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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0.13 2022 비프, 마지막 4일차
  2. 2022.10.12 2022 비프, 3일차
  3. 2022.10.11 2022 비프, 2일차
  4. 2022.10.10 2022 비프, 1일차
  5. 2022.10.09 우리들의 시간표
  6. 2022.09.11 약 52시간
  7. 2022.08.17 대구, 제천 그리고 부산영화여행 2202-08
  8. 2022.07.05 부산영화여행, 2022-07
  9. 2022.06.10 부산영화여행, 2202-06
  10. 2022.05.13 부산영화여행, 2202-05
사는게알리바이2022. 10. 13. 23:00

 


내일 오후까지 부산에 있지만 서면에서 영화를 볼 것이기 때문에, 오늘로 올해 나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무리됐다. 영화를 예매한 후 아니 에르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는데, 그 때문에 고양된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첫 영화가 가장 좋았다. 영상으로든 활자로든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없었던 일처럼 사라져버렸을 과거의 시간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인 현재에 돌아볼 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흥미롭다. 두 번째 영화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무지한 시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는데, 참담한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억지스럽지 않게 희망을 품고 있어서 보는 내내 먹먹했다. 뱅상 랭동의 출연으로 기대했던 마지막 영화는 예정됐던 GV가 취소되었다. 뱅상 랭동이 올 일이야 물론 없었겠지만, 피날레에서 뭔가 바람이 빠진 느낌이었고 영화는 그 기분을 반전시켜주지 못했다.

 

마지막 영화를 보기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영화의 전당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며칠 전 G가 준 고구마와 빵 등을 숙소 냉장고에서 꺼내왔는데,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면서 저녁으로 먹으며 여유로운 기분이 되었다. 몇 년 전 부산도 괜찮겠지 막연히 생각하며 영화의 전당 주변의 아파트를 지도앱에서 찾아보며 헛꿈을 꿨었는데, 지금의 내게 가장 행복한 시공간이 부산국제영화제이다 보니 산책을 하면서도 자꾸만 주변의 아파트에 눈이 갔다. 대체로 큰 면적인 것 같고 내가 엄두를 낼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면서도, 예전에 통영 여행하며 여기쯤은 어떨까 하며 사진을 찍어둔 아파트에 지금 살고 있다 보니 무의식 중의 기대가 발현되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통영에 살면서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보이는 바다를 당연히 여기듯이, 만약에 만약에 영화의 전당이 보이는 어딘가에 살게 된다면 금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겠지. 그러나 살게 된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GV 취소의 김 빠짐과 별개로 마지막 영화가 그저 그랬던 건 아쉬운 일이었다. 클레어 드니 감독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영화는 [렛 더 션샤인 인]을 봤을 뿐이고 별 감흥이 없었던 기억인데,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도 뱅상 랭동과 줄리엣 비노쉬를 주연으로 이렇게 매력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싶었다. 영화가 끝난 후 퇴장할 때 주변에서 들렸던 대화를 생각하면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 날은 각종 수상작들과 폐막작만 상영되기 때문인지, 영화가 끝나고 건물을 나오니 광장은 이미 폐막 분위기였다. 저녁에 영화의 전당 광장을 둘러보다가 뭔가 아쉬워서 이번 영화제 포스터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 주문제작 휴대폰케이스를 구매했는데, 문 닫기 전에 잘한 일이다 싶었다. 숙소로 돌아가면 1년 후에나 오게 될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의 전당을 떠나는 게 아쉬워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딱히 할 것도 없기 때문에 사진 몇 장으로 마음을 달랬다. 다음에 영화제에 오면 커피 한 잔하자 했던 지난해 '그분'과의 온라인 대화는 다정한 추억으로 묻어두기로 한 것도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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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10. 12. 22:22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피곤한 날들, 나의 영화제는 내일 하루가 남았다. 나름의 체력 안배를 위해 부산 오기 전 염두에 뒀던 책방에 가보는 건 없던 일로 하고 영화 보기에만 집중하는 데도 하루 세 편 보고 소화하기가 버겁다. 어제까지는 딱히 사로잡힌 영화가 없어 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오늘의 두 번째 영화는 아주 좋아서 마음이 벅차고 기뻤다. 첫 영화는 조지아가 배경이어서 선택했는데, 내가 본 조지아 영화는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와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에 이어 세 번째다.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동시대 조지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잔잔한 드라마라는 점은 같았는데, 개인적으로 로망이 있는 체코를 배경으로 한 이런 영화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편의 영화에서 담아낼 수 있는 건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번 영화제에서 단지 체코가 배경이라는 이유로 선택한 두 영화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해 그랬던 것 같다.

 

영화의 전당에서 마지막 영화를 보기 전에 부러 크게 한 바퀴 돌고 건물과 광장 곳곳의 부스를 살펴봤다. 영화제에 오면 배지나 라이터라도 한두 개 사는데, 감각이나 눈이 높지 않음에도 딱 마음에 드는 걸 찾기가 갈수록 어렵다. 올해도 굿즈 부스를 살펴봤는데 이제 굿즈로 돈 안 벌기로 했나 싶은 느낌이 들었고, 첫날 남포동 대영시네마에서 기본 배지 몇 개 산 걸로 말아야 하나 싶다. 부러 둘러본 더블콘과 비프힐은 전혀 관객 친화적이지 않아서 볼 게 없었는데, 예전 언젠가 영화제와 관련된 배우들의 사진 전시에서 박광정 아저씨를 발견하고 반색했던 기억이 나서 아쉬웠다. 한 구석에 역대 영화제 포스터들이 걸려 있어서 가봤는데 그 앞에 테이블이며 의자들이 놓여 있는 걸 보면, 영화제용이 아니라 그냥 상설 디스플레이인 것 같았다. 영화제의 주요 참여 세대가 나보다 한참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굿즈도 상영 외 프로그램들도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 걸까 하는 싶기도 하다. 하루 남았다. 내일도 한 편쯤은 반짝이는 영화를 만날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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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10. 11. 23:33

