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3. 11. 13. 23:23



습관처럼 사서 책장에 모셔뒀던 조지 오웰 관련 책 중 하나, [오웰의 장미] 책 모임을 앞두고 읽었다. 프랑스의 르포르타주 작가 아드리앙 졸므가 2018년 여름 <르 피가로>지에 실었던 르포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라고 한다. 작은 판형에 170쪽밖에 안 되는 책인데, 이전에 읽었던 해설서들에서는 알 수 없었던 알찬 내용과 현재적 영향에 관한 서술이 빼곡해서 큰 기대 없이 펼쳐들었다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마침 여름에 오웰의 소설 네 권을 읽었고, 전날까지 [나는 왜 쓰는가]를 읽은 터라 그의 삶이 어느 정도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상태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책은 서문 그리고 조지 오웰이 삶의 한 시기를 보낸 주요 장소에 방문하고 기록한 6편의 글, 저자의 해설격인 마지막 한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는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 그리고 조지 오웰의 삶에 대한 짤막한 개괄과 저자의 평가가 담겨 있다. 2003년 이라크, 2007년 미얀마, 2017년 카탈루냐, 2018년 중국을 언급하며 조지 오웰 작품의 현재성을 실감하던 저자는, 2018년 <르 피가로>지의 연재 소재 요청에 그를 떠올리고 흔적이 남겨진 장소를 향해 길을 떠난다. “우파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지만, 국제주의 좌파에게도 오직 나라와 문화 속에서만, 어떤 사회적 틀 안에서만 자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이론이나 보편적인 생각에 이끌리지 않고 견해를 세우기 전에 주어진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자 하는 그의 신체적 욕구가 그를 남다른 사상가로 만들었”다는 오웰의 면모에 대한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지 오웰, 이 시대의 영웅”이라는 찬양조의 제목에 살짝 일었던 긴장감은 간명하고 건조한 문체 덕에 사라졌다. 

 

“1. 이튼 칼리지 학생으로”의 배경인 이튼스쿨은 1440년 헨리 6세가 가난한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했고 지금까지도 국왕이 교장을 임명한다고 한다. 대체로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인 1,000명 이상의 교외 기숙생 ‘오피던Oppidan’과 별도로 ‘칼리저Colleger’라 불리는 70명의 학생에게 영국 왕실 장학금이 지급되는데, 1917년부터 1921년까지 재학했던 ‘왕의 장학생 에릭 블레어, KS(King's Scholar)’의 이름도 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다. 이튼스쿨 졸업생을 이르는 ‘올드 이토니언(Old Etonian)’이라는 단어가 있을 만큼 독보적 위상을 지닌 명문이지만, 엘리트 계급의 속물근성과 독특한 유동성을 겸비하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활동도 인정되는 분위기의 학교라고 한다. 등록금 감면을 받고 입학한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어린 날 겪었던 자존감 상실과 억압적인 입시 준비, 약육강식과 차별의 경험을 긴 에세이로 남겼던 오웰은, 이튼 진학 후 학업보다 글쓰기와 토론 등 여러 특활반 활동에 매진했고 그 시절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남기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할 때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던 에릭은 여느 이튼 출신들과 달리 대학 진학 대신 식민지 제국 경찰로서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 엘리트 양성소이자 반항아의 요람이기도 했던 이튼스쿨의 교내에는 2018년,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잘 생각하지 못하게 되고, 잘 생각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생각하게 된다.”는 오웰의 문구가 새겨진 흉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2. 제국의 더러운 일”에서는 1922년 11월, 열아홉의 에릭이 당도한 버마 곳곳을 탐색한다. 1903년 영국령 인도제국 벵갈의 모티하리에서 태어난 에릭의 모계는 과거 티크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던 프랑스인들로, 당시 버마에는 외가 친척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제국에 늦게 편입되고 1919년의 행정개혁에서도 배제된 버마는 영국 공무원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지역이었고, 경찰청의 신입 하급 장교 신분이었던 에릭은 만달레이 경찰 훈련 학교에서 9개월간 부경감 후보생 교육을 받은 후 여러 임지를 거친다. 1925년 9월에 전근한 북부의 인세인은 “교수형”, 1926년 4월에 옮긴 모울메인(현재의 몰먀잉)은 “코끼리를 쏘다”의 배경이 되었다. 모울메인에는 외할머니와 외숙모가 살고 있었고 그 도시에서 꽤 알려진 사람들이었지만 오웰은 그에 관해 말을 아꼈다고 한다. 1926년 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령 받은 버마 북부 이라와디강 좌안의 카타는 장편소설 [버마 시절]의 배경이자 에릭의 마지막 근무지였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초상화가 걸린 한 카페에서 ‘카타의 오웰 전문가’ 뇨 코 나잉을 만난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금서였던 [버마 시절]을 한참 후에 읽었고, 아마추어 역사가로 변신해 1911년 식민 시대의 지도와 소설 속 장소들을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 소설에 등장한 12채의 건물을 찾아낸 당사자다. 저자는 그의 안내로, 현재 경찰서장의 관사로 쓰이는 오웰이 살던 집을 방문하고 남아 있는 주요 장소들을 확인한다. 출간 당시 ‘카타’는 소송을 피하기 위한 출판사의 요구로 ‘카우크타다’(‘돌다리’ 혹은 ‘선창’이라는 뜻의 미얀마어라고 한다.)로 바뀌었는데, 카타에 새로 문을 연 호텔 중 한 곳의 식당에 ‘카우크타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작가의 한 시절과 한 작품이 오롯이 담긴 장소에서 살아가는 후세의 열정적인 발견, 명성과 기념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지역의 움직임, 거기에 공영방송 미얀마 tv가 조지 오웰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 이후 팬데믹과 군부 쿠데타를 거치며 카타는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지 궁금하다.

