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21.02.02 작심삼일
  2. 2021.02.01 11층
  3. 2021.01.31 12일 후를 위한 다짐
  4. 2021.01.30 "소리없는 아우성"
  5. 2021.01.29 기능적 산책
  6. 2021.01.26 우중산책
  7. 2021.01.25 '비공개 저장'
  8. 2021.01.24 Hakuna Matata
  9. 2021.01.23 먹구름
  10. 2021.01.22 동백
산책일기2021. 2. 2. 23:08

 

어제 오늘 내일까지 삼일은 집에만 있기로 했다, 벌써 이틀 했으니 내일까지 하면 작심삼일. 날씨가 좋아서 빨래를 두 번이나 돌렸다. 이사하고 정리하면서 그동안 쓰던 것들 다 버리고 하얀색 새 수건 10장을 쓰기 시작했다. 수건은 자주 빨아도 상하거나 찢어지지 않으니 십년 넘게 쓴 것들도 있었는데, 새 수건으로 바꾸고 나니 그동안 왜 그렇게 오래도 썼을까 싶었던 것도 잠시. 세탁을 해도 새 수건의 먼지가 떨어지지 않아 샤워하고 바디로션을 바르면 목이며 등에서 때처럼 먼지가 뭉쳐 나오는 게 엄청 스트레스였다. 검색해 보니 헹굼 단계에서 섬유유연제랑 식초 1/3컵을 함께 넣으면 된다고 해서 낮에 그렇게 했다. 그러고는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지 세탁기에 돌려야 하는지 몰라 방치해두던 새 옷들을, 라벨 보니 다 폴리에스테르라기에 세탁기에 돌려 건조대 남는 자리에 널었다. 내일 만날 수건이 기대된다, 먼지들이 사라졌기를.

 

원래는 오늘까지 상영하는 [캐롤]을 한 번 더 보러갈까도 생각했는데, 좋았던 영화이기는 하지만 굳이 싶어 낮에 이것저것하면서 은근슬쩍 오늘도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매일 산책 나갈 때는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이 끝나면 마음이 좀 급해졌는데 집에 있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오후가 무척 여유로워서 좋았다. 내친 김에 내일까지, 그리고 목요일에는 좀 멀지만 거제로 영화 보러 갈 예정이다. 매일하던 산책은 이렇게, 루틴이 아니라 그냥 강박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사실 난 집에 있는 걸 엄청 좋아하는 편이고, 일주일 열흘 안 나가도 별로 답답함 없이 지낼 수 있는데... 문제는 어쨌든 하루 한두 끼는 먹어야 하고 먹고 나서 안 움직이면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싫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실내자전거 같은 걸 살 생각은 없으니, 이번 주처럼 며칠 내리 집에 있는 건 약간의 휴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그때그때 내 마음에 맡기기로.

 

노트북 켜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런저런 뉴스도 많이 보게 되는데, 별 상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미얀마의 쿠데타는 좀 충격이었다. 이주단체에서 일할 때 버마 출신 이주노동자를 많이 만났고 나름 가까이 지낸 이도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버마의 군부 통치가 종식되고 아웅산 수치가 가택연금에서 해제되는 일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나고 보니 불과 몇 년 사이, 버마는 달라졌고 알던 이들이 십수 년 만에 버마를 오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신기하기도 했었는데 다시 쿠데타라니. 혹시라도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이도 있고, 그러나 이미 연락 끊긴 지 몇 년이 흘렀으니 알 수도 없고. 그저 별 일 없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말 뿐이지만... 너무 당연하게 여겨 달리 생각하지도 않았던,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갈리는 인간의 운명이 문득 스산하고 권력이란 참 무서운 거다 싶다.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흘 만의 바깥  (0) 2021.02.04
절반  (0) 2021.02.03
11층  (0) 2021.02.01
12일 후를 위한 다짐  (0) 2021.01.31
"소리없는 아우성"  (0) 2021.01.30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2. 1. 23:40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집 밖에 나가 걸었더니 계속할 수 있겠다는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지만, 한편 꼭 이렇게 강박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이라, 마침 날도 많이 흐리고 해서 집에 있기로. 그러나 강박은 언제나 나의 친구이므로, 지난 주에 본 영화들을 다음 영화를 보기 전까지 꼭 정리하고 말겠다며 꽤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줄거리만 읊어대는 것이라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차원적인 글쓰기는 좀 지겹고 진도도 잘 나가지 않는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든 참 즐겁게 열심히 글을 썼던 시기가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는 젊어서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지금보다는 훨씬 젊기도 했고 알라딘서재라는 느슨한 커뮤니티의 울타리 속 낯 모르는 지인들과의 다정한 소통도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그 시절 비밀댓글을 나누고 무슨 일이 있으면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하고 진심의 응원을 보내고는 했던 몇 사람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제는 찾을 길도 없고 살면서 만나게 될 일도 없겠지만, 여전히 책장에 꽂혀 있는 그들이 보내준 몇 권의 책과 나무라디오 같은 것에 시선이 머물 때면 어디선가 잘 지내시기를 바라게 된다.

