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22.01.09 잊었던, 이루어진 바람
  2. 2022.01.09 귀인들
  3. 2022.01.05 은혜 받은 새해
  4. 2021.12.30 아빠의 도서관
  5. 2021.12.25 연결
  6. 2021.12.12 What's up
  7. 2021.09.07 어떤 기념일
  8. 2021.09.07 싫어하는 걸 시키는 일
  9. 2021.09.01 가을장마
  10. 2021.08.16 제자리
산책일기2022. 1. 9. 22:13

 

 

1월 3일, 인천 지인과 온전히 하루를 보냈다. 처음으로 욕지도에 가보았고, 좋아하는 당포성지도 오랜만에 다녀왔다. 통영에 살게 되면 가끔 섬에 가야지, 섬 관련된 책을 읽으면 통영에 사는 동안 섬 도장깨기 해야지 생각했었지만 어쩐지 혼자서 섬에 가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일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여객선터미널에 가서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마음을 접어두었었다. 몇 년 전 혼자 제주 우도에 가서 하루 자면서 신나게 돌아다녔던 게 낯설 만큼의 변화다. 작년에 지인이 놀러왔을 때 갔던 한산도와 장사도가 전부, 올해는 달랐으면 했는데 시작이 좋았다.

월요일 오전이어선지 엄청 큰 배에 오른 사람은 스무 명이나 될까 싶었고, 욕지도로 바로 가는 배여서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섬에 내리니 하선 시각에 맞춘 듯 버스가 한 대 서있었는데, 우리는 그냥 "욕지도 가자" "그래" 하고 온 셈이어서 일단 안내소에서 지도를 챙기고 점심을 먹으며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선착장 주변을 둘러보다 발견한 중국 음식점에 들어갔고 해물짬뽕과 탕수육을 시켰는데, 오랜만에 먹는 중국 음식이기도 하고 해산물이 신선해선지 맛있게 잘 먹었다. 손님이 많았는데 절반 이상 현지인들 같았고, 다른 사람 상관없이 각자 식사에 열중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문득 섬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충 지도를 살펴본 결과 우리의 계획은, 2시간 가량 트레킹하고 다시 항구로 돌아와 3시 5분에 출발하는 버스로 섬을 둘러보고 선착장 주변을 산책하다가 마지막 배를 타고 나가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생각보다 큰 섬이었고 걷다가 만난 좋은 데가 있으면 다음에 또 오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여유롭기도 했다. 선착장에서 포장된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관청 출렁다리, 다시 도로를 걸어 욕지 출렁다리 입구에 닿아 펠리컨 바위까지 갔다. 출렁다리 싫어하지만 펠리컨 바위를 건너뛸 수는 없었고, 잠시 앉아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는 시간은 평화로웠다. 돌아갈 때도 포장길을 걷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지도에서 헷갈린 '비렁길'로 찾아들어 짧게나마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나와보니 관청 출렁다리 부근이 숲길 진입로였는데 적당한 표시가 없는 게 아쉽기는 했다.

준비없는 초행자로서, 그래도 절반은 숲길로 적당한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는 걸 행운으로 여기며 선착장으로 돌아와 버스를 탔다. 전에 제주 우도 갔을 때 탔던 우도바람 마을버스가 참 좋았는데, 그 정도로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역시 좋았다. 손님은 여행자보다 주민이 더 많았는데 금세 내리셨고 친절하신 기사님이 차창으로 보이는 장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면서 풍광이 좋은 곳에선 잠시 차에서 내려 감상할 시간도 주셨다. 코스의 시작과 끝은 선착장이었는데, 할매바리스타 카페에서 멀지 않다고 하시길래 그곳에서 내렸다. 카페뿐 아니라 바로 옆에는 근대어촌 발상지라는 설명과 함께 조성해놓은 좌부랑개 자부마을이 있었고 이중섭 화가가 풍경을 그렸다는 곳도 가까이였다. 배시간 때문에 주마간산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이삼일 머물면서 섬 곳곳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주문한 고구마라떼를 기다리며 카페 안을 구경했다. 벽에 빼곡한 '행운의 소원판'에서 "통영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소원은 지금도 유효할까, 혹시 통영 어딘가에 살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써붙인 적은 없지만 내게도 간절한 소원이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현실이 된 후에 어느덧 무감하고 심드렁해지고 말았지만, 누군가 음영까지 넣어가며 강조한 '통영'이라는 글자가 새롭게 보였다. 그럴 리 없지만 잠시 마주한 소원판이 지금의 내 마음과 생활을 환기하는 의미심장한 계시처럼 느껴졌고, 무척이나 새해로운 순간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 존재만으로도 자극이 된 지인들 덕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고 싶어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 중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욕지도에서 삼덕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배는 4시 35분이었다. 근무 중인 광주 지인은 우리의 욕지도행을 함께 즐거워하며 배에서 보는 일몰을 강조했는데, 겹겹의 섬 때문에 드라마틱한 순간은 가려졌던 일출에 비하면 무척 그럴 듯하게 결정적인 찰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광주 지인을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데에 몰두했다. 매일 뜨고 지는 해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이상하기도 하지만, 빛의 출몰에 신경과 오감을 집중하며 함께 호흡하는 순간에 색다르게 일렁이는 마음은 분명 있다. 보통은 해질녘 아름다운 석양의 하늘에 잠시 마음을 내어주곤 하는데, 해가 지는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건 드문 일이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느 섬 뒤로 해가 떨어진 직후 배가 삼덕항에 닿았다.

