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아빠가 돌아가신 후 지우만 바라보고 견뎠을 엄마의 뿌듯한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동훈고의 경비 노동자인 박씨는 어느 날 야간 순찰을 돌다가 술과 야식을 반입하는 '종간나' 지우를 적발했다. 소시적 수학 영재였고 세계적인 수학자였던 리학성은 자신의 연구가 무기 개발에 쓰이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수년 전 탈북했고, 전적을 숨긴 채 경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북한 말투와 어휘를 버리지 못한 그의 탈북 사실은 학생들에게도 알려져 '인민군'으로 불린다. 무심하게 자기 일에만 집중하며 딸기우유를 끼니처럼 마시는 괴팍하고 성마른 노인네지만, 기숙사에서 쫓겨나 폐쇄된 과학관 앞에 숨어든 지우를 지나치지 못하고 경비실에 재워준다. 그리고 지우가 잠든 사이 짐에서 떨어진 수학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낸 일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동급생들처럼 과외나 고액 학원에 갈 수 없는 지우는 내신에 큰 비중으로 반영되는 수학 올림피아드를 앞두고, 인민군에게 어렵사리 어필해 딸기우유를 수업료 삼은 가르침을 허락받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 수학 외의 질문은 하지 말 것, 시험과 성적과 무관해도 받아들일 것"을 약속하고 시작된 공부는 지우에게 답이 아니라 풀이 과정의 중요성과 뒹굴면서 친해져야 하는 수학의 세계를,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조금씩 일깨우는 시간이다. 폐쇄된 과학관 교실에서의 밤 공부를 위해 손수 여러 개의 스탠드를 장만한 인민군의 얼굴 역시 평소의 퉁명스러운 무표정을 벗어나 수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무아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공간과 시간을 함께하며 경직됐던 마음의 벽을 서서히 허물며 가까워진다.

보람은 이기적인 동급생들 사이에서 굳이 의리를 지키다 덤터기 쓰고 기숙사에서 쫓겨난 지우가 궁금해졌다. "똥멍청이"라 부르며 접근해 "꺼져"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우를 주시하며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보람 역시 비경제적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했지만 부유한 환경과 우수한 성적 덕분에 그 사실은 알려지지도 않았고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어느 날 생긴 작은 오해를 풀기 위해 지우가 매일 사대는 딸기우유를 건넨 보람은, 독서실에서 나가는 지우를 몰래 따라나가 그들의 밤 공부 현장에 함께하게 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인민군의 예상 외 반응으로 비밀은 세 사람의 것이 되고, 인민군과 보람은 먼지 쌓여 방치된 피아노로 원주율 숫자로 만든 "파이송"을 연주하며 환상적인 수학과 음악의 콜라보를 경험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각자의 이유로 소외되고 상처 받은 세 사람은 수학과 음악을 통해 나이와 편견을 넘어서는 은은한 우정의 시간을 보낸다. 특히 지우와 인민군은 함께 대형서점에 가고, 음악회에서 "G선상의 아리아" 연주를 듣고, 인민군의 집에서 손수 차려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과학관과 수학에 국한되었던 교분의 외연을 넓힌다. 입밖에 내지 않지만 인민군은 지우를 보며, 자신의 욕심으로 함께 남한에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북으로 가려다 목숨을 잃고 만 아들 태현을 떠올리고 애써 지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10년 전 갑자기 아빠가 떠나고 일찍 철들어야 했던 지우에게 인민군은, 슬며시 기대고 싶은 좋은 어른으로 마음속에서 그 자리를 키워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화는 잠시다. 보람은 자신이 학원에서 접한 문제들이 그대로 출제된 수학 올림피아드에 분노해 시험장을 박차고 나가고,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방안에 틀어박혀 절망하다 문제 유출 폭로글을 올린다.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수학 논문을 보는 인민군을 위해 시험 전날 행정실에서 논문을 인쇄한 지우는 출입 순간이 찍힌 cctv로 인해 문제 유출 당사자로 몰린다. 인민군에게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남한에 와서 몰두했던 리만 가설 입증이 학계의 인정을 받아 남북의 정보 당국이 '수학자 리학성'의 소재 파악과 신병 확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남한 적응을 도우며 인간적인 정을 나누던 영등포 고물상 사장이 국정원 직원의 신분을 드러내며 그의 앞에 나타나고, 리학성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배신감과 허망함으로 짐을 꾸려 떠난다.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한 담임의 계략과 압박으로 문제 유출자로 낙인 찍힌 지우는 결국 전학 신청서를 제출한다. 담임의 유착과 익명 폭로의 희생자가 된 지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보람은 리학성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떠났던 리학성은 수학 올림피아드 시상식이 열리는 동훈고 강당으로 돌아온다. 이 순간을 위해 학교에 나온 보람은 짐을 챙겨 교문을 나서는 지우를 강당으로 이끈다. 마침 시상을 위해 참석한 수학자와 '만년필'을 통해 본인임을 증명한 리학성은 단상에 올라 인민군이 아닌 수학자로서, 그리고 함께 공부했던 한지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줄 어른으로서 긴 이야기를 전한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에게 발악하던 담임은 본색을 드러내며 퇴장하고, 강당에서 나온 그를 기다리던 국정원 직원은 자신이 마련해준 휴대폰을 차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여권과 비행기표를 건넨다. 그리고 3년 후, 수학과 학생이 된 지우는 오버볼파크 수학연구소로 향하고 수학자로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리학성에게 딸기우유를 건네며 조우한다.


