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는 그다지 친밀하게 와닿는 이름은 아니다. 비전공자인 내게는 새로운 소설 기법이라는 이른바 자동기술법의 작가 정도로나 기억되곤 하는. '율리시즈'니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니 하는 작품명이 현대문학사에서 거론되곤 하지만, 작가와 별개로 떠도는 하나의 이름이거나 관용구라는 느낌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위에 거론한 조이스의 작품들은 여전히 뒷전이고, 고등학교 시절 흠모하던 선생님의 추천작이라는 이유로 문고판 '더블린 사람들'을 그야말로 통독했던 기억이 조이스와의 인연의 전부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세상의 이편과 저편, 예전과 지금을 살피는 눈이 분주해지면서 언제부턴가 아일랜드와 더블린, 그리고 조이스는 묘한 연민과 동경을 담은 하나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독서의 기억도 10년쯤 전이라 그저 읽었다는 기억 외에 한참을 더듬어 건져올린 독후감은, 뭔가 쾌쾌했다는 혹은 아련하고 쓸쓸했다는 '더블린 사람들'이 풍기는 야릇한 정서일 뿐이었다.
후세의 누군가에 의해 씌여진 전기문이라면, 더구나 번역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새로 엮은 책이라면, 이전의 실패한 경험에 비추어 사실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전무한 작가의 삶과 문학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꽤 강렬한 매혹이며, 현재적으로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책세상에서 그의 위상을 생각해볼라치면 이 책을 손에 드는 일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일단 나는 제임스 조이스와 그의 세계가 궁금한 한 사람의 독자였으므로.
세상의 많은 천재가 그러하듯, 그 역시 격동의 시대를 굽힘없이 자기 스타일대로 밀고 나간 사람이었다. 남다른 시련과 남다른 파란이 인생에 없을리 없지만, 작가적 예술혼만은 천재의 영감과 함께 살아 빛나는.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과 반면 끊임없이 스스로 몰아치는 창작에의 열정을 뿜어내는 그의 모습은 은연 중에 내가 아는 이상의 그것과 겹쳐지기도 했는데 자동기술법과 연관지어 내가 알고 있는 유이한 이름들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조이스에 경도된 지은이는 무의식 중 발할 지 모르는 본인의 조이스 예찬을 우려하지만, 조이스에 무지한 일개 독자의 눈에 거슬리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알 수 없다는 점을 빼면 나름대로 객관성과 건조함을 적절히 견지한 소박하지만 성실한 조이스 안내서로 손색이 없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진실은 어차피 가려져 있는 법. 조이스를 알았으니 이제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2001-09-25 01:47,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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