이제 곧 어둠이 내리겠지만 동행이 있으니 당포성지에 꼭 오르고 싶어졌다. 처음 통영에 살고 싶어할 때, 물정 모르고 여기라고 마음먹은 곳은 산양읍이었다. 차도 없고 운전할 생각도 없으면서 굳이 산양읍을 찍어 가끔 지도를 들여다보았고, 몇 년 전 어느 날은 박경리기념관에서부터 한참을 걸었다. 소담한 산양도서관에 들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책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곳은 지금은 어린이미각도서관인가로 리뉴얼되었다. 그야말로 낯선 곳에서 딱히 정한 목적지도 없이 산양읍을 걷다가 만난 곳이 당포성지였다. 골목 담벼락의 낡은 벽화들을 지나고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올라 만난 당포성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산은 고요하고 시원했다. 멀리서 사그라드는 태양의 여운과 어둠 속에도 잔물결로 빛나는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해질녘 당포성지에서의 시간을 가끔 떠올릴 것 같다. 혼자였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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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2. 1. 9. 22:09



광주 지인은 다음 날 출근 때문에 일요일 오후 1시 20분 광주행 버스를 타야 했다. 워낙 아침형이라 우리까지 덩달아 일찍 일어나 굴떡국을 끓여먹고 함께 집을 나섰다. 미수해안로를 따라 해양관광공원까지 산책을 하고 충무교를 건너 착량묘까지 걸었다.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 사망 1년 후인 1599년에 종군했던 수군들과 주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초가 사당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초가가 아니지만, 이후에 조성된 수많은 관제 기념물들을 생각하면 아주 소박한 규모와 구성이다. 긴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을 텐데 민초들이 지은 사당이라니, 어딜 가나 흔해서 무감했던 이순신 장군은 정말 히어로였나보구나, 400년이 넘도록 그 뜻이 이어진 진짜 추모지 같아 처음 안내문을 읽었을 때 애틋한 마음이 되었었다. 두 사람 다 통영을 이전에 몇 차례 다녀갔었는데 착량묘는 처음 들어봤고 알게 되었다며 관심을 보였다.

몇 달 전 교통사고를 겪은 광주 지인에게 차를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덕분에 1월 1일부터 3만 보를 훌쩍 넘게 걸었다. 대부분의 여행을 뚜벅이로 하기 때문에 나는 내 발로 걸어야 여행 같고 그곳에 다녀온 것 같다고 느끼는 편인데, 다행히 두 사람 모두 걷는 걸 좋아하고 통영을 뚜벅이로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며 좋아했다. 전날과 달리 해안에 새들이 거의 없었다. 평소 미수해안로를 걸을 때면 갈매기나 왜가리가 늘 있었고 가로등마다 한 자리씩 차지한 갈매기들이 귀여워 사진도 찍곤 했는데, 새 보기를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길에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게 좀 아쉬웠다. 그래도 해안도로 가까이 바다에 물고기들이 적지 않아 구경하며 여유롭게 걸었고, 외향지수가 엄청난 지인들은 낚시하는 이들의 바구니도 기웃대며 간단한 말을 주고 받았다.

원하지 않은 퇴직을 하게 된 인천 지인에게 꼭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던 광주 지인의 바람을 존중해 함께 터미널로 갔고, 아직 꺼지지 않은 배로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그나마 가볍게 느껴지는 스시를 택했다. 간판을 발견하고 별 생각없이 들어갔는데 런치세트가 깔끔하고 적당했고, 양을 가늠하지 못하고 모듬튀김도 주문하려는 우리에게 드셔보고 시키라며 말려주는 직원의 조언도 멋졌다. 디저트로 내주신 요거트 아이스크림으로 산뜻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해변을 잠시 걸었다.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해변 가까이에 물고기가 적지 않았고, 자유의 여신상이 뜬금없이 당당한 요트교실 근처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마치 밧줄 똬리들이 가라앉은 것처럼 떼를 이루고 있었다. 매일 산책하며 관찰하던 주민이 며칠 사이 알에서 깨어난 물고기들이 머물러 있다며 알려주셨는데, 나도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광주 지인 가시는 길에 큰 선물이 된 것 같아 기뻤다.

광주 지인이 떠난 후 인천 지인과 RCE세자트라숲을 산책하고 이순신공원까지 트레킹 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역시나 기약이 없다. 둘 다 걷는 걸 좋아해서 지도앱을 검색하니 3시간이면 도착 가능한 거리, 다시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많은 여행을 혼자 다녔고 좋아하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마음을 접은 길들도 적지 않은데 낯선 길을 흔쾌히 함께 걸을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시간이었다. 해변도로를 끝까지 걸으니 얼마 전 현수막으로 개관 소식을 접했던 청소년체육센터가 나왔다. 예전 여행 때 가봤던 도서관을 지나 마을길로 접어드니 차를 타고도 지나본 적 없는 길이 나왔다. 기호마을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 갈림길이었는데, 지도앱을 정확히 읽어내기 어려웠지만 저 건너 차도 끝 좁다란 공간에 그어진 하얀 선 하나를 인도라고 믿고 걷기엔 위험해 보였다.

