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4. 1. 6. 10:13

 


몇 년간 여기저기서 마주쳐 궁금했던 [스토너]를 올해의 첫 책으로 읽었다. 제목이자 이름의 주인공인 인물의 부고와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는, 격동하는 시대를 고요하고 담담하게 살다간 한 사람의 생을 따라간다. 스토너는 삶의 방향을 극적으로 바꾸는 현란한 빛과 같은 계기도 희열보다는 혼란으로 느끼며, 자신에게 주어지고 선택한 길을 답답하리만큼 우직하게 감내하며 걸어간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잣집 딸과 결혼하고 영문과 교수로 삶을 마친 그의 일생은 외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상승곡선을 그리지만, 그 과정의 일상은 지극히 소시민적으로 그려진다. 영웅도 반영웅도 아닌 ‘보통의 삶’에 연루되는 무수한 관계와 그만큼의 의미,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의 삶에나 깃든 기쁨과 슬픔과 장엄함을 생생히 그려낸 소설이었다.   

당대의 기대수명만큼은 살다간 스토너의 일생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많지 않다. 어려서는 부모, 대학 시절에는 한 사람의 은사와 두 친구, 결혼하며 생긴 아내와 장인장모 그리고 딸 그레이스, 대학에 자리잡은 후 만난 몇몇 동료들과 학생들, 그중 인상적인 관계로 등장하는 로맥스 교수와 찰스 워커과 캐서린 드리스콜. 전 생애를 통틀어 열 명쯤의 인물들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에 무엇보다 그에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학문과 가르침의 세계다. 물론 소설의 전개상 집중할 수밖에 없는 주요 인물들이 설정된 것이겠지만, 일생을 살아가는 데에 그렇게 많은 관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도 읽혀졌다.  

스토너를 곤경과 사랑에 빠뜨리는 계기를 제공한 세미나의 주제였던 ‘르네상스 시대까지 살아남은 중세 전통’은,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는 요소들에 대한 천착이라는 점에서 그의 삶과도 이 소설과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대는 언제나 가장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일 것이다. 의식하든 못하든 사람은 살아가는 한 동시대 역사의 모든 국면을 통과하며 변화를 흡수하지만, 와중에도 부지불식간 자신이 선택하는 가치와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스토너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공부와 사랑은 쓸쓸하기도 했지만, 결국 혼자이고 끝내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어느 순간을 반짝이게 만든 선물이었던 것 같다.  
 
작가가 내향적이고 보수적이고 진중한 스토너에게 첫 번째 용기를 부여한 시점은 이디스에게 첫눈에 반해 다가갈 때였다. 그때의 이디스는 여느 문학 작품의 여주인공과 다름없이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아가씨다. 대략의 분위기만으로 짐작 가능한 외로움 속에 성장한 이디스는 결혼 이후 돌변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내면과 잠으로 침잠하지만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는 극단적인 변신을 거듭하고, 작가는 그런 이디스의 행태를 공격과 선전포고라고 서술한다. 차분한 호흡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여서 차분히 따라 읽으면서도 작가의 관점은 이디스에게 부당한 중립적’ 관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디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면 스토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상황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그려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레이스는 캐서린을 만나기 전 스토너가 가장 사랑한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손길로 키우고 서재에서 함께하는 시간 동안 스토너는 난생처음 사람으로 인한 행복감을 느꼈을 것 같다. 이디스의 개입으로 멀어지고 사춘기를 겪으며 급변하고 혼전 임신과 출산에 알콜 중독의 싱글맘으로 나이 들어가는 사랑하는 딸에게, 스토너는 다시 다가가지 못한다. 내가 경험한 부모 자식 관계를 대입하기에는 시공의 조건이 완전히 다르지만, 스토너와 그레이스의 관계와 변화를 따라가는 흐름이 인생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사랑해도 어떤 관계라도 상대의 불행과 전락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가족을 비롯한 타인의 영향 속에 살아가지만 지금의 삶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   

