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3. 10. 23. 23:37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폐허가 된 건물 안에 극도로 긴장한 표정의 앳된 군인이 있다. 무리와 떨어진 듯 혼자인 그는 건물 밖으로 나와 정적이 감도는 건물 사이를 이동한다.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널부러진 시체들을 지나고, 마주치자 겁에 질려 살려달라 애원하는 민간인에게 총을 겨눈다. 쓰러져 있는 운전자를 내던지고 올라탄 차를 운전해 질주하다가, 철조망에 가로막히자 차를 버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숨 가쁜 달리기 끝에 시골 마을에 당도하자 금세 변하는 눈빛, 밭의 수박을 통째로 쪼개 먹으며 달려오는 강아지를 반갑게 맞은 군인은 집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집, 상한 음식들, 고요하고 불안한 내부 공기에 조심스레 움직이던 그는 샤워를 하다가 밖에서 나는 소리를 감지한다. 문을 두드리고 집 앞을 서성이는 군인들을 블라인드 틈으로 발견하고, 반대편으로 몰래 나와 또 달리기 시작한다.

 

군복에 총까지 메고 도망친 군인이 도착한 곳은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는 도심의 한 레스토랑 주방, 부주방장으로 일하는 시리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18살 소년으로 돌아온다. 바다에 몸을 담그고 긴장을 풀던 슐라미는 해수욕을 즐기며 군인의 충정을 치켜세우는 부부와 인사하고, 그들이 물에 들어간 사이 남자의 옷을 훔쳐 입고 달아난다. 

 

건물 옆 후미진 곳에 총을 숨기고 일상복 차림의 손님을 가장해 시리의 레스토랑에 들어간 슐라미는 음식을 시켜 허기를 채우고, 사랑을 담아 저녁 데이트를 청하는 쪽지를 시리에게 전달하며 한껏 들떴다. 하지만 졸지에 옷과 휴대폰을 도둑맞은 부부가 유리창 밖에서 그를 발견하고, 다시 도망친 슐라미는 할머니 집으로 피신한다. 

 

슐라미의 아버지는 일하던 중 근처의 폭격에 충격을 받아 입원했고 어머니는 간병을 위해 병원에 함께 있다. 보병대로 입대해 가자지구 작전에 투입된 아들의 출현, 반나절 사이 급박하게 전장과 일상을 오간 슐라미의 사연을 관객은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다. 슐라미는 곧 캐나다로 떠나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 시리를 잡기 위해 탈영했고, 부대에서는 납치로 추정해 집으로 찾아가고 어머니에게도 연락한 것이다.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부대 지휘관의 연락과 눈앞에 나타난 아들의 탈영 고백, 어머니는 자수를 강권하지만 슐라미에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시리를 만나 자신과 함께하기를 설득하는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퇴근한 시리와 그의 집에 간 슐라미, 뭐라도 해서 이스라엘에서 함께 살아가자는 속마음을 꺼내지만 고대했던 하룻밤과 훗날의 결혼 약속은 가자지구에서의 병사 납치 뉴스로 물거품이 된다.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 자수를 결심한 슐라미는 길에서 해변의 부부를 마주치고 도둑놈으로 몰려 시민들에게 봉변을 당한다. 아버지의 예비군복을 입고 자수하기 위해 들른 집에서 깜빡 잠이 든 슐라미는, 바람대로 무사히 자수하고 부모의 얼굴에 환히 웃음이 피어오르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은 신원이 밝혀진 납치병에 관한 취재를 위해 집 앞에 찾아와 진을 치고 있는 방송국 제작진들을 피해 다시 도망가는 것, 슐라미는 탈영 직후 부대 지휘관들이 찾아왔을 때처럼 다시 도주한다. 

 

긴장과 불안, 멘붕과 피로감에 범벅된 슐라미는 다시 차를 훔쳐 타고 질주하지만 곧 도로의 구조물을 들이받고 만다. 상처와 피로 얼룩진 채 차에서 빠져나온 기진맥진 슐라미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차들이 오가는 밤의 도로, 반대편에서 퀵보드를 타고 오던 청년이 잠시 그를 살피다 지나간다. 상점에 들어가 음료를 집어든 슐라미는 가게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납치병 신원 공개 뉴스를 보고 종업원에게 자신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아무 관심이 없다. 

 

자포자기 상태로 달려오던 트럭을 정면으로 막아서는 슐라미, 그를 피해 급히 핸들을 꺾느라 사고를 내고 멈춰선 트럭 기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폭행을 가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슐라미,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뉴스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납치병' 슐라미는 그렇게 다른 현실로 돌아간다. 그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출혈뿐이다. 