선택한 인도는 인적도 차량도 드문 길, 날씨도 좋고 호젓한 시골 마을은 평화로웠다. 중간에 좁은 뻘도 나오고 멀리 우리가 걸어 돌아온 터미널 근처 해안이 보이고, 오래 방치된 듯한 작은 폐교도 지났다.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오른쪽 발뒤꿈치가 가벼워졌고 이상해서 살펴보니 신발의 통굽 뒷부분이 사라졌다. 돌아보니까 십여 미터 뒤에 덩그라니 떨어져나간 통굽이 놓여 있다. 산 지 십년도 넘은 신발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이번에 신고 버리든지 하려고 꺼내 신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단에 한참을 웃었다. 잠시 멈춘 김에 지도앱을 다시 살펴보니 우리가 걷는 방향은 기호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잘못 선택한 것이었다. 인천 지인은 이 상태로 걸으면 허리 아파 안 된다며 콜택시라도 부르자 했지만, 기분 탓인지 나는 그냥 웃겼고 결국 길을 거슬러 다시 걸었다. 지나는 택시도 없어서 도서관을 지나 죽림의 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일단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예전에 책방에 가느라 지났던 기억이 나서 얼마 후 도착한 버스를 탔는데, 다음 정류장이 통영 경찰서였다. 결국 3시간 만에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뭔가 마법에 걸린 느낌이었다.

다행히 RCE세자트라숲에서 이순신공원까지의 트레킹은 온전히 나의 욕망이었기 때문에 인천 지인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며 이상한 산책으로 날린 오후를 별로 아까워하지 않았다. 겨울 해는 짧고, 집에 도착하자 곧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전날 인천에서 내려온 지인도 새벽부터 일어나 종일 에너지를 쓴 나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집에서 쉬기로 했다. 저녁을 먹으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낯은 엄청 가리지만 친하거나 편한 사람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나이를 먹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상대를 살피지 않고 내 기분에 취해 내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생각하는데 가끔 놓친다. 대화가 통한다고 느끼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건 당연하지만, 내 위주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들이 상대에게 모두 잘 다가갈 리도 달가울 리도 없을 것이다. 좋은 시간이었지만 꺼내지 않았으면 나았을 이야기까지 꺼내는 바람에 애매한 순간이 있었다. 얼마 전에 읽고 마음 한편에 어지러운 자국을 남긴 [짐을 끄는 짐승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아무렇게나 꺼내면 안 된다는 걸 실감했다.

아무튼 두 사람 덕분에 새해가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시작됐다. 원해서 좋아서 왔지만 모두에게 마음을 닫고 잔뜩 웅크린 채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1년 넘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실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다정하고 유쾌한 이들과의 짧은 여행이 새삼 지금의 내 모습을 비춰보게 만들어줬다. 아무것도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고,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으로 내 중심이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다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어떤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고 그 원래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멀리서 온 귀인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바닥에 찐득하게 눌러 붙었던 마음이 살짝 기지개를 켜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월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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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2. 1. 5. 21:19

 

 

멀리 광주와 인천에서 온 지인들 덕분에 전에 없이 활기차게 새해를 시작했다. 12월 중하순부터 해넘이 해맞이 어쩌고 하지 말라는 안전문자가 날아왔지만, 수년 전 1월 1일 동네 뒷산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다 넘어져 두어 달 병원 신세를 졌음에도 의연히 세레머니를 이어가는 새해일출마니아께서 31일 저녁에 도착하셨다. 이것저것 의미 부여가 많은 편이지만 게으른 탓에 염두에도 없었던 새해 일출, 하지만 그에 진심인 손님 대접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새벽같이 일어나 7시 전에 집을 나서는 놀라운 경험을 해버렸다. 다녀와 떡국 끓일 준비도 미리 해두었지만 일출 보고 산책하다 발견한 식당에 반색하는 지인 덕분에 난생처음 물메기탕을, 평소에 먹지 않는 아침으로 먹었다. 미각이 둔하고 식도락에 취미가 없고 향토음식에 문외한이므로, 달리 덧붙일 말은 없다.

광주 지인은 나와 15살 차이가 난다. 연락하며 지내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가장 적극적이고 외향적이고 활달하신 분으로, 3년 정도 이어졌지만 주 1회 두어 시간씩 수업을 함께 들은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한 달은 우리집에서 살기도 했었는데 새벽에 출근하고 밤 10시가 되기 전에 잠드는 패턴의 영향도 컸겠지만, 신기할 만큼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다. 까탈스럽고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나로서는, 전적으로 그의 긍정적이고 너그럽고 원만한 성격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오랜 일터에서 퇴직하고 광주로 내려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공부문에서 일종의 돌봄노동을 시작했다. 늘 밝고 에너지 넘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밀함이 태도의 기본값인 그가, 얼마 되지 않는 지인 중 하나라는 건 사실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일출과 긴 산책 후 집으로 돌아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산책에 나섰다. 광주 지인에게는 높이 뜬 태양이 만드는 윤슬도, 해변에서 미동 없는 왜가리 한 마리도, 가게 앞에 가득한 이끼 화분들도, 1월인데도 호스로 물을 줄 수 있는 통영의 날씨도, 그러니까 산책하며 눈에 닿는 거의 모든 것들이 경이와 웃음의 대상이었다. "저것 봐라, 저것 봐라."하며 산책하는 내내 놀라고 웃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는 모습이 새삼 신기하면서도 내게까지 그 밝은 에너지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오전에 버스를 탄 인천 지인을 네 시쯤 중앙시장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산책은 여유로웠고 조금 배가 고팠다. 강구안의 꽈배기를 떠올리고 찾아갔지만 문을 닫았고, 아쉬운 마음에 지나쳐온 길을 되짚어 작은 분식집에 들어갔다. 1월 1일임에도 문을 연 가게에서 떡볶이와 꽈배기와 튀김을 먹으며, 여든이 다 됐다는 사장님과 꽤 길게 대화를 나눴다. 