저자는 카타에 세워진 아웅산 장군의 동상을 발견하고 독립 영웅이었던 그의 이중성과 버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오랜 가택연금 생활을 했던 그의 딸 아웅산 수치 여사 그리고 지배층 교체에 가까웠던 1948년의 독립, 1962년 군사쿠데타로 시작된 군사독재, 1988년 8월 8일 ‘8888’ 항쟁과 실패 등 버마의 현대사도 짤막하게 소개한다. 한때지만 버마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동향에 관심을 갖고 관련 책도 읽고 했었음에도 전혀 몰랐던 군인과 정치권이 의존한 ‘점성가’의 존재와 저항이 시작된 날에 대한 ‘점성학적 길일’이라는 표현은 새롭게 다가왔다. 개연성 없는 단어 선택은 아닐 것 같은데,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 유독 도드라졌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용된 걸까. 저자는 랑군에서 오웰의 책을 미얀마어로 번역한 투레인 윈을 만난 이야기로 글을 마친다. 청소년기에 [버마 시절]을 발견하고 매료되었던 그는 오웰의 수필집 번역을 막 마쳤다. 그는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꼈지만 피식민지인들을 미화하지 않으며 당시 버마 사회의 모습을 낱낱이 기록한 오웰의 정직성과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3. 파리의 포도鋪道 위에서”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던 1928년 파리에서 에릭이 거했던 장소들을 찾는다. 책에 명기된 ‘코크도르 로’는 가상의 이름으로 현재는 파리 5구의 포드페르 로. 오늘날의 빈민들은 파리 외곽순환도로 건너편이나 넓은 교외 지역에 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고 버마에서 돌아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에릭은 가난한 이들과 매춘부, 부랑자 등이 엉켜 사는 파리 중심지 콩트르스카르프 지구에 위치한 트루아 무아노 호텔에 묵었다고 한다. 오웰은 이제는 없어진 싸구려 호텔에 묵으면서 영어 강습으로 푼돈을 벌고 프랑스어로 쓴 기고문을 발표하며, 에릭 블레어로서 작가의 삶을 시작한다. 벨 에포크의 낭만은 옛일이 된 파리에서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며 사회를 탐구하던 에릭은 어느 날 가진 돈을 도둑맞아 거리로 내몰리고, 호텔 주방과 고급 식당 등에서 접시닦이로 일하며 관찰한 화려함의 이면을 기록으로 남겼다. 