 

 

영화 초반 전모를 감춘 채 전개되는 극도의 긴장 상황과 이어지는 다양한 일상의 풍경들이 의아하게 다가왔다. 연속된 시간선상, 분절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의 극명한 온도차가 절로 몰입감을 높였다. 평범한 일상복과 무장한 군복 차림의 뒤섞임에 위화감이 없고,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공습의 위협이 상존하며, 먼 하늘에 반짝이는 조명탄과 지금 여기 파티의 불빛이 공존하는. 불시의 포격과 함께 전시와 평시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저런 것일까 싶어졌다. 

 

줄곧 슐라미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입은 옷과 자리하는 장소와 처하는 상황에 따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여준다. 벌벌 떠는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누는, 가까스로 집에 닿아 달려오는 반려견 보비를 마주하는, 레스토랑에 찾아가 시리를 바라보는, 인지능력이 감퇴한 할머니 집에 찾아가 어린 손자로서 보살핌을 받는, 상황이 꼬이고 궁지에 몰리며 좌충우돌하는…. 하루 동안 겪을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의 극단을 시험당하는 듯한 슐라미를 통해, 영화는 이스라엘의 현실과 더불어 ‘자연스러운 일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적들의 공격에 대한 대응은 군인들만의 몫인 듯 나머지 시민들은 술 파티와 해수욕을 즐기면서 그들을 국가를 지키는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모두가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징병제 국가이니 누구나 경험하는 통과의례이자 숙명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전장을 벗어난 18살 소년 슐라미의 불가능한 바람과 그를 둘러싼 거대한 소동 그리고 상처 입은 그가 거리에서 마주하는 이들의 무감함과 무신경함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호쾌한 음악, 블랙코미디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무게감을 지우기에 역부족이었다.

 

부러 GV가 있는 작품을 찾아 예매한 올해 부국제 첫 영화였는데 시작 전 취소됐다는 걸 알게 됐고, 프로그래머가 나와서 대니 로젠버그 감독의 상황과 편지를 전했다. 전날 가족들이 있는 텔아비브로 돌아갔다는 감독은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 부산에 도착한 직후 하마스의 공습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편지는 이스라엘의 상황과 젊은 세대의 꿈과 미래에 드리운 그늘 그리고 현실은 영화보다 무겁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며 스크린에 재현되는 부조리와 블랙유머는 오히려 낙관적인 상상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이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면전 뉴스를 볼 때마다 영화와 감독이 떠오른다.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감독과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란다. 
 

10/9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The Vanishing Soldier]

Director: Dani ROSENBERG 대니 로젠버그
Cast: Ido TAKO, Mika REISS
국가/지역Israel 제작연도2023 러닝타임98min 상영포맷 DCP 컬러Color

Program Note
가자 지구의 작전 중 뜻하지 않게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다. 텔아비브에 사는 연인과 부모를 찾아가는 순진한 얼굴의 18살 청년은 혼란스럽고 뜨거운 하루를 보낸다. 이스라엘의 현실을 잘 모른다면 마찬가지의 어지러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아랍인들의 시체가 곳곳에 너부러져 있는 가자의 현실과 반대로, 텔아비브의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의 테러를 규탄한다. 총을 멘 병사가 거리를 활보하는데도, 뉴스에선 그가 적에 의해 납치됐다는 오보가 종일 흘러나온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서, 영화는 ‘눈을 감고 생각했을 때, 과연 이스라엘이 머물고 싶은 곳인가?’라고 질문한다. 인물과 함께 질주하는 음악이 압권이다. 숨 가쁜 드럼의 비트에 맞춰 임프로비제이션 하듯 전개되는 연주는 인물의 심장을 박동기처럼 두드린다. (이용철)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68598&c_idx=390&sp_idx=0&QuerySt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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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10. 15. 02:05



갈수록 추천된 몇 권 중 차악을 선택하게 되는 모임의 10월 책이었다. 함께 추천된 다른 책이 신간이어서 도서관에서 빌리기 어려울 것 같아 한 표를 던졌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별로 읽은 게 없으면서도 심리학 관련된 책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제목을 떠올리면 묻어두고 살았던 모멸의 기억이 환기되는 것 같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모임을 하는 한 책을 다 읽는 건 기본이라는 책임감으로 펼쳐든 책장, 헌사 첫 부분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과감히 드러낼 용기를 지니며”에서부터 거리감이 느껴졌고(왜 드러내야 하지?) 머리말 “오늘도 모멸감에 시달리는 당신에게”를 읽으며 흥미가 떨어지고 저항감이 들었다. 모멸감을 느낀 적은 있지만 ‘오늘도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데, 이 책을 읽으려면 그런 상태여야만 할 것 같은 불쾌한 기분도 밀려왔다.