인천 지인을 만나 서피랑에 갔다. 나도 꽤 오랜만이었는데, 몇 달 전 포크레인들이 작업하던 곳은 집을 다 허물고 정비가 되어 있었다. 미개통 상태였지만 강구안과 남망산을 잇는 다리가 놓인 것도 처음 봤는데, 불과 1년 남짓 살았음에도 도시가 변해가는 모습이 꽤 선명해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박경리 선생 생가와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 서포루, 이중섭 작가의 조형물 등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인천 지인이 [판소리 복서]를 봤다고 해서 무척 반가웠다. 인천 지인은 한참 전 부천에 살 때 일로 얼핏 아는 사이였다가, 광주 지인을 만난 수업에서 다시 만났다. 활동하며 이래저래 만나면 격의없이 편한 사이였지만 몇 년간 소식도 몰랐는데 광주 지인 덕에 새해를 함께 보내게 됐다. 마침 12월 31일로 4년 넘게 하던 일을 마치게 된 터라 화요일까지 함께하며 즐거웠고, 그 역시 새해의 평일 첫 주를 집에서 맞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말해줘서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중앙시장에서 가리비와 굴, 회를 사와서 먹었다. 통영으로 이주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광주 지인이 전화해서 잘 챙겨먹고 있냐며 가리비를 사서 삶아 먹으라고 했던 게 떠올라 처음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얼마 전에 읽은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건네받은 소화 불량의 문제의식들이 여전히 남아는 있어서 뇌리 한 구석에 맴돌기는 했지만 차마 입에 올릴 수는 없었으므로 일단 무시했다. 아무려나, 짧게 잡아도 오륙년 만에 함께 만나 나누는 수다는 즐거웠다. 나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과 성찰과 태도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부터 젊었을 때는 전혀 염두에 없었던 나보다 십수 년, 수 년의 나이를 먼저 살아가는 여성들의 일상과 생각에 마음이 기울고는 하는데, 역시나 제 속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중심을 잡으며 사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어리니까", "아직 젊으니까"와 같은 생경한 전제가 붙은 말을 이따금 듣는 즐거움도 오랜만에 덤으로 누리며 즐겼다. 여기까지가 1월 1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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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2. 30. 15:16

 

 

아빠로부터 카톡이 왔다, 사진 한 장. 좀처럼 없는 일이라 의아해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얼마 후 도서 신청 부탁하려고 한다며 좀 있다가 전화하겠다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엄마에게 들은 바, 아빠는 상도동을 넘어 정독도서관이며 서울도서관까지 다닌 지 좀 되었고 더운 날에는 일하시는 분께 고생한다고 아이스크림을 드리기도 한다(민폐가 될 수도 있으니 말리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실은 나도 얼마 전 도서관에 책 반납하면서 초콜릿을 드리기는 했고, 어떤 체념으로 웃음이 나기는 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공공기관의 이용 방식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제한이 걸리기도 하니, 아날로그에만 익숙한 아빠 같은 노인들은 답답함이 한층 커질 것 같다. 

 

원하는 책은 이광수의 [흙], 아빠는 컴퓨터로 주로는 바둑을 두고 기차시간표나 아주 기본적인 검색 정도를 할 줄 아신다. 이미 여든을 넘으셨고 언제나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데다 급한 성격이기 때문에, 집에 갈 때마다 컴퓨터며 휴대폰 관련된 질문에 나름 성심껏 알려드리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휴대폰 앱의 업데이트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기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성향도 크게 작용한다고 느꼈다. TK지역에서 나고 자라 30년 넘게 공무원으로 일했고 반 세기가량 조선일보를 구독 중인 아빠는, 성인이 된 후 한시도 가부장적 권위를 내려놓은 적 없는 사람이다.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고, 엄청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존재가 아님에도 말이다. 갑자기 변해도 낯설겠지만, 덕분에 적당히 서먹한 거리감과 엄마를 통한 연락이라는 나로서는 편안한 상황이 유지되고 있기는 하다.

 

사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고 성향도 비슷하다는 걸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늘 반목하던 어린 시절에는 참 싫어했지만 커갈수록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가끔 엄마를 통해 전해듣는 아빠의 모습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역시 그렇군 순순히 수긍하게 된다. 요청대로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광수 흙'을 검색했더니 다양한 판본이 결과로 나왔다. 아빠도 이미 검색은 해보았는지 "1,2권 짜리가 있고 상,하로 된 게 있고 ...", 그러나 2016년에 나온 한 권 짜리가 있어서 여쭤보고 신청을 했다. 앞으로 또 부탁할 수도 있으니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잘 메모해놓으라고 하시더니, 일상적인 일인데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게 불편했는지 스스로 할 수 있게 A4용지 같은 데에 설명을 정리해서 알려줄 수 있냐고도 하셨다.