 

12월에 오래 잘 사용한 낡은 가방을 버리면서, 마음에 들지만 포켓이 전혀 없는 에코백에 붙여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크기의 포켓이 달린 앞판을 남겨뒀었다. 세탁해서 거실에 두었는데 종일 집에 있자니 심심해서 생각이 미쳤고, 손가락산책이다 생각하며 박음질로 아랫단만 일단 붙였다. 양옆도 박음질 해서 고정할까 했는데 깔끔하게 할 수 있을지 애매해서 나중에 가방을 쓸 때는 핀버튼으로 고정하기로. 

 

트위터를 보다가 소울 불꽃 테스트라는 걸 발견했다. [소울]은 무척 오랜만에 본 애니메이션이자, 역시 나는 애니메이션에 별 감흥이 없고 볼 줄도 모른다는 걸 확인한 작품이었지만 궁금해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웬일이니, 내 불꽃이 신념이란다. 멘토는 무려 유관순;;; 양자택일형 답변 중에 딱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테스트 결과를 과신할 필요는 없지만 유관순은 너무하다. 설명 중에는 꽤 납득이 되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다시 해봤는데 그래도 나의 불꽃은 신념이었다. 그럼 난 불꽃이 죽은 상태, 되살릴 의지도 전혀 없어서 멘토님께 민망하다.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반  (0) 2021.02.03
작심삼일  (0) 2021.02.02
12일 후를 위한 다짐  (0) 2021.01.31
"소리없는 아우성"  (0) 2021.01.30
기능적 산책  (0) 2021.01.29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31. 23:51

 

달이라는 게 있어서 다행이다. 요일 개념 없는 날들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뭔가 하나가 마무리되고 시작되는 느낌은 새롭다. 1월의 마지막 날, 힙하게 늦잠으로 시작했다. 특별히 피곤했던 것도 아니고 심하게 늦게 잔 것도 아닌데 시계알람 휴대폰알람 다 못 들은 나에게 좀 서운했지만 엎질러진 물. 대신 아침겸점심겸저녁을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 들으며 먹기로 하고, 두어 시간 이번 주에 봤던 영화에 대해 정리를 했다. 햇살독서가 고프기는 했지만, 100%는 아니더라도 정리를 하고 넘어가는 게 내 마음에 더 좋으니까.

 

일요일이니 도남관광지 쪽으로 나가볼까 했으나 5시가 다 되어 좀 애매했다. 케이블카파크랜드를 크게 한바퀴 돌고 봉평동으로, 오늘도 골목 입구에서 대건성당을 찍고 통영관광해양공원으로 향했다. 요즘 자주 걷는 경로인데, 이렇게 가면 공원까지 최단거리보다 많이 걸을 수 있고 약간의 오르막도 있어 운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좋다.