 

본문을 시작하며 소개하는 2장의 여섯 가지 사례는 비교적 잘 읽히고 서두 부분보다는 나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심리적 고찰의 중심이 되는 ‘사적 생활 환경 속 인간들 사이에서 맺어진 관계’가 전혀 없는 내게는 별로 와닿지 않기도 했다. 60쪽 전후, 자신을 피해자로 위치짓는 모멸의 당사자가 지원군을 찾고 편을 만들고 하는 식의 행위는 너무 극단적이고 이 정도면 “모멸감이 만드는 감정의 폭풍”이 아니라 치료받아야 되는 병적 상황 아닌가 싶고, 일반적으로 모멸감을 느꼈다고 이렇게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어 이상하게 여겨졌다. 91쪽 “피해자 역할을 두고 벌이는 이 경쟁과 같은 비참한 운명을 ‘훈장’으로 여기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는 부분에 이르자 책을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모멸감을 드러내고 공동체 내에서 반응 행동이나 타인에 대한 비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당연히 그렇다고 가정하는가? 저자가 자신의 일과 삶의 배경을 너무나 보편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내가 살아온 배경과 환경이 표현에 너무 인색하거나 혹은 감정을 감추는 데에 익숙했던 것인가? 내게 배우자나 연인 같은 물리적으로 친밀한 관계의 상대가 없기 때문인 것인가? 이 책을 읽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진한 저항감과 얕은 반론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모멸감은 불쾌감, 수치감과 어떻게 다른가? 모멸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무겁고 큰, 돌이킬 수 없는 낙인 같은 느낌인 데다 곰곰 생각해봐도 정확히 어떤 감정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어서 어학사전을 찾아봤다. * 모멸감侮蔑感: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 업신여기다: 교만한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다, * 깔보다: 만만하고 다루기 쉽게 여기어 얕잡아 보다. * 불쾌감不快感: 마음이 거슬리고 언짢은 느낌, * 수치감羞恥感: 자신의 잘못이나 약점 따위로 인하여 부끄러운 느낌. 불쾌감이나 수치감과 사전적 의미가 다르고,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된 감정 역시 다르다는 건 알겠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모멸감'이라는 단어의 분명한 정체는 모르겠다에 가깝다. 신기한 것은 侮(업신여길 모)와 蔑(업신여길 멸)이라는 두 개의 자동사가 합쳐져 피동의 의미가 되는 단어라는 점.

 

아무려나 고역의 전반부를 지나니 중반부터는 그래도 전보다 읽을만 해졌고, 관계의 당사자들을 가해자, 피해자, 구원자 등으로 나누지 않고 모멸감에 대해 다루는 점은 신선했다. 고통이나 모멸감을 신체화하는 언어 표현이 부정적 감정을 증폭하거나 현실을 왜곡하는 효과에 대한 지적 그리고 욕구 대신 소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타인 혹은 자신에 대한 바람이 즉각 충족되어야만 한다는 전제 혹은 집착을 완화하는 효과 등도 기억할 만한 부분이었다. 저자의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모멸감은 대부분 상호작용 과정에서의 '해석'이 문제시된다는 것, 언행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대가 모멸로 받아들이고 감정에 빠져들수록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문화적 틀에 크게 기인한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마지막까지 ‘우리 문화’를 강조하는 부분이 종종 등장하는데, 저자의 주장대로 독일에서 유독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강력하고 뿌리 깊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책에서는 사적 관계에 국한했지만 현대 사회가 아니라 ‘우리 문화’를 꼽은 데에는 나치즘의 영향도 있는 것일까?

 