'수학'이라는 주요 소재가 볼까말까 갈등을 부추겼지만 최민식 배우와 괜찮은 후기들 덕분에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리학성이 매료된 수학의 아름다움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오랜 불면증에 시달리며 약을 달고 살던 인민군이 경비실에서 함께 잠을 청한 지우의 휴대폰을 통해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며 간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던 게 흐뭇했고, "딸기우유 때문에 탈북했어요?" "너 똥 먹네?" 같은 대사가 너무 웃겼는데 강조되거나 튀지 않고 흘러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직접적으로는 리학성과 지우, 보람의 한 달여를 다루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리학생의 소시적과 탈북 후 아들의 죽음 나아가 남과 북의 상황까지 연루된 이야기여서 간명한 설명을 위해 방송 화면을 몇 차례 활용했음에도 불가피하게 돌출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은 있었지만 말이다. 극적인 순간의 임팩트를 위해 설정했을 만년필이나 딸기우유 등의 디테일이나 마지막 리학성의 장광설이 다른 방법을 없었을까 싶어 조금 아쉬웠지만, 다행히 과하게 오글거리는 부분은 없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영화가 괜찮아서 여운에 젖어 있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함과 동시에 전방 좌측의 출입문이 열렸고 몇 안 되던 관객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극장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여러 개 관이 있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이 끝난 후 청소 노동자의 마음이 급할 것은 이해가 되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불을 켜버리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트하우스관이 아니니 자막까지 다 보고 나가는 게 눈치 보이겠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꼭 이래야 하나 싶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일반관은 보통 엔딩 크레딧 시작과 함께 퇴장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조도로 불이 밝혀지는데 실은 그것도 별로지만, 자막 안 보고 나가는 관객은 나가더라도 전체 점등과 청소만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 해주면 정말 좋겠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청소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극장 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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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3. 12. 22:55



1930-40년대 미국 사회의 다양한 일면들은 흥미로웠지만, 성공을 향한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따라 파멸로 향하는 스탠의 여정은 솔직히 너무 장황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도 괜찮았지만 개인적으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무척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그야말로 미로를 따라가듯 인상적이었던 서사의 총체적인 유기성 같은 걸 느낄 수 없어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를 죽인 스탠이 우연히 유랑극단에 합류하고 그곳에서 인생을 바꿀 독심술을 배우고 몰리와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 영매를 자처하며 성공과 추락의 경계를 걷는 과정에서 이상하게 긴장감이나 흥미진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탠의 공간 이동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고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 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 어색하거나 억지로 짜맞춘 것처럼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는 홍보 카피가 무색하게 (당연히) 처음부터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후반부에서는 거의 수순처럼 느껴지는 결말이어서 더 맥이 빠졌던 것 같다. 어둡고 비밀스럽지만 매혹적이고 환상적이었던 감독의 전작 덕분에 기대가 컸던 탓이겠지만 "내가 엄청난 얘기해줄게" 하고는 별 대단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다가 허무하게 마무리가 된 느낌이었달까.

다만 기인의 존재와 유랑극단, 마술에 혹하고 불멸을 꿈꾸는 사람들을 통해 전해지는 시대의 분위기는 새로운 느낌이었고, 섬광 같은 존재감을 남긴 [길버트 그레이프]의 카버 부인, 메리 스틴버겐의 깜짝 등장은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화려한 찬사들에 공감할 수 없어 찾아보니 윌리엄 린지 그레셤이라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라는데, 짧은 소개글 속의 작가에게서 스탠의 운명이 겹쳐지는 것 같기는 하다. 책을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정도라도 알고 영화를 봤다면 조금은 덜 겉도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기도.


1909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하여 포크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그레셤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스물아홉 살 때 참전한 스페인 내전에서 만난 전직 순회공연단 직원에게서, 술을 얻기 위해 닭과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었다는 알코올중독자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그레셤이 스스로 내면의 고통과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고들었던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종교, 심령술 등 온갖 미로에 대한 경험이 작품 전체에 대담하고도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다. 그러나 『나이트메어 앨리』의 주인공 스탠턴 칼라일처럼 그레셤 역시 자신만의 ‘악몽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출간 후 큰 파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얻어 1947년 타이론 파워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고 미국 클래식 누아르로 자리 잡아 그레셤에게 돈과 명성을 안겨주었으나 나중에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알코올중독과 신경쇠약을 극복하지 못했고 두 번째 소설과 논픽션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1946년 첫 작품을 출판 당시 이 작품을 아내(그의 세 명의 아내 중 두 번째 아내)인 시인 조이 데이빗먼에게 헌정했지만, 1942년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던 그들은 1953년 이혼했다. (결혼 당시 그레셤과 마찬가지로 무신론자였던 데이빗먼은 남편의 정신적 추락에 절망하여 종교에서 해법을 찾고자 했고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났다. 이후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를 만나 1960년 병사할 때까지의 이야기는 1993년 영화 <섀도우랜드>를 통해 알려져 있다.) 1962년, 이미 눈이 멀기 시작했고 설암 진단까지 받은 그레셤은 십여 년 전 『나이트메어 앨리』 집필 당시 드나들던 타임스퀘어의 호텔 방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 뉴욕의 가을, 53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소식에 주목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시신으로 발견된 그의 옷 주머니에는 이렇게 적힌 명함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주소 없음, 전화 없음, 일 없음, 돈 없음, 은퇴.’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18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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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3. 12. 22:4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국 남부의 한 해안가 마을, 초원 언덕과 하얀 절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의 '호프갭'이 있다. 시 선집을 편집하는 그레이스와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에드워드가 살아가는 곳이자 런던에서 일하는 아들 제이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배인 곳이기도 하다. 일상의 순간에서 호흡처럼 시를 떠올리는 그레이스와 역사 관련 위키디피아 작업에 몰두하는 에드워드는 삼십 년차 부부, 둘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뉘어진 한 세계에서 각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느끼고 원하는 것에 대한 공감, 다정하고 세심한 소통이 중요한 그레이스와 말수가 적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무덤덤한 에드워드가 함께하는 집에 약간의 활기가 더해지는 순간은 제이미가 방문하는 주말이다.

