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8


전편만한 속편없다고..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없다' 이후에 접한 이 책은, 처음만큼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세상 무엇보다 깨끗하고 무구한 동물 '아가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우리가 가장 감동을 받는 부분은 동물들의 모성 본능이 발현되는 모습이다. 사진에 붙은 설명이 다소 작위적인 부분은 있지만, 동물들의 사진만큼은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퍼지는 사랑스러운 모습들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는 1년 전쯤 엄마가 수술하고 마취에서 깨어나실 때 작은 꽃바구니와 함께 이 책을 선물했었는데, 엄마 드리려고 사서 먼저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사진과 가벼운 글들로 채워진 이런 책은 어떻게 생각하면 판매를 위한 상업적인 기획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편견이나 거부감보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더 크게 생기는 것은 역시 사람 마음의 본연을 건드리는 깨끗함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무구한 표정을 짓는 아가 동물들의 사진은 책에 실린 어떤 글보다도 순수하고 기쁜 설레임을 말없이 전해준다.


2003-02-10 22:00, 알라딘

 
디어맘(엄마고마워요)
카테고리 시/에세이 > 테마에세이 > 포토에세이
지은이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바다출판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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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7


아주 어렸을 때 일 년쯤 고양이와 함께 살았던 것 외엔 동물을 키워본 일이 없다. 오랫동안 '동물의 왕국'이 유일했던 동물 관련 프로그램들은 이제는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방송하는 꽤 인기있는 오락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 여파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이 출간된 것도 그 즈음인 것 같다.

손에 넣은 지 벌써 1년 반 정도가 지났는데 언제 펼쳐봐도 새롭다. 동물에 대한 관심과 별개로, 감정을 가진 생물체라는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 하나를 마음에 두고 책장을 펼쳐본다면 잠시나마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의 주인공이 된 동물들이 왼 편에 붙은 짧은 설명과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명체의 감정을 담는 창을 눈이라고 한다면 대체로 맞아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흑백으로 소박하게 실린 사진 속의 동물들은 어떤 것은 너무 사랑스럽고 또 어떤 것은 인생을 아는 듯한 표정을 짓고도 있어서 책장을 넘기는 손을 잠깐씩 멈추게 만든다.

책 선물을 즐기는 편인데 이 책은 대여섯 권쯤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한 것 같다. 사실 아주 새롭거나 깊은 감동이 담겨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 나서 다시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오는 느낌, 세상이 평온한 것 같은 느낌은 내가 이 책에 느끼는 고마움이다. 모든 책에 유효기간이란 건 없는지 모르지만, 손 닿는 곳 가까이에 두고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다시 펼쳐들게 되는 책이다.


2003-02-10 21:13, 알라딘



블루데이북(BLUEDAYBOOKSERIES1)
카테고리 시/에세이 > 테마에세이 > 포토에세이
지은이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바다출판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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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5


책을 다 읽고나서는 보지도 않았던 한 영화의 제목이 생각났다. '수잔을 찾아'(Desperately Seeking Susan), 원제에 붙어있던 'Desperately'라는 단어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 1930년대는 교과서의 배움을 떠올려보면 일제 강점하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온 민족은 신음하고 사회 지도자들은 조국의 독립 혹은 자기 살 길 찾는 친일로 나뉘고, 한 마디로 국가가 개인을 현저히 압도하는 어떤 면에선 전체주의의 시대였다. 이 작품은 무겁고 암울한 시대의 큰 흐름 속에서도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운명의 여인 조난실을 좇기에 바빴던 이해명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따라간다.

작품이 복원해놓은 시공간적 배경은 일견 역사 속 실제에 근거한 듯 보이지만, 어김없이 어딘가 한 군데쯤은 작가 특유의 재치와 익살로 비틀어져 의도적인 부조화를 만들어내고, 그 어울리지 않는 시대와 공간 속에 역시 그 만큼 비틀어진 작중 인물들이 어수선하게 등퇴장을 반복한다. 주인공 이해명이 목숨을 걸고 찾아나서는 사랑하는 여인 조난실은 마치 느와르 영화 속의 팜므 파탈처럼 불온하고 그녀가 만든 가공의 인물 테러박은 히치콕 영화 속의 맥거핀처럼 작품 속에서 허탈한 긴장감을 이끌어간다.