후반부에서는 모멸감을 줄일 수 있는 행동 양식 등에 대해 제안하는데 15장에서 모멸 현상이 일어났을 때 당사자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솔직히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고 대단히 지적인 사람들이거나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과연 전문가의 개입 없이 가능할까 싶어졌다. 16장에서 설명하는 모멸을 유발하지 않고 민감성을 줄이는 방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 거칠게 정리하자면 세뇌와 최면, 명상과 수련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역시 사람/마음의 일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내게 달라져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되새겨볼 만한 이야기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맺음말에서 심리치료사의 역할에 인간의 고통에 기여하는 문화적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포함된다는 말은 인상적이었고, 다 읽은 후 돌이켜보니 관계와 심리를 다루면서도 문제적 상황에 봉착한 개인에만 초점을 두지 않은 점은 괜찮았던 것 같다. 주리를 틀며 읽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본문의 구성 방식도 한 몫했다. 주요 서술, 여담, 인용, 각주, 미주, 괄호 속 안내(때로는 한참 뒤의 내용을 참고하라는) 등 본문이 너무 여러 차원으로 산만하게 정리되어 있어 읽을 때 집중이 안 되고 정신이 없었다. 여담 부분의 글자를 초록색으로 표기한 것도 가독성 떨어졌고, ㅇ로 표시한 각주는 본문의 ㅇ표시를 너무 흐리게 처리해 가끔은 찾아 읽느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써야 했다. 책이 타겟으로 삼는 독자가 모멸감 등 관계의 고통으로 스트레스 상태라면,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원래 제목이 뭐였을지, ‘모멸감’이라는 단어가 독일어에서도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일지 궁금해지긴 했다. 관계에서 주고받는 감정의 해석으로 자신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문제를 다루는 저자가 강조하는 것 중 다른 하나는,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이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단어에 꽂힌 의문이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언젠가부터 불쾌감이나 수치감 같은 단어를 대체(?)하는 느낌의 ‘모멸감’이라는 키워드가 회자되는 이유가, 여러 겹의 스트레스로 일상이 힘든 이들을 향한 심리학이나 자기계발서 출판계의 마케팅 결과는 아닐까 하는 불손한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려나, 다 읽고 나니 읽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통스러움은 어느 정도 상쇄되고 새겨볼 만한 이야기들이 남기는 했다. 어떤 책이든 끝까지 읽고 나면, 잠시나마 마음과 시간을 내어 관계 맺은 결과로 내게 남겨지는 부분이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지간히 회피 성향인 내게는 부작용도 남았는데 나의 모멸감과 관련된 지난 사건과 인물의 기억이 환기되었다는 점. 지난 일이라는 생각을 따로 할 일이 없을 만큼 뇌리에서 지우고 살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모임을 하며 별로 달갑지 않은 기억이 소환되었다. 책에서 이야기한 '반추'의 부정적 의미를 책 덕분에 실감하고 있는 셈. 요즘 책 모임 참 애매하다.



프랑크 M. 슈템러 지음•장윤경 옮김
2022.7.1초판1쇄인쇄 7.8발행, 유영(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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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3. 10. 13. 23:23



사상 처음 예매권 구매에 실패해 좀은 시무룩하게 올해 나의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떠나기 전날 시간표를 점검하다가 [사라진 소년병]의 GV 이후 [청춘(봄)]을 보러가는 시간이 애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예매할 때는 들뜬 마음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영화의전당 8층 시네마테크 퇴장과 cgv까지의 이동 그리고 215분의 러닝타임을 생각하니 첫날부터 뭔가 꼬여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하여 왕빙 감독 영화 한 번 제대로 보겠다고 먹었던 큰맘을 접고 작은 마음으로 9일 저녁 시간표를 살펴보다가 GV가 있는 몽골 영화 [바람의 도시]를 예매했다. 취소수수료 1,000원이 아까웠지만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으쓱했는데, 취소하고 보니 9월에 예매한 거여서 맞춰놨던 카드 이용실적에 구멍이 났다. 무척 속이 쓰렸지만 온전히 내 탓이니, 액땜 삼기로. 

 

4박 5일은 길다면 긴 시간이므로 오전에 나름 열심히 집 청소를 하고 재활용 쓰레기들을 챙겨 나왔는데 주머니에 넣어둔 교통카드가 없어져서 식겁, 다시 집에 올라갔지만 아무데도 없고 비닐 재활용 쓰레기에 쓸려들어갔나 싶어 팔을 걷고 다시 내려왔는데 쓰레기장 앞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5분 내에 마무리된 해프닝이었고 카드를 잃어버린 게 아니니 됐다고 자위했는데 공휴일이라선지 터미널행 버스가 죽어라 안 오고, 택시의 유혹을 어렵사리 떨친 끝에 불안한 환승으로 겨우 시간 맞춰 통영터미널에 도착했다. 4박 5일 동안 얼마나 행복하려고 그러나? 두 번째 액땜.