 

감성적이고 예민한 그레이스는 무심한 에드워드가 자신이 말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아들의 방문으로 기쁨에 들뜬 것도 잠시, 결국 자신이 먼저 꺼낸 결혼기념일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에서 에드워드가 미적지근하게 반응하자 평소 쌓인 불만을 폭발시키다 그의 뺨을 때리고 식탁을 뒤엎기까지 한다. 적막을 깨는 파열음에 내려와 엄마를 적당히 달래며 진정시키는 제이미를 보면 처음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다음 날 그레이스가 미사에 참석한 사이 식탁에 마주앉은 부자, 에드워드는 제이미에게 집을 떠날 것이라고 말하며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털어 놓는다. 그레이스의 높은 기준과 그에 못 미쳐 늘 허둥거리며 살았던 에드워드는 마음을 정한 것이다.

 

미사에서 돌아온 그레이스는 지난밤 자신의 언행을 사과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 애쓰지만, 에드워드는 곤혹스러움을 삼키며 자신의 결심을 말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폭탄 선언에 당황한 그레이스는 그의 말을 부정도 하고 '우리의 결혼을 죽이고 나를 죽이는 것'이라고 협박도 하지만, 에드워드는 간단히 싸둔 짐을 들고 단호하게 집을 나선다. 불안하고 위태한 고요가 유지되던 집은 잠시간의 폭풍을 거쳐 차갑게 적막해졌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갑자기 닥친 벼락 같은 이별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깊은 배신감과 혼란을 오가는 감정 기복에 스스로를 맡기고 흔들리면서도 에드워드를 돌아오게 할 방도를 모색하며 제이미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제이미는 주말마다 집으로 가 그레이스를 챙기기 시작한다. 혹시 잠시라도 에드워드가 들를지 모른다는 기대로 집안 곳곳, 냉장고 안에까지 "I love you"라는 쪽지를 무수히 남겨둔 엄마가 걱정스럽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열의를 보이던 시 선집 편집도 뒷전으로 밀어둔 채 침잠하는 엄마를 위로하며 함께 산책하고, 사랑을 찾아 떠났지만 마음 편할 리 없는 아빠와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난관에 처한 연애에 부모의 별거로 인한 감정 소모까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털어놓은 사정에 나름의 가치판단을 얹는 친구들과 달리 제이미는 그레이스의 상처와 에드워드의 입장을 이해하며 각각에게 성심 어린 조력자의 역할을 다한다.

 

30년 전 채링크로스역, 마주오는 한 노인에게서 넉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기차에 올라 눈물 흘리던 에드워드에게 다가와 시를 읊조리며 위로를 건넨 여인이 있었다. 영화 같은 만남으로 둘은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되었고 여인은 여전히 시를 읊조리며 살아가지만, 지금의 에드워드는 그때 기차를 잘못 올라탔다고 생각한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에드워드는 적극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레이스의 기분을 맞춰주기에 급급했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좌지우지하려는 그레이스에게 압도된 채 스스로의 부족함을 의식하며 점점 무기력해졌다. 학생을 돕다 만난 학부모 안젤라에게서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면서도 자연스럽고 편안할 수 있는 사랑을 느낀 에드워드는 더 이상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 기차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잘못된' 선택과 현실을 되돌리려는 그레이스의 욕망은 변함없다. 그레이스의 성향을 알고 있는 에드워드는 만남 자체가 자극이 될 거라 판단해 연락을 받지 않고 아예 전화 번호를 바꿔 버린다. 접근 자체를 차단당한 그레이스는 입양한 개에게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주문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반전을 꿈꾸지만, 집의 소유권을 넘겨주며 이혼을 제안한 에드워드를 만난 변호사 사무실에서 다시 한 번 폭주하며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낙담과 비관, 망상과 오기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레이스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다행히 제이미는 차분함을 잃지 않고 곁을 지키며 함께한다. 세 가족이 행복했던 추억의 장소 호프갭의 벼랑으로 향하는 그레이스의 위태로운 뒷모습을 발견하고, '개척자 엄마'의 길을 따르면서 인생을 살아갈 아들의 진심을 고백하며 부서진 생의 의지를 길어올리는 데에도 힘을 보탠다.

 

