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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1.02.24 3일 전
  3. 2021.02.22 생일날
  4. 2021.02.21 주리
  5. 2021.02.20 형제님들
  6. 2021.02.19 반성
  7. 2021.02.18 C가 누구든
  8. 2021.02.17 부모 이긴 자식
  9. 2021.02.15 귀가
  10. 2021.02.08 효녀
산책일기2021. 2. 25. 22:52

 
일 그만두고 통영행을 준비하면서 가끔이지만 제일 많이 이야기를 한 사람은 사촌이었다. 집 구할 겸 한 달 살러 내려와 9월 초에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으나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때, 결정은 오롯이 내 몫이었지만 뭔가 마음의 지지가 되는 대화가 필요했고 그때도 사촌과 통화했었다. 대구에 있으니 엄마나 아빠랑 만날 일 없고, 실수로라도 작은 이모한테 알려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든든한 상대였다.

설 전날 엄마한테 말하면서 사촌은 알고 있다고, 내가 엄빠한테 다 말한 다음에 통영에 오기로 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 이모가 전화했었다며 사촌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뭐라고 했냐니까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근데 통영 가서 좋더라도 너무 좋다고 하지 말라고 하더란다. 사촌은 이모 너무 귀여워서 알려준다고 했다. 아빠의 의외로 담담한 인정,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서운함은 깊었다. 통영에 도착한 나랑 통화를 하면서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니 몇 년 살고 다시 서울로 오라는 말을 덧붙였었다.

서울에 살 때,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좀 뜸해졌지만 보통 한 달에 한 번 엄빠를 만나 식사하고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챙겨왔었다. 엄마는 평소에 홈쇼핑에서 먹을거리를 사면 내 몫을 따로 챙겨놓았고, 국이며 찰밥, 혼자서는 안 해먹는 고기 반찬 같은 것들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가기로 한 날에는 나물이나 오징어채무침, 잡채, 전 같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챙겨줬다. 아빠는 식사를 하고 두어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피자를 시키라고 했고, 나눠 먹고 몇 조각 남은 건 싸가서 먹으라고 했다. 설이나 추석에는 전날 가서 자고 당일날 아침을 먹은 뒤 오빠네 가족이 새언니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를 데려다 줬는데, 그럴 때면 쌀이며 김치에 갖은 생필품까지 더해진 엄청난 꾸러미들이 함께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서른 살 즈음까지는 입이 많이 짧은 편이었고, 먹는 걸 좋아하고 음식 만들어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 엄마에게는 혼자 뭘 먹고 사는지 알 수 없는 딸을 그렇게 챙겨주는 게 기쁨이었던 것 같다. 먹는 건 대충 한 끼 때우는 걸로 충분한 나는 엄마가 살뜰히 챙겨주는 음식들을 작은 냉장고에 채워두고 버리는 것 없이 알뜰히 잘 먹었다. 아빠는 맛있는 식당을 알게 되면 가족이 만나는 날 식사 장소로 잡아 티내지 않고 나를 챙겼고, 집에 가기로 한 날을 앞두고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이야기하면 엄마는 반가워하며 먹고 싸갈 수 있게 음식을 해줬다. 생각해 보면, 이 나이 먹도록 엄빠한테 의지하고 살아온 셈이다.

이번 설에는 날벼락 같은 일방고지를 하고 음식 챙길 분위기가 아니었고, 안산 지인집에서 며칠 더 있다가 오느라 전처럼 바리바리 싸오지 않았다. 와중에 큰 김치통 두 개와 가져간 가방은 꽉 채웠지만, 통화하면서 엄마는 평소처럼 음식을 충분히 챙겨주지 못한 걸 많이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나이도 있고 하니 이제 배추 한 포기 사서 김치도 담궈 보라고, 하다 보면 재미도 있고 느는 거라고 했다. 김치를 담군 적은 없지만, 예전 공부방에서 일할 때 2년 가까이 스무 명 아이들의 밥과 간식을 직접 챙겼기 때문에 음식하는 걸 어렵게 느끼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엄마의 음식을 의지해 살았고 감사했지만, 통영에서는 내 힘으로 해결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화요일엔 홈쇼핑을 보다가 고래사어묵세트를 주문해서 보냈고, 오늘은 이런저런 반찬거리를 챙겨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 보통 용건 있을 때만 연락하는 아빠는 간략족보 업글버전을 시험 공유하고 "잘 먹도록"이라는 한 마디를 전했다. 아빠의 카톡을 받고, 엄마의 택배를 받으며 부모와 자식은 뭘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자식이 없으니 나는 죽을 때까지 모를 마음이다. 어렸을 때 뭐든지 마음대로 하는 나 때문에 화가 나면 엄마는 나중에 꼭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보라고 했었는데, 만약 나한테 꼭 나 같은 자식이 있다면 나는 약오르고 얄미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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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24. 23:49