1929년 말 지적장애인을 보살피는 일을 제안 받아 영국으로 돌아가지만 그 사이 일자리는 사라지고, 런던과 근교를 아우르는 떠돌이 생활은 1930년대 초까지 계속된다. [신부의 딸]에서 도러시가 경험하는 홉 따기와 도심 노숙 생활의 디테일한 세부들을 오웰은 짧지 않은 기간 몸소 겪었던 것이다. 저자는 작가로서의 잠입 취재나 참여 관찰을 넘어서는 오웰의 파리와 런던 생활에 대해, “자신의 편견들을 초극하려는, 사회계급의 장벽을 부수고자 하는 거의 자학적인 시도 같은 측면도 있었”다고 쓴다. 그 결과 오웰은 극빈자들에 대해 “당신이나 나와 같은 인간이며, 그들이 당신이나 나와 똑같지 않다면 그것은 그들의 생활방식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버마 식민지 경찰 생활에 대한 죄책감과 깨달음에 더해 오웰이 이 시기에 대해 설명한, 저자의 인용 글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 자신이 제국주의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억압자들에 맞서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억압에 대한 증오심을 유난히 길게 끌고 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실패만이 미덕처럼 보였다.” 파리와 런던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은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끝에 1933년 1월에 빅토르 골란츠의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이 세상에 등장했고, 본명을 가린 이유는 가족의 명예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4. 노동자들 틈의 지식인”에서 저자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배경이 된 맨체스터의 퇴락한 탄광 도시로 향한다. 20세기 중반까지 채탄과 철강공업으로 영국 중공업의 상징이었던 지역의 모습을 저자는 ‘사라진 문명의 풍경 같다’고 표현한다. 1936년 2월, 오웰은 ‘좌파 도서 클럽’ 총서 중 노동자 계층의 생활에 관한 책을 기획해 요청한 빅토르 골란츠의 제안으로 이곳에 온다. 거액의 선인세가 지급됐고 취재는 두 달간 이루어졌다. 책의 제목은 지역의 선착장을 해수욕장에 비유한 당시의 대중적인 농담에서 따온 것으로, 가난한 노동자 도시의 현실을 풍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오웰은 지역의 곳곳을 탐문하고 갱도에도 직접 내려가며 광부들의 노동과 삶을 관찰하고 기록한 1부에 더해, 당시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을 담은 2부로 책을 완성한다. 오웰의 작업이 못마땅했던 빅토르 골란츠는 자신의 견해를 담은 서문을 덧붙이고 개정판에서 2부를 삭제한다.

여전히 ‘근본적으로 노동도시’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 그러나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위건을 찾은 저자는 거리와 시립도서관 등 오웰의 흔적을 좇고 주민들을 만난다. 빈곤한 노동계급의 현실과 좌파의 위선을 고발했던 오웰의 책에 불만을 느낀 건 기획자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오웰이 위건의 긍정적인 면을 외면하고 낙후하고 취약한 부분만을 찾아 선별적으로 부각시켰다고 생각했고, 그런 기류는 현재까지도 존재한다. “오웰은 심히 부당했고, 이 도시는 지금도 그 이미지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의 이름은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오웰은 마치 우리에 갇힌 원숭이들을 보듯 노동자들을 살펴보러 온 속물이었습니다.” 저자는 당시의 오웰과 그의 책이 선사한 낙인감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성장한 1954년생 지역 역사가 토마스 월시의 말을 그대로 전한다.

오웰이 체류하던 당시 모습 그대로라는 시립도서관을 방문한 저자는 문서보관소 직원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의 퇴락과 1970년대 말 대대적인 폐광 등으로 지역 경제가 오랜 하향곡선을 그렸음에도 변치 않은, 몇 세대를 걸쳐 광부로 일했던 주민들의 자부심과 외부에 대한 경계심에 대해 듣는다. 영국 북부 노동자 도시의 독특한 지역색이기도 한 이 특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위상과 평가의 변화도 크다. 시 의회 행정수반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그의 시대의 책’이며 그 시대는 지나갔다고, 결과적으로 “오웰은 위건을 지도에 올려놓았고, 그건 위건 시에 득이 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2017년 위건 시민인 뮤지션 알렉스 그레고리가 오웰의 책 내용을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오웰의 양자인 리처드 블레어가 ‘오웰 협회’와 함께 위건을 방문하고, 이를 계기로 시 차원에서 만들어진 [위건 부두를 넘어서]라는 뮤지컬이 2018년 첫 선을 보였다고 한다.