그레이스는 침잠하는 마음을 일으켜세우며 자살 예방을 위한 ‘프렌드라인’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각자의 이유로 생의 나락을 경험하며 삶의 끈을 놓으려는 이들과의 소통은, 무방비상태로 마주한 충격적인 상황을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물론 해결된 것은 없고 여전히 마음은 지옥이다. 그레이스는 기어이 안젤라의 집으로 차를 몰고, 햇살 드는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에드워드 그리고 수없이 존재를 부정했을 안젤라를 조우한다. 무례한 불청객에게 '불행한 세 사람이 있었고 이제는 한 사람만이 남았다'고 담담한 태도로 말하는 안젤라를 마주하고서야 그레이스의 이성은 냉정하고 조용하게, 그러나 황망하게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족과 관계, 감정과 사랑,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 나이를 먹어도 그저 살아지는 시간은 없다는 사실 등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화두를 던지는 영화였다. 배려를 확신하는 자기중심성으로 상대를 컨트롤하려 드는 그레이스, 감정의 기복과 압도적인 에너지에 지쳐 뒷걸음질하고 등을 보이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처음엔 사랑했고 수십 년을 함께했어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과 운명의 맨얼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우면서도 공감이 됐다. 잘못 탄 기차에서 수십 년이 흘렀어도 온전한 나로서 행복하기 위해 내릴 수 있고 남겨진 이에게는 또 다른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영화에는 그레이스가 수시로 읊조리는 시와 에드워드가 열중하는 모스크바 후퇴에 관한 텍스트의 내레이션이 여러 번 깔린다. 에드워드에게 결혼 생활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처럼 부적절한 결정이자 끊임없이 후퇴하는 어떤 과정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레이스에게는 자주 읊조리며 시 선집의 제목으로 삼으려 했던 로제티 시의 첫 구절 "여기 와본 적이 있다(I have been here before)"처럼 공감과 위로를 통해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내면 풍경과 지향을 상징하는 듯한 내용의 내레이션과 이미지의 오버랩은 조용한 영화에 인상적인 리듬과 활기를 부여하는 요소였다. 특히 후반부 그레이스의 "섬광(Sudden Light)" 내레이션과 함께 미끄러지듯 안젤라의 집으로 향하는 카메라웍은 인상적이다 못해 갑자기 스릴러로 장르가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고조된 긴장과 짧은 대화 그리고 조용한 단념으로 이어지는 전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좋아진 빌 나이 때문에 본 영화다. 시작은 뒤늦게 본 [어바웃 타임]이었고, [타인의 친절]의 러시아 할아버지가 참 좋았고, 재미있게 봤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런던 프라이드]에 나왔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별로 안 땡겨서 건너뛴 게 아쉽고, 기회가 되면 [북샵]을 꼭 보고 싶은 참이다. 아네트 베닝의 섬세한 연기력 덕분에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느껴졌을 그레이스도 한편 이해가 됐지만... 말수 적고 무덤덤하나 속에는 헤프게 내보이지 않는 열정과 자신의 세계가 있는, 이왕이면 길고 마른 인물에 대한 로망은 참 오랫동안 변하지도 않아서 영화를 보며 자꾸만 에드워드의 편을 드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가 빌 나이여서 더욱, 나이 먹으며 스르르 무화시킨 관계 속의 감정에 대해 환기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3/11 cgv서면임권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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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3. 12. 22:35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희미하게 흐려진 시야로 사물이 잘 변별되지 않는 실내, 휴대폰 작동 상황을 설명하는 기계 음성이 이어진다. 그곳에는 거동이 불편한 한 남자 야코가 있다. 그는 음성 명령으로 휴대폰 기능을 작동시켜 필요한 정보들을 얻고 여자 친구 시르파와 통화를 한다. 느릿하고 힘겨운 움직임으로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해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는다. 그러다 어딘가에 걸려 휘청인 휠체어에서 떨어진 야코는 활동보조인이 도착한 후에야 도움을 받아 일으켜진다. 흔쾌하진 않겠지만 보는 사람들에게만큼 놀라운 일은 아닌 듯하다.

야코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시력을 상실했고 가슴 아래의 신체가 마비된 장애인이다. 음성 지원되는 휴대폰이 종일 함께하는 친구이고 잠깐씩 방문하는 활동보조인이 살림을 챙겨준다. 아들을 걱정하며 수시로 전화하는 아빠에게는 짐짓 명랑히 응대하며 가급적 빨리 통화를 마치려 하는 편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두 손과 팔로 휠체어를 밀어 베란다에 나가 전자담배를 피울 때면, 마주친 적도 없는 자신을 험담하는 이웃의 낮은 말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온다. 잠시 쓸쓸한 표정이 되지만 그뿐, 그에게는 익숙한 일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야코의 큰 즐거움은 그를 "땅다람쥐"라고 부르는 여자 친구 시르파와의 통화 그리고 시각을 잃기 전까지 섭렵했던 영화들이다. 야코는 미국의 B급 영화 거장 존 카펜터를 가장 좋아하는 주관이 뚜렷한 영화광이고, 적잖은 dvd들을 여전히 간직한 그의 말에는 각종 영화의 디테일이나 인물들이 늘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시르파와 일과처럼 통화하면서 오늘의 기분, 지난밤의 꿈, 몸의 상태 등 자잘한 일상을 나눌 때도 영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악몽에 시달리는 그에게 [타이타닉]을 권하는 시르파와 영화 취향은 다르지만, 동병상련의 현실에서 주고 받는 격려와 위로는 서로에게 큰 힘이다.

 

그는 매일이다시피 달리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딘가로 끊임없이 질주하고, 잠결의 끝에서 힘겨운 호흡과 진땀으로 깨어나기 일쑤다. 두 발, 두 다리, 달려가는 뒷모습을 비추는 꿈은 반복되면서 조금씩 진전된다. 마지막 꿈에서 멈춰선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세상에 나온 자신인 듯 휠체어를 탄 한 남자가 있다. 시르파를 만나러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몸의 괴리가 매일 꿈에서 그를 달리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통화로밖에 달랠 수 없는 두 사람은 바람을 담은 노래를 틀어놓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둘 중 하나 죽기 전에 만날 수 있을까?" 담담한 한 마디에 심정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시르파와 야코는 택시 두 번, 기차 한 번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1천 킬로미터 떨어진, 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는 길이다. 막연하게 기약하는 만남이 실제로 가능할지 알 수 없고, 가장 친밀한 관계인 두 사람에게는 살아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두 사람은 주로 가볍고 밝게 일상다반사를 나누지만, 치료 과정의 기로에선 시르파는 어느 날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마침 온라인 도박으로 예기치 못한 큰 돈을 얻게 된 야코는, 주문처럼 언급하던 만남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활동보조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정을 맞출 수 없자 한시가 급한 야코는 홀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다. 택시와 기차를 예약하고 홈시어터 장비를 주문하고 활동보조인에게 부탁해 챙긴 dvd를 가방에 넣고는, 집앞으로 온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시르파에게 향한다. 무사히 기차역에 내려 직원의 도움으로 플랫폼에 선 야코, 휠체어에 올라 혼자인 그의 근처를 서성이던 누군가 눈앞에서 손을 휘젓더니 가방에 손을 댄다. 기척을 느끼고 반응하자 사라지지만, 홀로 나선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위험은 이제 시작이다. 기차에 올라타 시르파에게 출발을 알리고 말을 걸어오는 '스콜피온스맨'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가던 야코는 그의 도움으로 목적한 역에 내린다.