지난주에 싸다고 영화 막 보고서 반성해놓고 이번 주에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 뻔했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다섯 편을 홀린 듯 예매했고, 모두 롯데시네마에서 1천 원 관람쿠폰 이벤트를 하는 영화들인데 그중 정말 보고 싶은 건 [라스트 레터] 하나였다. 오늘은 이어 볼 수 있는 시간에 상영하고 로버트 드 니로, 우마 서먼, 크리스토퍼 월켄 등이 나온다기에 [워 위드 그랜파]를 함께 봤는데 시작부터 자막에 제공 ㈜티브이조선미디어렙이 뜨더라ㅠ 막내 손녀 제니역의 배우가 너무나 귀여워서 나올 때마다 행복했고 대배우들의 유머러스한 연기도 좋았지만 그냥 웰메이드 가족 영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영화였는데... 해서 정신줄 잡고 일단 나머지 영화들은 취소했다. 


기절베개를 사용한 지 이틀째다. 첫날은 자고 일어나니 오른쪽 뒷목이 종일 엄청 뻐근했는데 오늘은 뒷목이 전체적으로 종일 불편했다. 첫날은 첫날이라 정말 기절하나 보자 하며 누웠는데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할 수 없고, 어제는 잠이 안 와서 한참을 뒤척였다. 기절베개 받았을 때 택배상자 안에 엄지손가락 절반 정도 크기의 돌멩이가 들어있었다. 무지 당황스러웠고 뭐지 싶어 안 버리고 현관 바닥에 놔뒀는데, 기절베개 사용한 이틀이 다 불편하고 보니 그걸 볼 때마다 돌의 저준가 하는 시덥잖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돌을 깨끗이 씻어서 머리맡에 두기라도 해야 하나?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어떤 컨디션일지 궁금하다.


토요일에 사촌이 온다. 대구와 서울에 살았지만 어렸을 적엔 방학이 되면 대구 외할머니 댁에서 만나 며칠씩 놀았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몇 년에 한 번씩 뜸하게 만나지만 동갑이라 친구 같은 사촌이다. 2013년에는 숙명여대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니느라 대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집에 와서 함께 지냈는데, 관심사나 취향은 다르지만 나이 먹으면서 몇 안 남은 편하고 말이 잘 통하는 친구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재작년 여름, 대구에서 디저트카페를 하는데 휴가를 맞춰 며칠 문을 닫고 우리집에 와서 맘먹고 함께 놀았다. 르 꼬르동 블루 다닐 때 이후 오랜만에 서울에 놀러온 사촌과, 머지 않아 오래 살았던 서울을 떠날 계획인 나는 8월 초 3박 4일 동안 부지런히 곳곳을 싸돌아다녔다.


하루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보고 익선동과 인사동 북촌 광화문을, 다음 날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체험전을 보고 망원시장을 구경하고 홍대 앞과 경의선 숲길을 걸었다. 다음 날은 예의상 엄빠네 가서 밥 먹고서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을 보고 여의도 한강공원 밤도깨비야시장 구경하고 밤에 공연을 봤다. 카페하는 사촌 덕에 익선동 '경성과자점'이며 홍대 앞 '몽카페 그레고리' 같은 데를 가봤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나치며 나중에 언젠가 했던 '아이다호'와 '공간 비틀즈'는 결국 가보지 못했다. 폭염 속에 돌아다니다가 너무 더우면 다이소에 들어가서 잠시 땀을 식히고 또 돌아다니고 하면서 늦은 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나이에 뭔 극기훈련이냐며 에어컨 틀어놓은 거실에 나란히 편 이부자리에 누워 즐거운 수다를 떨었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돌이켜 보니 새삼스럽고 그리운 시간이다.


사촌이 오기로 한 날짜를 정한 뒤부터 열흘 정도까지의 예보가 나오는 아이폰 날씨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함께하기로 한 날들을 포위하듯 계속 비였던 예보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토요일에 반짝 햇님이 떴었는데 그제부터는 토요일 바람, 일요일 햇님, 월요일 비다. 오랜만의 여행에 날씨가 안 좋으면 괜히 내가 미안할 것 같아 연락했더니 나 보러 오는 거기도 하고 날씨는 상관없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날씨가 극적으로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주에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도 모르게 5일 남았네, 4일 남았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4시에 오기로 한 친구를 생각하며 3시부터 행복해질거라던 [어린 왕자]의 여우가 떠오른다. 3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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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22. 23:12


이다, 김창완 아저씨 : )  모두들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난 대체로 내가 좋아했던 걸 좋아하고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들 안에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중 가장 너른 스펙트럼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은 김창완.