 


오늘은 영화의 전당 상영관 관람이 없는 날, 지하철을 타고 센텀시티역에 내려 바로 영화관으로 갈 수 있으니 편리하기는 했다. 대체공휴일인 어제와 달리 영화관은 한산했고, 백화점 상영관 세 곳을 옮겨다니다 보니 그다지 영화제 기분이 나지는 않았다. 체코가 배경인 첫 번째 영화 말고는 별 기대없이 시간과 GV를 보고 선택한 영화들이었는데, 두 번째 영화가 의외로 참 좋았고 나머지 두 작품은 그냥 그러했다. 첫 영화는 감성적으로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GV가 있어서 감독이나 배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동시대 프라하 뒷골목 젊은이들의 정서나 현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싶기는 했다. 영화 상영 중간에 시간이 되면 가보려고 캘린더앱에 영화의 전당 야외 프로그램들을 입력해 놓았고, 오늘은 정성일 평론가 등이 나오는 순서였는데 어제와 달리 5시부터 6시까지여서 갈 수 없어 아쉬웠다. 

 

어제부터 옮긴 숙소에서 마지막 날까지 묵는다. 거의 매월 영화 보러 오면서 주로 cgv서면 가까운 숙소에 묵었는데, 이번엔 서면역 인근이라 동네가 낯설다. 지난해엔 나름 거금을 들여 센텀시티역 가까운 호텔에서 4일간 투숙했는데 서면 모텔들에 비하면 엄청 쾌적하고 청결했지만, 10층 객실에서 호텔 외부로 과자질하러 들락거리는 일이 매우 불편했다. 토요코인 과자실이 최적이지만 부산에 여러 군데 있음에도 예약이나 교통편 등 난점 때문에 서면을 찾아보다 발견한 곳이다. 예전에 통영 여행할 때 몇 번 묵었던 체인이라 클릭해봤는데 스탠다드 테라스 객실이 있었다. 4일 예약하려니 20만 원이 훌쩍 넘어서 군침을 삼키고 말았는데, 다른 거 검색하느라 접속한 인터파크에 여행페스타 쿠폰이 있었고 하루씩 예약하니 총 10만 원이 할인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름만 호텔이라 실내는 어두컴컴, 대충 청소한 티가 곳곳에서 났지만 엄청난 할인에 테라스가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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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10. 10. 22:55



과자실이어도 객실은 쾌적했다. 몇 년 전 멤버십 가입할 때보다 물가도 많이 올랐지만 숙박비도 20%는 올랐기 때문에 알뜰하게 조식을 챙겨 먹으려고 일찍 일어났다. 주말부터의 연휴여선지 벽에는 만실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고 객실이 있는 12층에서 2층 식당까지 엘리베이터를 두 번은 보낸 후에야 탈 수 있었다. 식당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급할 게 없으니 기다릴 만했고 식사를 하고 10시 전에 체크아웃하고 거리로 나섰다. 

 

첫 영화까지 여유가 있어 오랜만에 남포동에 갔다. 부산도 영화제도 처음이었던 1997년 가을, 남포역에 내려 공기 중에 섞인 바다 냄새를 느끼며 잔뜩 들떠 걸었던 일도 대로변에서 극장가 골목으로 방향을 틀자 길을 가득 메운 인파와 그 모퉁이의 간이무대에서 진행 중이던 [초록물고기] GV 행사 광경도 참 오래 전 일인데 여전히 잊히지 않았다. 영화 보느라 부지런히 골목을 오가고 이따금 나만 아는 누군가를 거리나 부스 앞에서 발견하고 남몰래 반색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런 기억이 무색할 만큼 남포동도 비프광장도 많이 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청명한 하늘과 [8월의 크리스마스] 포스터 입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설렜고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기분은 한껏 올라갔다.

 

온라인으로 알고 궁금했던 모퉁이극장이 근처여서 가보았는데, 문은 열려 있었지만 공휴일이어서 휴관이라고 청소 노동자분이 알려주셨다. 용건을 물으셔서 그냥 구경하러 왔다고 하니 둘러보고 가라셔서 염치불구 층마다 다니며 주마간산, 와중에 [마티아스와 막심]과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포스터가 반가워 사진도 찍었다. 이제 이런 곳을 보고 통영에도 있다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인 바람을 갖지 않는데, 그걸 바라느니 내가 부산시민이 되는 게 빠를 것이다. G가 가끔 모퉁이극장에서 영화 봤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부러웠는데, 언젠가는 나도 할 수 있는 경험이면 좋겠다. 근처에서 G와 만나 차를 얻어타고 센텀시티역으로 갔는데, 날씨와 하늘이 받쳐주는 덕분에 기분이 더욱 들떴고 차로 지나친 영화의 전당은 오래 그리워한 대상처럼 반가웠다.

 

잔뜩 기대했던 첫 영화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몇 년 만에 재개된 현장 GV가 영화제에 왔다는 실감을 증폭시켰다. 나머지 두 영화는 큰 기대가 없었기에 아쉬움도 크지 않았는데, 오늘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의 전당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안내문이었다. 요약하자면 자원봉사자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하지 말라는 내용인데,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 굳이 붙여놓은 게 아닐까 싶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진상이 영화제에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낭만화가 내게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예전에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고 카운터에서 혼자 애쓰는 노동자에게 초콜릿을 내밀었는데, 내용물이 잘 안 보이는 상태로 손을 내미니 거의 반사적으로 "버려드릴까요?" 해서 많이 놀라고 좀 슬펐다. 매장 안에 쓰레기통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중고책을 찾기 위해 출력한 종이라고 해도 손님이 쓰레기를 대신 버려달라고 내미는 일이 많은 걸까 싶고, 폭언이나 폭행과는 다른 차원 같기도 하지만 그 일이 떠올랐다.