꽤 도발적으로 붙여진 제목은 사실 독자들에게 기대했던(?) 소구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 만화같고 무협지같고 우스개같은, 이제껏 거의 만나지 못했던 새로움이 작가의 젊음과 함께 소화되는 듯 하면서도 아직은 덜 익고 치기어린 미완의 마무리가 어쩔 수 없이 걸리는 부분이다. 가볍게 가고자 했더라면 시공간의 선택이 조금 버거웠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작가가 선택한 그 배경이 다중의 함의를 담은 것이었다해도 내심을 전달하며 이야기를 주무르기에 아직은 내공이 조금 모자라는 느낌이었다.


2003-02-10 18:19, 알라딘



망하거나죽지않고살수있겠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이지형 (문학동네,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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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4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만화 영화로 본 기억이 있다. 이름으로만 들어본 여러 나라들이 정말로 있기는 있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던 그 시절에 세계일주라는 건 정말로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부럽다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그 꿈같은 세계일주를 했다는 사람들이 내놓은 책도 꽤 여러 권 접하게 되었다. 부러운 일이다. 나도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일단 그들의 여행 기록이라도 먼저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읽다보니 아주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들의 여정은 가까운 일본에서 출발해 중국, 태국, 인도 등의 아시아 각국을 거쳐 유럽대륙과 터키, 이집트,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그리고 뉴질랜드와 호주까지 그야말로 세계를 아우른다. 한 권에 담기에는 일 년이라는 기간과 여행 지역이 꽤 방대하지만 이 책은 두 사람이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상에 많이 할애되어 있어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여행지에서 직접 적어내려간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생생한 현장성을 느끼게 해주고, 전문여행자가 아니어서 일어나는 실수들은 더 실감나고 재미있는 여행기를 만들어주었다.

부부가 번갈아 적어내려간 이야기는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담고 있는데, 혼자 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여정에서의 의견 충돌과 타지에 있다는 고립감에서 오는 감정의 기복들을 재치있게 극복해낸 이야기가 내게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또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동시대인으로서 느끼는 외국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건강한 사고를 갖고 있는 필자의 시선을 통해 내게도 생각해 볼 만한 것들로 와닿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신비감만을 부추기거나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한 입장에서 독단적인 감상과 판단의 오류에 빠진다거나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 평범한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여행을 차분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매력이다. 긴 시간의 여행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고 철이 들었다고해도 그들의 인생은 꽤 즐거울 것 같다.
 

2003-02-10 17:10, 알라딘



철이없으면사는게즐겁다
카테고리 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 세계일주기행
지은이 홍성만 외 (우물이있는집,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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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3


특별한 이유없이 삶의 무게가 너무 힘겹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세상 누구에게도 사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주위를 돌아볼 마음도 내가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할 여유도 좀체로 생겨나지 않을 때 나는 불가항력의 고통 앞에 선 사람들에게서 이기어린 위로를 얻어보려고도 한다. 처음 책표지의 예쁘게 단장한 그녀들의 사진을 향하는 내 시선은 신기한 동물을 볼 때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았었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내게 샴쌍둥이라는 말은 생명의 실체라기보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고통스런 운명에 대한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체적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그녀들의 몸과 삶은 태생에 따른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족들에게 비밀에 붙여진 생존의 이유는 단지 실험의 대상이라는 것 뿐이었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그녀들의 생명줄은 인간의 존엄과는 무관한 실험의 종료라는 의미에서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뗄 수 없는 둘이었기에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던 고통은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도 쉽게 망각될 수 없는 각인으로 남겨져 그녀들의 뇌리에 박혀버렸다. 