위건 부두에 자리했던 ‘더 오웰’이라는 펍은 수년 전 문을 닫았지만, 오웰의 존재감은 위건 곳곳에 적당히 남아 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작가로서 오웰에게 첫 성공을 안겨준 책이었는데, 저자는 오웰이 위건에서 얻은 중요한 또 하나로 반파시스트적 사회주의 세계관을 지적한다. 정치 이론의 권위가 아닌 직접 경험으로 자신의 견해를 세우고 움직였던 오웰이 영국 파시스트 연합 집회에 참석한 곳이 바로 위건이었고, 몇 달 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참전한다. 

 

“5. 총구 끝의 사상”은 1936년 말부터 6개월가량 오웰이 POUM(통일노동자당)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의 배경지로 향한다.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와 여러 에세이를 통해 인간과 전쟁 그리고 전체주의 등에 대해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바르셀로나에 처음 도착해 느낀 해방감, 부대 생활에서 경험한 동지애, 전장의 혹독함과 권태, 적진의 군사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깨달음 같은 것이 개인적인 소회였다면, 좌파의 분열과 위선 그리고 진영을 가리지 않는 전체주의의 패악은 이후 그가 오랫동안 천착하는 주제가 되었다. 총상을 입었지만 회복하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고 수배를 피해 변장하고 프랑스로 피신하는 것으로 스페인 내전 현장을 떠났다. 

저자는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당시의 국제 정세와 스페인 내부의 여러 상황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관련된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전한다. 바로셀로나행 기차를 타기 위해 들른 파리에서 만난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가 오웰의 참전을 말리다 실패하자 자신의 벨벳 재킷을 주었고, 오웰은 스페인 체류 내내 그 옷을 입고 지냈다. 에릭 블레어라는 식료품상으로 병적을 등록했던 오웰이 군사교육을 받을 때 신병들을 촬영했던 아구스티 센텔레스라는 사진작가는 공화파가 패배한 후 프랑스로 피신해 남부 카르카손에 필름을 숨겨두었는데, 1979년에 되찾은 덕에 오웰의 스페인 내전 시절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오웰이 속한 부대의 대대장 조르주 코프에 대한 소개와 다음 장에서 후세로까지 이어지는 인연,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라곤의 ‘오웰 도로’와 공화파 진지에 대한 묘사, 참호를 발견하고 복원작업을 주도하며 [오웰, 우에스카에서의 커피 한 잔]이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빅토르 파도르와의 인터뷰 등 많은,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을 저자는 전한다.

스페인에 가본 적이 없지만 여행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접했던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이 부분을 읽으며 무척 새롭게 느꼈다. 저자는 현재는 기능과 외관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오웰의 체류 당시에도 있었던 도심의 여러 건물들을 당시의 상황과 함께 설명하며 격세지감 속에서도 역사의 흔적을 소환하려 애쓴다. 결국 “오웰의 국제적 명성을 고려할 때, 세계적 관광명소인 이 도시에서 오웰에게 바치는 경의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쓰지만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지만, 대개는 최소한의 악이다.” 저자도 인용한, 스페인 내전을 회고하며 쓴 오웰의 글 일부다. 굳이 감수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자처했던 작가의 진정성과 위대함이 느껴지지만, 참 어려운 문장이다. 

 