 

통영대교 아래 해안로와 공원 사이에 방파제는 아니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길쭉한 길이 있는데;;; 공원을 구석구석 걸으면서 여기는 안 가봤단 생각이 들어 걸었다. 왼쪽은 배를 묶어놓는 구조물들이 있어 오른쪽과 정면에만 낮은 가드가 있었는데, 끝까지 다가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에서 장피에르가 호텔방 창으로 뛰어내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가드는 낮았지만 무서울 정도는 전혀 아니었고 실수로 빠진대도 수심이 깊어보이지 않아 별 일 없을 것 같았는데, 너무 뜬금없는 장면이 갑자기 떠올라서... 사람 참 신기하네 싶었다.

 

끝에서 돌아나가며 통영대교를 봤는데, 어떤 사람이 걸어서 지나가고 있었다. 와, 저거 정말 내가 해보고 싶은 건데. 부러워서, 실례다 싶으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사진을 찍어버렸다. 1월의 마지막 산책에서 저 사람을 보게 된 건, 조만간 다리 걸어 건너기를 시도해보라는 계시가 아닐까? 생각만 해도 약간 후달리는데 잘할 수 있을까? 다리 걸어 건너기 위해 친구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떠들며 함께 건널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

 

일요일이라 엄마랑 통화를 했다, 찔리니까 짧게. 설연휴에 가족이라도 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데, 솔직히 실효성이 있는 방침인지 모르겠고 그 5인이라는 것도 너무 자의적인 기준이라서 별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설연휴에 서울에 갈 예정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설에는 내가 일을 그만뒀다는 것과 통영으로 이사했다는 것을 엄빠에게 말하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세자매]의 난장판을 보면서 (비교하기도 민망하지만) 내가 얘기하면 일어날 난리가 저거보단 심하지 않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사실 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상상이 안 되는데... 기억에 엄빠가 내게 화를 냈던 건 15년쯤 전 내 마음대로 부천으로 이사할 때가 마지막이었고. 안양에서 부천으로의 이사와 서울에서 통영으로의 이사, 현재 백수, 그 사이에 모두 15살씩 더 먹었다는 차이가 엄빠의 반응에 어떻게 작용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암튼, 나는 12일 후에 엄빠한테 모든 걸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기로 했다. 너무 이기적인 것도 같지만 이미 저질렀고 돌이킬 수는 없으니, 엄빠가 서운해하든 화를 내든 솔직한 게 낫겠지. 마음아, 쫄지도 말고 변하지도 말자.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심삼일  (0) 2021.02.02
11층  (0) 2021.02.01
"소리없는 아우성"  (0) 2021.01.30
기능적 산책  (0) 2021.01.29
우중산책  (0) 2021.01.26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30. 23:20

 

수요일부터 어제까지 본 6편의 영화가 소화불량으로 마음과 머리에 머물고 있는 중이어서, 예매했던 영화가 있었는데 취소했다. 롯데시네마에서의 영화 보기는 만 보 걷기에 적당한 산책길이지만 이동시간을 합치면 최소 5시간 이상 소요된다. 시간 때우기에 좋은 반면 저녁 시간이 다 사라지는 단점이 있고, 실은 그다지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기도 했다.


산책은 주말이니까 여행자들이 좀 있을까 싶어 봉평동 쪽으로 나섰는데, 입구에서 골목으로 올라가려니 문득 귀찮아져서 통영해양관광공원으로 향했다. 구름이 적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아직은 밝은 해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는 풍경을 구경하다가, 처음으로 대교 바로 아래 모서리까지 걸어갔는데 대교 다리에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써있었다. 누굴까? 뭘까? 사람들은 왜 낙서를 할까? 쓴 사람 입장에서는 선언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디 여행 가서는 물론 분식집 벽 같은 데에도 뭐라고 썼던 기억이 없어서, 저런 걸 볼 때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쓴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글자가 나오게 찍느라 잔뜩 확대했는데, 저기는 산책하는 이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저기에까지 올라가서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글자를 남긴 게 대체 무슨 의도일까, 어떤 의미일까. 약간 '소리없는 아우성'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로서 많이 궁금해졌다. 알 수는 없겠지.

