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3. 10. 27. 18:18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빈센트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출근한 어느 날 미팅을 위해 둘러앉은 자리에서 새로 온 인턴 위고에게 딴의 농담을 던진 후, 갑자기 흥분한 그가 휘두른 노트북에 상처를 입는다. 주변의 제지로 상황은 진정되지만, 얼마 후에는 일하던 빈센트와 눈이 마주친 다른 팀원 이브가 갑자기 달려들어 볼펜으로 찌르는 일이 발생한다. 연이은 사내 폭력에 회사는 면담을 진행하지만 마주한 당사자들은 혼란스럽다. 볼펜으로 공격한 이브는 이성을 잃은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고 빈센트의 당혹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 

 

퇴근 후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누군가도, 귀갓길 계단에서 마주친 위층의 어린 남매도 순식간에 돌변해 자신에게 달려드는 일을 겪으며 빈센트는 공포에 휩싸인다. 창문 너머 맞은 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에게 시험 삼아 인사를 건네고 눈을 맞추자 그 역시 갑자기 격분해 재떨이를 던진다. ‘눈이 마주치면 시작됨’, ‘눈을 피하면 끝’. 며칠 사이 자신에게 반복되는 악몽 같은 현상에 대해 나름 분석하지만, 대안을 찾을 수 없는 빈센트는 일단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야반도주하듯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버지의 집, 하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어렵고 동거인이 있는 터라 환영받지 못한다. 할 수 없이 비어 있는 어린 날의 집으로 피신하던 빈센트는 휴게소에서 부랑아 같은 입성의 조아킴DB를 만난다. 대학교수였다는 그는 빈센트와 같은 일을 겪고 있다며 선배로서 조언을 건네고, 같은 처지인 ‘감시병들’의 존재와 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알려준다. 고향 마을에 도착한 빈센트는 빈집의 기척을 반기며 인사하러 온 옛 친구도 낯선 이웃도 피해가면서, 조아킴DB의 조언대로 입양한 개 ‘술탄’과 함께 은둔을 시작한다. 

 

누군가와의 마주침을 최소화하기 위해 빈센트는 집의 잔고장을 직접 수리하고, 음식을 대량 주문한 식당 앞에 차를 대고 몸이 불편한 척도 하지만 완벽한 비대면의 생활은 불가능하다. 와중에 음식을 전달하는 틈에 담배 한 대로 숨을 돌리곤 하던 식당 웨이트리스 마고에게 끌림을 느낀 빈센트는, 우연히 위험에 처한 그를 돕게 된다. 정박된 요트를 집 삼아 살아가는 무일푼의 자유로운 영혼 마고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허우적대는 빈센트의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서로의 눈을 피하며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사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모습은 불안하고 애잔하다. 둘만의 분투가 이어지는 사이 세계는 폭력 바이러스에 잠식됐다. 이유 없는 무차별 공격이 난무하고 생존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로 도로는 아비규환이다. 차 밖으로 나온 이들은 좀비처럼 아무에게나 질주하고 나뒹굴며 지옥도를 재현한다. 빈센트와 마고 역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안간힘을 다해 도주에 성공하지만, 창궐하는 바이러스는 마고와 빈센트의 입장을 바꾸고 만다. 비로소 아수라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눈을 가리고 수갑을 채우고, 그렇게 함께다. 

 

 

각자의 삶을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방향 없는 분노와 증오로 발현되고 모두가 무의미하고도 치명적인 표적이 되는 세계의 위기. 아직 전면화되지 않았지만 서서히 누적되며 잠복하고 있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위험을 물리적으로, 시각적으로, 직접적으로 과감히 영상화한 느낌의 영화였다. 감독이 구현한 디스토피아는 영화가 끝나면 종말을 맞지만, 풍자한 현실은 부정적인 가속화 경향의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무섭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했다.

 

극한의 공포를 겪으며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는 궁지에서 인간은 움츠림과 경계를 넘어 적대로 나아간다. 인턴과 팀원의 일방적인 폭력에 나름의 관용을 보였던 빈센트가 도피 이후 계속되는 위협 속에서 이웃과 사투를 벌이고 쓰러진 그를 트렁크에 가두는 모습은 섬뜩하다. 자신의 병이 다 나았고 아내에게 돌아간다는 연락으로 빈센트에게 희망을 안겼던 조아킴DB가 얼마 후 아내의 외면에 절망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부분 역시 그랬다. 무수한 위험에 맞서며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되더라도 삶을 떠받치던 의미를 상실하면 생의 의지는 무화된다.

