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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3.06.18 [신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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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3.05.14 [보통 일베들의 시대]
  5. 2023.05.09 [여자 아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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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23.04.22 [에이징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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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23.02.16 [뾰족한 마음]
  10. 2023.02.06 [헤어질 결심 각본]
비밀같은바람2023. 6. 24. 23:23

 


과학자였고 저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아버지에게 헌정된 이 책은 혼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일찍이 아버지가 강조했다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줄어드는 일은 없다")이 언급된 부분을 읽으며 살짝 긴장이 되었지만, 다행히 과학 전문 기자라는 저자는 이후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간다. 혼돈과 함께 소환된 인물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의 20%를 발견하고 이름 붙였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평생 노고를 바친 어류 표본들이 모두 파괴된 현장에서 식별 가능한 물고기의 살에 바늘을 찔러 넣어 이름표를 꿰맸다는 일화와 더불어 그는 "혼돈에 반격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삶에 닥친 깊은 혼돈에 빠져 있던 저자는 모든 게 박살난 잔해 속에서 바늘을 든 그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그에 대해 검색하고 한 세기 전 출판된 두 권짜리 회고록 <한 남자의 나날들The Days of a Man>의 절판본을 손에 넣은 저자는, 혼돈에 맞선 한 인간에 대해 파헤칠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1851년 뉴욕주 북부에서 태어난 "별에 머리를 담근 소년"(1장의 제목)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들과 지상의 식물들을 관찰하며 이름과 질서를 부여하고 자신이 경험하는 장소들을 지도로 정리하는 일에 열중했다.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매료된 소년이 몰두하는 일들은 청교도인 부모에게는 쓸모 없는 짓이었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존경스러운 형 루퍼트는 든든한 지지자이자 동료였다.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루퍼트가 북부연방군에 자원해 떠났다가 훗날 발진티푸스로 명명된 '군대열병'으로 사망한 뒤, 데이비드는 필사적으로 일기장에 자신이 관찰한 식물들과 라틴어 학명들을 새겨 넣는다. 깊은 상실감을 열정적인 수집벽으로 잊으려는 강박은 당사자에게 도취감을 선사하는 현상이라는 심리학자들의 지적을 저자는 덧붙인다.

 

어린 시절 5년 정도 동안 밤하늘 전체의 별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마친 후 스스로에 대한 상으로 '스타(Starr)'라는 미들네임을 붙였던 데이비드의 수집과 분류 강박은 "어느 섬의 선지자"(2장의 제목)와 만나면서 강화되고 발전된다. 코넬대에 입학해 3년 만에 과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일리노이주 게일스버그의 롬바드칼리지라는 작은 기독교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던 데이비드는, 당시 유명한 박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인 루이 아가시가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22킬로미터 떨어진 페니키스 섬에 마련한 여름 캠프에 합류한다. 빙하기 가설로 명성을 얻고 40대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스위스 출신의 루이 아가시는 논문과 책에 의존하는 과학 교육의 실상을 우려했고, 직접 관찰을 통한 자연의 이해와 분류(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구상한, 모든 생물을 하등한 생물부터 신성한 생물까지 차례로 배열할 수 있다는 "자연의 사다리"(라틴어로는 "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 개념으로부터 시작된)를 통해 숨겨져 있는 창조주의 계획은 물론 진보의 실마리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었다. 

 

루이 아가시에 따르면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 가시)는 '인간'에 대한 경고였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45~46쪽) 페니키스 섬에서의 활동은 아가시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까지 해독해내는 작업이었다."(47쪽) 루이 아가시의 신앙과 학문적 소명이 담긴 페니키스 섬 여름 캠프에서 데이비드는 엄격하고 진지한 자연 관찰과 연구에 대해, 오랫동안 외롭게 골몰해온 작업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확신하게 된다. 훗날 첫 번째 아내가 되는 식물학자 수전 보웬을 만나게 된 것도 이곳이었다.

 

3장("신이 없는 막간극")에서 이야기는 저자 자신과 가족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 휴가차 떠난 매사추세츠주 웰플리트의 너른 습지를 함께 바라보며 문득 인생의 의미를 묻는 일곱 살 아이에게, 아버지는 "의미는 없어!"라고 단언하고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알려준다. 거대한 우주와 다양한 생물들의 활동을 설명하고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던 아버지는 자신만의 도덕률을 지키며 쾌락주의적인 일상을 영위했지만, 저자는 아버지처럼 대담하고 활력에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한다. 심한 괴롭힘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한 언니의 복도는 이후 저자를 겨냥했고, 수면제 과다 복용의 자살 기도가 실패한 뒤에도 죽음의 유혹은 강하게 따라붙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책상 위에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는 다윈의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의 글귀가 걸려 있었는데, 저자에게는 때로 "네가 그 장엄함을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61쪽) 비난으로 느껴졌다고 적고 있다.

 

청소년기의 터널을 지나 입학한 대학에서 저자는 빛나는 존재를 발견하고 몇 년의 노력 끝에 연인이 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차갑고 가혹한 세상에 웃음의 잔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63쪽) 곱슬머리 남자와 동거하기 시작한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는 둘만의 안식처가 되지만, 각자의 일과 다정함을 공유하며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는 시간은 7년에 그쳤다. 저자는 어느 밤 해변에서 만난 금발 소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을 나눴고, 그 일을 고백하며 곱슬머리 남자와의 관계도 끝난 것이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저자는 다시 죽음의 유혹에 시달림과 동시에, 곱슬머리 남자의 회심이라는 망상 같은 희망에 매달린다. 3년 넘게 편지와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을 속이면서 점점 더 깊은 혼돈에 빠져들던 그 시기에,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66쪽)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폐허 위에서 바늘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스승의 축복과 지지 속에 페니키스 섬을 떠난 데이비드는 미국 중서부 전역의 학교를 옮겨 다니며, 코넬대에서 분류학을 함께 공부한 친구 허버트 코플랜드와 함께 북미의 모든 담수어를 발견하겠다는 목표를 실행하기 시작한다. 열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다양한 표본을 채집해 연구 논문으로 출판하기 시작한 그들의 존재가 알려지고, 정부는 그일이 미국의 학문적 업적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시작한다. 1880년에 데이비드는 훗날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는 스캔들을 일으키는, 총애하는 제자 찰리 길버트와 함께 여러 달 동안 작업을 수행한다. 수많은 물고기들을 발견하고 이름 붙이는 과정에는 스승 루이 아가시가 중요시한 도덕적 교훈이 개입했고, 낯선 해안들에서 받은 어부들의 결정적인 도움은 휘발되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종의 물고기와 이름 들을 세상에 선보이면서 데이비드는 자신의 존재감 역시 함께 드러낸다. 인디애나대학의 종신교수가 되고 수전과 결혼해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데이비드는, 서른네 살에 대학의 요청으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학장이 된다.

 

의 모든 면에서 승승장구하던 1883년 7월의 어느 날, 벼락으로 인한 화재로 데이비드의 연구실이 불타고 모든 표본과 자료가 소실된다. 평생을 바친 소중한 것들을 잃은 그는 실의에 빠지는 대신, 더 열심히 일에 매진한다. 1885년 11월에 아내 수전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슬픔에 빠지기보다 신속히 움직이며 매끄럽고 호화롭게 장례를 치른 그는, 2년이 지나기 전에 대학교 2학년인 18세의 제시 나이트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한다. 수전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 소라 역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십대인 두 아이를 기숙학교로 보낸 부부는 탐사 원정에도 함께하는 파트너가 된다. "이미 지나간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근심하지 않는", "낙천성의 방패"를 가진 데이비드의 회복과 왕성한 활동은 캘리포니아의 부유한 부부(악덕 자본가이자 공화당 상원의원인 릴런드 스탠퍼드와 죽은 아들과 만나기 위해 영매를 찾아다니는 제인 스탠퍼드)에게도 알려진다. 1890년 블루밍턴으로 찾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팰러앨토에 세울 작은 학교의 초대 학장직을 제안한다.

 

1891년 나이 마흔에 스탠퍼드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한 데이비드는 화려한 해양 연구 시설을 만들고 친구들과 제자들을 채용해 교수진을 꾸린다. 캠퍼스 내의 표본 보관 장소로 정한 건물 앞에는 부부 역시 존경해왔던 루이 아가시의 동상이 세워진다. 정해진 수순처럼 성공가도를 밟아가는 데이비드의 인생은 여러 종류의 동물들과 함께하는 집에, 제시와의 사이에서 나이트와 바버라가 태어나면서 거의 완성에 가까워진다. 이 시기 대학의 지원으로 여러 대륙을 누비며 어류 수집 원정을 떠나고, 그 목록에는 일본과 한국도 있어서 신기했는데 덧붙여지는 설명은 없다. 학장 부임 1년 만에 설립자 중 릴런드가 사망하자 그의 일을 도맡은 아내 제인과 데이비드 사이에는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다. 영매를 추종하는 제인과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어류 연구에만 치중하는 데이비드, 서로를 못마땅해하는 둘의 운명은 불운과 행운으로 갈리는데 그속에 도사린 반전은 이후 저자의 추적에서 자세히 밝혀진다.   