 

하지만 스콜피온스맨은 플랫폼에서 접근했던 치한이었고 앞을 못 보는 야코를 위협하며 어디론가 끌고 간다. 마약중독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강도 행각을 벌이는 스콜피온스맨과 인질이 된 야코 앞에 포악한 빚쟁이까지 나타난다. 위기를 넘기려는 야코의 임기응변은 통하지 않고, 도박으로 딴 거액의 존재를 알고 더욱 흉포해진 빚쟁이는 시르파까지 들먹인다. 목에 칼을 겨누고 긋는 시늉을 하는 빚쟁이의 협박과 폭력에 죽을 고비를 맞은 야코는 폭발한다. 어떻게든 그들을 달래 상황을 벗어나려던 야코는 자신에게 닥친 억울함과 절박함을 절규하듯 외치며 죽더라도 한푼도 줄 수 없다고 포효한다.

 

그들은 유일한 길잡이인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떠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야코는 안간힘으로 휠체어를 움직여 공포의 공간에서 빠져나오지만 무언가에 걸려 쓰러진다. 저 멀리에서 들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실낱 같은 희망이 살아나지만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어딘가에서 나타난 개 한 마리가 그를 보고 짖는다. 바닥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는 개에게 조근조근 말을 붙이는 야코, 그를 발견한 개 주인은 다행히도 친절한 사람이었다. 몇 시간 사이 생사를 오가는 악몽을 경험한 야코는 마침내 시르파의 집 앞에 닿는다. 사투 끝에 처음 만난 시르파와 야코는 감격에 겨워 손으로 서로의 얼굴을 '본다'. 챙겨온 [타이타닉] dvd를 꺼내며 환하게 웃는 야코, 그리고 영화는 처음으로 '완전한' 시야의 화면을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어 줄거리를 구구절절 적었지만,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는 야코의 얼굴과 상반신 외의 모든 것을 포커스 아웃한 화면과 섬세한 연출이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인트로 타이틀 자막의 내용을 설명하는 여성의 음성 해설이 계속 나왔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어서 의아해졌는데 그 소리는 야코의 일상 배경 사운드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의 화면은 마지막 두 사람의 조우 장면을 빼고는 내내 야코의 시야를 반영한 포커스 아웃으로 연출된다. 처음 흐릿한 화면의 야코의 방 역시 의아했는데, 그가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의미를 깨달았고 약간 소름이 끼쳤다. 답답하기는 했지만 때로는 오히려 몽환적인 느낌이 들 때도 있었고, 당사자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재현하는 놀라운 방법이자 과감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방전으로 대마초를 공급받을 만큼 공인된 물리적 고통을 경험하며 비좁은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야코는, 오랫동안 좋아한 영화 그리고 멀리 있는 여자 친구와의 소통을 힘과 희망 삼아 살아간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이불밖은 위험하다는 말을 입증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베란다에만 나가도 사정을 알지 못한 채 험담하는 이웃의 목소리가 들리고, 무모하게 나선 길에는 위험이 가득한 데다 악당의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도 처한다. 하지만 야코는 독립적이고 유쾌한 성격의 영화광이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위해 도전을 감행하는 중년 남성이며 난치병을 앓고 있는 시각 장애인이기도 한 존재다.

 

영화는 단순한 서사와 주인공의 감각에 입각한 과감한 연출로 관객의 선입견과 편견을 통쾌하게 전복시킨다. '불운과 불행의 표면을 넘어'(이 역시 비장애인인 나의 편견일 것이지만, 아직 내가 극복하지 못했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의 개성과 욕망과 취향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당사자성의 극대화를 통해 타인의 감각과 감정을 추체험하게 만든다. 물론 90분도 안 되는 간접 체험의 한계는 명백하고 장애/비장애 여부를 떠나 누구도 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또 최선의 선택을 통해 경계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다.

 

야코의 힘겨운 움직임과 시각 장애로 인해 겪는 불편함들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왔고, 악당들의 볼모가 되고 홀로 버려지며 겪는 일들은 물론 혼자 가는 길에 놓인 자잘하지만 거대한 위험 요소들이 조마조마하고 위태해서 나도 모르게 온몸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기연민에 빠지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움직이는 야코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시스템일 것이다.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흘리는 이웃과 같은 사회의 인식은 인간 사회에서 당장 어쩔 수 없다 해도, 용기를 내 거리에 나선 '사랑에 빠진 남자'가 보이지 않는 장애물들에 수시로 공포를 느끼고 급기야 범죄의 타겟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일일 테니 말이다(물론 그랬다면 영화가 성립되지 않았겠지만.).

 

두 사람의 만남으로 환하게 영화가 마무리되면 주인공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이 실제 다발성 경화증과 시각 장애를 가진 배우라는 간명한 자막이 나온다. 그리고 시작되는 엔딩 크레딧은 문자에서 점자로 변환되어 올라간다. 음성 지원으로 시작되는 인트로, 주인공의 시각과 시야를 반영한 화면, 등장하지만 얼굴도 신체도 거의 나오지 않는 다른 배우들, 점자를 시각화한 엔딩 크레딧까지 완벽하게 감동이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관객이 나뿐이었는데, 아무런 방해 요소가 없으니 더욱 몰입이 되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아름답고 충격적이었다.

