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엔 서울의 책 모임과 기한이 다가오는 쿠폰들도 쓸 겸 며칠 수도권에 다녀오는 것으로 부산영화여행을 대신했다. 7월 중순 두 달간의 알바를 마무리하고, 열흘 넘게 유유자적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선 길이어서 약간 들뜬 기분이 되었다. 첫 영화가 오후 늦게 시작이어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서부산터미널에 내려 알라딘중고서점에 들러서 다 읽은 책들을 팔고, 5시부터 체크인 가능한 숙소에 짐을 놓고 한숨 돌리고 극장으로.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마지막 영화의 상영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밤 9시가 넘어 시작하는 영화도 있어서 하루에 세 편씩을 보기로 했다. 첫날은 [우리, 둘], [와인 패밀리], [오필리아], 다음 날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갈매기], [피닉스]를 보았다. 세 편은 좋았고, 두 편은 별로였고, 한 편은 볼 만했으니 나름 만족. 여섯 편 중 [피닉스]가 가장 좋았고 마지막 영화여서 그 여운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괜찮았다. 새삼 놓친 [운디네]가 아쉽고 [트랜짓]을 다시 보고 싶어졌으나 당분간은 기약할 수 없는 일, 그래도 안타깝기보다는 좀 아련하게 남겨두는 것도 있어야지 싶으니 나쁘지 않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서면에 가다 보니 통영에 있을 때도 부산 지역 관련한 안전안내문자가 수신된다. 7월엔 서면 어디 방문자는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가 자주 당도해서 가도 되나 좀 망설여졌는데, 부산영화여행에서 나는 뭔가 사먹거나 마시러 가게에 들어가지 않고 동선은 터미널, 중고서점, 영화관, 숙소로 한정되기 때문에 마스크 잘 쓰면 되지 생각하며 다녀왔다. 누그러들지 않는 확산세나 사적 이동에 예민한 시민들을 생각하면 자제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통영 생활에서 부산영화여행은 어느덧 꽤 절실한 환기구이자 소중한 의례가 되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행위 자체를 매우 좋아하고 즐긴다. 어려서부터 극장에 가는 걸 좋아했고, 언젠가부터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게 만든 이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영화관에서 볼 수 없거나 좋아해서 dvd를 가지고 있는 작품은 가끔 집에서 보기도 하지만, 어둠 속의 몰입으로 세상이 삭제되고 나와 영화만 존재하는 황홀한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집중하며 만나는 영화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보았다'는 기억만 남거나 아주 가끔은 보았다는 기억조차 휘발될 때도 있어 때로 허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 암전의 순간이 지나고 커다란 스크린과 마주하며 다른 세상에 다녀오는 경험이 행복하다.
cgv앱에 따르면 나는 지난해 128편의 영화를 보았다. 메가박스아트나인에도 자주 갔었고, 에무시네마와 ku시네마테크, 대한극장, 롯데시네마에서도 영화를 봤다. 6월까지만 일했으니 시간이 많았고, 마스크 쓰고 영화 보는 것도 금세 적응이 됐다. 극장 내 음식물 섭취가 제한되어 관람 환경이 쾌적해졌고 객석이 한산해진 덕인지 방해자들이 뜸해졌다. 개봉작 수가 적어진 탓에 예전에 놓친 영화들이 재개봉했고 생각지도 못한 기획전에 반색하며 영화관을 찾을 때도 있었다. 솔직히 코로나19 때문에 이거 하나는 좋구나 생각하며 열심히 영화관에 갔다. 코로나19 초기 cgv성신여대입구에 확진자가 다녀갔었다는 것 외에 극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없고, 갈 때마다 방역에 열심이라는 인상을 받아서 영화관에 갈 때 불안감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앱을 확인하니 올해도 cgv에서 46편, 롯데시네마에서 33편의 영화를 보았다. 상반기 롯데시네마통영에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영화들을 많이 상영해준 덕이기도 하고, 나름의 영화여행 덕분이기도 하다. 부산영화여행은 대개 매월 마지막 주 수-목요일에 cgv서면 아트하우스관 두 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선택의 여지없이 이어서 보는 것이지만 괜히 갔다 싶었던 적은 없다. cgv통영이 리모델링 후 재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화예술의 도시답게 한 관은 아트하우스로 열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대중문화 인프라 척박한 소도시에 전좌석 리클라이너로 영화관을 재개관한 것만도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통영에 사는 동안 부산영화여행은 계속될 것 같다. 이번에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마주한 노을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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