 

오늘의 마지막 영화가 끝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횡당보도를 건너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영화의 전당을 바라보니 괜히 마음이 일렁거렸다. 다년간 영화제를 경험하면서 영화의 전당에서의 관람이 백화점 상영관과는 다른 영화 외적 감흥을 선사하고 영화를 느끼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느꼈어서 가급적 하루 한 편은 영화의 전당 상영작을 예매하려고 신경을 썼다. 영화를 보고 느끼는 과정은 영화 자체의 절대적 완결성에 대한 수동적 감응이라기보다 영화를 보기 전, 보는 동안, 본 후의 내 컨디션과의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제 때는 상영관이 어디인지와 그 분위기도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기대했던 첫 영화가 백화점 상영관이 아니었다면 달랐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만의 잠깐 남포동도 참 좋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다는 사실 자체로 기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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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10. 9. 23:23



부산의 밤, G와 즐겁게 1박 2일을 보내고 토요코인호텔 부산중앙점 앞에서 헤어졌다. 날씨가 괜찮다면 동네방네비프인가 하는 행사에서 상영하는 [오마주]를 보러 가고 싶었는데 부산에 오는 동안 비 내리는 구간이 있었고 저녁에 비 예보도 있었다. 관계의 여백도 중요하고 G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 마음속으로만 계획했다가 취소하고, 서면에 가서 두 편의 다큐를 보고 왔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와 [성덕], 배경과 무게와 명도가 많이 다른 이야기였지만 한편 외부로부터 상처받은 마음과 삶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았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했다. [애프터 미투]도 이어 볼까 싶었지만 영화제 시작 전부터 무리했다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할까봐 관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토요코인호텔은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때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 해운대 1호점에 며칠 숙박하고 처음이다. 이후에도 영화제 일정이 나오면 예약을 했었는데 2년 연속 코로나19 자가격리 시절로 지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취소했었다. 올해도 영화제 두어 달 전부터 예약 시도를 했지만 해운대에 두 곳이나 있음에도 어려웠고, 1호점은 이제 영업을 하지 않는 것도 같다. 메가박스장산에서 영화 상영을 하지 않고 셔틀버스 운행도 하지 않는데 굳이 해운대에 숙소를 잡을 이유가 없고 작년처럼 센텀시티역 근처 호텔을 예약하기엔 부담스러워 서면점을 알아봤는데, 토요코인호텔을 선호하는 중요한 이유인 과자실을 리모델링 이후 아예 없앴다는 걸 확인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부산중앙점으로 5일을 예약했는데 센텀시티역이나 영화의 전당까지의 교통편이 불편해서 고민하다가 오늘 하루만 여기에 묵기로 했다.

 

영화제 예매를 하기 전에는 부산에 5박 6일이나 있으니 중간에 동네책방도 몇 군데 들러볼까 싶었는데, 체력을 감안해 하루 세 편씩만 보기로 했는데도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제 때마다 부산에 사는 G와 한두 편의 영화를 함께 보고 시간이 맞으면 밥을 먹고는 했던 터라, 예매 완료 후 시간표를 만들어서 공유했다. 몇 년 전부터 해왔던 일인데 올해는 G도 따라서 만들어보았다며 자기 시간표를 보내주었다. 공식적으로 일을 그만둔 후 생활체육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저녁 시간이 이렇게나 농구와 탁구로 채워지다니 좋아서 한다지만 존경스러워졌다. 이번에 같이 보는 영화는 [피해자는 누구인가] 뿐인데, 예년에 같이 봤던 영화들이 대체로 그저 그랬던 경험으로 미리 예단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물론 그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체코 영화라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드디어, 나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된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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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9. 11. 21:21