 

5장 "유리 단지에 담긴 기원"은 존재와 명명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분류학자들이 "하나의 종을 최초로 명명할 때 그들은 그 최초의 표본을 특별한 명예를 부여한 매우 특별한 유리단지에 넣어둔다. 그 표본은 공식적인 과학의 기록부에 오를 때 그 종의 유일한 구성원으로 기재된다."(95쪽)는 설명과 함께 "완모식 표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만약 이 표본이 소실된다면 그 자리는 무로 남겨지고 물리적으로 이 종을 대표하는 새로운 표본은 "신모식"이라 불린다고 한다. 저자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표본관에서 데이비드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유일한 바닷물고기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를 영접한다. "모서리가 없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학명을 따온 그 물고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독특한 형상이다. 두 면 사이의 경계가 없는 물고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데이비드의 심중을 마음 밑바닥의 어두운 면에 대한 고백일까 추측하면서도 저자는 "그때" 그 답을 알지 못했다고 적는데, 이후에도 선명히 기술하지는 않는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 이유가 정확히 와닿지는 않았는데, 삶의 끝까지 일말의 반성없이 이어진 그의 신념과 열정에 대한 자기확신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독 사랑했던, 검은 눈동자를 가진 바버라가 아홉 살에 성홍열로 목숨을 잃은 1900년, 데이비드는 그 죽음을 가장 잔인한 재앙이자 파괴적인 충격이라고 회고하지만 곧 더 많은 물고기들을 찾아간다. 이후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데이비드의 족벌주의를 경계한 제인이 한 교수를 스파이로 붙이고 최측근 찰리의 학내 불륜이 발각되지만, 데이비드는 오히려 목격자에 대한 협박으로 위기를 넘긴다. 데이비드에 대한 제인의 불신과 해고 소문이 떠돌기도 했지만 1905년 어느 날 하와이를 여행하던 제인이 돌연 사망한다. 1906년 4월 18일 새벽, 리히터 규모 7.9로 추정되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30년을 오롯이 갈아넣은 그의 신성한 물고기들을 파괴하고 스승 루이 아가시의 조각상을 땅에 거꾸로 처박는다. 혼돈 속의 저자에게 구원의 빛으로 등장한 데이비드의 한 장면이 펼쳐진 시공간이다. 어떠한 절망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밀고가는 데이비드의 원동력을 찾기 위해 저자는 더 많은 자료들을 뒤지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친구가 전한 메일 속 카프카의 "파괴되지 않는 것"(7장의 제목)이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긴다.

 

데이비드의 개인적인 에세이에서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는 말을 발견한 저자는 "기만에 대하여"(8장의 제목) 사유한다.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검토하며 데이비드와 아버지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댔던 자기기만에 대해 성찰하면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긍정적 착각의 힘, '그릿(Grit, 끈질긴 투지)이라 이름 붙여진 한 특질에 주목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없이 나아갈 수 있는 자기확신, 부정적으로 발현된다면 어떤 비판과 위기에도 교묘히 대응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는 의지가 될 수 있는 그것. 1905년으로 돌아간 이야기는 9장("세상에서 가장 쓴 것")에서 미스테리 스릴러로 장르를 바꾼다. 1905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독이 든 물을 마셨던 제인이 얼마 후의 하와이 여행에서 갑작스레 사망한 사건, 현지 의사들은 스트리크닌에 의한 독살이라고 판단했지만 급히 하와이로 날아온 데이비드에 의해 과식과 협심증으로 사인이 돌변한 사건. 당시에는 애매하게 묻혔던 사인은 이후 의구심을 가진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조금씩 파헤쳐졌고, 그 흔적을 좇던 저자는 제인이 죽고 얼마 뒤에 데이비드가 남긴 다양한 색채의 그림들 그리고 그가 기록한 물고기 채집 방법에서 스트리크닌을 발견한다.   

 

이탈리아 알프스의 아오스타라는 마을은 심신의 장애를 지닌 이들의 안식처로,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가 가족에게 거부당한 이들에게 음식과 주거를 제공하고 돌보면서 사회에서 낙인 찍히고 배제된 이들이 자신들만의 방식과 속도로 존엄한 삶을 누리는 곳이라고 한다. 1880년대에 이곳을 방문했던 데이비드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포의 공간"(10장의 제목)으로 각인된 곳이자, 루이 아가시가 강력히 우려한 "인류의 쇠퇴" 현장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유전에 경도된 데이비드는 가난과 게으름을 비롯한 인간의 거의 모든 능력과 특징 역시 혈통의 문제라고 믿었고, 학교 안팎에서 우생학(1883년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만든 말이라고)의 열렬한 전도사를 자처했다. 우월한 유전자만 살아남기 위해 열등한 유전자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부적합자"들에 대한 불임화 수술의 합법화는 중요했고,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은 몰살되어도 마땅했다. 그는 우수한 인간이 희생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페니키스 섬에서 루이 아가시의 은총에 매혹되었던 데이비드는 다행히도, 종의 다양성과 자연의 불확실성이라는 다윈의 생각에 죽을 때까지 반대한 스승과는 의견을 달리 했지만 이는 인간계에 대해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생물의 위계와 "사다리"(11장의 제목)에 생이 끝날 때까지 집착한 데이비드의 지극한 오류의 이유를 저자는 혼돈으로 추정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도 불안을 안겼던 그 느낌. 그보다는 한평생 밀고온 신념에 대한 자기부정과 모든 것이 무화될 가능성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는데, 이 역시 혼돈이지만 조금은 다른 결이 아닐까 한다. 아무려나 "그 사다리가 데이비드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해독제. 하나의 거점. 중요성이라는 사랑스럽고 따스한 느낌."(207쪽) 가느다란 구원의 섬광을 좇아 일생을 파헤치는 동안 자주 당혹감을 느끼고 어느새 경멸하게 된 데이비드와 자신이 어떤 측면에서는 같은 것을 갈망했다는 사실을 저자는 숨기지 않는다.

 

희망을 기대했던 대상에게서 황량한 공허를 확인한 저자가 향한 곳은, 데이비드가 치켜든 우생학의 깃발 아래 수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구금되어 불임화되고 삶을 짓밟히고 때로 목숨을 잃기도 했던 버지니아주 간질환자 및 정신박약자 수용소다. 데이비드의 생시 강제 불임화의 대상이자 중요한 소송의 주인공이었던 캐리 벅의 후손들은 모두 사망했지만, 어렵사리 수소문해 십대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고 불임화 수술을 당한 후 나올 수 있었던 애나 그리고 애나의 돌봄으로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메리를 만난다. 둘은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고 마을에서 더 많은 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우생학과 권력이 온전한 삶을 정면으로 부인했지만 결국 살아남아 서로에게 다정함과 상냥함의 그물망이 되어주는 사람들. 우월성과 완벽성이라는 임의적 기준으로 모든 것을 위계화해 줄세우고 취약성을 말살하려는 우생학적 비전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호혜적인 삶의 실질적인 힘과 아름다움. 그것을 저자는 잡초처럼 보이지만 약초가 되고 염료가 되고 화관이 되고 소원빌기의 매개가 되기도 하는 "민들레"(12장 제목)를 통해 표상한다. 그리고 너무 어렸던 일곱 살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다양한 관점"을 환기하고, 그때는 아버지에게 돌려줄 수 없었던 뒤늦은 대답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그런데 마지막 장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는 더욱 놀라운 반전이 담겨 있다. 사후에도 기념비적인 학자로 명망이 높은 데이비드의 생물 분류가 학문적으로 무화될 수밖에 없는 치명적 발견, 그러니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상징이나 은유가 아닌 학계의 기정사실로 확증되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1980년대 분기학자들의 발견은, "타당한 진화적 집단은 특정한 한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해야 하며, 다른 것은 하나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것"(237쪽) 그리고 "종들이 거쳐 간 시간의 흐름을 가장 신빙성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이라고 부른 특징들, 그러니까 새롭게 추가된 특징들"(238쪽)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었고, 이는 데이비드가 쌓아올린 표본의 거탑들이 실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범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산꼭대기에 사는 모든 동물을 '산어류'로 범주화하는 엉뚱한 예시를 통해 다시 한 번 쉽게 설명하는데, 이에 따르면 '어류'는 인간의 직관이 빚어낸 망상적 범주일 뿐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자명한 사실이자 상식으로 당연시되어온 '물고기',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생물 범주라니. 저자는 여러 관련 기관 종사자와 과학자 들을 인터뷰한 내용과 릭 윈터바텀이라는 분기학자의 토로를 인용한다.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실제 자연 세계가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져 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다."(244쪽) 독자들의 충격을 진정시키는 것까지 그의 몫은 아니겠지만,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신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많겠지만, 저자는 별들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게 된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수많은 이들의 '별과 물고기의 상실'에 대해 열거한다. 어류의 해체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인류에게 가지는 의미와 상징성은 무엇일까, 그것이 여전히 추상적인 질문이라면 인간의 무지와 오류와 인식과 직관이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또 수용되는가.

 

짧지 않은 에필로그는 저자의 삶에 밀착한다. 물고기를 포기하고 시카고를 떠나 워싱턴DC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 저자의 뇌리에는 여전히 곱슬머리 남자와 총이 자주 떠올랐지만,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낯선 곳에서 평온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 위에 그려놓은 선들 너머를", "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그곳을" 간절히 보고 싶어한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에메랄드색 눈을 가진 여자는 저자의 아내가 되었고, 저자는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263~264쪽)임을 말한다. 그리고 과학의 세계에도 저자의 가족과 이웃들의 세계에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알 수도 없었던 새로운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해골 열쇠 하나를 얻었다. 이 세계의 규칙들이라는 격자를 부수고 더 거침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물고기 모양의 해골 열쇠"(267쪽), 저자는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268쪽)고도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우생학의 망령, 인종주의자들의 공격에 이렇게 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268쪽)

 

 

내 차례가 되어 추천한 6월의 모임 책이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길 위의 편지]와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와 함께 투표에 부쳤는데 당당히 선택되었다. 이래저래 많이 회자된 덕에 제목은 익숙했고 책에 따라붙는 알듯말듯한 찬사에 궁금증이 일어 사두었는데 올해 참 책을 잘 안 읽기도 하고 읽는 속도도 느려진 탓에 묵혀두다가 모임 책이 되었다. 선언적이지만 갸우뚱하게 만드는 제목과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매력적인 부제의 조합, 어둡지만 따뜻한 느낌의 삽화가 그려진 리커버 표지가 마음에 든다고 느꼈는데, 내일이 모임이므로 그래야 했지만 오랜만에 내려놓는 사이를 아쉬워하며 하루만에 다 읽은 책이기도 하다. 잊고 싶지 않은 부분이 많아 정리하다 보니 요약편집증을 이기지 못하고 또 길어졌는데, 기억력이 심히 감퇴하고 있어 기록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탓도 있다. 아무려나-

 