국민학교 때 아마도 처음으로 혼자 집에 있게 된 오후, 좀 두렵고 음산한 기분에 휩싸여 있을 때 라디오에서 나온 "지나버린 날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안도했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시간이 흐르며 어떤 의지가 개입되었을 수도 있지만, 미니 2층 거실의 육중한 나무창문과 흐린 날이어서 어두웠던 실내 공간의 적막한 분위기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즈음 뮤지션의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구성해 들려주던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에서, 또래보다 어린 나이에 국민학교에 입학해 수업의 시작과 종료 종소리를 구분하지 못해 종이 치면 운동장에 나가 모래놀이를 하고 선생님이 안아서 교실로 데려갔다던 이야기 속의 아이를 혼자 오래 귀여워했다. 중학교 때는 산울림 그레이티스트히트 2집과 3집을 열심히 들었는데, "독백" "청춘" "회상"의 세계에 푹 빠지고 가끔은 무서워 죽을 것 같으면서도 새벽에 "떠나는 우리 님" 같은 노래를 굳이 들었던 기억도 있다. 늦은 시간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다 그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환해진 마음으로 매일 들었던 cbs <꿈과 음악 사이에>, 나중에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그 시절 밤의 라디오는 내게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그 시절이 지난 뒤 몰입의 온도는 달라졌지만 고등학교 때 대학로 충돌2에서 열린 아주 작은 그의 솔로 공연이나 김광석 박기영 안치환과 함께한 꽤 큰 무대에서의 '본능적 처방' 콘서트는 오랫동안 충만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후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따금 그가 내는 책과 새로 발표하는 노래들은, 그의 노래 "무지개"처럼 내 삶에 함께였다. 통영으로 이사한 후 아침마다 라디오로 듣는 그의 목소리 덕분에 지금의 나는 자주 행복하고, 지난해 발표한 <시간의 문> 음반의 노래들을 들으며 그에게 고맙다.

오늘은 그런 그의 생일이어서 기분이 좋았고,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에서 알게 된 #saveourstages 공연 전일권을 나에게 선물로 사줬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축하의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없어도 흔쾌하고, 그가 존재하는 기쁨으로 내게 선물해도 즐거운, 이런 거리와 여유는 나이를 먹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일이다. 김창완 아저씨,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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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21. 22:36


무려 일을 하였다. 엄청 싫지만 해야만 했던, 일하던 단체에서 내는 책의 내가 쓴 부분 조판본 1교 및 수정. 초고를 2018년에 썼나 그랬고 일이 밀리고 밀리면서, 2019년 말엔가 최종본을 넘겼으나 또 밀리고 밀리는 사이 여러 상황이 변해 내용을 부분적으로 수정했었다. 그러나 일은 또 밀리고 밀렸고, 그만둔 후에 그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6월 말에 그만두고 7월 중순에 진짜 최종본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책은 어떤 큰 주제에 대한 길라잡이식의 공동집필서, 단체 활동가들이 한두 챕터씩 나눠 집필하는 거였고 나는 두 챕터를 a4 10장 정도 분량으로 썼다. 글 쓰는 걸 아주 싫어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없거나 잘 모르는 분야라서 새로 공부해야 하는 글을 쓰는 건 많이 싫어하는데(게으르니까), 단지 그런 이유로 빼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처음 기획안이 제출되고 회의를 시작한 게 2017년 상반기, 담당자는 엄청나게 의미를 부여하며 자주 관련 논의를 공유했고 2019년 출간을 목표로 했으나 진행은 더뎠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니 일사천리가 될 수 없는 건 양해하지만, 거창하고 활발한 계획과 논의 단계를 지나 진행 과정에 대한 점검은 유야무야. 편집자의 사정까지 더해져 애초 목표했던 시기를 한참 지나버렸고, 일정 부분 불가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사실 어이없는 일이다. 어쨌든 남은 공정이 있으니 일 그만둔 후 단체의 누군가 마주칠 때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두어 번 물었었는데, 발간 시기도 중요하니 2020년은 넘기고 2021년에 내기로 했다는 답을 들었고 아연했다. 글을 다시 고칠 게 아니라면 그런 고려 대신 빠른 진행이 맞는 것 같은데, 솔직히 오만한 발상이라고 느꼈고 괜히 민망해져서 그럴 수만 있다면 내 글은 빼달라고 하고 싶었다. 암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책이 조만간 나오기는 할 모양인지 2월 17일에 조판본 1교가 전달됐다. 언제까지 달란 말도 없어서 주말까지 보내겠다 하고 오늘 오전 11시에 공유된 파일들을 열었다. 교정은 기계적으로 볼 수 있는 거니까 하기 싫은 마음만 달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12월에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버려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보완해야 할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끝났다고 생각해 털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살피고 되짚는 일은 생각보다 짜증이 났다. 실은 안 끝났는데 그렇게 생각한 내 불찰도 있지만, 그보단 그냥 이 작업 자체에 대한 짜증이 더 큰 것 같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꽤 싫어하게 된 주황색으로 일기를 쓴다. 정확히 10시 4분에 일을 마쳤고, 실제 일한 시간은 3시간이 채 안 되겠지만 너무 하기 싫어서 마음으로도 계속 주리를 틀었으므로 오늘은 감정노동까지 꽤 한 셈이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아 꼼꼼히 봤으니 2교는 그냥 검토만 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자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평정심을 되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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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20. 22:29