 

알겠다고 하고 화면 캡쳐를 시작했는데, 로그인 후 '통합검색'과 '소장자료검색'으로 나뉘어져 있는 검색창 선택부터(결과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후에 발생할지 모를 변수는 사전에 차단하는 게 낫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결과 중 원하는 책을 선택하고 대출을 신청하는 데까지 꽤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이미 푸른사상사의 책을 신청한 터라 그 책에는 '신청하기' 버튼이 없었고 설명을 위해 그 위에 있는 책을 클릭한 화면을 써야 했는데, 이 부분을 설명할 생각만 해도 뭔가 난감해졌다. '신청하기' 이후 '나의 도서관'에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빠가 주로 이용하는 책들은 보존서고에 들어가 있는 것이고(십여 건의 대출이력이 있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으셨었다고.) 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변별과 클릭이 필요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소화가 가능할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신청하기까지만 정리를 해서 카톡을 보냈다. 혹시 몰라서 조금 더 스마트한 유저인 엄마에게도 보내고, 아빠가 사진을 먼저 확인하시면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 사진을 보셨는지 너무 복잡해서 어렵겠다고, 가끔이니까 대신 신청을 해달라는 말이 머쓱한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지하철 매표소니 은행 창구가 폐쇄되고 키오스크가 확산되면서 자동화와 디지털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한 것이었다. 집에 갈 때마다 휴대폰이니 컴퓨터에 대해 묻는 일도 다반사였으니 새로울 것도 없는데, 오늘은 어쩐지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아빠의 지체현상(이라고 말해도 될지)이 그나마 소통의 매개가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새삼스레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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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2. 25. 15:44

 

 

 

 

인스타그램을 잠시 살펴보다가 하림 님의 계정에서 미얀마 난민캠프에 보낼 물품들을 모은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산영화여행을 다녀와 강박적으로 포스트들을 만들어놓고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글이 써지지 않고 집중도 안 되던 차, 생각이 났고 바로 행동에 옮겨 보낼 만한 물건들을 챙겨보았다.

마음에 들어 내가 샀지만 잘 쓰지 않는 가방, 정말 옛날 엄빠가 홍콩여행 다녀오며 선물로 사준 가방, 이런 것도 있어야 한다며 엄마가 사준 조금 비싼 가방, 미국의 사촌이모가 보내온 가방, 한때 많이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음반 박스세트와 함께 온 가방, 어디서 난 건지 기억 안 나는 가방, 올해가 마지막이 될 알라딘 럭키백과 각종 굿즈들까지, 보낼 만한 가방들을 챙겨보니 생각보다 양이 꽤 됐다. 옷은 별로 많지 않은 편이지만 사놓고 아예 입지 않았거나 거의 입지 않은 것들을 모아 보니 좀 됐고, 마지막 직장 생활의 징표처럼 남은 새 단체티를 더 이상 간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보내기로 했다. 수납함으로 들어간 반팔티들도 생각이 났지만 너무 큰 일을 벌이게 될 것 같아 다음을 기약. 어린이들을 위한 물건들이 많이 필요하다기에 문구류를 찾아 여기저기 뒤졌는데 새 것들을 챙겨보니 별로 많지 않다. 

십여 년 전 부천에 살 때, 미얀마 친구 T를 통해서 지금처럼 이것저것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올해 초 미얀마 상황이 나빠진 후 제일 먼저 T가 떠올랐고 안부가 궁금했지만 여전히 알지 못한다, 잘 지내고 있을까. 살면서 너댓 명의 미얀마 사람과 가까이 지냈었는데 그 중 A는 몇 달 전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평안해졌을까. 먼 곳을 연결하려는 이들 덕분에 T와 A, 옛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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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2. 12. 00:10



스물 다섯 살도 안 됐던 어느 시절 참 많이 듣고 가사까지 외워가며 좋아했던 노래를 며칠 전 오랜만에 들었다. 처음 알게 된 건 당시 미쳐 살던 아저씨가 공연에서 불렀기 때문인데 거리의 레코드 가게나 리어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던 시기여서, 당시 꽤 인기 있었던 이 노래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왔던 것 같다. '4 non blondes'라는 밴드 이름이 멋졌고, 해석이 어렵지 않은 가사도 멋졌고, 린다 페린가 하는 보컬의 목소리도 참 멋졌고 특히 후렴구의 독특한 샤우팅과 가사의 시너지가 너무나 멋졌던. 암튼 여러 모로 멋진 이 노래를 정말 오랜만에 우연히 다시 들었고, 눈물이 났다. 영상을 만든 이의 마음이 담긴 선곡인 것 같아 좀 감동했고, 영상을 보게 될 레베카 라셈 선수의 마음은 어떨까 싶어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는 느낌.

