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 천명의 글쓰기
윤대녕의 관심 작가라는 이유 하나로 마루야마 겐지라는 낯선 이름은 내게 기억되었다. 영화도 책도 우리 것을 유난히 밝히는 나는, 학창 시절 뭔가 찔리는 마음으로 회색 제브라펜을 쓰던(난 회색이 너무나 좋고, 당시 국산 회색펜은 없었다) 심정의 소산인지, 어지간해선 일본 것에 손이 가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애국과는 별개의 문제다. '상실의 시대'가 유일한 일본 문학 독서였던 내게, 게다가 당대의 거품 평가에 대한 반감으로 진심으로 책장과 교감할 수 없었던 내게, '물의 가족'은 신선한 느낌을 안겨줬고 이어 잡은 책이 바로 '소설가의 각오'다.
둔중하고 선언적인 무언가를 담은 듯한 제목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부담없고 흥미롭다. 학문의 길을 가는 선승같은 모습의 사진이 주는 선입견은 책장을 넘기다보니 그 뒤에 숨은 엉뚱함을 더 궁금하게 만들어준다. 천상 작가의 운명을 뒤늦게 깨달은 거장의 한 평생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내가 갖고있던 '선민 - 글쟁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재고해 볼 여지를 남겨줬다. 물론 겐지의 경우 뒤늦게 깨달은 선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려나 글과는 아무 인연 없이 청춘을 보냈던 그의 이야기는 잠재된 그 무엇에 대한 묘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반가운 증거였다고나 할까.
후반부에 기술한 그의 현재는 남다르다. 뒷골목 깡패같은 정처없는 청춘을 보낸 그의 모습이 고요함 깃든 선승의 풍모를 지닌 것은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가다운 삶'의 결과일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인간 관계망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오직 글을 쓰기 위해 먹고 자고 뛰는 생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만을 누리는 놀라운 자제력은 글쟁이의 운명을 타고난 자의 소임 이상이다. 작가는 이래야 한다, 라는 정석을 말하기에는 이제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과 패턴이 존재하지만, 타고난 천재보다 빛나는 것은 돌고 돌아 뒤늦게 깨달은 천명의 글쓰기를 온몸으로 행하는 작가의 삶이다.
윤대녕의 관심 작가라는 이유 하나로 마루야마 겐지라는 낯선 이름은 내게 기억되었다. 영화도 책도 우리 것을 유난히 밝히는 나는, 학창 시절 뭔가 찔리는 마음으로 회색 제브라펜을 쓰던(난 회색이 너무나 좋고, 당시 국산 회색펜은 없었다) 심정의 소산인지, 어지간해선 일본 것에 손이 가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애국과는 별개의 문제다. '상실의 시대'가 유일한 일본 문학 독서였던 내게, 게다가 당대의 거품 평가에 대한 반감으로 진심으로 책장과 교감할 수 없었던 내게, '물의 가족'은 신선한 느낌을 안겨줬고 이어 잡은 책이 바로 '소설가의 각오'다.
둔중하고 선언적인 무언가를 담은 듯한 제목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부담없고 흥미롭다. 학문의 길을 가는 선승같은 모습의 사진이 주는 선입견은 책장을 넘기다보니 그 뒤에 숨은 엉뚱함을 더 궁금하게 만들어준다. 천상 작가의 운명을 뒤늦게 깨달은 거장의 한 평생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내가 갖고있던 '선민 - 글쟁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재고해 볼 여지를 남겨줬다. 물론 겐지의 경우 뒤늦게 깨달은 선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려나 글과는 아무 인연 없이 청춘을 보냈던 그의 이야기는 잠재된 그 무엇에 대한 묘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반가운 증거였다고나 할까.
후반부에 기술한 그의 현재는 남다르다. 뒷골목 깡패같은 정처없는 청춘을 보낸 그의 모습이 고요함 깃든 선승의 풍모를 지닌 것은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가다운 삶'의 결과일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인간 관계망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오직 글을 쓰기 위해 먹고 자고 뛰는 생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만을 누리는 놀라운 자제력은 글쟁이의 운명을 타고난 자의 소임 이상이다. 작가는 이래야 한다, 라는 정석을 말하기에는 이제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과 패턴이 존재하지만, 타고난 천재보다 빛나는 것은 돌고 돌아 뒤늦게 깨달은 천명의 글쓰기를 온몸으로 행하는 작가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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