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8시 33분 혹은 44분 알람을 들었으나 정신을 잃(은 듯 잠들)었고, 유발샘은 환한 옷을 입고 이미 와계시다던가 하는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를 잠결에 들었으나 또 정신을 잃(은 듯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박하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 오고 이런 적이 없는데, '나 아픈가?' 늦잠 자고 일어날 때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변함없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응, 안 아프다. 어제 루틴이라고 적어놓고 바로 다음 날 이렇게 된 게 웃겼지만, 다량함유된 자기보호본능 덕분에 푹 자고 일어나니 몸도 개운하고 좋아진 것 같았다.
날씨가 종일 흐렸다. 1월에 가장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 집안일은 세탁이다. 설연휴를 전후로 오겠다고 한 지인들을 생각하며 무려 이불커버세트와 이불솜 및 토퍼 등 침구류를 여러 세트 주문했다. 좁은 베란다 및 사생활보호필름을 붙여 해가 잘 들지 않는 확장된 베란다에서 이들을 건조하는 것도 일이고, 이불커버를 뒤집어가며 말리고 이불솜과 체결하는 것도 생각보다 일이다. 오늘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불솜과 커버 차례였고 이제 토퍼 두 개가 남았는데, 날이 흐려 속도의 흐름이 살짝 끊겨버렸다. 딱히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게 중요한데, 내일부터 맑다니 기대해야지.
롯데시네마 통영점 시간표를 확인하니 [미스터 존스]를 이번 주중에 계속 상영하길래, [걸] 감상을 올린 후에 보기로 했다. 마침 현관에서 바로 이어지는 주방을 가리려고 주문했으나 천장 꼭꼬핀이 들어가지 않아 걸지 못하고 있던 패브릭파티션을 걸기 위해 지난주에 주문한 매직파티션이 오후에 도착해서,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을 들으며 정리를 했다. 처음 패브릭파티션을 주문할 때 생각했던 그림과는 달라졌지만 어쨌든 싱크대가 훤히 보이는 것보단 낫고, 가운데 갈 곳 잃은 고정끈이 거슬려 작년 5월 통제영 옆 굿즈샵에서 산 패브릭책갈피 두개를 달아줬더니 보기가 한결 괜찮아졌다. 으쓱~
어제 정정당당하게 산책을 마쳤지만, 1만 보 코스 몇 가지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오늘은 나름 탐색을 시도했다. 충무교 앞에서 미수동 쪽으로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김춘수유품기념관까지 해안로를 걷고 봉평오거리 쪽으로 나와 돌아오는 길을 일단 가보기로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겨울방학이 유동적이 된 건지 통영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처럼 통영의 인파과 활기를 느끼며 충무교까지 걷고, 몇 년 전 통영여행하며 엄마아빠가 묵었다는 거북선호텔을 지나, "사랑한다"는 절규를 지나, 통영대교와 닿은 공원을 오늘은 구석구석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름이 통영해양관광공원이었는데 해안을 포함한 여러 갈래 산책로에 지압길이며 인공암벽이며 쌈지도서관 등 여러 가지가 소소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지금도 유효한지 모르지만 우림이와 온유가 사귄다는 정보까지 전달하고 있었다, 축하해요.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해안길을 지나 제주해녀상과 등대를 지나 김춘수유품기념관 앞 벤치에서 숨을 돌리고 미륵도 쇼핑의 메카 탑마트에 들렀다가 봉평오거리에 이르니 걸음수가 7천 보 정도였다. 대로로 바로 가면 오늘도 계단행이겠다 싶어 봉평오거리에서 통영도서관을 지나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드문 인적에 비하면 스산하지 않았고 사거리에서 좌회전, 주공아파트에서 내려가면 대략 1만 보가 되겠다는 계산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처음 갈 때와 두 번, 세 번 갈 때의 느낌이 정말 다르다. 오늘 걸은 길들도 여행 와서 혹은 산책으로 처음 지날 때는 눈 앞의 길만 뚝 떨어진 채 존재하는 기분이었는데, 반복해 걸으며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진다는 게 인식되고 나름의 좌표가 생기니 결국 연결된다는 안정감에 친숙함까지 더해져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편해진 마음과 달리 걸음수 체감에는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다. 나름의 계산으로 -자로 올 수 있는 길을 ㄷ자로 돌아왔음에도 동 현관 앞에서의 걸음수는 어제와 마찬가지였고, 오늘도 씩씩하게 계단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