 

기발하면서도 좋은 영화를 보면 '감독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지는데, 이 작품은 그 수준을 넘어 '영화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다니!' 하는 놀라움과 어떤 각성을 선사했다.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울컥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나오니 12시가 다 되었고, 영화만 봤을 뿐인데 하루의 마무리가 무척 아름다워 세상에 고마워졌다. 기사를 찾아 보니 테무 니키 감독과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은 함께 공부하던 친구였고, 배우로 활동했던 그의 실화를 각색하며 감독은 자신의 여동생이 앓고 있는 혈액암을 시르파의 병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여러 모로 아름다운 영화를 만나게 되어 행복하다. 나 북유럽 영화랑 잘 맞는 것 같은데, [6번 칸]은 언제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3/10 cgv서면 임권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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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3. 12. 22:0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학을 전공하는 안은 눈에 띄는 외모에 학업에도 열심인 대학생이다. 학교에는 기숙사 방에 모여 여느 또래들처럼 이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나누며 수다를 떨고 공부 고민을 나누는 단짝 친구들도, 안을 주시하며 질시하는 무리도 있다. 안은 펍에서 콜라를 마시고 호감을 표하는 낯선 남자의 접근을 차단하며 '단정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때로 헤프다는 근거 없는 비난과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안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식당과 잡화점을 운영하며 대학에서 문학교사의 꿈을 준비하는 안을 지원한다. 주말에 집에 온 딸에게 책을 사 읽으라며 슬쩍 돈을 건네는 엄마에게서는 응원의 마음이 느껴진다.

특별할 것 없는 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안에게 어떤 조짐들이 찾아온다. 수업 시간에 딴 생각에 잠기고 단짝 친구들과 함께일 때 말수가 줄어든 안은, 통제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공동 냉장고에서 남의 음식을 훔쳐 먹기에 이른다. 몸의 이상을 감지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임신 진단을 받은 안,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의사 역시 단호하게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절박함을 호소해 유산 가능성을 높여줄 약을 받아오지만, 안에게는 자신만의 지옥이 열렸다. 때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낙태죄는 불법이고 임신한 여성은 물론 도움을 준 의사도 실형에 처해지는 형편이다.

확증이 된 불안은 안의 일상을 뒤흔든다. 막막하고 혼란한 마음과 조금씩 변화하는 몸,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감내하며 안은 홀로 방법 찾기에 골몰한다. 곧잘하던 공부는 뒷전이 되고 수심에 잠긴 마음은 경직된 표정으로 굳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다급해진 안은 다른 병원을 찾아가지만 의사의 답은 같다. 이전 병원에서 받아온 약이 오히려 태아를 강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절망은 더 깊어졌다. 문학교수의 미래를 꿈꾸는 안에게 예상치 못했던 임신과 출산은 “여자들만 걸리는 병”, “집에 있는 여자로 만드는 병”일 뿐이다. 사회는 임신을 오롯이 여성의 문제와 책임으로만 돌리고 중단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버렸다.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여자들과 두루 친한 남자 동급생에게 도움을 청한 안에게 돌아온 것은, 임신했으니 상관 없지 않냐면서 안을 건드리고 섹스를 하려는 추행과 폭력이다. 고군분투하던 안은 결국 상대에게 연락을 취한다. 책방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냈던 그는 휴가차 안의 동네에 왔던 보르도의 정치학도, 연락 이후 안은 절박한 마음으로 그의 집을 찾아가지만 부유한 가정과 촉망 받는 미래의 주인공인 그에게 안의 절박함 따위는 안중에 없다. 공감이나 위로는커녕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커플 데이트를 하게 된 자신의 잘나가는 친구들과 분위기 좋게 어울리지 못한다며 안을 몰아부친다.

분노와 상처를 안고 보르도에서 돌아온 안에게 남자 동급생이 한 여자를 소개하고, 그를 통해 안은 임신 중단 시술을 할 수 있는 곳의 연락처를 전해 받는다. 악세사리와 책 등 소중한 물건들을 팔아 적지 않은 비용을 마련한 안은 마침내 그곳에 찾아간다. 시술사는 안전과 청결을 강조하지만, 마취 없는 시술은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고 방음장치가 없는 그곳에서는 터져나오는 비명을 삼켜야만 한다. 시술을 마친 안은 무탈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리며 경과를 살피지만, 임신 중단의 완결은 쉬이 오지 않는다. 다시 시술소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추가적 조치를 받은 안은 기숙사로 돌아와 홀로 고통에 몸부림친다.

임신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렇게 고대했던 마지막 순간, 화장실 변기에 앉아 극도의 통증을 견디던 안은 터져나오는 신음 소리를 숨길 수 없다. 기척을 듣고 화장실을 살피다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 여자 동급생은, 차마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안의 부탁에 탯줄을 자른다. 의식을 잃은 안은 한밤중의 소동에 방에서 나온 기숙사생들의 주목 속에 병원으로 실려가고, '유산'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적나라한 시각화가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배우의 열연과 직시하는 연출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60년도 이전의 프랑스가 배경이지만 사회가 만든 부당함이 오롯이 개인의 경험과 고통으로 전가되는 부조리가 지금도 어떤 세계에서는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한 뒤 고향집 식탁에 함께 앉은 엄마 아빠의 웃음과 대화 장면은 꿈결 같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수 없는 현실이 한 사람에게 또 그 가정에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공포와 두려움을 달랠 새도 없이 홀로 방법 찾기에 골몰하는 안의 목적지가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룻밤의 사랑에도, 단짝 친구에게도, 믿었던 동기에게도 배신과 외면을 경험해야 했던 안이 기댈 곳이 불법 시술소뿐이었다는 것이, 그것이 현실이었다는 것이 지켜보기에 참 안쓰러웠다. 그렇게 외롭고 막막했던 안이 자기파괴의 몸부림처럼 소방관과 나누는 섹스는 슬펐고,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진 안에게 내려진 '유산'이라는 진단에 안도하는 마음이 착잡했다. 신체적인 고통에 본능적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말고는 대체로 무표정이었던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아의 연기는 고행처럼 느껴졌고, 좌절과 절망의 연쇄에 놓인 안을 좇아가면서도 감정의 극대화 장치는 배제하고 상황을 관찰하듯 거리를 둔 건조한 연출이 오히려 현실의 섬뜩한 무게를 전하는 느낌이었다. 

