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4.07.22 매일 쓸 다짐
  2. 2024.07.12 부산영화여행
  3. 2024.07.03 119
산책일기2024. 7. 22. 16:18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다짐'에는 이런 뜻이 있다.
1.어떤 일을 반드시 행하겠다는 굳건한 마음가짐
2.이미 한 일이나 앞으로 할 일에 틀림이 없음을 단단히 강조하거나 확인함
대충 알고 있었지만 찾아본 이유는 한 달하고도 열흘 넘게, 생각만 하며 시간만 흘려보낸 스스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일을 그만둔 후 미미하게나마 존재하던 사회적 네트워크도 다 끊겨버리고 없는 사람처럼 혼자 사는 동안 나만의 다짐을 무시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3년을 넘다보니 세상 제일 편하지만 세상 제일 한심한, 그러나 나 말고는 모르는 게으른 현존에 익숙해지다 못해 잠식되었다.

 

져나오는 것도 내 몫이지만 쉽지 않아, 그런 날들의 고리를 끊어보고자 봄에 큰맘 먹고 여행을 다녀왔다. 팬데믹 국면이 진정되면서 막연히 꿈꾸고 있었지만 무기력에 젖어 용기를 내지 못했던 유럽행. 함께 여행할 정도는 되는 지인의 장기 여행 소식에 동하는 마음을 실행으로 옮겼고, 4월 18일부터 6월 13일까지 한국을 떠나 있었다. 급하게 결정한 데다 이미 여행 중인 동행의 사정에 맞춰 띄엄띄엄 일정을 맞춰야 하는 터라 3월부터 4월 초까지는 이것저것 알아보고 결정하고 예약하느라 많이 바빴다.

 

2000년 가을 5주간 유럽 배낭여행을 했었는데 거의 사반세기 전이니 그때의 기억은 추억일 뿐. 준비하던 초반에는 너무 비싼 물가에 가는 게 맞나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온전히 혼자 떠날 자신도 없고 물가가 이러하다면 지금 가는 게 제일 싼 거라는 생각으로 놀란 마음을 달랬다. 가고 싶은 많은 곳들 중 여러 여건을 고려해 갈 수 있는 곳을 추리고 각종 블로그와 체크인유럽 카페와 유레일패스 공홈과 부킹닷컴을 들락거리며 3월이 다 갔다. 4월 초순까지 8주간 여행의 루트와 숙소 등을 열심히 채우며 나중엔 진이 빠졌지만 간만의 몰입은 나쁘지 않았고, 출발 일주일 전부터는 카프카의 장편소설들을 읽으며 나만의 워밍업을 할 수 있었다.

 

4월 18일 입국한 마드리드부터 4월 27일 바르셀로나에서 마르세유로 넘어가기 전까지의 스페인 여행은 너무 오랜만의 해외 체류와 동행/들과 함께하는 상황에 적응하며 여행하느라, 뭔가를 매일 기록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여행을 시작한 마르세유에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포스트 만들어 놓고 대충 메모하고 넘어가는 게 버릇이 되어 마무리가 어려웠다. 기록과 기억을 위해 찍은 사진들이 나날이 쌓이고 정리되지 않는 텍스트들과 더불어 갈수록 부담스러워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스트레스 받기보다 귀가 후 정리하며 일상도 함께 정돈되기를 바라며 여행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은 바짝 부지런을 떨며 짐을 정리하고 내친 김에 내년 초의 이사를 생각하며 책장까지 손을 댔는데, 차분히 앉아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미루기 위한 핑계이기도 했다. 좁아 터진 노트북으로는 사진들을 감당할 수 없어 몇 년 전부터 생각만 했던 아이패드까지 장만했음에도,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일의 부담은 자꾸만 게으름을 피우는 걸로 이어졌다. 와중에 이따금 사진첩을 넘겨보며 내가 여기 있었다니 싶어 가슴이 뛰는 순간이 있어 새삼스럽기도 했는데, 덕분에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추석 전까지 꼭 여행 기록을 정리하자고 시작일로 정한 디데이가 오늘이다. 새벽 6시 넘어 잠들었다가 정오쯤 일어났고 또 망했나 싶었지만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아 정말 오랜만에 노트북을 펼쳤다.