기적과도 같이 그녀들은 살아내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2001년 봄까지는 적어도 그랬고, 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일까.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몸의 두 마음, 두 머리로 그녀들이 살아낸 인생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단 한 순간도 견뎌낼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장기의 일부분을 공유하고 몸이 붙어 태어났다는 것을 빼면 그녀들의 모든 것은 가혹하리만치 정상적이다. 너무나 건강한 이성과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꿈꿔 볼 만한 모든 것을 하나씩 차례로 그것도 합의 하에 포기해가야만 했던 그녀들의 인생이 참으로 애틋하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누구나의 소망이 될 수 있을까. 모든 탄생이 축복이고 모든 존재는 정말 선물일까. 이기고 살아낸 그녀들의 삶에는 감히, 축복을 기도해주고픈 마음이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2003-02-10 16:32, 알라딘


마샤와다샤
카테고리 미분류
지은이 줄리엣 버틀러 (지식여행,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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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2


은희경의 소설은 재미있다. 아주 가끔 생뚱맞은 전개와 비현실적인 인물이 등장해서 은희경 맞나 싶은 작품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안정된 재미와 의미를 보장하는 믿을만한 구석이 있다. 게다가 그녀가 구사하는 반어와 역설의 풍자는 냉랭하지 않은 거리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주곤 한다.

'마이너리그'는 서로가 나머지보다는 좀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한 묶음의 그렇고 그런 패거리일 뿐인 이른바 '만수산 4인방'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부터 그들이 사회로 뿔뿔이 흩어진 이후까지의 드라마가 끊을 수 없는 4인방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타고난 필력에다 세상의 이면을 통찰하는 예리한 안목을 갖춘 작가의 시선에 걸린 이들의 인생사는 마치 하나의 소극을 보는 듯이,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진지하게 제 3자인 독자에게는 너무나 우습고 한심하게 그려진다. 

나는 이 작품이 '여성작가 은희경의 통렬한 남성보고서'라는 타자로서의 여성의 눈으로 본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관찰이라는 내용적 표피성보다는, 아직까지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성적 강자이며 사회적 약자인 대다수 남성들의 난망한 세상살이에 대한 희화적 소묘가 아닌가 한다. 어차피 세상은 주도권을 쥔 자와 그 영향 아래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서 생활의 주력군으로 생존의 책임을 조금 더 지고 살아내야하는 것이 남성일 뿐, 여성의 문제로 옮겨온다한들 그 지난하고 막막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재미있지만 서글프다. 전통적으로 사회적으로 잠재적 우위를 지닌 타자로서의 남성들의 무망한 고투가 통쾌하다기보다는, 성을 불문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태생의 마이너리티를 던져버리지 못할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의 고단한 인생살이가 새삼 안스러운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범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마이너리그'의 시선이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생활의 한 순간 한 순간 느끼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그런 거시적인 관점만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점이다.


2003-02-08 18:10, 알라딘



마이너리그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은희경 (창작과비평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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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1


모네의 '수련연못'이 노을인 양 온통 불타고 있는 책표지가 마음에 든다. 이제 잔치가 끝난 서른에 접어든 나는, 그녀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거리낄 것 없는 비밀의 그림자만을 드러내는 듯한 그녀의 시는 부담스러웠고, 평범 속의 비범이 느껴지는 그녀의 글은 내 속의 우울함을 끄집어내는 듯 해서 만날 때마다 반갑지가 않았다. 아마도 노란 시선 속으로 먼저 들어왔던 그녀의 개인사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었던 것 같다. 주제 넘게도 책장을 덮고나서야 불혹을 넘긴 그녀의 내적 성숙과 순하게 차오른 밀도가 느껴지는 듯 했다.

스무 개 쯤의 소재를 시대순으로 묶어 나열한 작가와 작품은 미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스쳐가며 만났을 법한 것들이다. 그래서 일단은 친근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각 장의 서두에 붙여진 본문과 관련 문헌에서 뽑아낸 몇 줄의 글은 붙여진 소제목과 함께 대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예감케 하고, 책장을 넘기기 전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 포착되어 그림으로 옮겨진 대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인간과 인생에 대한 사려깊은 통찰과 반성이다.