설연휴 이후 오랜만에 부모님댁에 다녀왔다. 통영 이주 이후 명절에는 보통 연휴 초반에 책 모임을 잡아서 지인의 집에 하루이틀 있다가 부모님댁으로 갔었는데, 실은 이래저래 서로 번거로운 일이어서 그만해야겠다고 지난 설에 마음먹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부모님댁 다이렉트,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느라 제법 일찍 일어나 마지막 과자를 먹고 목욕재계하고 집을 나섰다. 남부터미널행 중에 일반 가격으로 우등버스를 탈 수 있는 경우가 있어서 고성을 경유하지만 서울 갈 때 가끔 탔었는데, 시간이 흐른 만큼 늙은 탓인지 그러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무려 프리미엄버스. 예전 속초 여행 때 처음 타보고 무척 사랑하게 되었는데, 운행한 지 좀 되어서인지 내부에 세월의 때가 적지 않았지만 쾌적함과 편안함은 여전했다. 고속터미널행은 도로 사정이 좋으면 4시간이 채 안 걸릴 때도 있어서 기대했는데, 이번에는 출발 1시간쯤 지나 버스가 40분가량 제자리에 있었다. 갓길로 119 구급차며 견인차가 많이 지나갔고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5분 넘게 달려서야 저 앞 어딘가에서 4중추돌 사고가 났다는 걸 알았다. 차 두 대는 많이 찌그러졌고 두 대는 양호했고, 갓길에 사람들도 십여 명 있었는데 검색해도 뉴스에는 안 나오는 걸 보면 중상자는 없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사고 덕분에 예상보다 40분쯤 더 버스에 머물렀지만 편한 자세로 이어폰 연결해 이것저것 보면서 가느라 별로 힘들지 않았다. 3시 넘어 부모님댁에 도착해서 먼저 와 있던 오빠네 가족들이랑 피자 먹고 몇 가지 전을 부치고 집어 먹고 하다 보니 저녁 시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오빠네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엄마방에서 뒹굴거리며 텔레비전 보다가 자정 전에 잠들었다. 추석날 아침에 오빠네 가족들이 다시 와서 같이 아침 먹고 그들은 외가에 가기 위해 돌아가고, 나는 고대했던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행! 문 닫는다는 소식이 있었던 터라 아트하우스관이 두 개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계속 운영된다는 게 반가웠고, 작년 설날 이후 처음이라 괜히 마음이 설렜다.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 건물을 보니 마지막에 봤던 그대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많이 좋아하는 영화라 반갑기는 했지만 빛바랜 걸 보니 흐른 시간이 느껴졌다. 유니클로 매장이 사라지고 상당 부분 비어 있는 듯 보이는 건물이 여전한 코로나19 여파를 증언하는 것 같기도 해서 안타까웠지만,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고. 11층에 붙어 있던 커다란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컷이 아직 있을지 궁금했는데, 마치 지금 상영 중인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앞으로도 여기에 오게 될 날은 설날이나 추석 정도일 텐데,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이왕 관리 안 하는 거면 가급적 오래오래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면 싶어졌다.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 시간도 알맞게 줄줄이 상영 중이어서 네 편을 예매했다. 장거리 이동과 바뀐 잠자리 때문인지 중간에 조금 피곤을 느끼기도 했지만, 9월 하순에나 부산에 갈 예정이기 때문에 오늘이 아니라면 놓치게 될 것 같아 취소의 유혹을 떨치고 네 편을 모두 보았다. 다행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말고는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 내외로 짧은 편이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기대만큼 좋았던 영화는 [풀타임], 나머지는 대략 쏘쏘하거나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어서 아쉬웠다. 지난 설날에도 영화를 세 편 보았고 그중 한 편이 너무 아니어서 당황스러웠는데 이번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만에 부모님댁에 와서 집에 안 있고 혼자 놀러나온 벌인가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고... 까맣게 잊고 있던 작년 최악의 영화 중 한 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어떤 영화도 제작진과 출연진의 상당한 노력과 정성과 협력의 결과물일 것이므로 제목은 생략. 암튼 대략 8시간을 극장에 머물며 사이의 여유 시간에는 10층 엘리베이터 옆 테이블바에 앉아 잠시 바깥 구경을 했는데, 맞은 편의 명동과 남산타워 풍경을 보니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실은 아직도 투쟁 중일 근거리의 세종호텔 노동조합에 생각이 미치기도 했는데, 농성 상황을 잘 모르고 추석 당일이어서 아무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생각만 하다가 말았다. 영화를 다 본 후에는 다시 부모님댁으로, 버스 환승하느라 숭례문 버스정류장에 잠시 내렸는데 스마트 뭐시기 어쩌고 시범정류장이라며 아주 세련되고 쾌적하게 되어 있어서 새삼 지방소도시민으로서 대도시에 대한 거리감을 느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기도 했고 멀리 살다보니 접촉면이 줄기도 해서 부모님과 감정이 상할 일은 없는 편인데, 추석 전날 엄마를 불편하게 한 일이 있었다. 내가 생각할 때 우리 엄마는 매우 너그럽고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세대와 직업, 출신 지역의 특성으로 인한 가부장적 가치관과 세계의 변화에 대한 몰이해, 수구적인 정치 성향은 개인의 특징이나 한계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런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나로서는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내가 항상 옳은 건 당연히 아니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그냥 듣고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없지 않은데... 아무려나 추석 전날 저녁 식탁에서 음식 준비를 마무리하며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고 인내심이라고는 없는 나는 잔뜩 싸가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부모든 선생이든 연장자든 누군가를 핸들링하려는 상황이 너무 싫은 나머지 순간 욱한 거였는데, 엄마가 참으면서 그냥 넘어간 셈이 되었지만 내내 마음에 걸리고 후회가 됐다. 누군가를 핸들링하려는 상황이 싫다는 이유로 나 역시 그 순간 나쁜 표정과 단호한 말로 엄마를 핸들링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성숙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어서 영화를 보는 중에도 이따금 그 상황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고 집에 오니 저녁 9시 30분, 밥도 안 먹고 영화만 보냐며 스콘을 챙겨주었던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잡채 재료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가 해준 잡채를 뻔뻔하고 맛있게 먹으며 내심 전날의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뭐라고 말을 꺼내기가 어색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엄마가 싸준 음식과 물건 들을 바리바리 챙겨 11시 반쯤 부모님댁을 나섰다. 내 캐리어를 끌며 지하철역까지 함께 온 엄마는 고속터미널까지도 갈 기세였는데,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52시간의 봉인을 해제하고 과자를 먹어야 하므로 강력 고사하여 플랫폼에서 작별을 고했다. 프리미엄버스는 역시 쾌적했고 쌩쌩 달려 3시간 55분만에 통영터미널 도착, 짐이 많아 택시를 타려고 했으나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곧 온다기에 알뜰하게 집으로 왔다. 2박 3일만에 돌아온 집은 역시나 최고였고, 엄청 많은 음식들을 적당히 소분해 냉동실과 냉장실에 욱여넣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마음과 달리 다정하고 따뜻한 말이 나오지 않는 터라,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닌데 연휴 내내 새벽 6시에 일어나 이런저런 음식을 장만하고 먹이고 싸보내느라 고생한 엄마에게도 쉽지 않다. 추석 전날의 무례도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먼저 말 꺼내기 민망해서 연휴에 무리해서 아픈 거 아니냐고 날리듯 겨우 한 마디했는데 엄마가 "아픈 건 그날 밤에 아팠다"며 그 얘기를 살짝 꺼낸 덕분에 이야기하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새삼 엄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강력하고도 도저하게 나라면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곁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배부른 짓거리일 거라는 생각도. 9월 9일 오전 8시경부터 11일 정오경까지 약 52시간 과자와의 결별은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예우와 인내였다. 엄마한테는 참, 언제나, 여러모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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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8. 17. 17:57



3박 4일의 외유를 마치고 통영행 버스에 탔다. 날은 덥고 몸은 늙어 체력이 받쳐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양호한 상태, 근육통과 불면 예방을 위해 매일 챙겨먹은 애드빌pm에 영광을 돌린다. 간만의 장기 외유, 일찌감치 가방을 대충 싸두었지만 당일 출발 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도 있어 일요일 아침부터 바빴다. 오랜만에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짜증이 났고 환승을 통해 늦지 않게 터미널에 닿았다. 고성과 배둔, 마산을 거쳐 당도한 서부정류장, 환영한다는 듯 온몸을 감싸안는 뜨거운 열기로 대구를 실감했다.