운하해안로에서 왜가리를 두 번 보았는데 한 번은 한 마리, 두 번째는 두 마리였다. 생태나 특징은 전혀 모르는데, (백로나 학은 아니라는 확신 때문에 왜가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라면 좀 미안할 것 같지만. 지금은 달리 부를 이름을 알지 못하니) 왜가리는 개체도 큰 편이고 보통 한두 마리가 있다 보니 볼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 같다. 한 마리가 있을 때는 괜히 외로워보여서 사실 은근슬쩍 감정이입도 한다. 미안... 

돌아오는 길에는 탑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낮에 안부 연락을 한 통영산 지인이 지겹지도 않은지 밥타령부터 통영음식타령까지 또 하던 게 생각나서, 굴을 한 팩 사왔다. 생굴은 비려서 안 먹지만 굴전은 간단하니까 저녁으로 먹었다. 7년 넘게 알았지만 밥 챙겨먹었냐는 잔소리 같은 거 통영 내려오기 전에는 들은 적 없었는데, 실은 그것도 마음일 테니 고마운 일이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보낼까 하다가 오글거려서 말았는데, 암튼 덕분에 집에서 굴전을 다 부쳐먹었고 냄새 빼느라 팬 3시간 돌렸다. 1월이 하루 남았네.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층  (0) 2021.02.01
12일 후를 위한 다짐  (0) 2021.01.31
기능적 산책  (0) 2021.01.29
우중산책  (0) 2021.01.26
'비공개 저장'  (0) 2021.01.25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29. 23:20

 

오늘 산책은 부동산에 들렀다가 영화 보러 가는 길, 그야말로 기능적인 산책이었다. 1월 15일부터 시작된 전세 전환과 집주인의 소유권 이전 및 근저당 해지가 오늘에야 마무리됐다. 중간에 지인과 통화하면서 겪은 일을 얘기했을 때 혹시 사기 아니냐는 걱정을 듣기도 했었고, 사기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경험한 행태로 볼 때 집주인이 양아치는 분명했다. 집을 구할 때 부동산 여성실장님은 여러모로 도움을 주셔서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이번 달에는 남성대표가 전담했고 이전과는 다른 말과 처리되면 준다던 연락을 매번 내가 먼저하고 사후 확인하면서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이 일을 2월까지 끌고 싶지는 않아서, 연락하겠다던 이번 주 내내 무소식이라 오늘 먼저 연락하고 일이 마무리됐음을 확인했다. 이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후련하다.

 

부동산에서 등기부등본을 받아 나와서 해저터널을 지나 강구안으로, 강구안은 조금씩 더 깔끔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처음 강구안 골목 맞은 편에 섰을 때 은빛 물고기 조형물에 괜히 마음을 설렜었는데, cu가 자리 잡은 이후 존재감을 확 잃은 것 같았다. 보통은 편의점 파라솔에 가려져 눈에도 잘 안 들어왔는데 오늘은 어쩐지 선명하게 보여서 사진을 찍었으나, 역시 cu의 위용을 감출 수 없어서 아쉽다. 금요일 오후라선지 여행자인 듯한 이들이 조금 눈에 띄었는데, 등하교 시간의 학생들이나 중앙시장의 노인들 말고는 '인파'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어선지 괜히 반가웠다. 1월 하순부터 2월 5일까진가 대학 축구대회를 무관중으로 진행한다는 입간판을 봤는데, 그래선지 이번 주 운하해안로나 도남관광지 쪽을 산책할 때 대학교 이름이 새겨진 관광버스를 자주 봤고 때로 한 식당 앞에 유니폼을 입은 수십 명의 청년들을 목격하는 일도 있었다. 서울에서였다면 아무 감흥 없었겠지만 늘 너무 인적 없고 한산한 통영만 보다 보니, 잠시 한 구역이 외부인으로 북적대는 걸 보면 예전엔 이랬을까? 장사하시는 분들은 정말 이런 걸 바라겠구나 싶어진다. 먼훗날 언젠가 자영업자 꿈나무로서의 바람이기도 하고.