 

어제 저녁 세상을 떠나셨다는 김민기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다. 중학교 때 우연히 해금 후 그가 출연한 방송을 보고 그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은 책을 읽으며 감동하고 노래들을 들으며 깊이 빠졌었다. 고등학교 때는 막 개관한 학전 소극장을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공연에 벅찬 날들이 많았고, 지금은 탁 트인 차로가 된 좁은 골목에서 그를 마주쳐 혼자 설렜던 기억이 난다. 이후 그를 선생님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시간들이 있었고 아주 옅은 인연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추억이다. 그 시간들을 끝으로 나는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이번 여행 중에는 sbs의 김민기 다큐 보다가 내 생각이 났다며 오래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친구가 톡을 보냈고, 덕분에 여행 다녀와서 오랜만에 통화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부고에 기대어 알량한 추억을 떠올리는 게 민망하지만,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각양각색의 수많은 마음들이 존재할 테니 나는 이렇게 소소하게 기억하려고 한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그의 작품에서 받았던 진한 감응을 많이 잊고 살았지만, 수렁에라도 빠진 듯 침잠한 일상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던 중 만난 부고가 내게는 여전히 유효한 자장 같기도 하다.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슬픔은 너무나 클 것인데, 나는 너무 담담해 죄송한 마음도 든다. 생의 종착점인 죽음은 늘 안타까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할 일을 마쳤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전하고 가셨다는 기사와 환한 웃음의 영정사진을 보니 감사한 마음으로, 평안하시길 바라게 된다. 그리고 진심의 인사,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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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4. 7. 12. 22:22

 

 

오랜만에 부산에 다녀왔다. 3월 하순 이후 처음이니 4개월 만이다. 개봉 예정 영화 살펴보며 날짜를 꼽고 있었는데 적당한 날짜에 숙박세일페스타 쿠폰이 떴길래 2박을 예약하고, 영화는 무리하지 않고 5편만 보고 왔다. 여행 다녀온 지 딱 한 달 됐는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모르겠다. 오자마자 며칠은 살짝 비몽사몽이었고 정신 차린 뒤에는 멍 때리다가도 뇌리를 스치는 여행의 여운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잦았다. 여행 준비하며 들락거렸던 체크인유럽 카페에 습관적으로 들어가 여행을 앞둔 이들이나 여행 중인 이들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다음 여행을 상상하고는 했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부산이 되었네. 

 

첫 번째 영화 시작 시간이 늦게여서 여유롭게 출발해 저녁에 숙소에 도착했다. 통영 이사 후 몇 년간 부산에 영화 보러 다니면서 범내골역이랑 서면역 쪽 숙박업소 여러 군데 전전하며 찾은 나름 양호한 두세 군데 중 한 곳이었는데, 갑자기 2박이라고 연박비 만 원을 내라고 해서 약간 시무룩해졌다. 왕복 교통비와 숙박비까지 쓰면서 영화 보러 다니는 게 너무 팔자 좋은 짓 같아 가급적 싸면서도 그런대로 깔끔한 편인 모텔을 고수해왔는데, 저어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지 좀 됐다. 정확히 반비례하는 낮은 숙박비와 쾌적함 중에 늘 전자를 선택했었는데 연박비 만 원 때문만은 아니지만, 약간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여행 떠나며 극장에서 영화를 몇 편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류블랴나에서 본 [퍼펙트 데이즈]가 참 좋아서 프라하에서 다시 봤었다. 서사가 복잡한 작품은 아니지만 일본어 대사에 슬로베니아어와 체코어 자막이었기 때문에 디테일한 내용은 모르고 넘어갔다. 한국 가서 복습해야지 했는데, 첫 영화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좋은 영화는 두 번 세 번 봐도 좋지만 어떤 영화도 처음 볼 때만큼 좋을 수는 없는 것 같다. 5월과 6월에 [퍼펙트 데이즈]를 보면서 상상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한국어 자막으로 확인한 대사들이 의외의 내용이어서 혼자 웃겼다. 가끔은 구체성보다 피상성이 뭔가를 완결해주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고, 내맘대로 정리.

 

다음날 본 [프렌치 수프]와 [유로파]는 감독의 개성이 강한 영화들이었다. 어렸을 때 [그린 파파야 향기]와 [씨클로]를 분위기에 휩쓸려 보았고 트란 안 홍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됐는데, 영화에 대한 큰 감흥은 없었다. 이후 영화제에서 본 [쓰리 시즌]이 유난히 힘들었어서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이지만 트란 안 홍 감독에 대한 선입견으로 망설이다가 딱히 볼 게 없어 [프렌치 수프]를 예매했다. 몹시 그저 그러하여 역시 안 맞는 감독은 안 맞는구나 생각했는데, 찾아 보니 [쓰리 시즌]은 배경이 베트남이었을 뿐 감독은 토니 뷔라는 사람이었다. 내 기억을 믿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지 좀 됐는데 여전히 이렇다. [유로파]는 스틸 컷으로 유명한 몇몇 흑백 장면들과 강렬한 분위기 말고는 기억에 없어서 다시 봤는데, 간만에 온몸으로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뉘른베르크를 짧게 여행하며 나치 시대와 2차 세계대전 등 유럽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환기됐고, 덕분에 예전보다는 맥락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곧 [그랑 블루]를 재개봉하는 것 같던데 어릴 적 ‘순수의 얼굴’ 중 하나였던 장 마크 바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