또한 이 책의 미덕은 사람을 향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이다. 저자는 하나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작가와 인물에 대한 전기적 요소를 성의있게 삽입해놓았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글이나, 한 개인의 정신 활동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 작품을 잉태한 사람과 그의 삶에 대해 알기를 즐기는 편이다. 작품에 대한 과잉한 해석을 불러일으킬 소지에도 불구하고, 오해석의 여지를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전기주의적 관점의 오류가 얼마간 있다해도 이 책에서 접한 화가들의 면면은 내게 흥미롭고 의미있었다. 

그림을 놓고 저자는 설명하거나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감상에 젖어 수 백년 전의 인물을 상상해보고 조심스레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예민한 감수성과 예술가적인 감성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는 자신만의 개인적인 사유를 넘어 인간 보편의 문제로 전이되고 공감을 끌어낸다. 예나 지금이나 남다른 성정과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의 삶은 일상인의 평균적인 삶을 벗어난 쓴 맛의 깊이가 있었을 터이다. 인생사의 고통을 다른 차원의 환희로 이끌어냈던 그들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추고 다시 한 번 그림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다리 역할을 저자는 충실히 해주고 있다. 

책 말미에 덧붙은 고백대로 저자는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건 모두 변한다는 것 뿐이라는 말처럼, 실은 그녀도 나도 세상 모든 것도 다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심지처럼 굳게 자리한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진행형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믿음을 전해준다. 가슴 속에 사람이라는 빛을 간직한 그녀에게는 이제 나날이 작은 잔치일런지도 모르겠다. 새삼 그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02-08 16:43, 알라딘



화가의우연한시선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 예술이야기
지은이 최영미 (돌베개,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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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47


사춘기 시절의 독서는 그 이후 어느 시기의 그것보다도 강렬한 기억을 많이 남겨준다. 그 즈음의 독서가 내가 누구이고 사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인생 최초의 철학적 자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심각한(?) 사명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그 시절의 기억은 범우 사루비아 문고의 빛바랜 책장과 함께 떠오른다. '수레바퀴 밑에서'니 '좁은 문'이니 '폭풍의 언덕'이니 따위의 이른바 서양 고전들의 세계를 접하며, 혹시나 우려했던 고리타분함이나 지루함이 아닌 다른 시대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 사이를 가득 채웠던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은 고민의 흔적들을 읽는 일은 적잖은 위로로 가슴에 각인되었다. 그 시절 만나 내 인생의 책이 되어버린 또 한 권이 바로 '회색 노트'다.

처음 만났던 이 책의 출판사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떨리는 가슴으로 책장을 덮고, 말미의 해설에서 이 책은 '티보가의 사람들'이라는 연작 소설의 첫 부분이며 2부가 되는 '소년원' 이후의 내용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무척이나 아쉬워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10여년이 지나 민음사에서 다섯 권의 양장본으로 완간된 '티보가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다시 살아나던 그 시절 '회색노트'의 기억. 그 방대하고 유장한 티보가 사람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있고 감동적이었지만, 어린 시절 '회색노트'의 강렬함을 상쇄시키지는 못했다.

두터운 책장, 양장본의 부담을 덜고 가볍게 지니고 자주 펼쳐보고 싶은 마음에 뒤늦게 다시 구한 작은 '회색노트'. 다니엘과 자끄의 애틋한 우정이 담겨있는 이 책은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법한 시공을 초월한 우정의 가슴앓이를 내게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하고 어찌할 수 없는 시기에 찾아오는 자아와 세상을 향한 불안과 혼돈은 결국 또래와의 교감으로 탈출구를 찾고, 그들이 마르세이유로의 가출을 결행하듯 우리 역시 어디론가 마음을 멀리 떠나보낸다. 하지만 몸이건 마음이건 그것이 닿은 자리에 남는 것은 내가 꿈꾸던 먼 곳의 그 무엇이 아니라, 떠날 때와 다름 없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져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이라는 그물망이다. 떠난다고 떠날 수 없고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 혹독한 시련은 결국 그 시기를 견디고 버텨내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모든 인간의 통과 의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너와 나만의 '회색노트'를 가질 수 있었던 그 시절은, 한없이 희고 싶고 또 가끔은 한없이 검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그리고 그 시절에만 향유할 수 있는 선물이었다는 것을. 난마처럼 얽혀 도저히 풀 길 없는 내 속의 문제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 헤집고 다니며 부딪치고 깨지고 아파할 수 있는 시간도 인생에서 그리 길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렇게 고통스런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우리는 결국 조금 더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2003-02-08 13:21, 알라딘