 

 

https://sports.news.naver.com/volleyball/vod/index?uCategory=kvolleyball&category=wkovo&id=886131&redirect=true

 

 

월요일 빼고 거의 매일 여자배구 경기를 본다. 도쿄 올림픽 중간부터 관심하기 시작해 김희진 선수에 푹 빠지고, 이런저런 예전 영상들을 찾아보며 즐거워하다 아차, 연예인 아니니까 그에 걸맞게 응원하겠답시고 지난 경기들을 보며 배구라는 종목의 매력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늘지고 우울하고 어딘가 결핍된 느낌이 들어야 마음이 가는 게 어릴 적부터 나의 인지상정인데, 낯선 곳에 뚝 떨어져 무채색 일상을 보내는 탓인지 슬슬 밝고 에너지 넘치고 환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뭔가에 끌리게 된 변화도 한 몫했을 것이다. 응원하는 무수한 이들 중 1개인일 뿐이지만 나로서는 '운명적으로 만난'(카드 캐릭터가 무려 무민) IBK 기업은행 알토스의 V리그 경기를, 마음만은 의관정제하고 지켜보는 심정은 때로 가상의 통증을 느끼게 하지만, 경쟁과 승부와 자본의 논리에 잠식된 이벤트로서의 프로스포츠를 싫어하는 사람의 본분을 되새기고 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며 IBK 기업은행 알토스의 외국인 선수 레베카 라셈의 모습을 입국 후 자가격리 영상으로 처음 보았고,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기대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럼에도 코트에서 집중의 미간과 환한 웃음으로 열심히 경기에 임하는 모습 역시 지켜보았다. 이후 긴 연패와 깊은 난항,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알 수 있다, 클릭질;;) 미디어의 어그로와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여자배구판에서도 유력한, 남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의 권위일 것만 같다) '배구계'의 이상한 권위와 기만과 담합 같은 것 역시 지켜보고 있다. 와중에 레베카 라셈 선수는 경쟁과 승부와 자본의 논리로 점철된 프로스포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결정으로 방출됐다. 따로 응원할 만큼 별스러운 마음을 가진 적은 없지만, 방출 통보 이후 그가 보인 모습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눈물겨움과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했다. 바람대로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나 역시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도 건네고 싶은 말, "What'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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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9. 7. 21:07

 

2002년 9월 7일에 내게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외면적으로는 좋지 않은 결과여서 나만 기억하는 날이 됐다. 나 역시 기꺼워할 만한 날은 아니지만, 가을이 시작되는 즈음이고 좋아하는 홀수로 이루어진 날짜여선지 은연중에 9월 7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일을 선택하면서도 무의식 중에 작용했던 것 같다. 접종기관을 선택하는데 살고 있는 동네에 두 곳의 의원이 있어 하나를 골랐더니 집 바로 앞이었다. 맞은 편에 문 닫은 한의원이 있는데 비슷한 분위기여서 운영 중인 병원이라는 게 신기했는데, 암튼 가까우니 좋구나 생각했었다. 예약하면서 국민비선가 뭔가 알림 신청도 했던 것 같은데 당일 오전임에도 아무 연락이 없어 이상했다. 예약시스템에 접속해 조회를 했는데 접종기관이 내가 선택했던 의원이 아니라 통영시 예방접종센터라고 나왔다. 내가 예약한 의원은 집에서 5분 거리이지만 센터는 훨씬 멀어서 확인차 의원과 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의원에는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고 센터에서는 오후 3시 예약이 맞고 전화번호 한 자리가 틀리게 입력되어 있다고 확인해줬다.

전화번호 입력 실수는 납득이 됐지만 접종기관은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했다. 예약할 때 선택한 접종기관이 임의로 변경됐을 리는 없고 내가 음모론자도 아니니까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는 한데, 집 앞 의원의 존재를 백신 예약 때문에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정말로 놀라웠다. 나이 먹으며 전에 없던 실수를 종종 확인하게 되고 그때마다 부드럽게 받아들이려고 애써보지만, 이번엔 많이 충격적이었고 실은 아직도 뭔가 다른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덕분에 거의 열흘 만에 해저터널을 지나 육지로 나갔다. 비 예보가 있었고 낮에 잠시 흩뿌리기도 했지만 집을 나선 즈음부터는 적당히 흐려서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딱히 바로 필요하지는 않지만 IBK 계좌와 무민카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오늘인 것만 같아서 은행에 들러 계좌와 카드를 만들고 내친 김에 희망지역 통영으로 주택청약통장도 만들었다. 형식적이지만 입주희망년도를 입력하라기에 2025년이라고 썼는데, 그때 통영에 내가 들어갈 새 아파트가 지어질까? 실은 무턱대고 그냥 이사 가고 싶은 집이 이미 있는데 괜한 짓을 한 건가? 그보다, 그때도 나는 통영에 살고 있을까? 근데, 살아는 있을까? 장기적인 계획 없이 사는 편이라, 2025라는 숫자를 입력하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방접종센터는 충무체육관, 옆 길을 지나간 적은 있는데 실내에 들어가 본 건 처음이다. 통영에서 국제음악당에서 다음으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본 것 같다. 여자배구 경기 보면서 대전 충무체육관이 좀 부러워진 터라, 열등한 공간감각의 소유자임에도 크기를 대략 가늠해보았는데 졸업한 고등학교 체육관 정도인 것 같았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1988년에 지어졌고 '전국 규모의 대회는 아직 유치하지 못하였으나, 충무시 및 주변 읍·면에 소재하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체력 및 스포츠 단련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통영에서 여자배구 경기를 직관하는 날은 오지 않겠군. 

