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도착한 차로 화요일부터 도로연수를 시작했다. 내 차가 생기고 도로연수를 앞두고도 운전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내일 마지막 도로연수를 앞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오래 전 면허 취득 후 몇 년 장롱이다가 일하던 공부방 차를 운전하던 동료가 그만두게 되어 함께 차를 몰고 나간 적이 있었다. 안양 석수동 어딘가의 넓은 도로였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첫 운전이 의외로 나쁘지 않아 신기했고 동료도 생각보다 잘한다며 할 수 있겠다고 용기를 줬다. 하지만 국도처럼 뻗은 길을 마냥 직진할 수 없어 돌아가기 위해 들어선 시골길에서 차가 도랑에 빠졌고 견인차를 불러야 했다. 면허 딸 때도 도로주행에서 한 번 떨어지고 연습 한 번 해보자는 아빠의 말에, 아빠차에 엄빠를 태우고 당시 주행시험 코스로 나간 적이 있었다. 양재동 트럭터미널을 돌아서 교육문화회관 앞길을 지난 후 내리막길에서, 맞은 편 굴다리에서 나오던 차와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면하며 급제동을 했다. 순간 거짓말처럼 눈물이 또르르, 아빠는 됐다고 시험 떨어져도 된다고 하셨고,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게 집까지 갔었다. 오래 전임에도 선명한 두 번의 기억으로 운전은 나와 무관한 일로 생각하며 살다가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며 더욱 확실해졌는데, 역시 장담할 일은 없는 모양이다.
월요일 밤에 나름 매뉴얼을 읽어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연수 첫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강사의 연락을 받고는 허겁지겁 차키도 안 가지고 내려간 것으로 자기소개를 한 셈이 됐다. 무면허라고 생각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차에 올라 기본적인 기능 조작 설명을 듣고, 강사의 윙브레이크만 믿고 시키는 대로 트라이애슬론 광장 주차장까지 갔다. 나의 조작에 차가 움직이는 게 신기했지만, 주차장에서 선을 따라 도는 연습은 내맘처럼 되지 않았다. 한 시간쯤 하다가 정신도 없고 허기도 져서 잠시 쉬었는데, 강사는 바로 나가보자며 산양읍의 경사지고 구불한 도로로 이끌었고 아직 살아있는 건 강사의 윙브레이크 덕분이다. 차가 별로 없을 만한 코스를 택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지난 토요일에 왔었던 박경리 기념관과 산양스포츠파크 앞까지의 산길은 좌절을 안겨주는 경로였다. 왜인지 강사가 택한 코스는 다음 날도 산양읍이었고, 당황스러움은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집으로 돌아올 때의 코스는 미수동까지 새로 난 넓은 길이어서 꼬불꼬불한 산길에 비하면 훨씬 나았고, 강사는 여전히 안 되는 것들에 대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오늘은 3일차, 이틀 동안 통영 도로 위의 차들에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게 죄송해서 차 뒤에 "초보 연수 중, 죄송합니다..." 써붙였다. 산양읍 대신 시내로 나갔고 국도로 고성으로 넘어갔는데, 속도를 내는 게 어렵기도 했고 이래저래 실수가 잦았지만 다른 운전자들의 인류애 덕을 보았고 첫 셀프 주유도 (강사가) 했다. 강사의 윙브레이크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알지만, 어쨌든 내가 운전을 하고 왔는데도 내가 했다고 느껴지지 않으니 이 초월감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운전하는 걸 생각하면 뭔가 아찔하고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으면 생각보다 긴장이 되지는 않는데, 유체이탈 상태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강사의 지시에 따라 운전하다가 윙브레이크에 힘입어 위기를 모면하는 반복, 나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판단중지 상태에 가깝다고도 느꼈다. 의외로 긴장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마음이 허세를 부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유체이탈 판단중지를 거치며 왜곡된 인식은 약간의 정신승리에 이른다.
강사의 코멘트는 다소 양가적인데, 대체로 하루하루 나아진다고 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다다다 쏘아대는 지적질이 과해서 귀에 피가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예요."라고 사흘간 열 번은 말한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은 예상보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순전히 나의 운전에 대한 기대수준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의 운전'은 여전히 초현실적인 순간으로 느껴지고, 연수는 내일이 마지막이고 그다음부터는 혼자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악몽같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도로 정중앙을 자주 벗어나고 페달감 없고 핸들링 타이밍도 잘 못 맞추는 자로서, 운전은 어지간하면 나아진다는 보편성을 믿어봐도 되려나? 그럴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