개인의 고통에서 시작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연루된 현대 과학사의 미국사의 그늘을 관통하고 반면교사로서의 깨달음에 이르는, 여럿의 이야기들이 중첩된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였다. 따로 존재할 때는 별로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과 사건 들을 정교하게 엮어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서술을 통해 생성되는 의미들, 저자와 데이비드의 삶 그리고 과학사와 미국 사회라는 여러 겹의 레이어가 겹쳐지면서 풍부해지는 메시지들이 흥미로웠다. 데이비드의 개인사와 그의 일의 부침 혹은 반성적 관계를 직관적이고 운명적인 계시처럼 기술한 부분들(첫 아내 수전과 두 번째 결혼, 아기 소라의 죽음 후에 편애하던 바버라의 죽음까지)에서는 살짝 갸우뚱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선을 넘지 않는 해석에 수긍이 됐고 연결과 편집으로 설득력을 취득한 독특한 글쓰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주요 내용과 주제 못지 않게 혼돈 그 자체인 저자와 데이비드와의 관계와 긴장, 여전한 현실임에도 강력한 명맥은 숨겨져 있는 듯 보였던 우생학의 다크 투어리즘, 가장 큰 세 번의 반전(저자의 성정체성, 데이비드의 제인 살해 의혹, 어류의 해체)은 차원을 넘나들며 마지막까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삶의 밑바닥에서 혼돈을 극복하고자 했던 자신의 몸부림은 살짝 내려 놓은 채, 데이비드와 그의 '부적합자'들의 흔적을 좇으며 맹목적 진화론의 오류와 우생학의 흑역사 그리고 과학계 밖으로 좀처럼 내보낼 수 없었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낸 저자의 노력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구원의 섬광을 발견하고 추적한 자가 실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저자의 전율과 그 너머로의 도약에 대해, 당분간 떠오를 것 같다. 새삼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보고 싶어졌고, 한국에도 존재했던 '부적합자들의 처소'였을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이 떠오르기도 했다. 제인이 영매를 좇는 부분에서는 [나이트메어 앨리]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케하는 묘사들이 많아서 영화화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 실린 유일한 사진인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거꾸로 땅에 박힌 루이 아가시의 동상의 강렬함을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아직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았던 현대 초기의 영미권 세계는 인권 개념 따위 없이 인류의 오만이 최고의 정점에 달했던 시공간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대의 빛과 어둠은 오늘날까지도 꽤 막강한 영향력을 알게 모르게 행사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궁금해진다. 책으로도 영화로도 자주 만나고 싶은 시공간.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나름의 의지와 어떤 운명적 만남으로 마침내 작은 빛을 만난 저자의 이야기가 에필로그에 이르러 너무나 영롱하고 환하게 생동하는 점이 낯설기는 했지만, 백 명은 될 만큼의 이름들이 난무하는 '감사의 말'을 읽으며 이런 다정함이라니 싶었다.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등장하는 인상적인 삽화의 일러스트레이터 케이트 샘워스의 이름도 '감사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중간중간 괜히 이름이 궁금해 책장을 뒤적거렸던 게 생각나서 앞표지 날개나 서지정보에 따로 실었다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더불어,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려 네 쪽에 걸쳐 진을 치고 있는 '찬사'들도 조금 아쉬웠다. 긴 에필로그에 이은 삽화와 변화(책 출간 6개월 후 스탠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름이 붙은 건물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에 대한 몇 마디와 감사의 말, 긴 주석까지 후미에 들어가는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나무랄 데 없는 책이라면 '찬사' 정도는 제일 마지막에 배치해도 좋지 않았을까. 빠짐없이 차례대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자로서, 시작부터 쏟아지는 찬사들의 첫 쪽을 읽다가 지레 질려서 책을 다 읽은 후에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아쉬움도 없는 책을 어떻게 만날 수 있으랴. 좋은 독서였다.

 

 

룰루 밀러•정지인 옮김
2021.12.17.1판1쇄 2023.1.25.1판28쇄 펴냄, 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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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6. 18. 11:13

 

 

폭탄 같은 자명종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이른 새벽, 성경 구절까지 동원해 스스로를 독려하며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는 도러시는 잉글랜드 동부 서퍽주 나이프 힐에 있는 성 애설스탠 교회의 사제인 찰스 헤어 신부의 외동딸이다. 스물여덟 살의 도러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부속사제를 둘 수 없는 가난한 교회에서, 예배 집전을 제외한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천 명가량의 주민이 사는 마을은 남북으로 농경 지역과 사탕무 정제소가 들어선 공장 지역으로 나뉘고, 이들의 사교 생활은 '나이프 힐 보수주의 클럽'과 '디 올드 티 숍'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교회는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 클럽과도 한창 진행 중인 보궐선거와도 무관한 듯 대다수 주민들과 거리를 둔 채 존재한다.

 

자신의 가난을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으로 여겨 언제나 심기가 불편한 신부는 '하층계급'도 '하급 귀족'도 티 숍에 모이는 '커피 여단'도 혐오하고 세간에 유행하는 종교적 자유주의 풍조인 앵글로가톨릭주의를 '로마 열병'이라 부르며 폄훼하는 인물이다. 독선과 오만으로 교구와 주민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그가 부임한 이후 신도들은 부자들을 필두로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맹목적인 주식 투자를 지속하면서, 매년 꾸준히 재산을 까먹고 있는 신부는 늘 부족한 생활비에 허덕이는 딸의 곤욕을 모른 체하고 고급스럽고 까다로운 입맛을 고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덕분에 수시로 날아오는 동네 가게의 외상값 독촉장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고민과 수치심에 사로잡히는 것은 도러시다. 

 

그럼에도 도러시는 신부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경건함을 유지하며 묵묵히 기도와 찬양, 주어진 직분(전멸에 이른 '결혼을 위한 교류회'와 '연소자 금주 동맹', 그나마 굴러가는 '어머니 연합' 간사 그리고 걸스카우트의 전신인 걸가이드의 대장 역할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일)에 충실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신부의 면도물을 데우며 시작하는 하루, 전날 메모한 쪽지에는 7시 성찬례 준비부터 신도 방문, 교회 시설 관리와 신부의 세 끼 식사에 이르는 다양한 할 일들이 적혀 있다. 괴팍한 신부 탓에 어려워진 교회 운영을 위한 수익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도 오롯이 그의 몫, 다년간 기부금 모금을 위한 가장 행렬과 연극을 준비하며 도러시는 갖은 재봉질은 물론 갈색 포장지와 아교로 그럴듯해 보이는 갑옷이며 군화를 만드는 것도 가능한 금손이 되었다. 따분하고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수많은 할 일에 떠밀리듯 숨가쁜 생활 속에서 가끔 불만이 일 때면 도러시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간혹 용납할 수 없는 불경스러운 마음이 느껴질 때면 핀으로 팔을 찌르며 참회하는데, 이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다.

 

자칭 세 사생아의 아버지이자 화가인 워버턴 씨는 그런 도러시의 생활에 기이한 환기창 같은 이웃이다. 경건하고 신실한 도러시와는 극단의 성향과 생활을 영위하는 그는 2년 전 이웃이 되어 동거하던 가정부이자 첩이 갑자기 떠난 후 마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던 마흔여덟 살의 한량이다. 문란하고 부도덕한 그의 습관에 가까운 성추행이 도러시에게도 있었지만, 다양한 책과 좋은 차와 함께하는 대화는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일종의 연민과 이해"를 선사했기에 유랑하듯 사는 그가 나이프 힐에 올 때마다 교류는 이어졌다. 도러시는 둘만 있게 되는 상황과 추문을 퍼뜨리는 마을의 험담꾼인 또 다른 이웃 셈프릴 부인을 동시에 경계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며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선거운동이 한창인 거리에서, 거액의 외상값이 쌓인 카길스 정육점 앞을 지날 일에 잔뜩 주눅들어 있던 도러시 앞에 오랜만에 워버턴 씨가 나타난다.

 

저녁에 작가가 방문한다는 거짓으로 초대에 성공한 그는 도러시의 답답한 삶을 도발하는 대화와 더불어 오랜만의 성추행과 강제 뺨 키스에도 성공한다. 워버턴 씨의 성추행으로 도러시의 뇌리에는 5년 전의 사랑, 자신에게 청혼했으나 폐렴으로 죽은 밀버러 성 베데킨트 교회의 보좌신부 프랜시스 문 그리고 남모르는 불치병인 자신의 성적 냉담증과 아홉 살에 목격한 부모 사이의 무시무시한 광경 등이 떠오른다. 집 앞까지 따라온 워버턴 씨를 물리치고 돌아온 온실에서 아교 냄비를 끓여 가장 행렬에 쓰일 군화를 만들며 팔을 꼬집어 잠을 좆는 도러시. 여기까지가 6장으로 구성된 제1부의 내용인데, 오믈렛을 만들 때조차 모양이 흩트러지지 않기를 짧게 기도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찰라를 의식할 때면 "이교도적인 황홀경"에 빠졌다는 자책에 자연숭배를 반성하며 "장미 가시로 팔을 세 번 찌르며 삼위일체의 삼위격"을 되새기는, 신앙에 잠식된 도러시의 삶은 제2부에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제2부는 낯선 공간에서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깬 도러시의 혼미한 시선에서 시작된다. 영문을 알 수 없이 런던의 뉴 켄트 로드에 있게 된 도러시는 기억을 잃었다. 도러시를 매춘부나 부랑아쯤으로 여기고 다가온 노비와 플로와 찰리는 그에게 약간의 돈이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켄트주에 가서 함께 홉을 딸 것을 제안한다. 판단 능력을 잃은 도러시는 일행과 함께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고 노숙하며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홉 밭으로 향한다. 플로와 찰리는 중간에 사라졌지만 거리 생활에 필요한 여러 재주를 가진 노비와 함께 도러시는 마침내 일을 얻는다. 집시들과 다양하게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홉 농장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되고 손에 피가 흘러 굳어야만 그나마 수월해지는 노동은 험하지만, 마흔 명이 한 팀이 된 홉 밭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일이 끝난 밤 캠핑이라도 온 듯 불가에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는 기묘한 공동체적 온기가 흐른다. 의식이 정지된 듯 고되지만 무감히 견딜 만한 생활은, 농장 사람들 사이에서 도러시와 연인 관계로 여겨졌던 노비가 닭을 훔치는 데 앞장선 대가로 잡혀가고 홀로 남겨진 후 갑자기 기억이 돌아오면서 마감된다.