 

상처 입은 마고와 빈센트의 마지막 모습은 얼핏 [퐁테프의 연인들]의 결말부를 연상시켰지만, 해골프린트 셔츠에 개성 넘치는 외모를 한 감독이 소개 영상에서 이야기한 ‘그럼에도 사랑’인지는 갸우뚱해졌다. 현실을 풍자하며 한계 없는 몽상처럼 확장되던 이야기가 나이브하게 봉합되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메시지와 이미지가 주효한 영화였던 것 같지만 뭔가 헐렁한 내러티브의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를 보며 내심 왜 선글라스 에피소드가 없을까 생각했는데, 퇴장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소한 거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현실과 유리된 헛소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아내는 궁금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일은 사실 시간표 채우기에 갈등이 많았던 날이다. 보고 싶은 영화들은 다른 날에 시간대가 겹쳐 있었고, 크게 기대되지 않더라도 GV가 있다면 선택하려 했지만 폐막 전날이어서 찾기 힘들었다. 숙박비 들여가며 머무는 건데 영화를 안 보기는 아쉬워서 시간표를 몇 번이나 훑어보다가 어렵사리 결정한 영화였다. 홈페이지의 영화 제목 아래 무려 ‘범죄/폭력 심리/미스터리/서스펜스/스릴러 코미디/유머/블랙코미디/풍자 호러/고어’라는 태그가 달려 있었음에도 프로그래머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했는데, 생각할 거리는 남겨줬지만 자주 등장하는 폭력 장면은 힘들었고 결과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10/12 CGV 센텀시티 5관

 

 

 

 

 

[Vincent Must Die]

 

국가/지역France/Belgium 제작연도2022 러닝타임108min 상영포맷 DCP 컬러Color

Director: Stéphan CASTANG 스테판 카스탕

Cast: Karim LEKLOU, Vimalas PONS, François CHATTOT, Michaël PEREZ, Emmanuel VÉRITÉ, Guillaume BURSZTYN, Benoit LAMBERT, Jean-Rémy CHAIZE, Maurin OLLES, Jean-Christophe FOLLY

 

Program Note

빈센트의 일상은 요즘 악몽 그 자체다. 직장, 길거리, 아파트 등 곳곳에서 사람과 눈만 마주치면 이유도 없이 얻어맞는다. 이제 직장에 다닐 수도,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빈센트는 유년기를 보낸 시골 마을로 피신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설명할 수 없는 폭력의 물결이 프랑스 전역을 뒤덮는다. <빈센트 머스트 다이>는 긴장감 넘치는 공포물이자, 팬데믹과 경제적 위기로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풍자다. 음모론, 인종차별적 담론, 배타성 등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발현되는 세상의 잠재된 폭력이 빈센트의 삶을 잠식한다. 스테판 카스탕 감독은 유려한 미장센으로 무거운 주제를 장르로 풀어내고, 역동적이고 코믹한 카림 레클루의 연기는 작품에 핍진성을 더한다. 공포에 휩싸인 한 국가를 횡단하는 서스펜스 로드무비 <빈센트 머스트 다이>는 존 카펜터나 조지 로메로의 작품에 비견할 만하다. (서승희)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68593&c_idx=389&sp_idx=0&QuerySt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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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3. 10. 27. 14:05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대째 손인형극단을 운영하는 가족, 평생 헌신한 아버지가 늙고 힘에 부치기 시작하자 아들 루이가 인형극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피터르가 함께하기 시작한다. 화가를 꿈꾸지만 가난으로 인해 노숙인처럼 지하철에서 생활하기도 했던 피터르는 정말 돈이 없거나 궁하면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며,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과 생활을 반긴다. 여러 사람이 장막 뒤에서 두 팔을 뻗어 올려 인형 동작을 표현하며 대사까지 맞추는, 체력과 호흡이 중요한 작업에서 피터르는 합격점을 받았고 모두의 바람대로 정식 구성원이 된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가족의 분위기는 다정하고 평화롭다. 젊은 날 공산주의자였던 할머니는 노령에도 멋지고 위트 있는 어른이고, 가업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는 언제나 일에 열정적이다. 어머니는 막내를 낳고 얼마 후 돌아가셨지만 이제 그 빈자리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손인형극을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은 남매들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자매들은 여성의 권리 찾기와 사회 참여에도 열심이고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대화는 자유롭다. 