 

세 분의 형제님들을 만났다. 한 분은 책으로, 두 분은 공연으로. 산책경로 중 하나였던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임동민 & 임동혁 듀오 리사이틀 - 통영> 공연을 일찌감치 예매해뒀고, 오늘이었다. 임동혁은 이름만 들어봤고 클래식 문외한이지만, 앞으로는 좀 들어보고 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쇼팽곡이 많아서 예의상 공연 전에 읽으려고 산 [쇼팽, 그 삶과 음악]의 전기 부분을 낮에 읽었다. 다음 주 토요일엔 <손민수 피아노 리사이틀>, 베토벤을 연주하길래 예매하고 [베토벤, 그 삶과 음악]도 샀는데... 그때 사촌이 오기로 했고 별로 당기지 않는대서 공연 예매는 취소하고 책도 묵히는 중이다. '그 삶과 음악'은 15권 정도 나온 시리즈인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한 권씩 읽어 보고 음악도 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한 권으로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알 수 있겠냐마는, 쇼팽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보니 꽤 재밌게 읽었고 형식적이지만 나름의 예의를 갖춘 기분이 됐다. 5시 공연이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4시 조금 넘어 나갔다.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내복 패스하고, 클래식 공연이니 롱패딩은 좀 아닌 것 같아서 있는 옷 중 그나마 덜 잠바떼기 같은 겉옷을 챙겨 입었다. 가는 길에 자전거 타는 사람도 몇 보였고, 유람선터미널 근처 요트정박지 앞에는 적잖은 캠핑카와 텐트와 사람들이 있어 날 좋은 주말 실감이 났다. 좌석 거리두기지만 매진이어선지 통영국제음악당 전면의 주차공간은 꽉 차있었고, 로비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 자리는 2층 맨 뒷줄, 무대를 바라볼 때 오른쪽 구역의 통로쪽 좌석이었다. 프로그램북에 연주자와 곡명이 차례대로 명기되어 있어 누가 누군지 헷갈릴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형제는 외모부터 연주 스타일까지 확연히 달랐다. 먼저 등장한 임동혁은 단정히 차려 입은 수트에 타이를 맸고 걸음걸이나 동작부터 연주까지 무척 정돈되고 절제하는 느낌이었다. 한 곡이 끝난 후에도 마지막 음의 여운이 가실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잠시 사이를 두고 다음 곡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한 곡들이 녹턴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피아니시모 부분은 당연하고 연주하는 내내 나까지 자연스레 숨을 죽이고 정지 상태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가 퇴장한 후 스태프가 좀 더 낮은 피아노 의자를 가져와 전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두고 기존의 피아노 의자를 가져갔다. 연주자마다 자신에게 맞는 피아노 의자를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이어 등장한 임동민은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수트 안의 셔츠 단추를 푼 모습이었다. 좀 비스듬히 놓인 거 아닌가 싶었던 피아노 의자에 바로 앉아 연주를 시작했는데, 상체나 페달을 밟지 않는 왼쪽 다리도 박자와 리듬에 따라 움직임이 많아 때로 의자가 밀리기도 했고 건반을 세게 내리치는 부분에서는 튀어오를 듯한 몸의 반동이 엄청났다. 걸음걸이도 연주하는 모습도 거침없이 분방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재즈 연주자나 퍼포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곡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이 실컷 박수를 치게 해주고 다음 곡 연주를 시작해 좋았고, 혼신을 다해 두 번째 곡의 연주를 마친 뒤엔 피아노 앞쪽을 약간 의지하듯 잡고 일어나 수트의 단추를 잠근 후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5분간의 인터미션 동안에는 피아노 한 대가 무대로 더 들어오고 스태프들이 나와 건반 점검을 했다. 2부가 시작되자 왼쪽 피아노에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연주를 시작했는데,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앉는 걸 보니 "젓가락 행진곡"이 떠올랐다. 1부에서 본 두 사람의 연주할 때 동작이나 움직임의 범위, 스타일 같은 게 다르다고 느껴서 저렇게 치면 불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물론 나의 기우였고. 저들의 부모님은 저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하실까 하는, 심히 맥락없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큰 불효를 선사한 자식이지만 아직 양심은 살아 있는 모양이다. 마지막 곡은 각자의 피아노에서 연주했는데,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하지 않는데도 흐트러짐 없이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게 신기했고 집중하는 중에도 악보 넘겨주시는 분에게 고갯짓 사인을 보내는 게 멋져 보였다. 앞의 곡들보다 격렬한 부분이 많았고 격정적으로 끝나는 곡이어선지, 연주를 마친 후엔 두 사람 다 피아노를 한 손으로 짚으며 인사를 했다. 클래식 공연 초면인으로서 원래 다들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저 정도로 몰입해서 연주를 하고 나면 순간 비틀거릴 만큼 탈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박수가 이어지자 커튼콜 인사를 마친 뒤에 다시 나와서 정말 마지막 앵콜곡을 연주했는데, 미리 준비는 했겠지만 프로그램북엔 명기되어 있지 않으니 누구의 어떤 곡이었는지 알 수 없어 아쉬웠다. 연주된 일곱 곡 중 그나마 약간은 들어본 것 같은 곡이었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 앵콜곡 들으면서 뭔지 궁금해서 주요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리듬 부분을 외워보려고 속으로 몇 번 되뇌었는데, 연주가 끝나는 순간 휘발됐다.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여섯 곡 중 아는 곡이 하나도 없어서, 유튜브에서 한 번씩은 미리 찾아 듣고 갔지만 단 한 곡도 반갑게 기억해낼 수 없었다. 사실 제대로 아는 클래식 작품이 없다.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같은 작곡가들의 아주 유명한 작품들은 누구의 작품이라는 거 정도나 겨우 아는 것 같은데, 딱히 관심을 가져본 일도 없지만 가사가 없고 아주 명료한 멜로디라인이 없는 연주곡은 어떻게 기억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실은 올해 [1일 1클래식 1기쁨]도 샀는데, 하루 한 곡 챙겨 듣는 것도 아직까지는 마음처럼 쉽지가 않고.