스토너와 캐서린의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기뻤다. 마침내 온전한 짝을 만난 듯 심신의 충만감을 만끽하는 두 사람의 방이 그려지는 것 같았고, 결혼반지를 간직하는 대신 오두막에 남겨 놓는 캐서린의 결정에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흔한 불륜일 뿐인 사랑이지만, 현존을 내버리고 사랑만을 위해 도피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두 사람의 합의는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라고 느꼈다. 로맥스의 보복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사랑은 거기까지였을까. 캐서린이 떠날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고, 마지막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에 스토너가 감사했다는 부분은 솔직하지만 너무 냉정한 진실을 담은 문장이어서 놀라웠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스토너 캐릭터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너와 가장 극적인 대립 지점에 선 로맥스 그리고 찰스를 장애인으로 그린 작가의 의도도 궁금했다. 로맥스 캐릭터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그가 스토너를 제소하겠다며 학칙을 거론하는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고 적잖은 양가감정을 느꼈다. 소설이 발표된 1965년 즈음 장애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주인공과 대척점에 서게 되는 두 인물의 공감대를 장애라는 신체적 특징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소수자에 대한 연대와 연민이라는 당위적 사고가 당시에 얼마나 인정되는 것이었는지, 단지 복잡한 조건을 통해 대체로 잔잔한 소설에 극적인 장치를 추가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혹은 스토너의 신념과 로맥스의 복수가 빚어내는 현실에서의 충돌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지. 로맥스 부분을 읽을 때마다 여러 생각들이 뇌리에 맴돌았는데, 오히려 그렇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독자가 성찰해야 할 부분인가 싶어지기도 했다.  

책의 띠지와 말미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글에는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읽고 나니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되었다. 책날개와 옮긴 이의 말에 실린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에는, 그 영웅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의미의 단어라면 동의가 되지 않는다. 스토너의 삶의 외형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었지만 그 내면은 언제나 외롭고 공허하고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한 인생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을 때, 나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느끼는 평균적인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좋은 책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책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디스에 대한 묘사와 서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서 나는 이 책을 감히, 대단히 사려 깊은 남성 서사라고 말하고 싶다.  


존 윌리엄스•김승욱 옮김
2020.6.24.1판1쇄 2022.9.15.1판10쇄 발행, (주)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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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사는게알리바이2024. 1. 4. 18:18



12월 중순에 다녀오면서 12월이니까 한 번 더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에 두 번은 좀 찔리니까 영화를 싸게 볼 수 있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잠정 결정했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꼭 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주 수목에 볼 수 있는 회차는 아침 8시대, 고민하다가 연말에 지인도 오기로 했으니 1월에 두 번으로 잠정 결정. 덕분에 연초부터 부산에 다녀오는 길이다.  

게으른 일상을 보내면서도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면 침구나 쓰레기 버리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라, 12월이나 1월에 두 번의 부산행은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내겐 나름 일관되고 합리적인 결정인 셈이다. 지방소도시민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 놓치는 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됐지만, 한 달에 한 번 영화 몰아보기는 나름 중요한 의례다. 그마저 귀찮아서 안 하게 된다면 히키코모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니, 일상의 무기력을 환기해주는 영화에 고마워할 일이다. 

차가 생기기 전에는 많이 걸었는데 차가 생긴 후에는 내 운동보다 재작년에 두 번이나 방전됐던 차 운동이 더 급해졌다. 가장 좋은 건 부산에 갈 때 운전하는 거고, 올해는 도전해보려 하지만 아직은 무리. 부산 갈 때 걷기라도 많이 하자 생각하는데 사상터미널에서 서면까지 2시간 이상 걸리고, 영화 보기에도 체력이 필요한 터라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해봤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 후 간판의 통영이 눈에 들어와서 걷는 동안 몇 번이나 마주칠까 했는데 두 번, 괜히 반가웠다. 