 

피터르의 합류로 안정감을 찾은 듯했던 손인형극단은 공연 중 쓰러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손인형극단에서 만난 로르와 사랑에 빠진 피터르는 임신 중인 동거인 엘렌과 점점 소원해지고, 에두아르가 태어난 후 헤어진다. 피터르를 찾아온 엘렌에게 호감을 느끼고 아기를 보러 찾아갔던 루이의 마음은 점점 엘렌을 향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위기를 맞은 극단의 돌파구로 남매들은 순회공연을 떠나지만 녹록지 않다. 피터르는 뒤늦게 손인형극에 대한 혼란과 회의에 휩싸이고, 아버지의 죽음 후 이상행동을 보이던 할머니도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을 이어 경험한 남매들은 기로에 선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손인형극 작업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 루이는 연극배우로 전향하며 엘렌과 동거를 시작한다. 마르타와 레나는 새로운 시대의 서사를 입힌 인형극을 시도하며 분투하지만 극단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극단을 떠나 그림에 매진하는 피터르와 함께하는 로르는, 생계에 무심한 채 혼자만의 완벽한 예술을 추구하며 무너져가는 피터르를 힘겹게 견디고 있다.  

 

연극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한 루이는 궁지에 몰린 피터르를 흔쾌히 돕고 동생들의 어려움도 헤아리지만, 이미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로르는 스스로 침몰하며 괴팍하게 변해가는 피터르를 마침내 떠나고, 현실을 깨닫고 그림들을 판매하려 지하철역으로 나선 피터르는 사람들의 무심함에 절망해 폭발하고 만다. 난동을 부리다 체포되어 병원에 입원한 피터르는 그제야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서 놓여난 듯 평온해보이고, 유리창 너머로 로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작품을 본 적이 없어 궁금했다. 몇 편의 영화로 낯설지 않은 아들 루이 가렐이 절반은 이해할 수 없는 소개글의 난감함을 상쇄해준 덕에 선택. 볼 때는 몰랐는데 정리하며 캐스트를 살펴보니 자매를 연기한 마르타와 레나의 성도 가렐이었다. 이전의 필모들 중에 아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있어 신기했었는데, 자녀들과 함께한 감독의 영화 작업이 작품 속 손인형극단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이중의 가족 기록으로 보여지는 점이 흥미롭다.  

 

감독의 이름값이 주는 선입견 때문인지 할머니부터 갓난아기까지 대략 4대가 등장하는 어떤 유장함 때문인지 흔들리는 인물들과 불안한 상황이 연속되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안정감 같은 것이 있었다. 무신론자였던 할머니의 장례에서 가족들만 남게 되자 관 뚜껑의 십자가를 제거하는 루이의 모습은 가족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처럼 인상적이었고, 피터르와 엘렌, 엘렌과 루이의 쿨한 관계가 살짝 놀라웠지만 가족의 소중함만큼이나 다양한 가족 구성도 인정하는 문화적 풍토를 반영하는 것일까 싶어 신선했다. 

 

루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전개되는 영화는 다행히 난해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인형극과 집안에서 자주 투샷으로 잡히는 자매 마르타와 레나 그리고 피터르와 사랑에 빠진 로르를 두고 혼란에 휩싸였다. 초반 손인형극 연습에 이어 피터르와 키스하는 로르를 당연히 자매 중 한 명이라고 인식했고, 이야기가 전개되며 가족과 함께하는 두 자매의 얼굴에서 로르를 찾을 수 없어 촬영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걸까 싶었는데, 헷갈림이 시작된 순간부터 로르의 ‘정체’를 나름 의식하며 봤음에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났다. 잘 없는 경험이라 난감했고 뭔가 홀린 느낌에, 영화의 제목이 왜 북두칠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소회가 더해졌다. 속 시원히 알아낼 방법도 없으므로,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으로 나랑 합의. 

 

 

10/12 CGV 센텀시티 스타리움관

 

 

 

 

 

[The Plough]

 

국가/지역France/Switzerland 제작연도2022 러닝타임97min 상영포맷 DCP 컬러Color

Director: Philippe GARREL 필립 가렐

Cast: Louis GARREL, Léna GARREL, Esther GARREL

 