 

엘런 밀버러가 된 도러시가 거리를 유랑하고 홉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삼류잡지인 <피핀스 위클리>에는 사라진 '신부의 딸'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가 연일 실렸다. 셈프릴 부인의 악의적인 인터뷰를 그대로 받아적고 근거 없는 추측을 덧붙인 기사 안에서 도러시는 유부남과 눈이 맞아 사제관을 떠난 치정극의 주인공이 되어 파리며 빈 어딘가에서 목격되고 있었다. 홀연히 돌아온 기억과 우연히 확인한 기사를 통해 현실의 일부를 깨달은 도러시는 자신의 진실과 함께 나이프 힐로 돌아가기 위한 교통비를 청하는 편지를 신부에서 거듭 보내지만 답을 받지 못한다. "지난 3주 동안의 몽환적인 무심함"이 부서진 후 꿈에서 깨어난 듯 도러시의 의식은 선명해졌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기도를 잊은 채 자신의 생존에 골몰한다. 홉 따기 시즌이 끝난 후 농장에서 선의를 보여준 털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돌아온 도러시는 그간의 해묵은 때를 벗겨내고 얼마 안 되는 전재산을 털어 옷가지를 장만하고 매춘부들이 기거하는 메리 여인숙에 여정을 푼다. 절박한 마음으로 신부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채 당도하기 전에, 돈이 떨어진 도러시는 거리로 나온다.

 

메리 여인숙에 머물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공공도서관의 신문 광고란을 찾고 적잖은 지원서를 보내지만 "위험한 독신녀"인 도러시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 교양 있는 말투는 가정교사나 하인을 구하는 주부들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했고 달리 선택지가 없는 도러시는 "밑바닥 세계에 가까워질수록 덜 끔찍해" 보인다고 느끼며 제3부에서,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살을 파고드는 밤의 추위를 견디며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파문된 신부, 남편에게 쫓겨난 부인, 중산층이었다가 전락한 부인, '유대인 놈', 변태적인 노래만 반복하는 남자 등 불결하고 추잡한 열세 명의 무리에 끼어 있는 도러시. 각자의 불만과 욕지거리와 저주와 허세를 담은 독백들은 당직 경찰관이 나타날 때 잠시 멎을 뿐이지만, 모두가 괴로운 뼈까지 시린 새벽이 되자 이들은 벤치 위에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어 함께 견딘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열리는, 테이블당 차 한 잔이면 잠시 몸을 녹이고 눈을 붙일 수 있는 카페로 몰려가 노곤한 몸을 잠시 쉰다. 

 

기억을 잃었던 홉 농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도러시는 거리 생활에 금세 적응한다. "희귀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기묘한 종족의 일원이 되어" 일을 구할 때와는 달리 도움이 되는 교양 있는 말투로 푼돈을 구걸하면서 하루하루 연명한다. 그렇게 열흘째가 되는 날 구걸 금지법을 정기적으로 집행하는 경찰에 연행된 덕에 간만에 긴 잠을 자고 즉결 재판소를 나온 아침, 뜻밖의 상황이 도러시를 기다리고 있다. 다섯 번의 편지에도 무답이었던 아버지가 실은 그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승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아침 식사를 스스로 준비하는 일을 감당하며 신부는 단지 그것만은 아닌 이유로, 15년간 왕래가 없었던 사촌 토머스 경에게 연락을 취해 도러시를 찾아 런던의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한 터였다. 아버지의 도움을 청하는 마지막 편지의 답장과 동봉한 돈은 메리 여인숙에서 나온 도러시와 어긋났지만, 토머스 경의 집사 블리스는 도러시를 제때 찾아냈다. 

 

제4부에서 도러시의 삶은 또 한 번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토머스 경의 변호사를 통해 런던에서 멀지 않은 사우스브리지 여학교의 보조교사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링우드 하우스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내건 그곳은 당시 현금 수익인 학비를 겨냥해 몇 가지의 집기를 구비하고 난립한 작은 사립학교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교육보다는 수업료를 내는 학부모들의 만족을 위해 매진하는 4류 사립학교였다. 교장인 크리비 부인은 수업료 납부율에 따른 학생 차별을 당연히 여기는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자로, 배움이 짧은 학부모들에 대한 보여주기식 습자와 단순한 프랑스어 문장 암기만을 중요시했다. 무지하고 의욕 없는 아이들과 낡고 뒤떨어진 교재와 학습 과정, 보조교사에게 거의 모든 수업을 맡기면서도 하인처럼 부리는 교장 사이에서도 도러시는 나름의 혁신을 꾀하면서 교사직을 "마음과 영혼을 바칠 만한 과업"이라 여기며 몰두한다.

 

새로 부임한 교사가 마음에 들어 푼돈 모아 산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한 상냥한 아이들을 위한 도러시의 노력은 그 자신도 일깨우고, 교실은 잠시나마 배움의 의지와 생동감으로 넘친다. 그러나 교재 중 하나로 삼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자궁'이라는 결정적 단어가 등장한 직후, 학부모들은 '실제적인' 교육을 등한시한 채 불필요하고 품위 없는 문학 교육을 일삼는 도러시를 정면으로 비난한다. 학교로 몰려온 학부모 대표들의 불만 표출과 그들 앞에서의 교장의 꾸중, 그들이 돌아간 뒤에도 이어진 질책 등을 단지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참아낸 도러시의 일상은 다시 회색빛으로 물든다. 크리비 부인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교육으로 돌아간 결과, 잠시나마 제대로 된 수업에 앎의 즐거움을 경험했던 아이들의 배신감과 실망은 더욱 커졌다. 냉담해진 아이들의 수업 방해와 저항은 갈수록 심해졌고 부임 초기 티가 나지 않게 귀를 비틀라는 교장의 체벌팁에 충격 받았던 도러시는, 교실의 집단적인 조롱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소녀의 귀싸대기를 때리기에 이른다.

 

방학과 크리스마스 즈음 워버턴 씨와 신부의 편지가 당도하지만 아직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방학의 밥을 축내는 것을 아까워하는 크리비 부인을 피해 공공 도서관이며 산책으로 하루를 보내며 도러시는 새삼 텅빈 외로움을 느낀다. "큰 도시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부산스러움 때문에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을 할 수 있고, 시골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이 많다. 하지만 사우스브리지 같은 곳에서는 가족과 자기 집이 없으면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채 인생의 절반을 보낼 수도 있다."(373쪽) 고립감과 권태감에 지친 도러시에게는 아무런 희망 없는 봄학기의 시작도 기쁜 일로 다가오고, 아이들을 제압한 비루한 교사가 된 도러시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온전한 허수아비를 되찾은 크리비 부인만이 그런 도러시가 마음에 드는 듯 몇 달 간 넘볼 수 없었던 식탁 위의 마멀레이드를 허락하고 "다음 학기"를 자주 언급하지만, 실소를 부르는 유치한 변화 역시 계획적 해고를 앞둔 연막이었다. 

 

학생의 머릿수와 학비를 담보로 해적질이 난무하던 하류 사립학교의 생리를 알 수 없었던 도러시는 얼마 후인 학기가 끝나는 날 가차없이 해고되었다. 불가항력을 인지하고 짐을 싸 링우드 하우스를 나선 도러시 앞에, "밀-버러"를 찾는 소년이 나타나 전보를 전달한다. 셈프릴 부인의 명예훼손 소송 피소로 도러시에 대한 오해와 추문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며 도러시를 데리러 오겠다는 워버턴 씨의 전갈, 곧 나타난 워버턴 씨와 함께 도러시는 어리둥절하게 택시에 오른다. 런던에 도착해 나이프 힐로 향하는 기차에서 도러시는 "모든 진정한 사건은 마음속에서 일어난다는 진부한 말"을 되새기며 신앙을 잃은 현실과 "인생을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고백한다. 워버턴 씨는 난데없는 기억 상실이 억압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신부의 딸'로 돌아가 독신으로 늙어갈 미래를 주워섬기며 청혼하고, 그가 그리는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에 잠시나마 수긍하던 도러시는 그의 스킨십 시도에 주술에서 벗어나듯 정신을 차린다.

 

제5부의 2장,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제1부와 다름없는 도러시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독한 감기에 걸려 긴 요양을 떠났다는 공식 명분처럼, 핼쓱해져 돌아온 도러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의 생활로 돌아왔다. 최면에 걸린 듯 신앙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바쁘게 수행하던 갖가지 일들은 그대로다. 신앙을 잃은 채 이전과 다름없는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 도러시는 삶의 본질에 대해 묵상한다. "궁극적인 목적이 없는 삶의 구석구석에는 우울함과 쓸쓸함이 도사리고 있다."(423쪽)는 뒤표지의 발문은 스산한 진실을 담고 있지만,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절대자의 계시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각자가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깨달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앙을 잃었지만 신앙의 욕구마저 사라지지는 않은 도러시는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그녀는 경건한 마음으로 몰두"하며 자신의 일과 함께 다시 살아간다.   