 

지하철과 지상철을 갈아타고 사촌네 도착, 짐만 놓고 시내로 나가 놀다가 저녁에 영화를 보기로 하였으나 숨막히는 날씨 덕분에 배달음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 혼자서는 먹을 일 없고 얼마 전 몰아본 유튜브 [오늘도 삽질] 덕분에 생각난 음식이었다. 간만에 기름진 음식 실컷 먹고 수다를 떨다가 집을 나섰다. 지상철과 지하철을 갈아타고 반월당역에 내려 지하상가를 걷는데 센트럴시티와 이어지는 고속터미널역사와 비슷해 서울 생각이 났다. 남아도는 cgv쿠폰 소진 겸, 사촌은 못보았고 나는 한 번 더 볼 의향이 있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대사에 복선과 암시가 많고 씬간의 유기적인 밀도가 높은 영화라고 느꼈는데, 두 번째 보니 처음 볼 때 놓쳤던 것들이 보여서 재미있었고 얼마 전 주문해둔 각본집을 너무 늦지 않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지하철역 다이소에 들렀다. 몇 년 전 여름 서울에 온 사촌과 며칠을 행군하듯 돌아다니며 더위에 지칠 때마다 다이소에 들렀던 기억이 났다. 사촌이 시원하게 쏘겠다며 다 고르라고 했지만 제천과 부산을 거쳐야 하는 입장이라 이성적으로 차량용 블루투스 수신기와 다용도 케이블, 성에방지용 안경닦이 정도로 타협했다. 포장해온 치킨을 늦은 저녁 겸 야식으로 먹고 수다를 떨다가 잠들었는데, 체감상 서울 떠난 후 뭔가를 가장 많이 먹은 날인 것 같다. 작은 이모는 이 나이에도 만날 때마다 용돈을 주시는데 민망한 일이라, 이번엔 알리지 않고 다녀갈 생각이었지만 실패했다. 다음 날 아침 카페에 오신 작은 이모는 변함없이 용돈을 주셨고 터미널까지 차로 데려다주신다는 걸 만류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사촌이 준비해준 아보카도 브런치를 든든히 먹고 나와 동대구복합터미널 도착, 정류장 차양에서 드라이아이스가 내리는 진풍경을 처음 보았다. 

 

 

 

 

제천행 버스는 한산했다. 터미널에 내려 제천역 앞 숙소까지 가는 길 곳곳에는 JIMFF를 새긴 표석과 현수막이 즐비했고 곳곳에 배너가 흩날렸지만 축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통영만큼이나 퇴락한 소도시 풍경이 이어졌고 단돈 2만 5천 원에 예약한 '미니온돌' 숙소에서 그런 느낌은 정점에 닿았다. 싼 숙소 전문 숙박자로서도 놀라울 만큼 작은 방이었는데, 축제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위로를 전해준 뮤지션을 애도하기 위한 1박에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짐을 놓고 잠시 숨을 돌리고 공연이 열리는 하소생활문화센터까지 산책 겸 걸었다. 공연 전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백현진 님과 김오키 님 등 뮤지션들을 보았고 생기발랄하고 젊은 영화제 자원활동가들의 응대에 약간의 이물감을 느꼈고 생각보다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 공간과 무대가 쓸쓸하다고 느꼈다. 다큐 상영과 공연, 대담으로 채워진 시간은 2시간을 꽉 채웠고 통영에서 문득 떠올라 예매했던 8시 영화를 미리 취소한 건 잘한 일이었다.

 

준석 님을 기억하는 두 시간의 여운에 마음을 기대어 다시 걸었다. 어둠이 내린 낯선 거리는 대체로 음산한 느낌이었다. 물성이 더 깊은 기억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모바일이 아닌 종이 티켓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메가박스에 들렀지만 시간이 늦었다. 다음 날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도착한 숙소는 여전히 신산스러웠고, 살면서 머물렀던 가장 작은 공간이었다.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아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응답하라 1988] 1회와 2회를 보고 새벽에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잘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심신이 불편했던 탓인지 일찍 일어나 미션이라도 수행하듯 메가박스제천으로 향했는데, 폐막식날이어선지 티켓부스는 텅 비어 있었다. 다시 오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제천, JIMMF는 오롯이 방준석 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단정하게 마무리됐다.

 

 

 

 

제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버스는 영주와 옹천, 안동을 경유했다. 버스가 울산을 지날 즈음 뒷자리에서 "아, 클났다."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제천행 버스에 오르기 전 애드빌pm을 먹고 푹 잠든 터라 뒤에 누가 탔는지도 몰랐는데, 뒤에서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에 돌아보니 한 어린이가 전화기를 빌려달라고 했다.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울산행 버스를 타야 하는데 부산행을 잘못 탄 모양이었다. 전화기를 건네받고 검색해보니 동부산터미널 도착 20분쯤 후에 출발하는 울산행 버스가 있었다. 조금 후 어린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말씀드리고 함께 티켓을 사고 버스를 태워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부산에 도착해 어린이와 함께 티켓을 사고 엄마와 소통하며 버스가 출발하는 것까지 보고 사진을 보내드렸다. 얼마 후 엄마가 고맙다며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보내셨는데 좀 난감했지만 받는 게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도 같아서 나 역시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말았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일인데 너무 고마워하셔서 약간 의아하기도 하고, 그랬다.

