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내일까지 삼일은 집에만 있기로 했다, 벌써 이틀 했으니 내일까지 하면 작심삼일. 날씨가 좋아서 빨래를 두 번이나 돌렸다. 이사하고 정리하면서 그동안 쓰던 것들 다 버리고 하얀색 새 수건 10장을 쓰기 시작했다. 수건은 자주 빨아도 상하거나 찢어지지 않으니 십년 넘게 쓴 것들도 있었는데, 새 수건으로 바꾸고 나니 그동안 왜 그렇게 오래도 썼을까 싶었던 것도 잠시. 세탁을 해도 새 수건의 먼지가 떨어지지 않아 샤워하고 바디로션을 바르면 목이며 등에서 때처럼 먼지가 뭉쳐 나오는 게 엄청 스트레스였다. 검색해 보니 헹굼 단계에서 섬유유연제랑 식초 1/3컵을 함께 넣으면 된다고 해서 낮에 그렇게 했다. 그러고는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지 세탁기에 돌려야 하는지 몰라 방치해두던 새 옷들을, 라벨 보니 다 폴리에스테르라기에 세탁기에 돌려 건조대 남는 자리에 널었다. 내일 만날 수건이 기대된다, 먼지들이 사라졌기를.
원래는 오늘까지 상영하는 [캐롤]을 한 번 더 보러갈까도 생각했는데, 좋았던 영화이기는 하지만 굳이 싶어 낮에 이것저것하면서 은근슬쩍 오늘도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매일 산책 나갈 때는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이 끝나면 마음이 좀 급해졌는데 집에 있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오후가 무척 여유로워서 좋았다. 내친 김에 내일까지, 그리고 목요일에는 좀 멀지만 거제로 영화 보러 갈 예정이다. 매일하던 산책은 이렇게, 루틴이 아니라 그냥 강박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사실 난 집에 있는 걸 엄청 좋아하는 편이고, 일주일 열흘 안 나가도 별로 답답함 없이 지낼 수 있는데... 문제는 어쨌든 하루 한두 끼는 먹어야 하고 먹고 나서 안 움직이면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싫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실내자전거 같은 걸 살 생각은 없으니, 이번 주처럼 며칠 내리 집에 있는 건 약간의 휴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그때그때 내 마음에 맡기기로.
노트북 켜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런저런 뉴스도 많이 보게 되는데, 별 상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미얀마의 쿠데타는 좀 충격이었다. 이주단체에서 일할 때 버마 출신 이주노동자를 많이 만났고 나름 가까이 지낸 이도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버마의 군부 통치가 종식되고 아웅산 수치가 가택연금에서 해제되는 일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나고 보니 불과 몇 년 사이, 버마는 달라졌고 알던 이들이 십수 년 만에 버마를 오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신기하기도 했었는데 다시 쿠데타라니. 혹시라도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이도 있고, 그러나 이미 연락 끊긴 지 몇 년이 흘렀으니 알 수도 없고. 그저 별 일 없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말 뿐이지만... 너무 당연하게 여겨 달리 생각하지도 않았던,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갈리는 인간의 운명이 문득 스산하고 권력이란 참 무서운 거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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