 

1935년 3월에 출간된 두 번째 소설인 [신부의 딸]은 신앙에 잠식된 채 버거운 일상을 이어가던 도러시가 생각지도 못했던 극한의 경험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작가는 런던 근교 마을의 교회에서 붙박이처럼 살아가던 도러시를, 기억을 잃은 채 런던 근교 홉 농장으로 돌아갈 방법을 잃은 채 런던의 거리와 근교 마을의 사립학교로 이동케 한다. 그리고 도러시의 절박한 상황과 더불어 그 공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비참하고 피폐한 당대 가난한 이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본령을 잃은 종교와 제기능을 하지 않는 제도, 개인의 책임이 된 빈곤, 희망 없는 미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환멸을 내면화한 작가의 시선이 주목하는 사회의 그늘 아래 군상들은 우스꽝스럽고도 처연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지만, 비틀린 인물들과 상황 속에서도 빛나는 작가의 유머와 여유가 독자들의 숨통을 틔우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작가가 되기 위해 제국경찰을 그만두고 런던에서 경험한 밑바닥 생활과 이후의 사립학교 교사 생활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 덕에, 거의 아는 바가 없는 1930년대 영국의 어떤 실상들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 도러시를 통해 드러나는 '늙은 영국의 노처녀'들이 봉착한 현실은 새롭게 다가왔다. 공식적인 여성의 사회 활동이 허용되지 않았던 과거 유럽에서 결혼하지 않은 혹은 혼자된 중산층 이상 여성들의 의지처가 수녀원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러한 전통이 사라지고 현대가 시작된 그러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낮은 시기 부와 명예를 가지지 못한 대다수 여성들의 삶의 행로에 대해서 말이다. 트래펄가 광장에서 노숙하고 몰려간 새벽의 카페 앞에서 누추한 입성에 머뭇거리는 도러시에게 그레타 가르보를 언급하며 핀잔을 주는 벤디고 부인의 말, 링우드 하우스 아카데미의 도러시가 근교를 하릴없이 배회하며 너도밤나무 아래 기대 앉아 자신만의 소박한 크리스마스 만찬과 함께 읽는 조지 기싱의 [짝 없는 여자들]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개연성도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이 기억을 잃고 또 되찾는 파격이 당혹스러웠지만, 갖은 곤경의 와중에도 자신이 처한 현실에 언제나 충실한 도러시의 행보에는 응원과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여 그의 마지막(?) 선택지가 이전의 일상과 능구렁이 같은 워버턴 씨와의 결혼 중 양자택일이라는 것이 무척 잔인하게 느껴졌다. 워버턴 씨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사랑을 돈으로 바꾸면 열 배는 더 의미 있는 내용이 된다는 촌철살인의 지혜를 도러시에게 선사했지만, 아무리 암담한 노처녀의 삶이 기다리고 있대도 그를 선택하는 것은 돈의 위력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다행히(?) 도러시는 성 애설스탠 교회의 일상으로 회귀했다. 겉보기에는 이전과 다를 것 없고 심지어 오랫동안 삶의 중심이었던 신앙을 잃은 채 돌아와 계속되는 도러시의 삶은, 그러나 '주어진 것과 선택한 것'이라는 엄청난 질적 차이가 숨겨진 차원이 다른 일상이다. 이야기가 환상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당대의 현실에서 또 다른 비약적 가능성은 설정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극한의 모험 같은 곤경을 차례차례 경험하고 돌아온 주인공의 앞날에, 작가는 꽤 근사한 결말과 미래를 열어둔 것 같다. 

 

 

조지 오웰•이영아 옮김
특별 양장판 발행 2022.12.5, (주)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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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6. 12. 01:37

 
 
조지 오웰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몇 년 전 한동안, 오래 제목만 익숙했던 그의 작품들을 몰아 읽은 때가 있었다. 얼핏 꽤 무겁고 진지해 보였던 책들도 읽다 보면 금세 휘말리듯 빠져들었고, 소설은 소설대로 산문은 산문대로 시대와 호흡하며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자' 애썼다는 뜨거운 작가의 매력을 실감케 했다. 출간된 소설과 르포르타주, 여러 버전으로 편집된 산문모음집 중 몇 권을 읽고 생애에 관한 책도 한두 권 읽은 후 그는 내 마음속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민음사의 '디 에센셜' 시리즈도 굿즈 욕심에 샀는데, 다시 읽어볼 생각은 안 들었고 그냥 소장 중. 

 

작년 말에 국내에 미출간된 [신부의 딸]을 포함한 여섯 권의 조지 오웰 소설전집 세트가 현암사에서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복되는 네 권을 이미 다른 판본으로 읽었음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구매했는데, 역시나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볼 적극성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리고 봄이 시작될 즈음 '오월엔 오웰'을 작정했으나 유월로 미뤄졌다. 책 참 안 읽고 지내는 요즘, 다시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 분명한 현암사의 조지 오웰 소설전집을 정독하며 늘어진 생활을 다소 정비하기로 했고 출간순으로 박스에 나란히 꽂힌 차례를 따라보기로 했다.

 

[버마의 나날]은 조지 오웰이 1922년부터 5년간 제국경찰로 일했던 버마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934년에 출간된 그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영국은 1752년 동인도회사를 통해 버마와 교류를 시작했고 1886년에 버마를 인도의 한 주로 편입해 1948년까지 식민지로 삼았다. 소설이 전개되는 시공간인 1920년대 초반의 카욕타다는 철도종착역이 있는 군청 소재지로 법원과 병원, 학교에 공동묘지와 교도소까지 들어선 행정 거점이며 약 4천여 명 인구 중 7명의 유럽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옮긴이 해설에 따르면 조지 오웰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카사라는 지역을 모델로 한 허구의 도시라고 한다.

 

예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버마 시절]로 읽었는데, 다행히도 대략의 분위기와 극히 일부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제외하면 까마득히 망각한 상태여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고 마지막 25장에 이를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인공 플로리의 운명을 따라갈 수 있었다. 플로리는 대영제국의 목재 회사 직원으로 15년째 버마에 살고 있다. 작업 현장인 정글과 위수지인 북버마의 카욕타다를 오가는 그의 일상을 채우는 것은 맡겨진 일을 제외하면 좁디좁은 관계와 의미 없는 수다, 술, 여자, 책 정도다. 뒤표지에 적힌 발문 "공유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은 무의미하다."는 문장처럼, 고독한 플로리의 누군가와 함께하고픈 욕망을 자극하는 엘리자베스와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버마의 원주민들과 지배계급 유럽인들의 각양각색 면모와 크고작은 사건들이 소설의 두 축을 이룬다. 

 

카욕타다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설에서 커다란 갈등과 각종 사고의 배경이 되는 곳은 유럽인 클럽이다. "영혼의 성채"라고까지 표현된 클럽은 식민지에 체류하는 '푸카 사이브'('진정한, 옳은, 적절한, 예의 바른' 영국인이나 유럽인을 부르는 인도의 존칭)인 백인들의 교제와 여가의 장이자, 원주민 고위 관리들도 넘볼 수 없는 "열반의 세계"다. 백인들은 클럽에 모여 고립감과 무기력, 불만과 허위의식을 달래며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선민의식을 공유하고 자존감을 높인다. 지역의 극소수 인구집단인 백인들은 절대다수의 주민들에게 경외와 복종의 대상이고, 그들이 불쾌한 날씨와 문화적 지체와 따분한 일상을 견디는 힘은 제국주의의 모순과 부조리를 응축한 클럽 생활에서 나온다. 

 

카욕타다의 백인들이자 클럽 회원인 부판무관 맥그리거, 관구 경찰서장 웨스트필드, 목재 회사 지부장 래커스틴과 그의 아내, 다른 회사의 지부장 엘리스, 산림청 소장 대리 맥스웰의 공통점은 제국주의자로서의 높은 긍지 그리고 수위는 다를지언정 모두가 체화하고 있는 원주민들에 대한 혐오다. 싼값으로 하인들을 마음껏 부리며 위세를 떨 수 있는 환경은 본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식민지 생활의 유일한 덕이지만, 본국의 민주주의와 제도화가 인도와 버마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갈수록 방자해지는 하인들을 이전처럼 마냥 착취할 수 없다는 점은 커다란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어느날 당도한 동양인 한 명을 클럽 회원으로 입회시키라는 포고령은, 원주민들을 스스럼없이 '검둥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물론 지역 사회의 원주민 투 탑인 우 포 카인과 베라스와미에게도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소설의 시작을 여는 인물은 카욕타다의 군 치안판사 우 포 카인, 돈으로 산 관청 서기직으로 시작해 갖은 모략과 악행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는 말년 선행의 공덕으로 현생의 악업을 무화시키겠다는 인생 계획의 소유자다. 등장인물 대다수와 외떨어져 끝없는 야욕 채우기에 골몰하는 그의 현재진행형 타겟은 비교적 청렴함으로 자신과 대비되며 출세의 장애물로 여겨지는 교도소장이자 병원장인 베라스와미. 백인들에 대한 무한 신뢰와 존경을 깊이 내면화하고 자신을 비롯한 원주민을 열등하게 여기는 그는, 동료 백인들이 못마땅해하는 '급진적' 입장의 플로리에게 유일한 대화 상대이기도 하다. 자신을 찾아주는 플로리의 존재에 감읍하며 위기에 몰렸을 때 '백인의 친구'라는 위신과 평판에 의지하기도 하는데, 이 우정은 결국 플로리가 파멸하는 기폭제가 된다. 

 

우 포 카인의 계략이 저변에 흐르는 가운데 별다른 일이 없는 유럽인 클럽과 플로리의 나날에, 래커스틴의 조카 엘리자베스가 등장한다. 몰락의 성장기를 통과하며 영국과 프랑스 출신의 부모를 차례로 잃고 고아가 된 스물 두 살의 엘리자베스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래커스틴 숙부가 있는 버마로 건너왔다. 재능 없이 자유분방했던 예술가 기질의 엄마에게 학을 뗀 엘리자베스는 영민하고 용감한 여성이었지만, 당시 모든 여성이 그랬듯 결혼 외의 사회적 안정을 이룰 길 없는 상태였고 숙부와 숙모는 식민지에서 남편감을 찾을 때까지 그를 돌봐줄 셈이었다. 2년 전 부모로부터 300루피에 산 마 흘라 메이를 정부로 두고 권태로운 관계를 이어가던 플로리에게 엘리자베스의 출현은, 버마에서 자초한 타락의 삶을 구원할 일방적 계시가 된다.

 

물소에 놀란 엘리자베스를 구해준 첫 만남의 희망적 조짐을 환기하며 플로리는, 한쪽 얼굴에 선명한 푸른 모반의 수치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도 그에게 다가가고 반감을 사고 눈치를 보고 다시 다가가다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다른 영국인들과 달리 제국주의를 불합리하게 여기고 원주민과 그 문화를 존중하는, 그러나 꿈에 그리던 사냥과 사격을 가능케해준 플로리에게 수시로 극단의 양가감정을 느끼는 엘리자베스의 심경 변화를 플로리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숙부의 추행과 마 흘라 메이의 정체, 홀연히 나타나 유럽인 사회를 동요시킨 안하무인 헌병 베럴과의 연결 가능성, 원주민 폭동에서의 플로리의 활약 등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는 우스꽝스럽고도 진지하게 변화를 거듭한다.