 

부산은 비가 많이 내렸다. 예약한 숙소 카운터에 가방을 맡겨두고 cgv서면에 가서 세 편의 영화를 이어 보았다. 버스에서 푹 잔 덕에 피곤하지 않았고 첫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가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고 유쾌해서 시작이 상쾌했다. 궁금했던 [썸머 필름을 타고]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다음 영화인 [보일링 포인트]도 몰입감이 상당하고 매력적인 영화여서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운 좋게 예매한 숙소는 전날에 비하면 과할 만큼 넓고 쾌적했다. 자정이 다 되어 체크인했는데 객실 에어컨을 미리 켜두신 섬세함이 감동이었다. 큰 화면으로 코보컵 재방송을 보다가 잠들었고 다음 날은 느긋하게 나와 알라딘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영화관으로 갔다. [멋진 세계]는 기대보다 훨씬 멋졌고, 이번의 유일한 art 2관 관람작인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좋지는 않았다. [뱅크시]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통영행 막차는 밤 10시이지만 다음 날 출근이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고, 5시 56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바쁘게 돌아다녔는데 약간 멍한 기분, 차차 기록하며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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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7. 5. 19:19

 

 

통영행 버스 안이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아낄 이유는 없지만 버스에서 잠들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해 뒤척일 것 같아서 처음 시도해본다. 마지막 영화의 여운을 안고 전포역까지 걸으며 무료쿠폰으로 교환한 m사이즈 달콤팝콘을 저녁 삼아 열심히 먹었더니 과당 상태인지 약간 몽롱하다. 7월까지가 기한인 팝콘 무료쿠폰 두 장이 있어서, 버려도 그만이지만 흔쾌히 받아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싶었는데 운 좋게 오늘 [모어]를 보러 들어가기 전 키오스크 앞 한 젊은 커플이 받아주었다. 나한테 필요 없는 걸 나눴을 뿐이지만 조심스레 말을 걸고 의사를 묻고 주문서를 전하니 작은 행운이라도 만난 듯 놀라워하며 고마워하는 여성분 덕분에 기분이 환해졌는데, 괜히 민망해서 마음처럼 웃으며 화답하지 못한 게 아쉽다. 나머지 한 장도 그렇게 사용하고 싶었으나 평일이라선지 마땅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 작은 사이즈니까 먹어버리자 했더니 입 안이 과하게 달다.

 

여섯 편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일별하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듯 아득한 느낌이다. 어제는 영화 세 편의 객석 컨디션이 매우 불량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다행히 오늘은 나쁘지 않았다. [헤어질 결심]을 볼 때는 같은 줄 옆 쪽의 관객이 시작부터 환한 휴대폰 불빛으로 방해를 해서 두어 번 참다가 기척을 냈다. 이후에도 시간을 확인하는지 몇 차례 휴대폰 불빛이 새나왔는데, 영화 보면서 화면 조도를 낮추지도 않고 몇 번씩이나 휴대폰을 확인하며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 수 없다. 영화가 30%쯤 진행됐을까 싶을 때부터 스크린에 파리 그림자 같은 게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도 시체에 달려드는 벌레들이 종종 나타나서 효과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영사기 빛을 향해 날아다니는 벌레였던 것 같다. 전체 상영 시간 중 절반쯤 띄엄띄엄 나타난 파리 그림자는 화면의 명암에 따라 정도를 달리하며 거슬림을 시전했는데, 어제 지난한 객석 컨디션의 서막이었던 것 같다. [컴온 컴온]을 볼 때는 앞의 앞 열에 앉은 사람이 시작부터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계속 반복됐고 바스락 한두 번 후에 계단에 대고 과자 부스러기를 터는 손짓이 주기적으로 이어졌다. 개별 포장된 과자 상자를 사와서 다 처먹는 건지, 전반적으로 조용히 진행되는 영화 내내 그러고 있는 게 짜증을 넘어 놀라웠다. [호수의 이방인]을 볼 때는 내 옆으로 세 좌석 떨어져 끝 자리에 앉은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캔 따는 소리에 이어 마시는 소리, 캔 구기는 소리 그리고 일련의 소리들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속으로 영화관에서 뭘 그렇게들 처먹냐고 욕하며 참고 있었는데 조금 후부터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영화가 조용해질수록 코 고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제일 뒷줄이었는데 뒤를 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얼마 후 내 반대편으로 옆 쪽에 앉은 남성이 그에게 큰소리로 뭐라고 했다. 그는 잠시 깨어난 듯했지만 곧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뭐라고 했던 남성의 옆 쪽에 있던 여성이 내 앞을 지나 그에게 가서 정중하게 얘기를 했다. 코 고는 남성 바로 앞 자리의 관객은 신기하게 미동도 없이 영화에 집중하는 것 같았고, 이후에도 무척 조심하지만 참을 수 없다는 듯 코 고는 소리는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물론 무척 별로였고 그와 자리가 가까운 탓에 괜히 나까지 신경이 쓰였는데 직접 뭐라고 한 사람들 말대로 그가 나가주는 것도 괜찮았겠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나는 코 고는 소리가 (나름 조심은 했겠지만) 의식적으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보다는 참을 만했다. 영화 시작부터 (아마도) 맥주를 두 캔이나 마시고 처자며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는 건 짜증났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버스를 타고 지오플레이스 정류장에 내려 cgv서면으로 갈 때만 해도 나를 기다리는 영화들 생각에 즐거웠는데, 무슨 날인가 싶게 세 편 연속으로 무례한 관객들과 함께하고 보니 문득 마음이 우울해졌다.

 

극장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몇 달 연속으로 갔었는데 갈수록 청결 상태가 떨어지고 찝찝함이 커지고 있어서 이번에는 다른 곳을 예약했다. 앱에서 예매할 때 3만 원 내외인 저렴한 숙소에 기대할 건 없지만, 역시나 거기서 거기였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조조로 [니 얼굴]을 봐야지 생각했는데, 2년만에 사흘 출근한 다음이어선지 역시 피곤했고 러닝타임이 짧더라도 하루 네 편은 무리다 싶어 관뒀다. 체크아웃 시간이 1시여서 오전 시간을 아주 여유롭게 쉬고 나와 영화를 보러 갔다.