“6. 주라 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저자는 [동물농장] 출간으로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른 오웰이 1946년부터 몇 년간 머물며 [1984]를 집필했던 스코틀랜드 이너헤브리디스 제도 주라 섬의 반힐을 찾는다. 주라는 정기적인 연락선이 없는 외진 섬으로 주변의 아일레이 섬에서 주라 섬의 크레이그하우스 마을로 가는 페리를 탄 후, 마지막 10km의 흙길을 포함해 50km를 더 가야 반힐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아내 아일린이 사망한 후 어린 아들을 키우며 조용히 창작에 매진하고 싶었던 오웰은 <옵저버>지 편집장 데이비드 애스터 덕분에 이곳으로 이주했는데, 당시 런던에서는 가려면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저자가 찾은 반힐은 오웰이 체류할 당시 주인의 후손이 관리 중이었고, 농가와 주변 환경은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외진 섬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해 물자가 부족하고 편의 시설도 없었는데, 오웰은 이곳에서 직접 농사와 사냥을 하면서 생활했다.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하루의 일상을 기록하고, 스모그 가득한 런던과는 달리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셨다. 아들과 조카들과 나간 소풍에서 물살에 휩쓸려 고립되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하고, 결정적으로는 [1984] 집필에 몰두하면서 건강을 해치게 되어 결국 섬을 떠나게 되지만 말이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이지만 ‘오웰 협회’는 매년 이곳을 방문해 오웰의 흔적을 둘러보고 죽을 고비를 맞았던 소용돌이를 체험하기도 한다. 저자도 이들의 순례에 동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총무는 어릴 적 이곳에 살았던 아들 리처드 블레어 그리고 주최자는 스페인 내전 시기 오웰 부대의 대대장이었던 조르주 코프의 아들 쿠엔틴 코프라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는 주라 섬이 오웰의 명성을 이용해 무언가 하지 않는 점을 높이 사며, 1984년에 한 증류수 제조사가 특별 위스키 양조통에 소설의 제목을 붙인 정도가 전부라고 전한다. 오지에 가까운 장소여서 더 그럴 것 같은데, 노령인 리처드 블레어와 쿠엔틴 코프 이후에도 ‘오웰 협회’의 다정하고 열정적인 방문은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튼스쿨과 미얀마, 파리 도심과 위건, 스페인과 주라 섬까지 오웰의 대표적인 장소들을 순례한 저자는 마지막으로 “7. 모든 것이 오웰적이다!”라는 짧은 글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오웰의 현재적 영향과 좌우 진영을 막론한 다양한 재해석과 추종의 경향 등을 일별한다. 그중 2017년 11월에 오웰이 라디오 프로듀서로 근무했던 런던 BBC 건물 앞에 동상이 세워졌는데 직원들의 흡연 장소로 주로 이용되던 곳이라는 점이 재미있었고, 런던 정도면 언젠가 나도 한 번은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져 반가웠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오웰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그가 취한 입장들보다는 언어의 명쾌함과 높은 정직성 덕분입니다. 그는 열린 태도로 사실들에 임했고 주저 없이 견해를 수정하곤 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자질이죠. 그는 자신이 취한 이념적 입장이 자신에게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썼습니다.”라는 쿠엔틴 코프의 말을 옮기며, “어쩌면 우리는 그저 오웰을 읽고 또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책을 끝맺는다.

 

짧은 책 내용을 너무 많이 옮기고 인용해서 민망하지만, 그만큼 흥미롭고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 많았다. 자신의 감상이나 소회 대신 해당 시공간과 관련된 여러 인물을 인터뷰하며 다양한 견해와 사실을 전달하는 서술 방식이 깔끔했고, 버마와 스페인 등에서는 소설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짤막한 역사적 설명도 추가되어 더 좋았다. 다양한 진영에서 수용하고 끌어들이는 오웰의 보편성과 현재성을 잘 느낄 수 있었고,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널리 알려졌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신선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아내가 사망한 뒤 입양한 아이를 버릴 것이라는 주변인들의 예상과 달리 성심껏 돌봤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오웰 사후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책 덕분에 해소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내용도 문체도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고, 저자의 감정이나 입장이 강조되지 않아 잘 읽히는 책이었다. 저자의 개성이 도드라지지 않지만 오히려 그게 장점으로 느껴졌고, “M에게”라는 헌사 그리고 6줄에 불과한 감사의 말에서도 느껴지는 일관성도 매력적이었다. 본문에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건 아쉬웠지만 책이 마음에 들다 보니 그마저 단정한 느낌이었다.  

 


아드리앙 졸므•김병욱 옮김
2020.11.6첫판1쇄, (주)뮤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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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3. 11. 12. 23:45

 

 

1931년부터 1948년 사이에 발표된 조지 오웰의 에세이 29편을 시간 순서대로 엮은 책이다. 각 글이 시작되는 쪽에 집필 시기와 발표 지면, 당시 작가의 사정과 사회적 배경 등이 간략히 정리되어 있고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 및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내용에 각주가 달려 있어 읽기의 이해를 돕는다. 빽빽한 활자들 사이에 간헐적으로 삽입된 사진들은 낮은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나름 작가의 일대기를 아우르며 생생한 이미지를 전한다. 앞표지 책날개에는 ‘오웰의 에세이 전작 가운데 일부를 옮긴이가 선별하여 묶었’지만, ‘편역’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은 내가 갖고 있는 것만도 너덧 권은 되는데, 제목 때문인지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다른 책을 읽다가 관련된 부분을 발견하거나 필요할 때 부분적으로 읽어보곤 했었는데, 이번 달 모임 책이 [오웰의 장미]로 정해진 터라 작정하고 읽었다. 