 

엘리자베스와의 사랑과 미래를 통해 비참하게 전락하기 전의 인생을 되찾고 싶은 플로리의 바람은 안쓰럽고 절박하지만, 심경과 언행과 상황의 엇박자는 한편의 소극을 보는 것처럼 실소를 불러일으킨다. 청혼하려던 순간 지진이 나고 연적으로 여겼던 베럴이 냉정하게 떠나고 폭동 진정의 영웅으로 등극한 뒤, 새 생명을 얻은 듯 희망에 부풀어 6주 만에 방문한 신부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한 플로리는 처음으로 모반에 의기소침하지 않고 엘리자베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우 포 카인의 사주를 받은 마 흘라 메이의 소동과 돌이킬 수 없는 총체적 파국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마지막 순간들, 엘리자베스의 차가운 마음을 용기 내어 확인한 플로리의 선택은 자살. 반려견 플로의 두개골을 쏘고 자신의 가슴을 관통시킨 총알로 지리멸렬한 삶이 멈춘다.

 

베라스와미의 의리로 '사고사' 종결된 그의 죽음 이후 베라스와미는 쇠락하고 우 포 카인은 클럽 회원으로 선출되지만 내세를 위한 공덕을 쌓지 못하고 급사한다. 긴 이야기는 플로리의 사망 이후 맥그리거 부판무관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한 엘리자베스, 숙모 못지 않게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식민지 지배계급의 안주인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그의 근황으로 끝을 맺는다. 플로리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한 짧은 기술 이후 이어지는 "버마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럽인들이 자살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일에는 사람들이 별로 놀라지 않는다."는 말을 뒷받침하듯 식민지의 시간도 무심히 계속된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는 마무리다.

 

긍정적이거나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드문 소설이다. 다른 유럽인들과 달리 제국주의에 비판적이고 자신의 모순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우리의' 플로리에게 자주 감정이입이 되었지만, 마 흘라 메이와 엘리자베스를 대하는 분열적인 모습은 민망한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이 어머니의 태내에서 그의 얼굴에 푸른 모반을 찍어 넣었을 때"부터 시작된 다자적 소외와 열등감에 늘 시달리는 플로리의 심경이 자주 묘사되어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의 막스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막스는 자비에 돌란이 연기했으므로 가당치 않은 상상일 것이다. 주로는 고독과 자학, 아주 가끔 기대와 희망 사이를 숨가쁘게 오가던 플로리에게 모반은 "죽음과 함께 즉시 옅게 변한", "희미한 잿빛 얼룩에 지나지 않았"지만 평생 그의 삶을 지배한 낙인이자 수치의 증표였다. 옮긴이의 해설은 조지 오웰은 떠난 뒤에도 악몽처럼 떠나지 않는 버마 생활의 기억을 떨치기 위해 소설을 써야만 했다고 전하는데, 자전적인 소설은 아니라지만 어느 정도 작가의 페르소나일 플로리에게 그래서 모반이 꼭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출간된 후 버마의 유럽인들에게 적잖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식민지 유럽인들의 생활상과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 등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크게 과장됐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적지 않은 분량에 꽉 들어찬 당시의 사회문화적 현실은 흥미로웠고 대다수 인물들이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른 내면의 갈등과 심경의 변화가 섬세하게 기술된 플로리를 통해서는 인간 탐구라고 할 만큼의 다채로운 입체성이 느껴졌다. 덕분에 처음 책을 집어들고 조금은 뜬금없다고 여겼던 뒤표지의 발문이 의외의 핵심을 담은 문장이라고도 생각됐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의 의미 같은 것에 대해 순한 마음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런 게 문학의 힘이라면 환영.

 

 

조지 오웰•공진호 옮김
특별 양장판 발행 2022.12.5, (주)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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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5. 14. 14:21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시차를 두고 두 번째 추천했기에 못 이기는 척 투표한 결과 이번 달 모임 책이 되었다. ‘일베’는 많은 신조어들이 그렇듯 생겨난 맥락이나 대중화된 흐름을 잘 알지 못한 채 익숙해져버린 말인데, 그중 단연 문제적인 단어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별로 궁금하거나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일 것이지만, 갖은 부정적 함의를 흡수한 채 어떤 대명사처럼 쓰인 지 한참 지난 단어를 제목으로 내건 책이 출간된 건 비교적 최근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문제적이라는 강력한 인식에 비해 따로 고민해본 적도 아는 바도 없는 대상이어선지, 일베의 자장이나 파급력에 대해 저자가 전반적으로 과대평가한다는 느낌이 읽으며 지속되었다. 여성과 진보에 대한 혐오, 능력주의와 ‘공정’을 표방하는 ‘젊은’ 우익적 주장을 “일베의 현재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었고, 일베 이후 유튜브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유사한 주장으로 더욱 영향력이 커진 집단이 등장했는데도, 이를 굳이 일베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은 논리 전개를 위한 환원주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달래며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소시적 피씨통신 유저로서, 그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초반부는 의외로 흡인력 있게 읽혔다. 꽤 오래 나우누리며 천리안을 사용했지만 동호회 활동이 중심이었던 터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 ‘웃음’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저자는 웃음을 ‘사이버 공간의 자본’으로 단정하고, 한국적 웃음 모델을 우월적 웃음(인종 차별, 소수자 비하 등 권력 관계 함의, ‘프로불편러’)과 대비적 웃음(권력 비판, 사회 풍자 등)으로 구분하며 일베의 계보를 설명한다. 단정적 전제에 갸우뚱하는 마음이다 보니 저자의 주장보다는 연원을 몰랐던 신조어나 온라인 현상의 맥락 등을 새롭게 알게 되는 측면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고, 의구심과 수긍을 오가며 1장(일베의 계보: 사이버공간의 간략한 문화사)을 읽었다.

 

저자의 설명에서 의구심이 일었던 부분들. 범진보계열 정당 지지자를 진보 세력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나이브한 관점이라고 느껴졌는데, 수구/보수 양당 구조 정치 현실에서 시민들 중에는 방어적/비판적 지지 의사를 가진 경우가 많고 사회/생활세계의 보수성은 이러한 정치적 선택과 별도로 보는 것이 더 온당하지 않을까? 다른 계량적/실증적 자료를 사례화하기 어렵겠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거나 기사에 댓글을 달만큼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사용자 전체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 것이며(물론 그러한 표현 자체가 여론의 근거가 되기는 하지만) 댓글의 내용을 당시의 인식으로 일반화하는 게 맞을까?

 

2010년 이후 한국 인터넷 담론장의 문제 관련, 당시는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포털에 비하면 소수일지라도 기존 인터넷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sns로 유저들이 이동하던 시기였는데 그러한 변수가 언급되지 않은 점이 의아했다. 일베 등장의 토양을 온라인 담론장의 조건에서만 찾는 것도 부적절한 느낌이었는데,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의 전반적인 보수화 및 극단화(박근혜 집권 및 탄핵), 경쟁과 양극화의 심화 경향 등 현실 세계의 변화도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디시에서 통용되고 일반화된 신조어들 중에 나도 알 만큼 보편화된 말들, 짤 드립 어그로 등의 급속한 확산은 미디어의 확대재생산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또 ‘웃음’이 평범 내러티브와 만나 비윤리적 혐오로 변질/확장된 일베의 전제조건 중 하나는 사소할 수 있지만 회원가입이 불필요한 익명의 커뮤니티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신상을 가릴 수 있지만 개인의 디지털 페르소나를 표방할 수밖에 없는 sns와 달리 일베에서 유독 극렬한 혐오가 창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상황 변동과 더불어 그렇게 조성된 커뮤니티의 우편향 분위기에 더해 낮은 문턱과 익명성이 큰 작용을 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주목이 거의 없어서 의아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온라인은 이제 실제 세계의 일부라기보다 실제 세계를 다양한 매개물을 통해 반영하는 컨텍스트 혹은 실세계를 포함하는 또 하나의 더 넓은 우주 같은 것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 형식의 공통성에 기반해 거의 무한한 내용을 살피는 느낌이어서, 저자가 언급하는 사건과 현상 들이 내가 살아온 동시대의 것들임에도 생소한 부분이 너무 많았고 이는 광범위한 매트릭스에 산개하는 사건과 현상 중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여부에 따라 포착되거나 무화되는 오늘날 현존의 본질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80쪽에서야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의 역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1장의 부제는 이것이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성적 시각의 한계가 반영된 부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장을 읽으며 저자의 문제의식과 내용 전개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되었지만 본문에 해당하는 2장(혐오의 수치화: 2011~2020 일베 데이터 분석), 3장(일베적 혐오: 내부의 타자들), 4장(일베를 만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5장(여성혐오와 능력주의: 일베만의 문제는 없다)을 읽으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거나 설명이 미비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꽤 있었다. 94쪽에서 능력주의를 체화한 일베 이용자들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태도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일베(적) 혐오표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라는 부분은 중요한 지점으로 생각됐지만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142쪽에서 ‘ㅋ’을 하나만 쓰는 것이 상대방의 의도를 무시하고 나아가 명백한 비아냥이자 도발이라는 설명에서는, 공간과 연령에 따른 차이는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동의가 안 되어서 깜짝 놀랐다. 2장의 분석은 대단히 방대한 것이면서도 구멍 내지 오류에 대한 양해지점도 존재하는 데이터 분석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4장에서는 ‘일베’ 10명을 인터뷰하고 각 절의 제목을 ‘불안과 공포’, ‘응어리진 분노’, ‘수치, 순응, 그리고 평범 내러티브’로 붙였는데, 책 출간을 준비하며 새로 쓴 부분도 많겠지만 인터뷰 자체는 거의 7~9년 전 내용이어서 시의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이전의 논문에서 과도하게 많은 걸 가져온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불안한 현대에서 거의 유일한 안정을 보장하는 사랑이라는 언급이 나오고,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남성들의 기대’와 유사한 표현이 몇 번 등장하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인 건지 이해가 잘 안 됐다. ‘평범 내러티브’라는 명명이 적절한 것일까 싶기도 했는데 5장과의 극적 대비 효과는 느껴졌지만, 과거 어느 시기에나 있었던 남성 청년 세대와 일베와의 차이를 내포하지 못한 개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5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장대호라는 인물이 내게는 낯설었지만, 그의 글들을 일베의 말들의 전형이라 규정/논증하고, 그 글이 자신의 거주지 방언일 뿐 자신의 글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297쪽에서 “일베의 말과 생각이 한 사람의 것으로 온전히 체화되었을 때 얼마나 반공동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파멸적인 사례다”라고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를 밝히지만, 극단적인 사건으로 결과화된 한 사람의 특수성과 일베의 상징성을 과하게 합치시킨 느낌도 들었다. 사례가 ‘루저-백치-괴물로서의 일베라는 믿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기가 ‘일베의 전형을 명징하게 직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히는데, 일베라는 넓은 스펙트럼에서 한 사례를 대표로 내세우는 것은 비약적 선택인 것 같고 특히나 그의 존재는 너무나 유별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아니어서 이렇게 삐딱한 태도의 독서가 이어졌고, 논문에 기반한 대중서임에도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종종 있어서 6장(결론: 차가운 열광의 확산과 일베적 정치의 탄생)을 읽으면서도 소소하고 허접한 마음의 반론은 이어졌다. ‘한국 산업화의 원천은 혐오였으며, 혐오자들은 국가가 그 발전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생산해낸 도덕적·정치적 산출물이다.’라는 주장에는 일면 동의가 되었지만 소외된 친절함과 386세대로 대표되는 저항하는 청년상에 대한 수치심이 분노를 격화시키고, 회피 혹은 순응이라는 행위 전략을 이끈 수치심이 타자화 과정에서의 동정심을 제거하여 ‘혐오 사회’의 문을 열어젖힌다는 주장은, 합당한 매개 없이 도약한 결론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공감 능력이 없다기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패자와 승자로 사태를 판별하고 승자에 공감 및 능력주의 신봉과 패자 혐오, 지배자 갈망을 내면화하기 때문에(‘전도된 공감’) 비도덕적이고 패륜적인 ‘차가운 냉소’의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 내게는 차라리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소위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선 ‘고인드립’이나 극도의 비윤리성을 집단적으로 수용하면서 웃음/냉소의 계기로 삼고 그러한 사실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무래도 익명성과 집단불감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일베’ 유저들을 평범 내러티브를 내면화한 보통의 동시대인이라는 점에(일베의 보편성?) 주목하다 보니 이런 부분을 기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책의 후반부 363쪽의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등장한 이래 10년이 지나는 동안 어떤 정치인, 논객, 학자도 이준석이 구사하는 일베적 내용과 형식과 비전을 파훼하지 못했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야, 떨어지는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출간된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일베가 곧 이준석 지지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혐오를 무기로 젊은 주요 정치인으로 부상한 그의 위험성, 그가 주장하는 논리의 저변에 자리한 ‘혐오의 자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한 권의 책으로는 적당할 수 있겠다는 수긍이랄까. 그러나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라는 명확한 부제에 비해, 평범에 닿기 위한 개인적 노력에서 좌절하고 수치심을 자신의 몫이라 여기며 자신의 고통은 물론 타인의 고통도 억압하는 것을 정당히 여기는 일베의 멘탈리티에 대한 설명에서, 공격적인 혐오 확산과 극단화 지점으로의 도약에 대한 설명이 너무 빈약한 느낌이어서 많이 아쉬웠다. 물론 거대하고 부정적인 사회적 현상의 연원을 콕 집어 몇 가지로 정리하고 단언할 수 있는 학자는 없겠지만 말이다.