 

오늘의 영화는 [세자매]와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무비싸다구 1천 원 쿠폰으로 예매한 게 좀 미안했지만...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회 때에 이어 두 번째 관람이므로 덜 미안해하기로 했다. 몇 년 사이 가장 좋아하게 된 연기자가 김선영 배우인데, 내가 처음 본 건 mbc에서 했던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라는 드라마였다. 채널을 돌리다가 김창완 아저씨가 나오시길래 보게 됐고, 사실 억지스러운 스토리에 별로 재미도 없었지만;; 김창완 아저씨 보려고 시간 되면 챙겨봤고 그러다가 김선영 배우의 연기에 매료됐다. 지금은 tv가 아예 안 나오고 영등포 살 때는 공중파 채널만 나왔던 관계로, 김선영 배우가 주목받는 계기였다는 [응답하라 1988]은 작년 9월 통영에서 한 달 살 때 재방으로 봤다. 연기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미쓰백]에서도 [허스토리]에서도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나는 그녀의 연기가 참 좋았다. 암튼 그래서 [세자매]에 기대를 많이 했고, 캐릭터가 기대와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영화 자체는 좋았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오니 날씨가 꽤 쌀쌀했는데, 오늘은 무려 39분간 버스를 기다렸다. 최장기록.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일 후를 위한 다짐  (0) 2021.01.31
"소리없는 아우성"  (0) 2021.01.30
우중산책  (0) 2021.01.26
'비공개 저장'  (0) 2021.01.25
Hakuna Matata  (0) 2021.01.24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26. 23:45

 

아침부터 적잖은 비가 왔다. 요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장마처럼 빼곡하게 내리는 비가 오후까지 이어졌고, 잦아드는 빗속에서 산책을 나섰다. 앞으로도 비오는 날들은 있을 것이므로, 비가 와도 산책을 계속 이어가는 게 필요했다. 약간의 귀찮음을 떨치기 위해 오늘은 목표를 정했다. 항남동 다이소에 가서 마침 다 떨어져가는 일회용치실을 사오자!

 

12월 지인의 집에서 지내던 어느 날, 왼쪽 아래 잇몸이 불편하고 부은 것 같은 오후가 있었다. 이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처음인 일이라 신경이 쓰였는데 자고 일어나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붓고 아팠다. 검색을 해보니 잇몸이 붓는 이유 중에는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졌다거나... 몇 주 정도이지만 남의 집 신세를 지는 게 혼자 지내는 거랑 비교할 바는 아니어서,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힘들긴 힘들었군, 보러가려던 영화를 취소하고 주변 치과 중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에 찾아갔다.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셨냐 뭐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잇몸을 본 의사는 스케일링 언제 했냐며, 너무 많이 부었고 염증에 고름도 있다며 치료를 하고 스케일링은 이틀에 나누어 하겠다고 했다. 스케일링 태어나서 두 번 했고 마지막도 십년은 넘은 것 같다. 진심 고통스러웠고, 병원에서 준 약을 먹으니 다행히 붓기가 가라앉고 아픈 것도 차차 나아졌다. 간호사가 치실을 권했고, 병원행은 그렇게 끝. 치실을 쓰고 일년에 한 번은 스케일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매일 밤 잠자기 전 양치 후에는 치실로 정리를 하는데, 깔끔한 기분이 들어 좋다.