그러나 오늘의 공연은 엄청나게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라이브 공연이어서도 그랬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적막한 투쟁일까 싶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 때로 무아지경에 빠지는 느낌이 들만큼 집중하고 함께 몰입하게 만드는 마법의 순간이기도 했다. 어떻게 피아노를 저렇게 치나 싶어 공연 내내 손이 궁금해 나도 모르게 몸을 통로 쪽으로 기울이며 들었는데, 물론 손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공간을 채우며 퍼지는 건반의 소리들이 시간의 결을 감각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는 로비부터 음악당 진입로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붐볐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부분의 목소리가 감동과 행복에 들뜬 것 같은 톤이어서 나까지 기분이 밝아졌다. 아는 게 없으니 잘 표현도 할 수 없지만, 더듬더듬하면서라도 조금씩 알아가보고 싶은 세계를 만난 기분이다. 형제님들, 오늘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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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일기2021. 2. 19. 23:50


사흘 동안 여섯 편의 영화를 봤다. 보고 싶어서 본 건 2편. 나머지는 거제까지 간 김에 혹은 쿠폰으로 1천 원에 볼 수 있으니까 봤다. 오늘의 두 번째 영화는 너무 빨리 찾아온 올해 최악의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는데(영화를 보기 전엔 알 수 없지만, 설마 더 심한 영화를 볼 일은 없길 바란다.), 돈 없고 시간 많다고 쿠폰의 위력에 쉽게 혹한 내가 새삼 한심해졌다. 짧은 암전 후에 다른 세상이 펼쳐지듯 영화가 시작되는 게 좋아서 영화관에 가는 걸 많이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영화나 막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좋아하는 걸 함부로 대하다가 벌 받은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2월에 부산영화여행을 건너뛰기로 한 건 참 잘한 결정이다.