 

‘혐오’는 사전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함’이라는 의미의 단어인데, 소수자나 자신의 적대파에 대한 표현으로서의 ‘사회적 혐오’는 다른 층위의 의미로 변화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혐오’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인데 ‘혐오의 자유’만 문제인 것일까 싶기도. 나 역시 정치적 수구 세력들을 혐오하지만 그 감정을 일베와 같은 식으로 발화하거나 표현하지는 않는데, 이는 개인적 선택 내지 성향에 기인하는 것일까? 어쩌면 누구도 납득할 만한 답을 줄 수 없는 부적절한 의문일 수 있지만, 사실 내가 가장 궁금한 지점은 그 부분이었다. 더불어 진보/운동 진영이 일베/수구의 주장에 대해 ‘혐오’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설득력을 얻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부분에도 생각이 닿았다. 맥락과 사실관계, 역사 등을 종합해야만 제대로 납득할 수 있는 사안과 현상을 왜곡하거나 호도하지 않기 위해서는 늘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닌 어떤 사안에 대해 골몰할 이유는 없으되 이슈가 되고 있다면 단순명쾌하게 자기 입장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제도적 현실의 압력을 넘어서는 개인적 실천은 요원하고 정치적 올바름은 고루하고 골치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에? 사회운동의 장을 떠나온 자로서 민망한 질문이지만, 인간의 사회적 반응 행동 관련해서도 때로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는 하다.  

아무려나 책 모임 성원으로서의 의무감을 길어 올리며 겨우 읽어냈다. 미시적이지만 공감 혹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았으나 저자의 명석함과 해당 분야에 대한 박식함과 전문성에 비해 나의 이해와 논리적 반론 구성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관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논리적으로 언어화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수시로 느꼈다. 그럼에도 제대로 다시 읽으며 숙고하고 싶은 열의는 없고, 책 모임의 겉핥기 습성상 집단의 힘을 빌어 이해를 높이거나 오해를 줄이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사소하지만 강렬하게 남은 인상은 ‘나가며’의 후반부와 ‘감사의 말’에서 일베가 좌절한 평범을 가장 고퀄의 수준으로 이룩한 저자 자신의 현재를 가감없이 드러낸 부분이었다. 갸우뚱하다가 약간 당혹스럽고 웃겼는데, 나로서는 아무래도 저자의 성별에 기인한 것이라는 편견을 거두기 어렵다.


김학준
2022.6.13초판1쇄 2022.7.12초판3쇄펴낸날, 도서출판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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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5. 9. 23:42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분석할 수 있지만 아니 에르노야 말로 그 극단에 이르는 글쓰기를 하는 것 같다. 시골 잡화점집 고명딸로 태어나 애지중지 성장하며 공부 능력과 문화적 취향으로 주변의 이웃 혹은 어른들과 차별화되며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지만 출신 계급에 대한 컴플렉스와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다니며 내면화한 고루한 가톨릭 신앙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양가감정이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열여덟 시기 그녀의 원형질이었던 것 같다. 집과 기숙사를 벗어나 처음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 여름 캠프에서, 이러한 복합적이고 혼란스러운 정체성에 성적 호기심과 욕망까지 더해져 일어난 사건과 관련한 후일담이 서늘하게 담겼다. 

 

자신의 감정과 삶을 활자화해야만 하는 집요한 강박이 작가에게는 구원이자 형벌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니셜로 등장하지만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반복적으로 인터넷 전화번호부에 검색되고 마침내 구글에서 당사자는 전혀 모르는 채 금혼식 가족사진으로 현재의 정체가 드러나지는 H가 오히려 가여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가 부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건 나니까.”(131p)에서는 약간 망연자실했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저자는 비상한 감각적 예민함과 타고난 작가적 기억력과 기록 강박으로 자신의 삶을 구성한 수많은 사건과 그를 구성한 인물들을 끊임없이 사유하고 해체하고 소환하며 자신의 삶의 과거와 현재에의 의미와 영향을 자문하는데, 솔직히 읽으며 질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에르노•백수린 옮김
2022.11.30초판1쇄발행, 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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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5. 8. 21:51



원작을 영화화한 [레벤느망]을 본 탓에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읽었다. 임신 중단이 법으로 금지된 시절에 23살의 대학생이 홀로 겪는 다중의, 다단계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영화로 보았기에 활자를 통해 다시 보면서 나도 모르게 영화와 소설의 싱크로율을 확인하는 데에도 신경이 많이 갔던 것 같다. 각색 때문인지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내용과 소소한 차이는 있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영화보다 확연히 비대하고 지배적인 작가 자신의 사유와 자아의 비중이었다.

 

1999년의 작가가 1963년의 사건을 서술하는 내용과 동시에, 중간중간 ( ) 안의 단락들에는 1963년을 기억하고 추적하고 회상하며 기록하기 위해 애쓰는 1999년의 작가의 결의와 단상과 부연과 후일담 등이 배치되어 있는 글은, 흡사 27년의 세월을 건너 마주한 하나의 자아의 대화 같기도 하지만 지극히 자신에게 몰두하는 기록자의 내면을 그대로 옮긴 과잉 담화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기록이 당혹스러울 만큼 솔직하고 모두에게 거리를 둔 것이기 때문에, 또 책이 나온 지 이미 20년이 넘게 흘렀고 그가 지독할 만큼 자신의 이야기에 천착하는 작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면서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환기하게 되지만 말이다.

 

자신의 경험은 물론 내밀한 욕망, 속물성,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기분 등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자기검열 없이 거의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실은 다들 그렇게들 살아가지만 타인의 시선 안에서는 ‘문제없는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한 사람의 지평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느낌이었다. 단지 씀으로써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하나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이 기록의 당연한 속성이겠지만, 책을 읽으며 유독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선물 받아 [단순한 열정]을 큰 감흥없이 읽은 후 오랜만에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몇몇 문장들(41쪽 “나는 이렇게 쓰기를 망설인다.”, 75쪽 “나는 말로 표현 못 하는 지성에 취해 있었다.” 등)이 반짝이며 다가왔지만(이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번역본의 한계, 원문을 읽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새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문장은, 어쨌든 번역자의 문장이니까.), 전반적으로 나와 잘 맞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짧은 책이지만 미주가 적지 않았는데, [원주]로 표기한 걸 제외하면 옮긴 이의 노력인 것 같고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작가가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했거나 ‘파사주 카르디네’처럼 함의를 담은 단어에 대한 설명은 고마웠다. 

 

노벨문학상 수상보다는 작년 부국제에서 본 그의 다큐가 꽤 좋았어서 읽어보려 사둔 [여자 아이 기억]이 엄청나게 좋지 않는 한 나와 그의 책 인연은 세 권으로 마무리될 것 같다. 자전적인 기록의 외연이 확장되고 독자에게 전달되는 반향과 세계와의 화학작용을 인정하지만, 엄청나게 좋아하는 게 아닌 한 누군가의 온갖 경험과 머리와 마음 속 갖은 필터 없는 사유와 표현들을 이렇게까지 섭렵하듯 접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개인적으로 시기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가끔 스스로에 도취된 듯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어떤 표현들에서는 뜨악함이 느껴졌고 두어 번 반복되면서는 좀 피곤하다고 느꼈다. 