 

덕분에 치실을 사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중산책에 나섰다. 예쁜 동백나무가 궁금해 조선소길을 지나, 운하해안로에서는 갈매기들을 구경했다. 갈매기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 때는 정말 꿈을 향한 비상이라도 하는 듯이 멋지고, 앉아 있거나 걸을 때는 참 귀여워서 왜가리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비가 오니 우산을 안 써도 되는 해저터널 걷기가 마음에 들었고, 다이소에 들어갔다 나오니 비는 멈췄다. 강구안을 찍고 다시 해안로를 따라, 그렇게 걸으면 시선이 서쪽을 향해서 일몰 즈음에는 하늘이 무척 예쁘다. 산 너머 하늘은 노을이 불타는 듯 밝았는데, 나중에 그 노을이 보이는 곳에 살게 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두워지는 시간에 해저터널을 걷는 건 처음이었는데, 터널 출입구의 수더분한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

 

내일과 모레는 1차 부산영화여행이다. 예상과 달리 통영에서 서울에 있을 때랑 별다를 바 없이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래도 cgv아트하우스에서만 하는 영화들이 있으니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평소처럼 산책을 할 수가 없어 터미널까지 걸어갈까도 생각했는데, 알라딘중고서점에서 팔 책들도 챙겨갈 거라 멍청한 짓 같아 버스를 타기로 했다. 부산은 여러 번 가봤지만 서면은 지하철역 통과한 기억밖에 없는데, 새벽길 나설 건 아니라서 어디 구경할 짬은 없을 것 같다. 1차를 감행한 뒤 나름의 평가를 거쳐;;; 이후에 어떻게 할지 판단할 수 있겠지. 풉.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리없는 아우성"  (0) 2021.01.30
기능적 산책  (0) 2021.01.29
'비공개 저장'  (0) 2021.01.25
Hakuna Matata  (0) 2021.01.24
먹구름  (0) 2021.01.23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25. 23:50

 

케이블카가 지나간 자리에 참새들이 앉아 있었다. 육안으로는 분명히 구분되었지만 사진을 찍으니 잘 안 보였는데, 그래도 뭔가 귀엽다. 양떼구름인지 깃털구름인지 둘 다 아닌지 모르겠지만, 오늘 구름이 멋있었는데 역시 사진으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아무렇게나 찍는 사진이기도 하지만. 통영대교를 바라보며 운하해안로를 걷는 시간이 마침 일몰 즈음이었는데, 다리 아래로 불타는 노을빛이 장관이었다.

 

어제오늘 [티보가의 사람들] 이후 새로운 책을 읽었다. 기록에 대한 강박과 집착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므로 책을 다 읽고 블로그에 끄적이기 시작했는데, 영화든 책이든 일단 줄거리를 정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습관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옛날 사람이라서도 그렇고, 편집증적인 성격도 물론이고,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력이 급속히 감퇴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짧아도 250쪽 이상인 책과 평균 100분 내외의 영화에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줄거리는 내용의 뼈대에 불과할 뿐인데도, 나는 일단 줄거리를 정리하며 헷갈리는 디테일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자초하고 그러다 지쳐서 '비공개저장'을 눌러 놓는 일이 너무 많다.

 

누가 기록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부러 와서 보는 사람도 없지만 이렇게 집착하는 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봤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좋아했던 영화나 책을 다시 보는 드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때 남긴 글을 통해 감정을 반추하고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별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일상이라선지, 그런 흔적이라도 없으면 대체 뭘하며 이 나이를 먹었나 싶은 기분이 자주 들지도 모른다. 암튼 오늘 읽은 책도 길고 긴 줄거리 정리를 좀 전에 마쳤고, 소설을 읽으며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하기엔 이미 지쳐서 '비공개저장'을 눌러버렸다. 살면서 효율적인 편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가끔은 이게 뭔가 싶다.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능적 산책  (0) 2021.01.29
우중산책  (0) 2021.01.26
Hakuna Matata  (0) 2021.01.24
먹구름  (0) 2021.01.23
동백  (0) 2021.01.22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24. 23:48

 

이런 제목까지 붙이게 될지 몰랐으나... 간만에 도남관광지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은연 중 기대했던 트럼펫은 만날 수 없었지만, 이전에도 산책하며 보았던 요트에 새겨진 글자가 (문제 많고 되는 게 없는 시기라서 그런지) 오늘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하쿠나 마타타'라는 이름을 단 가게들도 적잖이 보았고, 봉평동 근처에서도 카페를 본 것 같은데... 어떤 날은 활자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환해질 때가 있다.