첫 번째 영화를 보고 나니 A가 전화했었다는 캐치콜 문자가 떴다. 용건은 다른 좀 무거운 일이었는데, 이야기 끝에 B랑 날짜 다시 맞춰보고 있다고 해서 미안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서 영화관까지 왕복으로 걷자니 좀 먼 길이어서, 올 때는 안쪽길을 택해 항남동을 지났다. 바닥에 있는 통영고지도 동판을 몇 차례 유심히 본 기억이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통영'이라고 써있는 각종 맨홀뚜껑들을 처음 발견했다. 차가 많이 지나는 길이긴 하지만, 상태가 최근에 교체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쩌면 이제야 봤을까 신기했다. 내게만 집중하느라 놓치고 지나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겠구나 싶다. 조금씩 복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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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18. 23:33


오늘내일 영화 보러 오가는 길은 좀 긴 산책 삼으려고 했는데, 아침에 베개를 넣은 세탁기가 말썽이었다. 이사하면서 오래된 베개솜들을 버리고 두 개만 남겼는데, 남겨서 쓰고 있는 것들도 시원치 않고 기절베개가 궁금하기도 해서 주문을 했다. 가끔이겠지만 집에 놀러올 지인들에게 폭신한 베개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베개솜 2개랑 베개커버 2개를 넣었는데 15kg 드럼세탁기가 감당을 못해 UE가 떴다. 통 속에서 잘 정리하는 걸로도 해결이 안 되어 결국 물이 뚝뚝 떨어지는 베개솜 하나는 빼두고 한 개씩 헹굼과 탈수를. 그러다 보니 영화 보러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

버스에서 A의 전화를 받았다. 3-4월 중 놀러오기로 했는데, 원래 함께 오기로 했던 B와 내가 모르는 C도 함께하는 걸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A는 C가 이곳 전문가이며 좋은 사람/언니라고, 나도 B도 술을 안 마시니 C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많이 당황했고, 전혀 모르는 누군가 우리집에 오는 건 불편하고 싫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난해 A와 2박 3일 함께한 여행에서 B를 알게 됐고, 그때 통영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 놀러가겠다- 오시라- 했었다. 어지간해선 남에게 빈 말을 하지 않으려고 늘 신경쓰기 때문에, B와의 대화는 진심이었고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등장한 C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들이 정한 날짜가 다른 지인이 오기로 한 날이어서, 다시 연락을 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아는 A는 상대의 말을 세심하게 듣고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하며 술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초면인과도 잘 사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들과 뭔가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상대의 말을 세심하게 듣는 편인지는 모르겠고,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마음으로만 생각하다가 접는 경우가 더 많아졌으며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다. 초면인과 사귀는 건 고사하고 초면인을 마주하는 것도 불편하고 지금은 여러 사람들 속에 있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어려서는 '다정도 병인양하여'를 타고난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언젠가부터(라고 말하는 게 간편하다.)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살아 왔다. 친구 없어진 지는 오래고, 편하게 연락하는 지인도 몇 되지 않으며, 일상의 소소한 일이나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산 지 꽤 됐고, 마음 깊은 곳의 다정함이나 친밀함을 길어올릴 기력을 다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어느 시기 나를 살게한 무언가는 늘 존재했는데, 주변의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노래나 책, 영화, 멀리 있는 사람 혹은 죽은 사람이었다. 자초하기도 자처하기도 한 이런 일상은, 일마저 그만두니 더 극명해졌다.

A와의 통화와 C의 존재, 그에 대해 순간적이지만 괴롭다고 느낄 만큼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극장의 객석에 앉아서도 그런 마음이 가시지 않아서, 영화에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난처한 상황을 만든 A에 대한 원망스러움도 없지 않았지만, 새로운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폐쇄적인 스스로에 대해 자꾸만 생각이 가닿았다. 일할 때는 알량한 책임감으로 '일 모드' 전환을 감행했지만, 최소한의 사회성도 요구받지 않는 날들을 보내며 점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는데...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이었나, 누구와 함께일 때 어떤 사람이었나, 무엇을 할 때 어떤 사람이었나 라는 식의 구체적 전제가 없다면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마음이 내내 복잡했다. 어쨌든 지금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자유롭지만 깊이 가라앉은 시기이고, 흔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낯선 누군가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구안 뒷골목의 시 판넬 앞에서, 속사정도 모르면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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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17. 23:51


어제부로 엄마의 눈물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새로운 차원의 일상이 시작된 셈. 마침 좀 더 깔끔한 옷장 및 침구류 정리를 위해 주문한 리빙박스가 도착했고, 닷새쯤 비웠던 집 정리를 하며 어제가 지나갔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두 편의 영화를 보고, 토요일에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하는 임동민&임동혁 쇼팽 피아노 콘서트를 보고, 다음 주 금요일부터 2박 3일간은 대구의 사촌이 와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하여 2월에도 부산영화여행을 하는 건 사치다 싶어 건너뛰기로 했는데, 주연배우의 강렬한 비주얼에 혹해 [마리오네트]를 꼭 보고 싶었다. 통영에선 하지 않아 아쉽던 차 cgv 스피드쿠폰 무료예매에 성공했고, 거제까지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건 좀 그러니까 [인투 더 미러]도 함께 보고온 게 오늘.