회색노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소담출판사펴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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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45


동유럽에 관한 개인적인 관심으로 집어든 책이다. 꽤 두툼한 양장본을 받아들고 목차를 먼저 보면서, 잔뜩 기대를 품고 책장을 넘겼다. 바르샤바와 부다페스트, 프라하.. 주마간산으로나마 내가 지나쳤던 그 거리의 기억들이 생생히 살아오는 것을 느끼며, 타인의 시선으로 내 마음 속의 그 곳을 읽어내는 독서는 꽤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자는 책날개에서 소개된 것처럼 남다른 여행을 즐기고 직업적으로도 문학과 예술에 꽤 조예가 깊은 전문인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특별하고 매력적인 각개의 소재에 대한 접근이나 서술이 상식적이고 평면적인 지식 전달에 국한되어 있고 여정과 감상 역시 단편적이고 안이한 느낌이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여행지에서의 정보는 일반 여행 책자나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어서 직접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움이나 그 여행만의 독특한 현장성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고, 전문인의 안목나 시선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동유럽 문화 예술 산책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비교적 다양한 지역을 고루 안배해 지역적 균형을 맞추고, 일반인들에게 아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동유럽 각국과 러시아 지역에 대해 테마를 가지고 접근한 기획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기존의 알려져 있는 정보를 나열하고 해설하는 데 그치는 저자의 필력은 적잖이 아쉬운 부분이다. 동구 문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권의 책으로 동유럽의 대표격인 문화 유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지만, 이 책이 시발이 되어 좀 더 심층적이고 성의를 담은 동유럽의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과 기대가 있다.


2003-02-08 12:50, 알라딘



동유럽문화예술산책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 서양문화사
지은이 박태상 (생각의나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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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06. 11. 8. 01:30


생각해보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페이퍼'에는 현저히 못미쳤지만 나름 공고한 애독자층을 형성했던 얇은 잡지 '베스트셀러'가 가판대에 놓여있던 시절, 교대역 근처 어느 사무실에서였다. 주로는 변호사니 법무사 사무실과 각종 은행지점이 즐비한 삭막한 교대법원검찰청역 주변에 이런 사무실이? 다소간 의아스런 마음으로 쭈삣거리며, 잡지일을 하던 친한 언니를 따라 들어간 곳에 그가 있었다. 그는 '베스트셀러'의 편집장이기도 했었지만, 그보다 더 내가 호감을 가졌던 건 그가 당시 꽤 적극적으로 진행된 전인권씨 구명운동의 중심에 있던 하이텔 들국화방의 시삽인가 뭐라던 언니의 말 때문이었다. 2000년쯤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이지 어눌하고 답답한 말투와 수줍어하는 자태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데, 이후에 박민규가 소설 쓴다고 편집장을 때려쳤다라거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무지하게 재밌으니 꼭 읽어보라는 식의 전언을 그 언니로부터 전해들었다. 그야말로 '일'면식이 있을 따름이니 내가 그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소설은 좀은 황당무계한 설정과 과감한 도약 내지 비약을 한껏 선보이는 진행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를 읽는 느낌이다. 몇 권의 책을 읽은 이후에야 몇 년 전 그를 마주했던 기억의 윤곽이 떠오를 정도로, 그다지도 대면의 임팩트나 존재감이 없는 존재. 그러나 그 존재감 없음 뒤에 숨어 분방하게 세계를 조물거리며 마음껏 난장을 부리고 비수를 날리는 일견 통쾌함이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그는 '못'과 '모아이'를 내세워 세계전복의 망상을 부석거리는 종이꿈으로나마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박민규에 대한 과대평가이거나 스스로의 단단한 오해이거나 혹은 그도 아니거나이겠지만, '핑퐁'을 문자 그대로 탁구소설 혹은 '못과 모아이'를 위한 슬프지만 진실 왕따성장소설 쯤으로 읽을 수는 없었다. 이 역시 박민규에 대한 과잉기대이거나 스스로의 자위적 독서이거나 뭐 둘 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작가만큼 자유분방하게 세계에 대한 무경계의 알레고리를 구사하는 것은 분명 보통 재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좀 뜬금없이 무거운 인간이기도 하지만, 한편 세상에 엄숙하게 슬퍼하거나 애도할 일은 이제 정말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혹은 절망. 그의 소설은 그런 류의 애잔한 유쾌함 같은 걸 선사해준다. 이를테면 세계는 주로... 양쪽에서는 핑-퐁 거리고, 제물이 된 놈은 핵핵거린다. 핵핵거리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그 핵핵댐의 윤리와 별개로 그나마 아직 살아있는 개김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연민 어린 대견함 같은 것. 북핵 뉴스와 핑퐁의 알레고리를 혼자서 연관 지으며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즐길 수도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너무 말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쨌거나 박민규는 이렇게 막 나가는 리뷰도 뻔뻔하게 쓰게 만들어주는, 최소한 발랄한(?) 영감의 원천이다. 
 