 

요트정박지 해안로를 따라걷다가 배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왜가리를 보았고, 역시나 혼자이길래 한참을 지켜봤다. 짐 위에서 조금 걷기도 하고 잠시 날개를 펴기도 하고 다른 방향을 쳐다보기도 하다가 날아간 뒤에, 내 갈 길을 가다가 요트를 마주쳤다. 잔뜩 흐린 하늘이 배경이어선지 오늘은 반가웠네.

 

산책은 한산대첩길을 따라 수륙해수욕장까지 갔다가 되돌아 통영국제음악당 데크계단으로 이어졌다. 수륙해수욕장 가는 길 스폰지밥이 그려진 벽화 옆에는 작은 현수막 하나가 붙어 있었는데, 집에 사시는 분들이 6년째 이 곳에서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다며 시민과 관광객 들의 양해를 구하면서 불편이 발생하거나 설명이 필요하면 꼭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꼭 읽어주세요!"라는 큰 제목이 붙어 있기에 뭔가 싶어 읽고서 길을 걷다가 두 마리의 길고양이를 보았는데, 괜히 여유로워 보였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잎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를 심히 좋아했었다. 겨울에 기차나 고속버스를 탈 때면 홀린 듯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오래 살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해서 예전만큼 마음이 저미거나 하진 않는데, 오늘 산책길의 나무들은 이상하게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제는 어릴 때와 달리 초록도 무성한 잎도, 겨울나무만큼은 아니지만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래선지 이 아이들이 다른 계절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중산책  (0) 2021.01.26
'비공개 저장'  (0) 2021.01.25
먹구름  (0) 2021.01.23
동백  (0) 2021.01.22
하늘 보기와 걷기  (0) 2021.01.21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23. 23:26

 

종일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신기하게 비는 안 왔다. 이런저런 지인들이 등장하는 어수선한 꿈을 꿨는데, 깨어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지금은 누가 나왔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가끔 궁금은 하다. 어떤 날은 꾸고 어떤 날은 꾸지 않고, 많이 생각하면 아주 가끔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던... 이건 아주 예전의 일이네.

 

어젠지 오늘인지도 헷갈리는데, 포털사이트에서 기사들을 보다가 정말정말 많이 좋아했던 사람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기사는 벌써 일주일쯤 전의 일이었는데, 오랜 팬이었던 이가 자신을 사칭하거나 혹은 자신을 이슈로 해서 채팅방을 만들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그게 도를 넘어 이야기를 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고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도 sns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뭐 그런. 언론이라고 생각지 않는 주류언론사의 기사였고, 기사 말미에는 짧지 않은 그의 2차에 걸친 입장문 전문이 실려 있었다. 한 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씁쓸하고 그에게 열광하고 내 일생에 사랑이란 게 있다면 오직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마음이 언뜻 떠올랐다.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고,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도 처분하지는 못했던 그에 관한 여러 자료들(언젠가 때가 되면 그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은 아닌 것 같았다.)에도 생각이 미쳤다. 젊은 날 고통과 슬픔을 유머로 또 절규하는 노래로 바꾸어내며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의 매혹적인 존재감과 아우라는 대단했었다. 인기를 얻고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아마도 과신하면서) 또다른 일들에 홀로 뛰어들고 좌충우돌하고 실패하고 가라앉고 다시 세상에 나오는 이십여 년 사이, 그는 늙었다. 물론 나도 늙었고 누구나 늙는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왜 그렇게 커져야 했을까, 아주 가끔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커졌다가 상처 입고 작아지는 반복 속에서 세상이 쉽게 말하는 존재가 되고, 자신에게는 트라우마인 일들이 타인에게는 가십이 되고, 커다란 무관심과 작은 열광 사이의 혼돈에서 스스로를 잃어가는 슬픈 일이 그의 탓만은 아닐 거라고도 생각한다. 한참 전처럼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를 좋아했던 시간들이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지만, 내가 보았던 시절의 그 모습이 어떤 본령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는 그가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다른 모습이더라도 돌아갈 수 있을까?