 

첫 수록작인 “스파이크”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도 담긴 내용이어서 재회의 반가움 같은 것이 일었다. 주린 배로 종일 거리를 걷고 해질녘이면 노숙보다 나을 바 없는 구빈원 숙소에서 밤을 보내는 런던의 가난한 이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입장의 작가가 이채로웠던 기억과 함께, 이번에는 빈곤 못지않은 “무위”의 고통에 대해 기록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버마 시절의 경험을 담은 “교수형”에서 교수대로 호송되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 장면의 묘사는 그 자체를 하나의 유명한 에피소드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이게 오웰의 글에서 나왔던 거였나 싶어 새로웠다. 한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행위의 반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본질에 대해 문득 깨닫고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곧 아무 문제없이 임무를 완수한 이들이, 나 역시 크게 웃으며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는 듯한 상황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코끼리를 쏘다”에서는 절대다수인 식민지인들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국주의자의 본질과 운명이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1인칭 화자로서 기술하면서도 자신의 사고와 행위를 객관화하는 냉철함이 ‘오웰스럽게’ 느껴졌다. 

 

모든 에세이가 자전적인 경험에 바탕한 견해와 주장을 담고 있는데, 절반가량은 당대의 전쟁과 관련되고 특히 직접 참전한 스페인 내전 그리고 스탈린의 소련 및 그를 지지하는 유럽 사회주의 세력의 기만과 위선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조지 오웰은 1903년에 태어나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1차 세계대전과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2차 세계대전이 그의 생애와 겹치고 1936년부터 3년간의 스페인 내전 중 6개월을 직접 경험했다. 생각해 보면 그의 삶에서 평화로웠던 시기는 “정말, 정말 좋았지”의 배경인 세인트 시프리언스 예비학교 입학 이전의 짧은 아동기에 불과했을 것 같다.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에서 밝힌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은 그의 작가적 소명으로 널리 알려진 구절이고, 역자 후기의 발문으로 인용된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는 구절 역시 그의 글쓰기의 단단함을 보여준다. 한편 산문을 쓰는 네 가지 동기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을 언급한 같은 글에서, 스페인 내전으로 자신이 선 자리를 명확히 인식하기 이전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자작시가 인상적이었다. 조지 오웰이 기반하고 지향한 정치적 글쓰기가 당위적이고 자동적인 무엇이 아니라 작가적 양심과 헌신의 소산이라는 점이 새삼 느껴졌기에 말이다. 

 

조지 오웰이 발표한 수많은 에세이 중 일부를 추려 묶는 일에는 역자의 편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대체로 익숙하게 알려진 작가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내용들이었지만, 읽으며 새롭게 인지하게 된 부분들도 적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 8월에 맺어진 독소불가침조약의 함의 그리고 오웰의 사상적 독자성과 면밀성을 보여주는 애국주의와 평화주의 등에 대한 견해가 특히 그랬다. 러시아 혁명과 소련 체제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를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전락시켰는지를, 그럼에도 계급적 대의와 운동의 명분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눈감아지고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는지를 전장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하고 이후에도 변함없는 현실 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발언하는 그의 모습은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좌든 우든 나의 조국”이나 “영국, 당신의 영국”, “민족주의 비망록” 등에서 내놓는 매우 세심하고 현실적인 분석은 감탄스러웠고, “물론 유치하긴 하지만, 나는 너무 ‘계몽’되어서 가장 일상적인 정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 지식인처럼 되느니 그런 식의 훈육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정작 혁명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움찔하며 물러서는 이들은 국기를 보고 ‘한 번도’ 가슴이 두근거려본 적이 없는 바로 그 사람들인 것이다.”라는 부분에서는 좀 울컥했다. 