아니 에르노•윤석헌 옮김
2019.10.18.1판1쇄 222.10.11.1판4쇄펴냄, (주)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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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4. 22. 19:51



삼사십대를 소위 사회단체에서 일하며 보냈다. 그만둔 후엔 사회적 관계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비혼 여성 중년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피부로 별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주해 혼자 지내며 나만의 일상에 침잠한 탓에 사회에 팽배한 시선과 멀어지기도 했을 것이고. 많이 공감하며 읽으면서도 인터뷰이들의 말을 옮기며 해설하는 저자의 반복적인 방어적 태도가 좀 불편하기는 했다. 에필로그에서 밝히는 한계는 초반부터 느껴졌는데, 한 사람이 19명이나 인터뷰해서 책을 내는 일만도 쉽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핫한 여성 작가들의 추천사를 싣기보다 프롤로그에서 먼저 인터뷰이 선정의 현실적 한계를 언급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솔직히 읽기도 전부터 지금의 나는 이 책의 한 ‘반례’가 아닐까 싶은 저어하는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 교차했다.

 

'던바의 수'의 다섯 친구 중 덕질 대상도 포함되는 데에서는 민망하지만 안도감을 느꼈고, 친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한 부분에서는 그런 거 하기 귀찮다는 마음이 지배적인 시기라 느끼는 저항감이 만만치 않았다. 민폐기피자로서, 흔쾌히 도움 받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입원한 주말, 멀리서 찾아오겠다고 거듭 말하는 지인의 말이 고마웠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읽으며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참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도 필요한 것도 많구나 싶었고, 가부장 중심 가족주의 한국 사회에서 자리잡은 제도와 관습 그리고 변화하는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식의 성장으로 현실과 불화하는 시스템의 문제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사회적 발언권과 문화 자본을 가진 세대가 돌봄에 직면한 시점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는데 각종 통계와 사례, 여러 이론 들을 근거로 한 실증적인 서술에 인터뷰이와 저자 자신의 이야기까지, 방대하고 복잡한 서사를 일반화하지 않고 잘 정리한 책이었다. 다 읽고는 조금 쓸쓸한 마음이 되었는데 그 무엇으로든 살아가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지금의 내 상태를 비추었기 때문인 것도 같고, 자주 언급된 전주의 공동체나 꽤 괜찮다고 느낀 여주의 공동체 역시 생각하면 너무나 바쁘게 무언가를 계속 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냥 무위도식 무임승차로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 이번 달 모임 책이었는데 동시대의 동년배로서 대체로 공감이 되고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조금 피곤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김희경
2023.3.15초판1쇄찍은날 3.22초판1쇄펴낸날, 도서출판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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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2. 21. 13:24

 


대중문화 콘텐츠와 소비 문화가 대다수의 관심사를 지배하는 현실,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에서 시간을 아끼고 또래와의 소통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선택이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게 된 '빨리 감기'에 대한 꼼꼼하고 다각적인 분석이 담긴 책이다. 

 

'들어가며'와 '마치며' 사이 5장의 본문(제1장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제2장 대사로 전부 설명해주길 바라는 사람들', '제3장 실패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제4장 좋아하는 것을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제5장 무관심한 고객들')으로 구성된 책은 빨리 감기에 익숙해진 독자들을 배려한(?) 듯, 평균 한두 쪽의 절 제목까지 빽빽하게 명기해 목차만으로도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본문에 사용한 그린 컬러와 편집디자인이 약간 조야한 느낌은 들었지만 절 제목과 함께 빨리 감기 표시(⏩), 하단의 쪽수 표기와 나란히 영상 플레잉 스크롤바와 조작 버튼(▶️⏩⏯) 및 현재 장의 재생지점을 달리 표시한 이미지는 참신하게 느껴졌다. 전반적인 내용은 비판적인 톤이면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인정하는 느낌이랄까.

 

이전보다 한층 빨라진 일상의 호흡 속에서 수용자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작품이 아닌 콘텐츠로 받아들이고, 감상하기보다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비는 감성적 영역이기보다 정보 수집의 역할을 하는 측면이 강하고,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개인이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기기와 기술의 발전에 근거한다. 시간 가성비가 중요한 이들일수록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으로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추세는 영상 제작 과정에도 영향을 미쳐 빨리 감고 건너뛰어도 전체적인 내용 이해에는 큰 지장이 없는 콘텐츠들이 활성화된다.

 

저자가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 표(218쪽)에는 영화의 발명으로부터 다섯 번의 변곡점을 거친 영상 시청 행태의 변화가 드러난다. 영화관에서만 영상을 볼 수 있었던 19세기 말, 가정의 tv를 통해 '장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1950년대, 비디오와 dvd를 통해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1980년대, 영상 배급을 통해 '물리적, 금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2000년대 후반 그리고 2010년대 후반부터 빨리 감기 시청과 건너뛰기 기능 추가를 통해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거듭 해방'. 제약으로부터 수차례 해방되며 이른 오늘날의 시청 행태가 진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본문의 말미에서 저자는 라이브 연주가 음악의 본령이었던 시대에 등장한 레코드가 '통조림 음악'이라 폄훼되었던, pc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컴퓨터를 통한 글 읽기가 우려의 대상이 되었던 사례를 거론한다. 내용의 온전성 훼손이 불가피한 빨리 감기와 건너 뛰기가 이와 같은 선상에서 다뤄질 현상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대세의 역행은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불가역성을 인정하고 변화된 현실에서의 전망을 상상하고 제안하면서도 “마치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맺는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본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빨리 감기를 새로운 현상으로 짚으며 논의를 풀어나가는 초반부에서 저자는, 돌이켜보니 자신 역시 '일'을 해야 할 때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는 영상 시청의 목적에 따른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편의와 효율을 추구하며 급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계에서 전면화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라는 현상이 가능해진 직접적인 원인은 기술적인 부분이겠지만 그 기저에는 긴 호흡과 여백, 느림의 미학과 성찰의 여유 같은 것이 용인되지 않는 세계의 현실이 있다. 분석은 흥미로웠고 대안 같은 것은 없다. 

 

 

이나다 도요시 지음•황미숙 옮김
2022.11.10.1판1쇄 11.29.1판2쇄발행, (주)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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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2. 16. 14:43

 


저자가 지닌 대중문화 컨텐츠와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전망과 윤리라는 매우 확고한 믿음에 기인하는 것 같다. 과거 트위터의 리트윗을 통해 가끔 그의 의견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속한 장에서는 꽤 '소수의견'에 속할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수긍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기억으로 신간 소식을 듣고 선택했는데,  레퍼런스로 삼은 대상 중 팔할 이상이 몰랐거나 낯선 것이어서 구체적 내용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발표했던 글에 대해 책 출간을 준비하며 새로운 코멘트를 덧붙인 점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느껴졌다.

 

글이 재미 없지는 않았지만 꽤 계몽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내가 경험하는 것보다 세계는 훨씬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의 글이 상대하는 세계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평론가, 한 편의 글이 세상의 변화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크지 않겠고, 그도 글에서 자주 언급하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의외로 그랬으면 하는 큰 열망이 잠재되어 있을 것 같다고도 느꼈다. 웹툰을 본 적이 없고 화제가 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역시 본 적이 없다 보니 사례로 언급되는 대다수 작품이 초면이거나 제목만 얼핏 들어본 수준이었는데, 그의 비판과 지적을 수용한다면 놀랍도록 저열한 작품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 학벌없는세상에서 활동하던 하재근이 대중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로 연예 프로그램에 등장한 걸 목격했을 때의 당혹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대중문화가 곧 연예계 일련의 일들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비판적 논점 없는 그의 코멘트를 접하며 알지도 못하면서 생계의 무게를 떠올렸었다. 인기와 화제성이 모든 걸 잠식해버리는 연예산업 내에서 주류의 목소리에 편승하지 않고 '외로운'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듯한 저자의 태도가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성의 없고 뭉툭한 독후감이 미안할 지경이지만, 그의 분투가 환기하는 변화가 가끔은 발견되기를 바란다.   


위근우
2022.8.26초판1쇄,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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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2. 6. 02:42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대본이 궁금했다. 전체적으로 대사를 위한 감정 상태나 상황 설명 등은 디테일하게 제시되어 있는 데 반해 말투나 사투리 여부 등은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신기했다. 영화 초반 피씨방 알바노동자의 사투리가, 물론 부산이 배경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꽤 튀게 느껴졌는데 그 부분에 대한 지시사항이 각본에는 없었다. 영화를 볼 때 서래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잠복하며 관찰하던 해준이 어느 순간 서래의 거실에 들어가 투명인간처럼 곁에 있는 장면, 현실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각본에는 별다른 부연이 없었다. 감독의 머릿속에 각본-촬영-편집까지 계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걸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에서 느꼈던 것보다 서래와 해준의 감정이 각본에서는 굉장히 진하게 전면적으로 묻어난다는 점이었다. 영화에서도 용의자와 담당형사 간의 긴장 그리고 연인으로서의 사랑의 감정이 어느 시점 이후에는 확 증폭되면서 고조되지만, 각본상으로는 두 사람이 첫 만남에서부터 거의 운명의 상대임을 직감한 사랑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야말로 목숨을 버릴 각오까지 한 사랑의 이야기로 질주하지만, 개인적으로 초반부 두 사람의 역동에서는 경계와 의심이 더 큰 비중으로 다가왔었는데 말이다.

 

서래가 거실에서 보던 사극 드라마가 <흰 꽃>이라고 나오는데 실제 있었던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볼 때는 뭔가 애절한 느낌의 화면만 눈에 들어왔는데 ‘류선생/서래’ - “사랑은…… 그 외 다른 모든 것의 포기니라.” 같은 직접적인 대사의 복선도 새삼 눈에 띄었다. 각본과 상영된 영화 사이에 달라진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는 감지할 수 없었지만, 박찬욱 감독 영화의 에센스를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견 때문이었는지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두 버전의 온도차가 꽤 크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폭력 장면을 견디는 게 많이 힘든 편이어서 [올드 보이] 이후 오랜만에 본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나름 멜로여서 반가웠는데, 내가 받은 느낌보다 더 극한의 멜로 영화였음을 각본을 보고서야 알았다. 

 

 

정서경 박찬욱
2022.8.5초판1쇄 8.22초판7쇄, (주)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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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