 

[모어]는 부산행 날짜를 잡기 전에는 아예 몰랐던 영화였다. art2관에서 한 편은 봐야 안 섭섭할 것 같아 살펴보다 보니 시간이 딱 맞았는데, 강렬하고 화려한 드랙퀸 포스터에 살짝 갈등하다가 예매했다. 포스터 분위기로만 짐작하기에는 텐션이 너무 높을 것 같아 불감당일까봐 걱정도 됐지만, 다큐이고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한참 전이지만 [헤드윅] 좋아했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며 전혀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내내 푹 빠졌다가 나왔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번 부산행의 의미는 [모어]를 보는 것이었다고,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레드 로켓]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염두에 뒀던 작품이어서 반가웠는데, 잘 만들었지만 계속되는 실소에 피곤한 농담 같은 영화라고 느꼈다. 마지막 [김광석, 못다 한 이야기]는 김광석 아저씨의 공연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반색하며 타이밍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방울방울 추억과 함께 33분이 쏜살처럼 지나갔는데, 예상대로 음질과 화질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기회가 된다면 [모어]는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쉽지 않을 것 같고, 얼마 전 출간됐다는 모지민 님의 에세이를 조만간 사서 읽어보려 한다. 너무 월초에 영화여행을 다녀와서 남은 7월이 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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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6. 10. 23:26



5월 하순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부산하게 6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거를 수는 없으므로, 지난달 예고편을 보며 기대했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과 나름 기대되는 [브로커] 등을 염두에 두고 날짜를 잡았다. 같은 패턴을 1년 넘게 반복하니 접근성 덕분에 편리하다고만 느꼈던 극장 인근 싸고 지저분한 모텔에서의 하룻밤이 은근히 스트레스를 동반하고 있지만, 고양이 두 마리가 활보하는 지인의 집은 너무 멀고 비싼 돈 주고 괜찮은 호텔을 찾자니 백수 주제를 넘는 일 같아 달리 방법이 없다. 하여 이번에도 자주 가던 모텔을 예약했는데, 역시나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을 손꼽았던 이유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흠뻑 빠졌던 [6번 칸]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 작품이기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쏘쏘했다. [애프터 양]은 선호하는 소재나 주제가 아니고 [파친코]를 본 바도 없었지만 시간이 맞기도 했고 cgv명씨네에선가 정성일 평론가의 토크 소식도 들었기에 궁금해서 봤는데 역시나 내게는 큰 감흥이 없었다. 아이들의 세계를 다룬 벨기에 영화 [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달 예고편을 보며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아직 상영 중이었고, 유쾌함이나 편안함을 느낄 새가 한순간도 없어 피로감이 상당했지만 볼 만 했다. 범죄액션물은 전혀 취향이 아니지만 손석구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심야로 볼까도 생각했으나, 부산 오기 전 집 정리하느라 체력장 다음 날 컨디션이었고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며 더욱 지친 데다 마지막 영화의 무게에 심신이 압도되어 관뒀고 잘한 일 같다.

 

1년 넘게 정기적으로 가다 보니 cgv서면 art2관 리클라이너 좌석의 쾌적함에 길들여져서 다음 날의 [브로커]는 cgv삼정타워 리클라이너관으로 보러 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이 대개 좋은 느낌이었어서, 이번에도 기대했는데 화려한 출연진 덕에 초반에는 몰입이 어려웠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빠져서 봤고 역시 이름값이란 게 있구나 싶었다. 극중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교회가 전포동에 위치하고 도입부 선아의 동선이 그 일대와 서부산터미널이었는데 최근 1년 여 가장 자주 오간 공간들이어서 불쑥 반갑기도 했다. 시간이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이 의외로 재미있고 괜찮아서 욕심 부리지 않고 여느 때보다 적은 편수의 영화를 본 이번 달 여행의 마지막이 그런대로 흔쾌했고, 돌아오는 길 [브로커]와 겹쳐진 서부산터미널 내부가 약간 다시 보이는 기분이기도 했다.

 

나를 거쳐간 수많은 이야기들에 내가 모르는 무수한 이야기들까지 생각하면 소설이든 영화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기적에 가까울 것 같은데, 한편 소설이든 영화든 작품을 구성하는 적잖은 요소들의 조합 역시 거의 무한대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때로 나름의 새로움을 만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긴 뽀로로 시기가 마무리되는 시점, 조금은 무리한 부산행의 영화들이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작품마다 들어갔을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과 정성 같은 걸 생각하면 그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향후 몇 년은 통영에 살 테고 영화 보기를 위한 부산행은 이어질 텐데, 그래도 한 편 정도는 반짝 마음에 불을 켜주는 영화를 만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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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2. 5. 13. 21:21

 

 

5월의 부산행을 완료하였다. 지난해 주로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1박 2일로 갔었는데, 꼭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가 생기고 수요일 저녁 시간 극장에 사람이 많아 분위기가 별로인 경우도 있어서 앱의 영화 메뉴에서 개봉예정작을 살펴 보고 날짜를 정하는 걸로 바꿨다. 이번에는 [파리, 13구]와 [스프링 블라썸]을 함께 볼 수 있는 날로 미리 정했고, 목요일과 금요일 다섯 편의 영화를 보고 왔다. 하루에 네 편은 역시 좀 피곤하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가능한 보고 싶은 걸 다 보려니 어쩔 수 없었고, 금요일에 달랑 한 편은 아쉬웠지만 궁금하지 않은 영화를 패스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홍상수 감독 영화를 흔쾌히 볼 수 있었다면 [소설가의 영화]까지 봤겠지만 아무래도 보고 싶지 않았다.