주사를 맞으니 '참잘했어요'는 아니지만 손에 도장을 찍어주셨다. 몇 달째 거의 자가격리 수준으로 살고 있지만 백신은 나를 위해서도 공동체를 위해서도 맞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고, 부작용 관련 보도를 가끔 접했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그냥 좀 기계적인 반응처럼 신청하고 맞으러 왔던 거였다. 그런데 예약을 확인하고 간단한 문진을 하고 접종을 받고 등록을 하고 15분이 되기를 기다려 센터를 나오는 20분가량의 시간을 통과하자, 무척 오랜만에 내가 사회의 일원임을 확인 받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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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9. 7. 20:15

 

 

모처럼 8시에 일어났다. 2시 넘어 잠들며 시간 맞춰 일어나지 못할까 긴장한 탓인지 4시대에도 6시대에도 7시대에도 눈을 떠 시간을 확인했다. 9시에 시작이었지만, 그전에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과자도 먹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김희진 선수가 나오는 <톡이나 할까>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뭔 일인가 싶지만 공허한 덕질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않는다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저 그런 일상과 자주 가라앉는 마음에 활기를 띄우는 소중한 일이다. 예전 사노 요코 할머니가 한류 드라마에 빠져 dvd를 쌓아놓고 소파에 누워 보느라 목이 돌아갔다나 안 돌아갔다나 해서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에세이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요즘 나는 사노 요코 할머니를 자주 떠올린다. 그렇지 뭐, 사는 게 뭐라고.   


예전에 엄태구 배우가 출연했을 때 한 번 봤었는데,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조용히 진행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후에 다른 편을 본 적은 없다. 보면서 일단은, 김이나와 제작진이 무척 부러웠다. 생각보다는 기대했던 속 깊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편안했고, 김희진 선수와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경기를 보며 대중이 느꼈던 매력과 감동의 지점을 잘 짚어준 점이 좋았다.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그에 대한 언급을 배제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렵겠고 나 역시 외모로부터 비롯된 매력에 빠져 관심하게 되었지만, 역시나 외모 이야기가 빠지지 않은 것은 물론 과하게 강조되었던 점은 아쉬웠다. 어차피 급부상한 스타의 대다수가 탁월한 외모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기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많이 했어도 좋았겠다는 느낌.


사실 정말 별로라고 느꼈던 건 마지막에 굳이 손가락 하트 동작을 시켰던 부분이다. 대화 내내 엠씨이자 한 사람의 팬으로서 김희진 선수에 대한 예우와 존중을 잃지 않던 김이나가 그 부분에서 갑자기 "나 언니~ 이모~" 운운하면서 고압과 정색을 가장한 태도로 한 동작 한 동작 지시하듯 손가락 하트를 하게 만드는 걸 보며 아연했다. 둘 다 웃으면서 시키고 따라하기는 했지만 갑자기 돌변해 나이 위계를 시전하는 모습이 보기에 불편했고, 그러한 시도 자체가 저열하고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여자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공식 기념사진에서도 혼자만 하지 않았던 동작이었는데(그런 걸 왜 단체로 시키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선수가 엄청난 관종이어서 튀고 싶었던 게 아니라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수행하면 가학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나는, 예능 프로그램의 남성 엠씨들이 여성 연예인에게 뜬금없이 애교 부리기 같은 걸 시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수가 오글거린다고 누누히 말하며 피해왔던 동작을 억지로 하게 함으로써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엔딩에 이르는 과정에서 하나의 극적인(?) 에피소드를 추가하며 다른 결의 표정과 제스처를 화면에 담을 수 있고, 김이나 혹은 <톡이나 할까>여서 조련할 수 있었고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선민적 변별력을 어필할 수도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동작이 어떤 의미를 담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글거려서 싫어하지만 웃으면서 결국은 해주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던 것 같은데. 유행하는 손가락 하트 만들기를 기피하는 것이 여타 예능인의 밀당 클리셰가 아니라면, 운동선수에게 굳이 시키고 방송 예고에 ‘극복’이라는 둥 ‘흑마법사’라는 둥의 멘트를 사용해가며 강조할 일일까 생각하니 많이 씁쓸했다. 


김희진 선수에게 관심을 갖고 좋아하면서, 도교올림픽에서 선전한 여자배구 선수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그러면서 새삼 깨달은 건, 관심과 화제의 중심에 선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진중한 속내를 시청자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쇼비즈니스가 지배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살아남은 프로그램들의 기본값은 오락성과 화제성일 뿐, 무언가 다른 색깔을 보여주려는 시도나 노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곧잘 챙겨봤던 몇몇 예능 프로그램을 잘 안 보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물론 비호감 패널들의 존재가 가장 크지만, 언젠가부터 의미 없는 너스레와 호들갑이 난무하고 저런 상황극과 설정을 대체 누가 좋아하길래 빠짐없이 등장할까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 소화 불량이라고 느꼈다. 집 구경하는 게 좋아서 자주 봤던 <구해줘 홈즈> 역시 언젠가부터 전에 없이, 집 소개와 무관한 패널들의 폭주가 매번 출몰해서 도대체 왜 저런 걸 넣을까 정말 궁금해질 때가 많았었다. 대중들이 정말 그렇게 맥락 없이 오버하는 상황을 좋아하는 것인지, 제작진들이 상정한 가상의 시청자군이 있는 것인지, 여전히 궁금하다.