며칠 집 떠났다가 돌아오니 피곤했고 속상해하는 엄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고 밤에 잠이 안 왔다. 새벽 늦게 잠들었다가 도시가스 점검하러 오신 분의 벨소리에 겨우 일어나, 영화를 취소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세수하고 나갔다오기로 마음을 굳혔다. 2월 초의 cgv거제행이, 버스 대기 시간 감안해도 2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 덕분. 거제대교 건너 환승정류장에서 34분을 기다리는 건 좀 지루했지만 바닷가를 지날 때는 마음이 트이고 좋았다.

 

영화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버스정류장에 면한 공원에 잠시 들렀다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우뚝한 성벽이 거제 포로수용소의 흔적이라는 걸 알았다. 문득 김수영 시인이 떠오르고, 설마 흔적이 이것뿐일까 싶어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라는 데가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사놓기만 한 [세상의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를 챙겨 읽고 따뜻한 날 거제에 오게 되면 한 번 가봐야지 싶어졌다. 잊지 말아야지.

영화 보고 돌아와 통화한 엄마는 거의 평정심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이런 방식으로 이기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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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일기2021. 2. 15. 21:10

 

닷새 만에 집에 왔다. 일곱 편의 영화를 보고, 한 달 건너뛴 책 없는 책 모임을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였던 통영행에 대해 엄빠에게 말씀드렸다. 수년 전부터 너무 늦기 전에 서울을 뜨겠다고, 통영에 가서 살고 싶다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통영은 엄마가 가장 싫어하는 지역이 됐고, 언젠가는 정말 화를 냈다. 나름 충격 완화를 위한 거였는데 반응이 좋지 않아 이후에는 엄마 앞에서 입에 올리지 않았다.

2018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하고 결심이 굳어졌다. 차량이 우회전하는 길목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널 만한 차간 거리가 생겨 나름 건넌다는 신호를 보냈는데, 가장 앞에 있던 코란도가 와서 옆구리를 치었다. 빤짝- 잠시 정신을 잃었고 조금 붕 떴다가 떨어졌다. 코란도 뒤에 있던 차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나를 챙겨줬다. 코란도 운전자는 전방주시를 제대로 안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고, 그나마 우회전하는 길목이어서 속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코란도에 실려 도착한 응급실에서 처치를 하고 반깁스한 다리를 절며 집에 오는 길에야 옷이 찢어졌다는 걸 알았다. 기절하듯 소파베드에서 잠들었다가 다음 날 눈을 떠서 물리적으로 일어나기까지 10분은 걸린 것 같다. 목이 움직이지 않고 온몸이 쑤시고 양다리며 옆구리가 잔뜩 붓고 보라색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들에도 쓸린 상처들이 있었다. 혼자 지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전날 들른 병원에 갔다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금요일 오후라 급한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한방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이 정도는 큰 사고라며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침상이 없었다. 원무과에 예약을 해두고 병원 앞 도로에서 휴대폰으로 교통사고 입원 가능 병원을 검색하고 전화하고를 반복했으나 실패, 응급실에서 한방병원으로 이동하는 택시기사가 얘기해준 병원에 전화했더니 거기도 침상이 없다며 원무과에서 다른 병원을 소개해줬다. 대충 짐을 싸서 도착한 병원은 음... 암튼, 사흘을 거기에서 보내고 자리가 났다는 한방병원으로 옮겨 열흘간 입원을 했다. 퇴원할 때 의사는, 골절은 아니어서 더 입원할 수는 없지만 먼저 정형외과에 꼭 가보라고 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오른쪽 무릎에 혈종이 많고 감염 우려가 있다며 마취도 없이 생살을 째서 짜냈고, 순전히 아파서 우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걸 왜 구구절절 쓰고 있는지 모르겠는데(새삼 운전자에 대한 분노!), 암튼 그 사고 이후 사람 언제 어떻게 갈지 모른다는 평소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코란도 운전자가 정신 못차리고 속도까지 냈다면 난 그때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설 전날 밤, 지난주 어쩌다 보니 나의 실업을 먼저 알게 된 엄마가 자초지종을 물었고 결심한 대로 통영으로 이사했다고 먼저 말하게 됐다. 엄마는 경악했고 본의 아니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냥 이사를 한 것일 뿐이라고, 통영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다고, 미리 말하면 걱정과 싸움이 계속될 것 같아 그랬다고 나도 모르게 울먹이며 얘기했지만 엄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소 설이나 추석 전날 함께 잘 때 엄마는 11시도 안 되어 곯아떨어졌는데, 그날은 나도 엄마도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오전에 아빠에게 말씀드렸는데 의외로 언성 한 번 높이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주셨다. 덕분에 엄마도 조금은 진정이 됐지만 일요일까지도 눈물 섞인 전화를 받아야 했다.