소설 어딘가에서 마주치는 못의 고민, 왜 하필 우리일까, 혹은 나일까.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기보다 더 눈에 띄지 않는 누군가들이 수십 명이나 있단 말이다. 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조차 나는 찌질이같은 자화상을 발견하고 작가의 자기동일시가 아닐까 혼자서 반가웠다. 돈이나 힘 있는 것들이 들으면 참 기가 막힐, 쥐 같고 새 같고 차마 못 같고 모아이 같은 것들이 세계의 존속을 건 탁구를 친다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그의 엉뚱한 상상력에서조차 불온하고 짜릿한 전복에의 고양감을 느끼며 결과를 예의주시했다. 어차피 맛이 간 인간들로 득시글한 세상에, 이왕이면 더욱 기괴하고 근본 없는 거짓말로 썰을 풀어주는 통쾌함 같은 것. 물론 한낱 웃기지도 않는 소설 따위로 뭐가 변하랴마는, 나는 언인스톨을 선택하는 그 순간이 즐거웠고 며칠 뒤 터진(?) 북핵사태 뉴스를 접하며 야릇한 기대마저도 가졌었다. 더 이상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그럴 수는 없다는 땅 속 깊은 곳에서 묻혀버린 단말마라 하더라도 이런 우스꽝스럽고 절멸적인 선택이라도 해야하는 때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아슬아슬 태평하게 말이다.
 

그러나 벌써 네번째 책을 묶어낸 베스트셀러 작가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그에게 혹시 '삼미...'가 대표작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애정어린 우려 역시 없지 않다. 변주도 쉼 없이 도돌이를 치다보면 언젠가는 반복의 묘미나 미세한 변화의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은 뻔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박민규가 골몰하는 세계와 그려내는 인간들이 마음에 든다. 좀 잔인한 기대일런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불혹을 바라볼 그가 어느 학교 문창과 교수로 들어앉았다거나 '무규칙 이종예술' 행각의 연장선에서 어느 공중파의 나긋한(설마) 진행자로 방송인을 겸한다거나 하는 식의 얄궂은(?) 소식만 들려오지 않는다면 나는 그가 무엇이건 써내는 한 애독자를 자청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그가 소신껏 날린 꽁트로 초딩들의 뭇매를 맞고 이익집단의 비수에 꽂히고 웃기지도 않는 고개숙인 사과를 날린다거나 하는 구설에 오를지라도. 어차피 세상도 디게 웃기다는 걸 생각하면 또 조까라마이싱을 어눌하게 날리는 작가 역시 그 웃김을 팔짱 끼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게 이 세상이란 걸 생각하면 악수라도 청하고 싶을 만큼의 뜬금없는 형제애가 솟구치는 게 사실이다. 


 



핑퐁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박민규 (창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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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