원작 소설인 [사건]의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들을 여러 작품 속에 나누어 녹여낸 작가라는 걸 읽은 적이 있다. 영화 개봉 소식 덕분에 오래 전 읽었던 [단순한 열정]이 떠올랐고 영화를 본 후 작가 인생의 중요한 두 가지 일을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짝 친구의 뒤늦은 고백처럼 평범한 사랑을 나눴지만 운이 없었던 안, 그대로 주저앉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낸 결과 청춘의 한 시절이 온통 지옥이 된 사정이 작가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메시지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겠지만 고통받았던 여성들과 그 역사를, 어디선가는 여전히 그러할 현실을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는 영화였다.


3/10 cgv서면임권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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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3. 12. 22:0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열다섯 살 개리는 학교에 졸업 앨범 출장 촬영을 나온 사진샵 직원 알라나에게 한눈에 반한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 그렉의 저녁밥을 챙겨주는 살뜰한 형이자 아역 배우로 활동하면서 학교 밖 세상에도 일찍 눈 뜬 개리는, 또래에 비해 능글능글하고 조숙한 소년이다. 농반진반 건넨 저녁 약속 제안에, 데이트는 아니라는 전제 하에 나타난 알라나는 무료하고 불안한 이십대의 일상에 침입한 개리와의 만남에 소소한 싱숭생숭함을 느낀다.

배우 활동을 위해 헐리웃으로 가야하지만 일 때문에 엄마가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알라나는 개리의 매니저로서 동행한다. 무대 위 수많은 아역 배우들 사이에서 한 덩치 한 키에 특출난 끼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개리를 바라보는 알라나의 얼굴엔 화색이 돌지만, 데이트 상대는 한참 어린 개리가 아니라 덕분에 만나게 된 동료 배우다. 그들의 데이트를 목격한 개리는 상처 입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알라나의 집으로 전화를 걸고, 알라나는 아무 말 없는 수화기 너머의 발신자를 알아채지만 관계의 변화는 없다. 

개리의 연기에 고무되었는지 알라나는 갑갑한 일상을 탈출할 배우의 꿈에 시동을 걸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절박함으로 캐스팅 미팅에 임한다. 기회를 잡고 상대역이 될 잭 홀든으로부터 '그레이스 캘리'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저녁 식사를 함께하게 된 알라나, 잭을 알아본 사람들은 열띤 환호를 보내고 분위기에 들뜬 잭은 과거의 오토바이 묘기를 재현하기로 한다. 엉겁결에 잭의 파트너가 된 알라나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지지만 잔뜩 흥분한 잭은 홀로 질주하고, 식당에서부터 주시하던 잭만이 달려와 알라나를 챙긴다.

즈음 동네에는 물렁물렁함과 편안함의 혁신을 이룬 물침대가 새롭게 선을 보이며 매트리스를 대체할 신상품으로 홍보되기 시작한다. 알라나를 잃은(?) 씁쓸함을 홀로 달래며 동네를 걷다가 매장을 발견하고 물침대를 체험한 개리는 곧 영업에 뛰어든다. 데이트도 연기자 데뷔도 물 건너가고 동네로 복귀한 알라나도 개리와 친구들의 사업에 합류한다. 학생들의 축제에 물침대 부스를 설치한 개리가 경찰의 착오로 체포됐다 풀려나고, 매장 오픈 행사에서 개리가 또래 여학생과 달달하게 물침대의 기능과 낭만을 만끽하고, 물침대 배송과 설치를 위해 존 피터스의 집을 방문했다가 예기치 못한 난관을 함께 겪으며, 개리와 알라나의 관계와 거리는 기복을 오간다. 

보도블럭에 앉아 망연자실한 알라나의 시야에 시장 선거 출마자 조엘 와치스의 포스터가 들어오고, 롤러코스터 같은 한때와 단절하듯 알라나는 '어른의 세계'에 진입해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한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몰두하는 알라나와 달리, 후보의 홍보물 촬영을 돕던 개리는 현장에서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 금지가 풀리는 핀볼 게임장 오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엉망진창이거나 좌충우돌일지언정 영화가 시작된 후 대체로 함께였던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각자의 길을 간다. 그러나 알라나는 당선을 위해 동성 연인의 존재를 숨기는 후보의 이중성에 실망하고, 문전성시를 이루며 오픈한 핀볼 게임장에서 개리는 알라나의 부재를 크게 실감한다.

직진하다가 정지하기도 후진하기도 하는 개리의 마음과 갓길 쯤에서 보조를 맞추지만 선뜻 합류하지는 않는 알라나의 마음이 영화 내내 교차한다. 극적인 순간의 진심은 서로를 향한 거침없는 달리기로 체화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닌 팀으로 돌아가 데면데면해지거나 동료가 되고, 기저에 흐르고 있을 마음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만난다. 그러나 어쩐지 개리와 알라나는 시대를 재현하는 영화의 여러 요소들과 비슷한 비중의 역할로 스며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감정과 사랑이어야 인물들이 영화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은 없지만, 인물과 서사를 드러내기 위한 영화라기보다 분위기 위에 띄워진 대상들이라는 느낌이었달까.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건 어떤 분위기에 대한 입소문과 내맘대로 '부드러운' 역할로 기대했던 숀펜 때문이었는데, 너무 안일했나 싶기도 했다. 전형적인 미모의 배우들에게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개리와 알라나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부터 마음 한편에서 의아함이 피어올랐고, 개리에게서는 자꾸만 성시경이 겹쳐 보이고 알라나를 보면서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떠올라버렸기 때문이다. 때로 청신한 매력이 풍기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청춘물의 밀도를 더하는 배우들과는 다른 개성이 낯설었던 것 같고, 어쩌면 그래서 배경과 시대에 수렴하는 인물들로 적당했나 싶기도 했으며 알라나에게 그레이스 켈리 운운하는 지점에서는 사실 좀 난감해졌다.