 

마지막 날 첫 영화는 고 이선균 배우가 아니었다면 볼 일 없었을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 재난 영화는 취향이 아니지만 액션과 폭력이 난무하는 건 아니어서 볼 만했다. 영화보다는 이선균 배우를 보는 시간이었다. 그의 존재를 아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지만 미디어와 여러 작품들 덕에 현재적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감각이 컸던 터라, 스크린에서 생동하는 고인의 모습에 자주 사무치는 마음이 됐다. 그리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전날 본 [유로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내용이었는데 나치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여행할 때 유럽 여러 나라에서 개봉 중이어서 볼까 말까하다가 영 못 알아먹을 것 같아 관뒀었는데, [퍼펙트 데이즈]처럼 막 오해해도 좋을 영화는 아니어서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에서 나오다가 건물 지하에 있던 홈플러스가 문을 닫았다는 걸 알게 됐다. 3월에도 왔었는데 그때는 안내문이 없었던 건지 못 본 건지 모르겠다. 작은 영화관들이 제법 있는 서울과 달리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지금은 cgv서면의 아트하우스뿐이다. 남포동의 모퉁이극장도 있지만 동선이 불편하고, 수년간 영화를 보며 쌓인 멤버십 포인트와 각종 쿠폰 사용의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다. 영화 보는 걸 오래 좋아했고 일상의 가장 큰 낙인 사람으로서 그렇게 싫어하던 대기업 체인 영화관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약간 자존심 상하지만 현실은 현실, 지오플레이스와 cgv서면의 아트하우스의 존립에 생각이 미쳤다. 어쨌거나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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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4. 7. 3. 23:05

119

 

 

6월 말부터 에어컨을 살짝씩 켜기 시작했는데 어제 저녁 갑자기 바람이 매우 약소하게 느껴졌다. 평소 온도를 많이 낮추거나 바람을 세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약한 바람과 내려가지 않는 계기판 숫자를 보니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에어컨 주변 바닥에는 새어나온 물이 흥건했다. 이사 와서 에어컨 설치할 때 집의 구조상 물이 역류할 수 있다는 기사님의 예언이 적중해 몇 달 후 배수펌프를 설치했었다. 이후 물이 새는 일은 없었는데 뭔가 불길했다. 3년 만에 다시 기사님께 연락, 오늘 방문해주셨고 첫 번째 작업은 벌집 발견이었다.   

 

확장된 베란다의 안전가드에 바로 실외기가 달려 있어 방충망 열 일이 없다 보니 몰랐는데, 바로 앞에 주먹보다 작은 벌집이 있었다. 벌집을 발견하면 119에 신고해야 한다는 걸 주워들은 것 같아 연락했더니 금세 소방관들이 오셨다. 너무 작아서 민망했지만 벌집은 벌집, 세 분이나 오셔서 뭘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약 뿌리고 벌집을 자르는 걸로 제거 과정은 정말 금방 끝났다. 기사님이 작업하시는 중에, 잠깐 외출한 사이에 집이 없어져 당황했는지 벌 한 마리가 베란다를 맴돌다가 사라졌다. 너무 인간중심적이라 미안한데, 함께 살 수는 없다.

 

예전 어느 새벽 아랫집의 소동에 경찰관들이 방문한 적 있었다. 뭔가 관운이 있는 집인가 싶은데, 에어컨운은 없는 집으로 확인됐다. 가스 보충으로 바람은 한결 시원해졌지만 배수펌프는 정상 작동이 안 됐다. 직접 설치한 펌프 고장은 처음이라며 갸우뚱하는 기사님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음날 배수펌프를 교체할지 직접 물을 버려가며 여름을 날지를 내가 선택해야 했다. 내년 1월 계약 만료 때 이사할 계획이고 배수펌프 교체 비용도 아깝고 다시 이상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수동 배수를 선택했다. 소문자119 같은 상황인데, 벌집이든 에어컨이든 추가적인 문제가 생기지만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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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