 

사상터미널에 내려 3시부터 체크인 가능한 숙소로 이동, 예전부터 묵어보고 싶었던 부산도시공사 아르피나. 살펴본 후기대로 연식은 있지만 깔끔하게 관리되어 어제부터 이어진 경솔과 불길의 조짐을 떨칠 수 있었다만, 첫날 밤 가글을 하느라 욕실에서 고개를 젖혔을 때 돔형 천장 한가운데에 바디헤어 한 올이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개찝찝함을 느끼며 프런트에 연락을 할까 사진을 찍어둘까 갈등하다가 자정이 넘었고 일단 없애는 게 최선이란 생각에 휴지를 뜯어 변기에 올라가서 직접 제거, 메이드님이 청소하며 욕실 천장까지 확인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만족스러웠던 마음은 사라졌다. 다음 날을 위해 1시 조금 넘어 불을 끄고 누웠지만 간헐적으로 냉장고 웅웅거리는 소리, 위층 사람의 쾅쾅거리는 소리에 한참이나 뒤척였다. 새벽에는 너무 추워서 잠에서 깨어 온도 제어기 버튼을 눌러봤지만 객실 온도는 중앙관제 시스템인 듯 효과가 전혀 없었고, 7시 30분에는 청하지도 않은 모닝콜이 울려 DND 버튼을 누르고 남은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에도 모닝콜은 울렸고 세 번째 액땜은 불필요하므로, 그렇다. 좋은 숙소는 없다는 걸 깨닫는 걸로 타협. 큰맘을 먹을지라도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는 말이다. 

 

아르피나에서 이틀을 묵고 그다음엔 처음 가보는 동네로 숙소를 옮겼다. 센텀시티/영화의 전당과 그나마 도보 이동 가능한 거리의 숙소는 숙박앱에서 광안리나 재송역으로 검색해야 나온다. 2년 전 25만 원쯤의 거금으로 4박을 했던 센텀프리미어호텔 등의 호텔들도 있지만 놀랍게 뛴 물가로 애초에 포기하고, 재송역 인근의 싼 모텔 2박을 미리 예약했다. 역시나, 싸고 좋은 숙소는 당연히 없다. 다행인 건 영화 관람 사이에 돌아가 쉴 수 있는 텀이 없는 시간표였고 밤 11시 넘어 들어가 푹 자고 나오는 게 주목적인 숙소였다는 것. 앞으로 다시 그쪽 숙소를 잡을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산책 겸 극장까지 걸어가다가 영화의 전당 너머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며 처음 보는 영화 관련 조형물들을 발견했다. 2010년대 이후 다시 가게 된 영화제는 언제나 영화보기에만 빠졌다가 나오는 시간이어서 주변을 둘러보는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괜히 반가운 느낌. 영화 사이 시간을 보낼 때도 불가피하게 신세계 센텀시티 둘레길 걷기가 많았는데, 다음부터는 다른 쪽으로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도 올해도 개막식을 유튜브 중계로 집에서 보았는데, 무척 상반된 느낌이었다. [다이빙벨] 사태 등의 외압과 나는 알 수 없는 내홍 등을 거치며 어수선해 보였던 영화제가 팬데믹 이후 정상 운영을 맞으며 재도약의 활기를 발산하는 느낌이었던 작년 개막식 분위기를 기억한다. 강수연, 방준석, 장 뤽 고다르 등 세상을 뜬 영화인들을 추모하는 영상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깊은 소회가 담긴 듯한 발언이 인상적이었고, 내 삶의 한편에 큰 자리를 차지한 영화와 영화제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간혹 인스타그램에서 지원 예산 삭감에 대한 성명서니 하는 걸 보긴 했고 예매를 하며 상영작과 상영 일정이 줄어든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영화제가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몰랐는데, 영화제 호스트를 소개하는 직함들 뒤에는 '대행'이 붙고 이용관은 부재했다. 궁금해서 찾아본 기사에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영화제 내부의 편가르기며 전횡에 대한 비판, 외부의 색깔론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렇구나, 그런가? 모르는 일에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영화제에서 열한 편의 영화를 보았고 폐막식인 금요일에는 cgv서면에서 나만의 폐막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영화가 시작될 때마다 상영되는 작년과 같은 트레일러가 영화제의 현재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대체로 스폰 운영 스모킹 컨테이너가 놓였던 자리는 부산시가 사활을 걸고 있는 2030 엑스포 조형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북두칠성]이라는 영화를 보러 들어가고 나오는 길에 정성일 영화평론가를 목격해 괜히 반가웠고 서울에서 영화를 보고 그의 열정적인 gv를 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잠시 돌아봤지만 손 가는 게 하나도 없었던 굿즈샵 컨테이너에는 "Theater is not dead"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바람일까 발악일까, 28회를 맞은 영화제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재작년의 [6번 칸]이나 작년의 [죽은 친구를 구하는 법]처럼 사로잡히듯 좋은 영화는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부고를 마음에 담고 다시 본 [서칭 포 슈가맨]의 인상이 앞선 4일간 본 영화의 여운과 잔상을 압도하는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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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