어쨌든 이제 거짓말은 끝났고, 홀가분하고 후련하다. 너무나 속상해하고 자꾸만 우는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불편하지만, 모든 게 내 뜻대로 될 수는 없으니 그런 불편함과 미안함은 감내할 몫. 안산 지인집에서 월요일에 통영으로 돌아왔다. 터미널 가는 길 통화한 엄마는, 아빠가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라고 했다며 애써 평소의 목소리로 이런저런 당부를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자식인 것 같기도 하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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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8. 23:46

 

오랜만에 나갔다 왔다. 1월에 매일 나가기에 성공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구나 싶어 강박을 내려놨더니 자연스레 집순이가 됐다. 산책 겸 용건이 있는 외출이었는데 목적 중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실패했다. 설에 집에 갈 거라 미용실에 들르고, 아빠의 명이었던 족보(?ㅠ) 수정본 10장을 출력해야 해서 동호동에 있다는 브랜드문구점에 들를 계획이었다.

 

해저터널 지나 서피랑 쪽으로 걸었는데 새삼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혼자 통영에 여행 왔던 몇 년 전에는 서호시장부터 중앙시장까지 이어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만 해도 들뜨고 좋았다. 바닥을 보면 보도블럭 사이에 이중섭의 작품이나 윤이상의 교가 같은 것들이 있었고 버스정류장이며 가게 창 등 곳곳에 통영 관련 작가들의 글귀나 사진이 있어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했었다. 그렇게 걷다가 '윤이상과 함께 학교가는 길'로 이어지는 어느 골목 코너의 간판을 '가고파의 상실'로 읽고, 통영은 가게 이름도 시적이군 생각했다가 '가고파 의상실'인 걸 알고 혼자 머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간판에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기는 하다. 

 

서피랑을 지날 때가 5시쯤이었는데 오전에 아침겸점심을 먹어서 배가 고팠다. 혹시나 해서 서피랑떡볶기집에 들렀는데 장사가 끝났다고 하셨지만 어묵볶이에 튀김이라도 먹겠냐셔서 감사히, 맛있게 먹었다. 처음 먹었을 때는 뭘 그렇게까지? 했는데, 가끔 생각나고 그 근처를 지날 때면 강렬히 당기는 맛이다. 손님이 나뿐이어서 시크하게 말 거시는 할머니랑 잠시지만 이야기도 나눴다. 먹는 동안 세 번이나 손님이 왔고 한 분은 남은 튀김과 떡볶이 국물, 어묵을 포장해가셨는데 뭔가 내가 럭키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예정에 없이 떡볶이를 먹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혹시 문을 일찍 닫을까 싶어 브랜드문구점에 확인 전화를 드렸는데, 출력 자체가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2018년 가을, 아빠는 A4용지에 빽빽하게 그린 한 장의 가계도 같은 것을 내밀며 컴퓨터로 정리가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자식이라고 효도하는 것도 없고 사근사근한 딸도 아니기 때문에, 그거라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받아 왔다. 기본만 할 줄 아는 포토샵 작업은 난감해서 한글파일로 만들어 그해 추석에 출력해 가져갔다. 그러면 끝날 줄 알았지만, 이후 명절을 앞두고 매번 소소한 수정사항이 생겼다. 수정을 거듭하면서 출력한 매수가 누적 100장은 훨씬 넘었는데, 친가 시골에 안 간 지 수십 년이 됐기 때문에 시제니 뭐니 해서 모인 친척들 중 이걸 받고 반가워할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설에 드리면 되는 거라 다른 방법으로 일단 해결은 했는데, 명절 앞두고 이걸 수정할 때마다 느끼는 거리감과 반발심과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아빠가 평소에 뭘 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이런 거라도 해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단절감을 거두기 어렵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 그렇게 살아왔기에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뿌리'(?)에 애착하는 거라고, 아빠의 몰입을 시대착오적으로만 보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의 애쓰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간헐적 효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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