 

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초창기부터 몇 년 전까지 그의 영화를 많이 본 편이고 [하하하]는 통영과의 인연을 매개한 작품이어서 dvd로까지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영화를 보지 않게 된 건 아무래도 세간의 화제가 됐던 '사랑' 때문이었는데, 누가 누구와 사랑을 하든 불륜이든 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관련 뉴스가 포털을 도배했던 언젠가 한 뉴스를 읽은 영향이 컸다. 아내와 딸은 그의 새로운 사랑과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에 그는 출석하지 않았고 뭐 그런 가십 기사였는데, 어디까지 팩트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랑과 이혼 소송'은 사실일 테고 아내와 딸의 고통도 진실일 테다. 누군가의 사랑과 이혼은 제3자인 내게 무관한 일이지만, '피해자'가 존재하고 고통 속에 있다면 그에 대해 사죄하고 대외 활동을 자중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싶었는데, 이혼 소송 법정에는 대리인을 내보내고 해외 영화제에는 참가하는 모습이 납득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랑을 선택했다고 두문불출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연인과 동반해 미디어에 노출되는 모습이 원가족들에게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고,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어떤 가담 행위처럼 느껴졌다. 물론 언젠가부터 그의 영화들이 너무 사적인 세계의 동어반복 같아 전만큼 재미있지 않았고, 내가 본 마지막이었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처음 본 한 배우의 발성과 음성이 집중을 방해할 만큼 거슬렸는데 이후 출연 빈도가 높아지기도 했던 터라, 꾸준히 내놓는 그의 신작들을 무시하는 건 자의적 윤리보다는 취향의 이전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암튼, 덕분에 금요일에는 체크아웃 이후 3시 영화를 보기까지 서면 일대를 오랜만에 많이 걸어다녔고, 거래 은행 지점들을 돌며 몇 개월만에 통장정리도 시원하게 했다.

 

이번에도 오전에 부산에 도착해 중고서점에 들르고, 오후 1시쯤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다섯 편 모두 나름의 이유로 궁금했던 영화였고, 영화 시작 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영상편지를 세 번쯤 받았고 아마도 놓치게 될 [봉명주공] 예고편을 네 번이나 보았다. 앱의 개봉예정작 리스트에서 확인하고 기뻤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예고편도 세 번 보았는데, 예고편까지 보고 나니 혹시 [6번 칸]을 올해 극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져서 기대해보기로 했다. [파리, 13구]와 [동경 이야기]를 본 후 숙소 체크인을 하고 바로 나와서 [허셀프]를 보았다. 다음 영화까지 텀이 길어서 숙소에서 쉬고 저녁도 먹고 다시 나와 [우연과 상상]을 보았는데, 극장에서 숙소까지 아주 짧은 밤산책이지만 자정 가까운 시각의 도심을 걷는 일이 역시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본 후 여름밤을 걸을 때면 어쩐지 그 영화가 떠오르는데, 나른하고 약간은 몽환적인 정취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아직은 늦은 봄밤이지만, 겨울밤과는 확실히 다른 공기여서 이르지만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은 아주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고 숙소에서 나와 많이 걸었다. 극장 객석에 앉으니 여독이 밀려오는 느낌이었지만 편안한 좌석과 머리보다 마음으로 보게 되는 영화여서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남쪽의 비 예보로 우산을 챙겨갔지만 쓸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만족하며 터미널로 향했는데, 부산에서 통영까지 또 터미널에서 집까지는 연이어 난감함에 시달려야 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크게 떠들거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언행을 이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나 어르신들이라고, 어렸을 때는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런 걸 결례로 여기지 않는 문화였을 테고 그 버릇이 남아서 그런 걸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공공 예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교육 받은 세대들이 다수를 점하게 될 테니 점점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딱히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부산에서 통영으로 오는 버스에서 약 80분간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젊은 두 여성 때문에 엄청 짜증이 났다. 그들이 바로 내 뒷자리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지만, 에어팟을 끼고 볼륨을 최고로 높였는데도 그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피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대화를 중단하거나 목소리가 낮아지겠지 생각하며 이어폰를 뚫고 들어오는 소음을 참았지만 절반 이상 왔을 때도 변함 없어서 한 번 부러 뒤돌아보았고 그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째려본 건 아니지만 앞자리에서 굳이 뒤를 돌아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지 않나, 보통은 자기들 소리가 컸나 생각하고 자연히 목소리를 낮추게 되지 않나. 그러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고 통영에 도착할 때까지 변함 없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꼭 그래야만 하는 대의명분이 없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지, 혹은 그렇다는 의식 자체를 못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교양 없고 무례한 태도를 세대나 교육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걸 아연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자꾸 경험하는 건, 내가 유난히 민감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지만 제발 사람들이 조금 덜 뻔뻔하면 좋겠다.

 

그렇게 시외버스에서 내렸는데 터미널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는 더 희한한 경우를 겪었다. 어려 보이는 남녀가 버스의 맨 뒷자리와 그 바로 앞 자리에 앉았는데 여성이 앉자마자 빈 앞 자리 등받이에 두 다리를 올렸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맞은 편에 앉아 있었으므로 옆 시야로 뭔가 휙 지나가서 보게 됐는데, 얼마 후 다리를 내리더니 통로 쪽으로 돌아앉아 한 다리를 팔걸이에 걸쳐 올리거나 들어 올리고 뒷자리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이와 큰소리로 대화를 했다. 시외버스에서 지쳐서 이어폰 볼륨 올리고 딴 생각하며 무시했는데, 이런 게 이렇게 거슬리는 건 예민해서도 있겠지만 그냥 내가 꼰대가 돼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당하고 자유로운 거랑 개념 없고 예의 없는 건 분명 다른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꼰댄가, 혼란스러웠다. 혹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불쾌감을 안기고 다니면서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의심이 순간 엄습하기도 했는데, 기억력이 날로 감퇴 중이기는 하지만 설마 아직 그 정도는 아니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거슬리는 거 많은 건 인정하지만, 귀가길 두 번의 버스 탑승이 빡센 덕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이번 부산행은 마무리가 영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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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