Program Note

전작 <눈물의 소금>(2020)에서 여자가 ‘북두칠성’에 대해 묻자 남자는 관심 없다는 투로 답한다. 신작은 어쩌면 그 대답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가렐 영화에서 가족이 새삼스러운 주제는 아니지만, 근래 개인의 섬세한 내면을 그려온 것과 달리 <북두칠성>은 집단으로서의 가족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상할 정도로 바깥 풍경에 인색한 건 그래서다. 3대가 유지해 온 손인형 극단이 두 번의 죽음을 거치는 동안, 가족의 가지는 몇 갈래로 나뉜다. 그 결과, 꿈꾸는 예술가와 다사다난한 가족의 초상이 고스란히 담긴다. 거기에서 단순하지 않은 가렐의 가족사와, 화려함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이력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가렐의 인물과 관계가 집결된, 아울러 거장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라 할 가렐의 숨결이 짙게 밴 작품이다. (이용철)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66852&c_idx=383&sp_idx=0&QuerySt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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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3. 10. 26. 18:18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보급된 나라라는 부탄, 2006년 국왕이 퇴위하며 민주화와 현대화 추진을 선언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처음 경험하는 민주주의와 선거는 국왕 치하에서 문제없이 살아가던 이들에게 혼돈의 신세계를 선사한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정당의 후보들이 등장해 지지를 호소하고, 최초의 선거를 잘 치르기 위한 사전 모의 선거가 각지에서 진행된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대의 우라 마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민주적 절차와 주권자의 권리 행사는 시골 사람들에게 낯선 일이다. 선거인 명부 정리를 위한 주민 등록에서부터 난관이 시작된다. 생일을 묻는 질문에 보름달 어쩌고 하는 답변이 돌아오고 이름 없이 살아온 이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이 마을에 도착하고 사전 모의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정당 지지 여부에 따른 주민들의 반목이 생겨나고,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을 거부하는 주민들도 생겨난다. 선거 운동 교육이라며 정당별로 지지자를 줄 세우고 서로를 도발하도록 유도하는 공무원에게, 그 자리를 떠나며 한 노인이 남기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왜 서로 무례하게 굴도록 가르치죠?”

 

마을의 젊은 부부인 초모 가족도 격동의 당사자가 되었다. 어린 딸 유펠을 도시에서 교육시키고 후보에게 잘 보여 나중에 출세시키고자 선거 운동에 나선 남편은 다른 당을 지지하는 장모와 불화를 겪는다. 마을 주민 다수와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아빠 때문에 유펠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더 나은 교육 기회나 장래의 성공보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초모는 혼란스럽다. 민주화와 함께 당도한 현대화의 상징은 텔레비전이다. 큰 화면의 새 텔레비전을 들여놓은 상점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007’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젊은 타시스님도 예외가 아니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우라 수도원의 큰 스님은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다 일을 바로잡을 총 두 자루를 구하라는 명을 내린다. 큰 스님의 지시를 받은 타시 스님의 수소문에, 마을의 한 노인이 선대로부터 간직해온 총을 전달한다. 직전, 수도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벤지는 부탄에 입국한 미국인 총기수집가 론의 부탁으로 바로 그 총의 거래를 통역했다. 남북전쟁 시절에 사용된 총이라며 반색하는 론의 거액 제안에 난감해하며 훨씬 작은 액수를 제시했던 노인은, 돈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며 그들이 돌아간 사이 타시 스님이 찾아오자 총을 건넨 것이다.

 

돈 가방을 들고 돌아와 극적으로 타시 스님을 마주한 그들은 총을 돌려받으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카달로그를 내밀며 교환을 청한 끝에 ‘007’에 나오는 AK47 소총 두 자루를 요구하는 타시 스님과 극적 합의한 론과 벤지는 인도를 통해 AK47 소총을 들여오기로 하고 부탄의 암거래상을 통해 이를 손에 넣는다. 한편 정부는 여행객을 가장해 입국한 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마침 우라 마을의 사전 모의 선거 현황을 취재하는 뉴스 리포팅의 배경인 상점 앞에서 나란히 앉아 음료를 마시는 벤지와 론이 텔레비전 화면에 포착되고, 경찰은 그들을 잡기 위해 출동한다.

 

총을 둘러싸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달리, 사전 모의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파견 공무원이 상주하며 주민들을 독려한 결과 10%에 불과했던 등록률은 98%를 기록했다. 결과는 다수의 지지를 받던 파란 당도 유펠을 외롭게 만든 빨간 당도 아닌 노란 당의 승리, 참여자의 95%의 표가 몰린 압승이다. 선거로 인해 전에 없던 불화를 경험한 마을 사람들은 ‘국왕의 색’인 노랑을 택함으로써, 공동체가 마주한 격변과 불필요한 갈등을 스스로 봉합하고자 했을까.

 

큰 스님의 디데이, 마을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들었다. AK47 소총 두 자루를 챙긴 벤지와 론, 그들을 추적 중인 경찰들도 그곳을 향해 가는 중이다. 큰 스님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화합의 탑’ 건설을 선언하고 그 기반 자리에 증오, 갈등, 고통의 상징물을 묻기로 한다. 마을의 노인이 타시 스님에게 건넨, 대륙을 건너와 티베트인 수백 명을 죽이는 데 쓰였다는 귀한 총이 제일 먼저 던져진다. 극적으로 도착해 경찰들과 마주한 벤지와 론,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AK47 소총을 탑에 바치며 위기를 모면한다. 영화는 부탄이 2008년 3월, 첫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체제 전환을 이루었다는 후일담을 전하며 마무리된다.