기대했던 숀펜은 특별출연 수준으로 등장해 아쉬웠지만, (다시 보니 포스터에도 이름이 떡하니 써있더라만) 미처 몰랐던 탐웨이츠의 등장은 무지 반가웠다. 그들이 얘기하며 흥분하는 [도곡산 다리]는 사후인지로나 알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영화 속 디테일 상당 부분이 내게는 그러했다. 여주 때문에 계속 떠올랐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언급되기에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 걸까 싶었는데 그의 연인과 저택에 이어 벌어지는 급-고텐션의 사건들은 뭔가 덜컹거리는 느낌이었고, 실은 대부분의 사건들이 자연스럽기보다 시퀀스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끼워맞춰진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해서 전체적으로 별 감흥이 없었던 것도 같다.

당시 대중문화계를 풍미하던 여럿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대부분 알지 못했고, 호흡처럼 흐르는 당대의 명곡들도 절반 이상은 모르는 처지라 영화가 의도하는 시너지를 느낄 수 없기도 했다. 그런 요소들을 모르는 채로 서사를 따라가고 사건들에 집중하기에는 시공간적 특수성이 큰 의미를 차지하는 작품이었다. 무척이나 1970년대 중반의 미국에 포커싱된 작품이었고 지극히 미국적인 감성과 요소들에 기반한 이야기여서, 고심했을 플레이리스트와 샤랄라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함께 향수에 젖어들 수는 없었다. 제목이 당시의 유명한 레코드샵 이름이었다는 것도 영화 정보의 비하인드를 읽은 후에야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3/10 cgv서면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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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2. 18. 12:55

 

 

탐욕과 전쟁이 여전한 8천 년 후의 우주가 심란했지만 사막이 자아내는 양극의 무한한 가능성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꿈은 심연의 메시지다"라는 인트로의 자막과 계시된 자의 운명을 타고난 폴이 단연 주역이었고 스토리 면에서나 비주얼 면에서나 압도적이었지만,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수장 레토와 베네 게세리트 제시카는 물론 던컨과 카인즈 등 폴의 성장과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의 준수한 비주얼과 서사도 매력적이었다. 아무리 먼 미래의 이야기라도 구현하는 시점의 감각과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만, 하코넨으로 대표되는 소위 악당들이 무척 비호감 외모를 가진 것이나 비극적 배신의 캐릭터인 닥터 유에 박사의 외모가 뭔가 좀스러워 보였던 점은 귀엽기도 웃기기도 했다. 사막이 삶터인 프레멘의 복식이나 외양에서는 사막복을 제외하면,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의 사진이나 영화가 연상되기도 해서 현재가 인간의 삶의 양식과 물질 문명이 최대로 고도화된 어떤 완성기인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과학과 우주 같은 것에 대해 거의 본능적인 거리감과 몰이해의 두려움을 가진 편인데, 시공을 초월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엄청난 흡인력 덕분에 소소한 인간계를 벗어나 잠시나마 우주적 호흡에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맥스여서 특별히 더 압도되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고, 역시 스케일은 내게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걸 확인했다.


2/14 cgv서면I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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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2. 18. 12:44

 

 

[신과 함께]의 대만판 리메이크라고 들었다. 시리즈의 첫 편을 보았지만 김동욱의 연기 정도만 인상적이었고 내용이나 메시지에서 별 감흥이 없었다.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아 엄청나게 떠들어대던 사람들 때문에 무척 불쾌했던 기억이 더 크게 남아 있기도 하다. 기대를 한 건 아니었고 빈 시간을 때워야 해서 보게 되었는데, 한 번은 볼 만하다고 느꼈다. 시공간 오가는 이야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편인데 여러 차례 변주되는 설정에 곧 익숙해졌고, 20대 이하를 타겟으로 하는 듯 대체로 소란스럽고 과하게 발랄한 느낌이 있었지만 별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다른 영화인 양 눈물샘 자극하는 지순한 멜로 부분도 나쁘지 않았는데, 스탠스의 온도차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속도감과 서정성이 적절하게 조화로운 연출 덕분이었던 것 같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지만, 거칠고 독하고 외로운 세계에서 상업적인 이유든 뭐든 '운명의 붉은 실'이니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회자되는 건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2/14 cgv서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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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2. 18. 12:33

 

 

이름만 익숙했던 장예모 감독의 영화를 막상 처음 보았다. 마케팅이 강조하는 딸에 대한 부성애보다는 문화혁명 시기 중국 시골 마을의 분위기와 현실의 일단, 당대 사회에서의 영화의 사회적 기능과 위상과 효능 같은 것들이 더 인상 깊게 남았다. 오랜만에 보는 대륙의 영화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한편 거대한 대륙에서 추출한 작은 이야기라는 느낌도 들었다.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거의 모든 배우들의 연기톤이 너무나 기계적으로 강팍한 데서 느껴지는 거부감 때문이었다. 시대도 사람들도 실제로 모두 그렇게 거칠었는지 모르지만 체감상 대사의 팔할은 고성이나 시비조였던 것 같고, 인물들의 감정선도 너무나 급작스럽게 반전되는 통에 적응이 힘들었다. 류가녀 역할의 배우는 매력적이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너무 튀는 목소리 때문에 영화 속 현실에서 유리된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문화혁명 시기 중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있었다면 달랐을까 싶은 생각도 했지만, 이해보다는 공감의 문제였던 것 같다.  


2/13 cgv서면 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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