도보는 초행이라 지도앱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걸었는데, 절반 이상 버스 노선을 따라가다가 갈라지는 지름길이 새로웠다. 낯선 길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정말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으슥한 대로변 끝에서 마주친 육교가 생각보다 높아 후달렸지만, 건너편으로 넘어가자 곧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잠깐의 걸음으로 마주한 낯익은 길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알고 모르고가 가져오는 마음의 차이를 새삼 느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잠시 쉬다가 영화관으로. 첫날의 두 편은 피아노 연주가 가득한 작품이었는데, 우연한 연쇄였지만 연륜이 극에 달한 거장과 이제 막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청년들의 대비가 느껴졌다. 문화가 있는 날 할인 타임이어서 객석이 제법 찼지만 비매너 관객이 없었던 덕에 편안하게 몰입하며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음 날 첫 영화는 어차피 선택지가 별로 없었지만 이따금 극장에서 본 스페인어권 영화들이 대부분 좋았기 때문에 선택했는데, 기대보단 그저 그랬다. 보고 싶었던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괜찮았으니 됐고, 욕심 부리지 않고 하루 두 편을 본 게 뭔가 정갈한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다.  

작년에도 달마다 거의 빠짐없이 부산에 다녀왔고 많은 영화를 봤는데 정리에 너무 게을렀다. 스포일러와 홍보 효과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 소개에서 시놉시스가 사라졌고, 내용 없이 느낌만 적어두면 나중에는 어떤 대목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일천한 기억력으로 서사를 되짚어 정리하다 보면 진이 빠지는 악순환이 괴로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기억이 안 되면 기록이라도 남겨야 하는 성향이긴 해서 또 포스트는 다 만들어뒀는데, 올해는 너무 늦지 않게 정리하면서 지난 것들도 채워보려 한다. 이마저도 안 하면 안 사는 것 같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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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산책일기2024. 1. 1. 20:02

 


오랜만에 지인과 연말연시를 함께 보냈다. 덕분에 한 번은 가봐야지 했던 카페 배양장 방문, 딱히 비슷하진 않지만 예전에 갔었던 속초 칠성조선소가 떠올랐고 나도 이제 보조석 인질이 있다면 풍화일주로쯤은 갈 수 있는 운전자임을 확인했다. 오래 전 스페인에서 배운 거라며 부엌을 차지한 지인 덕에 2023년 마지막 식사는 빠에야, 그리고 한참 이어지던 수다 중 새해를 맞은 순간 올해의 첫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아점으로 떡국을 끓여 먹고 두 번째 북포루 도전, 차로 가니 조금 다른 경로가 되겠지만 나름 산행이었던 첫 번째 북포루행이 떠올라 정상에서 먹을 생각으로 샤인머스켓을 챙겨갔다. 통영산 지인의 지도편달로 알게 된 길은 다행히 산책 수준이었고 미세먼지인지 구름인지로 시야가 흐렸지만 탁 트인 풍광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말고도 누군가 있을 것 같아 샤인머스켓을 넉넉히 담았는데 마침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있어 나누고 먼저 내려가는 그들과 두 번째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해 지기 전 떠날 지인과 이른 저녁을 먹으려 집 근처 텐동집에 갔지만 브레이크 타임. 지인은 새로 생긴 보도교와 정비 작업이 마무리된 강구안을 보지 못한 터라, 이전에 맛있게 먹었던 강구안 인근 통통칼국수에 갔다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역시 브레이크 타임인 듯했으나 사장님이 재료 준비를 많이 해놨다며 흔쾌히 입장을 허락해주셔서 식사를 하고 나오며 기분 좋게 세 번째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지인과 헤어지고 귀가했다가 잠시 나갈 일이 생겨 샤인머스켓 한 송이를 챙겨 경비노동자 아저씨께 드렸다. 단지 입구에 경비실 하나가 있는 아파트여서 동마다 경비실이 있던 서울에서보다는 소원하지만 내게는 나름 가깝고 고마운 이웃이어서 이래저래 작은 먹거리와 인사를 건네는 일이 잦은 편인데, 날이 갈수록 웃음이 환해지는 느낌이라 부담이 없어진 덕에 네 번째 “새해 복” 인사. 그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마침 외출하려 현관을 나서는 옆 집 분들을 마주쳐 오늘의 마지막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문어체인 듯 확신의 구어체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하루에 다섯 번이나 직접 나눈 1월 1일이 언제였나 싶다. 지인의 방문이 아니었다면 세 번의 인사는 없었을 것이고, 어떠면 뒤의 두 번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연말연시에 국한된 형식적 인사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직접 마주하며 인사 나눌 일이 거의 없다 보니 각별하고 흐뭇한 느낌이다. 우연히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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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