 

아무튼 방송이 끝나고 나니 온 sns가 그로 도배되어서 괜히 정신이 없었는데, 역시 이 나이에 '요즘 덕질'의 대상을 마음에 두는 건 쉽지 않구나 싶어졌다. 타임라인에 쉼없이 출몰하는 환한 존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되는 건 참 소중한 일인데, 사실 김희진 선수 좋아하면서 찾아보고 접하는 각종 짤들에서도 나는 자주 위화감을 느낀다. 그가 좋아한다는 주접에 대해서도 이런 게 세대 차이구나 싶을 때가 많고, 팬들이 올리는 각종 짤들에서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매력을 극대화해 느끼고픈 마음에는 공감하면서도 한 인간에 대해 이렇게나 현미경 들이대듯 해도 되는 것일까 싶을 때가 적지 않았다. 미디어도 팬덤도 이러한 시대에, <톡이나 할까> 정도는 이 시대의 정말 양반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겠기는 하다만. 그러나 손가락 하트와 관련한 부분은 나로서는 꽤나 불편하고 실망스러웠다. 왜 사람들은 누군가 웃으며 싫다고 할 때 그만둘 줄 모르고, 그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귀여워하는 것이 전혀 좋지 않다는 걸 자꾸 잊을까. 싫다는 거 시키는 건 폭력, 그건 달라진 세상에서도 변함없는 진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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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9. 1. 20:27

 

일하느라 바쁘게 살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날씨와 하늘이 마음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절감하는 날들이다. 딱히 일정이랄 것도 없으면서 날씨앱을 하루에 몇 번씩 보는 편인데, 이후 열흘 정도 예보에 강수확률이 없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1일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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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8. 16. 18:18

 


오랜만에 날이 훤히 밝은 후에 잠들었다. 새벽 2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나 내내 뒤척이다 반복적으로 어둠 속에 안경을 찾아 휴대폰을 보다가 한 번은 일어나 현관 밖에도 나갔다가 하며, 7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든 것 같다. 오늘은 평소 맞춰두는 알람 시간대로 8시 22분 혹은 33분에는 꼭 일어나고 싶은 날이었다. 2주일간 자리를 비웠던 김창완 아저씨가 회복하고 돌아와 건네는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를 들으며 하루를 기쁘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통영에 내려와, 강제되는 일 없는 일상의 리듬이 완전히 불규칙하게 흐트러지는 걸 방어하는 유일한 수단이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다. 20년이나 이어왔다지만, 라디오와 멀어진 어른으로 살아온 내게는 그야말로 '발견'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입장에서 일방적이지만, "무지개"의 가사처럼 그는 내 삶에 언제나 존재했다.

니가 기쁠 땐 날 잊어도 좋아 즐거울땐 방해할 필요가 없지
니가 슬플 땐 나를 찾아와줘 너를 감싸안고 같이 울어줄게
니가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게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면은 너의 길동무가 되어 걸어줄게

어두운 날 혼자 있게 된 집에서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처음 들은 게 국민학생 때였고, 중학교 때는 '산울림 Greatest Hits' 테잎에 담긴 노래들을 들으며 난생처음의 감정들과 조우하고 cbs am <꿈과 음악 사이에>를 들으며 '초희언니'의 건강과 쾌유를 바라면서 함께 울기도 했다. 라디오와 음반 속에서만 들려오던 노래들을, 김광석 박기영 안치환과 함께한 '본능적 처방' 콘서트니 충돌소극장에서 들으며 나는 그의 '천재'에 감탄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에 감응하며 어른이 되었다.

내 삶의 가장 커다란 분기점에도 '산울림'이 있었다. 이따금 발간되는 책 속의 이야기와 '김창완밴드', 지난해의 솔로 음반에 담긴 노래들은, "무지개"처럼 내가 슬플 때 찾아주고 홀로일 때 함께 걸어주는 고맙고 든든한 길동무다. 삼십 년이 훌쩍 넘도록 목소리와 선율과 생각을 나눠주는 그가 있어서 참 좋고, 매일 아침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지금의 내게는 선물이다. 모든 게 일방적인 내 입장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필, 돌아온 아저씨의 목소리와 만나는 순간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 오늘 새벽 불면이 닥쳤다. 나름 긴장을 했는지 비몽사몽간 아저씨의 목소리를 얼핏 듣기는 했지만 9시 15분, 10시 몇 분을 확인하고는 다시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잠결에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하는 하덕규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순간 정신이 번뜩 들어 일어난 덕분에 돌아온 아저씨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다. 

시인과촌장의 "풍경"은 나 역시 참 좋아하는 노래, <아침창>으로 건강하게 돌아온 아저씨를 환영하는 노래로 그만이다 싶었다. 오랜만에 들으며 '제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생활은 어그러진 채로 머릿속의 생각만 어지러운 나를 떠올렸다. 하는 일 없이 여기저기 마음만 내어주며 텅비어간다고 느끼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산란한 마음은 나의 제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의 엄살이 그대로 삶이 되려나 싶은 때에, 아저씨가 돌아오고 '제자리'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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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