 

 

[교실 안의 야크]의 좋았던 기억으로 선택하면서도 소개의 내용은 딱히 매력적이지 않아 반신반의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도시 문물과 현대적 삶에 물들지 않은 마을 사람들의 관습과 전통이 희화화되지 않으면서 순수하고 인간적인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고와 셈법이 주는 감동이 컸고, 우라 마을이 자리한 산악 풍경과 파란 하늘 못지않게 큰 스님이 기획한 대화합의 한 마당이 선사하는 청량감이 엄청났다. 평화와 화합을 열망하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차고 있던 총을 탑의 기반에 바치는 경찰들, 론의 쓰린 속을 알 리 없는 주민들이 의례에 쓰인 남근상을 그에게 전하는 장면 등 사뭇 진지한 상황에서 유발되는 웃음이 유쾌했고, 거대한 정치적 변화를 적절한 깊이와 밀도로 환하게 그려낸 감독의 역량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영화 속 우라 마을에서는 두 대의 텔레비전이 등장하는데 브랜드가 각각 삼성과 엘지였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한글이나 한국어를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으니 이례적인 건 아니지만, 전날 본 [바람의 도시]에서 마랄라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로 한국이 등장했을 때도 느꼈던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위상이랄까. 부심류의 차원이 아니라,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미발전 상태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느끼는 친밀감에 비해 그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 혹은 인식은 전반적으로 어떤 우위를 전제한 무지의 상태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맴돌었다. 막 비유하자면 어릴 적 친척 중 누군가 이민 가있는 미국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에 비해 대다수의 미국인에게 한국은 염두에 없는 상태 같은 것? 한때 이주 단체 활동을 했음에도 아시아에 무관심했던 나의 경우는 확실히 그러한데, 영화 덕분에 ‘언젠가 다시 유럽’, ‘언젠가 남미’를 품고 있는 마음에 흐릿하게 ‘먼저 아시아?’가 더해졌다.

 

영화제 후반부임에도 GV가 있어 더 좋았고,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길버트 그레이프’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 더 반가웠다. 상기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즐거운 tmi를 전해준 벤지 역할의 남자 배우, 영화에서처럼 차분하게 소회를 이야기하는 초모 역할의 여자 배우도 함께여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부탄이 작은 나라인 건 알았지만 인구가 70만 명 정도이고 대다수 배우들이 연기 외의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건 놀라웠다. 원래 하던 연기보다 표정이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디렉팅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만족했다는 남자 배우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약간은 어떤 느낌인지 알 것도 같았다. 감독은 첫 번째 영화를 평론가의 관점으로 다시 보고 단선적인 구성 등 미비점을 보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충돌하는 부탄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장르 영화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감독의 다음 영화 소식을 알게 된다면 의구심 없이 선택할 것 같다.

 

[교실 안의 야크]를 만들기 한참 전 관객으로서 부국제에 온 적 있었다는 감독은 자신의 두 작품을 선정하고 초청한 프로그래머에 대한 고마움이 큰 것 같았다. 그가 이 이야기할 때 옆에서 민망한 듯 말리는 제스처를 했던 프로그래머는 GV의 마지막에, 감독과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제안하며 양해를 구했다. 영화를 보고 GV에 참여한 것뿐인데 예기치 못한 흐뭇함과 행복감에 함께 취하는 시간이었다.

 

 

10/11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The Monk and the Gun]
 
국가/지역Bhutan/United States/France/Taiwan 제작연도2023 러닝타임107min 상영포맷 DCP 컬러Color
Director: Pawo Choyning DORJI 파오 초이닝 도르지
Cast: Tandin WANGCHUK, Deki LHAMO, Pema Zangmo SHERPA, Tandin SONAM, Harry EINHORN, Choeying JATSHO, Tandin PHUBZ, Yuphel Lhendup SELDEN, Kelsang CHOEJAY
 
Program Note
2006년의 부탄. 마침내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도착했다. 그리고 왕정국가 부탄에서 역사상 첫 번째 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은 선거로 인해 서로 반목하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들은 왕을 두고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부터 교육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먼저 모의 선거를 실시하기로 한다. 그런데 마을의 존경을 받는 큰 스님이 총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여전히 정치보다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부탄에서, 첫 번째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오해들과 이에 대한 ‘부탄식 해법’을 말하는 이 영화는 무해하고 아름답다. 데뷔작 <교실 안의 야크>(2019)로 2022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다.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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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