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홍보용 풍선이었다. 오래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밤, 어두운 복도를 걸어오는데 현관 앞에 둥그런 형체의 무언가가 놓여 있어 조금 놀랐지만 그냥 어디서 날아왔나보군 하고 치웠다. 얼마 후부터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집을 나설 때 현관 앞으로 날아온 무언가를 마주쳤다. 식재료의 비닐 포장이 많았고 때로는 택배 상자였는데 운송장을 뜯지 않은 상자 덕에 맞은 편 끝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택배 상자의 운송장을 제거하지 않는 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잊을 만하면 날아오는 쓰레기의 발신자답다고는 생각했다.
옥외계단으로 향하는 비상구가 있는 우리집과 달리 맞은 편 복도는 모서리 난간벽으로 막혀 있고, 그 집의 현관 복도에는 늘 많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자기 집 앞 복도에 뭔가 내놓는 걸 뭐라 할 수 없지만 바람 많은 바닷가 동네에서 함부로 날리지 않도록 단속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바람 많이 불던 날은 모아둔 봉지가 뒤집어지기라도 했는지 우리집부터 맞은 편까지 복도에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처럼 재활용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알고 치우려나 했지만 기척이 없어 재활용 쓰레기들을 주워담았는데, 심증은 백퍼였지만 확증이 없었고 정말 짜증이 났다. 그 집 앞에 갖다두는 것도 이상하고 분리수거장에 내다 놓으려니 심통이 나서 엘리베이터 공간 옆 비상구 문고리에 걸어둔 적이 있다.
압권은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바람이 많이 부는지 현관 밖에서 자꾸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가봤더니 빨간 바탕에 흰 땡땡이 무늬가 박힌 커다란 타포린 백이 현관 앞에 있었다. 날이 날이라 산탄가 생각하며 짜증을 가라앉혔지만 그 아이는 밤 늦도록 현관 밖에서 바람에 우는 소리를 냈다. 바람은 왜 항상 7호에서 1호 쪽으로 부는가, 무언가 날아올 때마다 부아가 나서 풍향을 원망했지만 소용 없는 일이다. 자정이 지나서 나가봐도 그 자리에 있어 역시나 엘리베이토 공간 옆 비상구 문고리에 걸어둬야 했다. 다음 날 보니 그 타포린백은 끝집 현관 옆에 놓여 있었다. 현관 앞 쓰레기 단속 좀 해달라고 메모라도 붙여 놓을까 하다 말았는데, 그러지 않은 걸 후회했다.
12월이었는지 1월이었는지 저녁 즈음 누군가 벨을 눌렀다. 올 사람이 없는데 계속 현관 앞에 있기에 나가보니 문을 열자마자 "반대쪽 집이네, 죄송합니다!" 소리와 함께 돌아서는 그들은 집을 보러 온 것이었다. 이사가네 싶어 내심 반가웠는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그들은 이사를 갔고 오후부터는 이것저것 놓여 있던 맞은 편 집 앞 복도가 깔끔해졌다. 남의 집 앞 복도가 지저분하든 깔끔하든 알 바 아니지만, 더 이상 우리집 앞으로 뭔가 날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다. 물론 다음에 이사 올 사람들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샤시 없는 복도식 아파트에서는 이런 일도 있구나 생각하며 지긋지긋해졌던 마음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집 앞에 내놓은 쓰레기들이 적잖은 민폐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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