 

이전에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구체적인 사회상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어서 놓치는 부분들에 생각이 미쳤었다. 배경지식의 부족은 맞는데, 어차피 내가 살지 않은 시공간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기 어렵지만 어떤 글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면밀하고 정치한 작가의 글을 잘 읽어내기 위한 독자의 성의와 상상력이 관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 쉴 곳을 찾아서]의 곳곳에 언급되는 공습과 전쟁 연습을 연상케 하는 묘사들을 약간 이례적이라고 느끼면서도 무심히 넘어 갔던 무신경함이 떠올라 살짝 민망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조지 오웰의 많은 글들이 양차 대전 사이 빈곤에 처한 이들 그리고 전운이 감도는 사회 분위기를 공통분모로 삼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신 작가가 던져놓은 유머에 낄낄대며 인물과 서사를 따라가기 바빴던 것이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일단 반성한다. 그리고 좀 뜬금없지만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에서 무척 와닿은 한 구절을, 정반대로 살고 있지만 나를 위해 옮겨둔다. “남을 위해서 살 것이면 ‘남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우회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내가 처음 읽은 조지 오웰의 책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유명해서 안 읽었지만 읽은 것 같았던 [동물농장]과 [1984]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카탈로니아 찬가], [버마 시절]을 읽고 비로소 조지 오웰에 매료된 후에야 뒤늦게 읽었던 것 같다. 작년에 현암사에서 나온 소설 전집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그의 작품들을 읽고 나자, 몇 년 전 그의 책들을 몰아 읽으며 빠져들었던 기쁨이 떠올랐고 기대하던 [오웰의 장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웰의 장미]를 읽기 전 이따금 펼쳐보며 묵혀뒀던 이 책을 먼저 읽은 건 잘한 일이다.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의 세부 내용은 당연히 희미해졌지만, 연대기 순으로 실려 있는 에세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어렴풋하게 남겨진 책들의 기억과 인상을 환기하고 때로 아주 잊고 있던 것들을 되살려주었다. 역자 후기의 제목인 “언어의 타락과 오늘의 글쓰기”를 방향타로 작가 조지 오웰의 문적을 최대한 담아내려 애쓴 책이라고 느꼈다. 길지 않은 인생, 참 바지런하게 읽고 쓰고 움직이며 살았던 정직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역시나 일신의 안락과 쾌락만 탐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조지 오웰•이한중 옮김

2010.9.15초판1쇄 2018.11.19초판16쇄 발행, 한겨레출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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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3. 10. 28. 23:45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친 질감의 흑백 화면 속 저택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저택의 주인은 그에게 소녀의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건네며, 중국에서 헤어진 자신의 어린 딸을 찾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감독이자 작가인 미겔 가라이가 30여 년 전 작업했던 영화의 도입부 장면이다. 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프랑코 역할의 배우 홀리오 아레나스는 촬영 중 실종됐고 작품은 중단됐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배우를 둘러싸고 억측이 난무했고, 친구이기도 했던 홀리오가 실종된 충격으로 미겔은 영화계를 떠났다. 

 

과거의 미제 사건을 재조명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홀리오의 흔적을 좇는 미겔의 여정이 시작된다. 방송을 준비하며 검토하는 자료들에는 수십 년 전 홀리오의 모습과 더불어 미겔의 지난 날 그리고 이제는 퇴물이 되어 버린 영화의 유산들이 있다. 미겔은 창고에 보관하며 방치했던 옛 물건들, 필름보관소에 쌓여 있는 무수한 릴 테이프들을 다시 마주하며 감회에 젖는다. 오랜 친구이자 중단된 영화의 촬영감독이었던 막스, 홀리오의 딸 아나, 젊은 시절 잠시 연정을 나눴던 탱고가수 롤로와도 다시 만나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감독 은퇴 후 미겔은 청춘의 혼돈을 담은 첫 소설을 발표하며 작가로 등단했다. 창고에서 발견한 작은 상자 속 사진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문 닫은 지 오래고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리조트 ‘마리나 링컨’ 한구석 컨테이너를 연결한 공간에 거하는 미겔은 그곳에서 ‘마이크’로 불리며 이웃의 젊은 부부, 마을 어부와 이따금 어울린다. 소박한 살림으로 반려견과 함께하며 글을 쓰고 번역하는 미겔의 현재는 평온하지만 은둔과 체념의 분위기를 풍긴다. 