 

오늘의 산책은 오랜만에 통영해양관광공원을 향했다. 먹구름과 바람이 많은 날이었지만 바다는 시원했다. 통영대교의 조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물에 비친 모습은 꽤 운치가 있다. 한참 걷는 중에 1월에 오겠다 했던 지인에게, 설 이후에나 가능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고 보니 여러 일들을 정리하고 집에 와 온전히 홀로 생활한 게 이제 한달쯤 되어간다. 짧기도 길기도 한 시간,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될 시간이다. 1월 초에는 집 정리를 마무리한다며 지름신과 타협하면서, 언제 올지 모를 지인들의 이부자리까지 몇 세트나 새로 샀고 얼마 전까지 정리와 세탁에 열심이었다. 불필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나를 위한 일이었고 헛헛한 마음에 뭔가 자꾸 사들이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리가 끝나고 '정말 생활'이 시작된 지는 열흘이나 됐을까 싶은데, 실은 극도의 고독감을 자주 느낀다. 그럼에도 별로 힘들지 않은 이유는 조금만 움직이면 만날 수 있는 바다와 운하, 서울과는 다른 공기, 다르게 느껴지는 햇살 같은 것들의 힘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생활을 힘들어한다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을 뜨겠다고 피상적으로 생각하던 한동안, 언젠가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작은 공간을 꼭 마련하겠다고 계획했었다. 서른 이후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경험했던 숙소들을 떠올리며 막연히 생각한 것이었고, 삼십대 이상 홀로 여행하는 여성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1-2인실 두세 개 정도의 규모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고(좋아하는 대부분이 고인이다.), 생활의 접촉면이 넓은 숙박 같은 건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살다 보면 다르게 느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한참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에피소드를 좋아했고 공감도 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온전히 혼자의 생활 속에서 흔쾌함을 느끼며 살아가려고 한다. 산책과 (초등학생 일기 같은 이런 거라도) 쓰기는 그런 생활을 만들어가는 훈련 중 하나인 것 같다.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공개 저장'  (0) 2021.01.25
Hakuna Matata  (0) 2021.01.24
동백  (0) 2021.01.22
하늘 보기와 걷기  (0) 2021.01.21
무지개, 비슷한 것  (0) 2021.01.20
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1. 1. 22. 22:40

 

종일 흐리고 이따금 비가 왔다. 맑은 날이면 능선처럼 겹쳐 보이던 멀리의 섬들은 해무인지에 가려 흐릿했고, 통영운하의 등대는 여느 때보다 빨강 초록 빛깔이 도드라지는 느낌이었다. 며칠 전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지레 걱정했던 만큼 비가 오지는 않아서, 각오했던 우중산책은 오늘도 면했다.

어제 조선단지로 이어지는 길에서 처음 제대로 꽃 피운 동백나무 몇 그루를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진한 붉은 빛이어서 사진을 찍으려니 맞은 편에 누군가 걸어오고 있어 괜히 쑥스러워 지나쳤는데, 오늘은 찍을 수 있었다. 한 송이만 찍었을 때 더 멋진 핏빛 동백, 오랜만에 본 것 같다. 2월에 동백꽃 보러 어디 섬에라도 가보면 좋겠다.

통영으로 이사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책 읽기 모임, 두 달에 한 번 섬 가기 모임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시는 다 써요", [하하하]의 통영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지만 책 모임 하나쯤은 금세 알게 될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나... 물론 여전히 생각만 하는 중이고, 코로나19의 영향도 분명 있을 거라 알아보진 않았다. 없으면 내가 만드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냥 혼자 읽고 혼자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러는 중에 동백꽃이 있어서 반짝 기뻤다. 한동안은 보장된 기쁨 : ) 

 

 

 

'산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Hakuna Matata  (0) 2021.01.24
먹구름  (0) 2021.01.23
하늘 보기와 걷기  (0) 2021.01.21
무지개, 비슷한 것  (0) 2021.01.20
햇살  (0) 2021.01.19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