 

방송 출연 이후 미겔에게, 홀리오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시청자가 자신이 일하는 요양원에 홀리오가 있다는 제보를 한 것이다. 3년 전쯤 거리에서 발견됐다는 그는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였고 돌봐준 수녀들이 붙여준 이름 ‘가르델’로 불리며 잡일을 도우며 살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더해졌지만 틀림없는 외모, 수첩에 보관하며 이따금 유심히 주시한다는 실종 직전 촬영한 영화 속 소녀의 흑백 사진이 그가 홀리오임을 증명한다. 요양원에 며칠 머물며 그를 관찰하고 조금씩 접근하는 미겔을 홀리오는 알아보지 못한다. 

 

안타까운 미겔은 홀리오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의 딸 아나와도 만나게 하지만, 과거를 통째로 잃어버린 홀리오는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없지만 미겔은, 예전 모습 그대로 폐관한 마을의 극장을 빌려 촬영감독 막스가 보관 중이던 실종 당시 촬영 중이었던 영화의 미완성 필름을 상영하기로 한다. 과거를 잊은 채 살아가던 친구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되살아난 영화 속, 수십 년 전 프랑크로 분한 홀리오와 연유를 모른 채 보관 중이던 익숙한 흑백 사진이 등장한다. 화면을 지켜보는 홀리오의 목울대가 꿈틀대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표정, 눈을 감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마지막 영화를 고심하다 경의와 찬사 가득한 소개를 믿어보기로 하고 선택한 작품. 감독의 이름도 [벌집의 정령]도 처음 들어본 내게 프로그램 노트가 발산하는 감격과 환희는 낯설었지만, 존재를 전혀 몰랐던 다른 세계의 전설적인 감독이 30여 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니 영화제 프리미엄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관객으로 살고 있지만 영화를 공부하듯 판 적은 없기 때문에 명작을 알아보는 배경 지식과 안목이 없는 터라, 영화를 본 후에도 감독과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와 위상을 크게 실감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말이다.

 

친구와 더불어 영화와도 이별한 주인공이 친구와 더불어 과거의 영화와도 다시 만나는 영화를, 영화 속 영화 그리고 기술의 고도화로 처치 곤란이 되어버린 영화의 유물들과 함께 보여주는 노감독의 영화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좇는 애잔함이 진하게 느껴졌다. 미겔이 창고에서 발견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프레임 공책을 넘겨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극장에서 안방과 휴대폰으로 형식과 장소를 바꾸며 불가역적으로 변화한 영화의 기념비적인 시작을 기억하려는 감독의 의지였을까 싶었다. 인트로와 엔딩 타이틀 장면에 길게 나오는 야누스 조각상의 의미를 이래저래 생각해봤는데, 도저한 의도를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아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를 실감하며, 올해 나의 부국제가 끝났다. 

 

 

10/12 영화의전당 중극장

 

 

 

 

 

[Close Your Eyes]

 

국가/지역Spain/Argentina 제작연도2023 러닝타임169min 상영포맷 DCP 컬러Color

Director: Víctor ERICE 빅토르 에리세

Cast: Manolo SOLO, José CORONADO, Ana TORRENT, Petra MARTÍNEZ, María LEÓN, Mario PARDO, Helena MIQUEL, Antonio DECHENT

 

Program Note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귀하고, 지극히 사적이며 또 가장 감동적인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50년간 단 세 편의 걸작 <벌집의 정령>(1973), <남쪽>(1983), <햇빛 속의 모과나무>(1992)를 만든 빅토르 에리세의 네 번째 장편이다. 미겔 가레이 감독은 33년 전인 1990년에 그의 친구이자 주연인 훌리오 아레나스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촬영을 중단한다. 어느날 그는 편집용 필름을 보다가 훌리오를 찾아 나선다. 이 아름다운 탐색의 서사에서 감독이 찾아 헤매는 것은 사라진 친구의 행방일 뿐 아니라 본인 내면에서 점차 소멸한 열정, 바로 시네마의 정령이다. 에리세는 전통적인 시네마가 사라지는 모습을 소리 없이 지켜본다. 필름, 편집실, 버려진 낡은 극장.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일곱 살에 <벌집의 정령>의 주연을 맡았던 아나 토렌트가 감독의 카메라 앞에 귀환할 때이다. 빅토르 에리세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로 본인의 필모그래피와 영화사에 가장 시적이고 아름다운 작품 하나를 더했다. (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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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