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50


올 한해는 수업 관련해서,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내 사고 영역의 단 1%도 차지한 적이 없었던 '군대'에 관한 이슈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그저 '군대'라고 했을 때는 남자들이 가는, 고로 나는 해당 없는. 정도에서 생각이 그쳤었는데, 혹여나 그와 직접 관련된 일들이 있었나... 고민하다보니 의외로 초등학교 시절 때가 되면 날렸던 위문편지에서부터, 고등학교 시절 자매부대 방문과 2박 3일간의 내무반 생활 및 군사훈련(?, 그래도 로프도 타고 총도 쐈다), 대학시절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고 한 번은 혹독하게 머리채를 잡히기도 했던 전의경들까지, 나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지난 학기에 군사주의와 한국사회 수업을 들을 때는 한 학기가 인분사건으로 시작해 김일병 총기 난사사건으로 마무리됐었고, 한 학기 내내 군대와 군사주의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자료를 찾아읽다보니 새삼 일상에 착 달라붙어있는 군사주의와 은연중에 내면화된 내 속의 군사문화에 대해서도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이들이 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은 온통 무기류였고, 지난 한 때 온국민이 열광했던 월드컵 대표선수들은 태극'전사'였었네. 그러다보니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었던 어느 날에는, 매스컴 구석구석 만연해있는 군사용어의 일상화가 놀랍도록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에도 그것이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이고도 개별적인 군사주의의 침투는 참으로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싶었다. 아무리 전국민동원을 통해 진공적인 근대화를 이룩한 남북한 대치 국면의 국민개병제 사회라지만, 어느 연구자의 말마따나 생활 속에 혈관처럼 자리잡고 있는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어찌 이리도 없었을까 신기할 지경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낯선 것인지, 새삼 문제로 삼기에는 낯선 생각이 들만큼 이미 익숙해버린 건지, 혹은 둘 다 아니건 맞건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을 만큼 우리 사회가 이미 그 속에 잠식되어버린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선택'을 통해서, 그리고 그 이후 가끔씩 언론이나 자료를 통해서 접했던 권인숙씨의 새 책이 대답을 주는 느낌이었다.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군사주의와 남성성에 대해 여성학적 시각의 분석을 해놓은 이 책의 이야기들은, 정신 없는 지하철 독서에도 이해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만큼 쉽다. 논의의 수준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와 남성주의가 만연해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책의 내용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우리 사회를 조망하고 분석한 국가주의적 평화와 군사화(1장)과 징병제와 젠더(4장) 부분은 이런 저런 자료에서 산발적으로 접하면서 조금 혼란스러웠던 우리 현대사의 한 측면이 일관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의 군사화와 성별화(2장), 한 여성 활동가 이야기(3장) 부분은 저자의 직접 경험과 동세대의 현재적 증언(?)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어 특히 흥미 있었는데, 인터뷰에 등장하는 그 시절 여성들이 가졌던 군사주의와 남성성(혹은 성별화 혹은 가부장성)에 대한 인식이 지금 나의 인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발견이 새로웠다.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가서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가득한 그러한 사고들은 자연스럽고도 당위적인 분위기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과 남성성이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읽으면서 내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이미지는, 두꺼운 뿔테 안경의 창백한 얼굴과 푸른 수의를 걸친 십수 년 전의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피해자였던 저자가, 물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성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인 남성들과 대면하며 인터뷰를 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경이로울 만큼의 용기와 자기극복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인 사건으로 공론화되었지만 한 개인에게 남았을 내밀한 상처의 크기는 가히 짐작할 수 없는 터, 아무리 연구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상처와 직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용서보다 더 힘든 일은 똑바로 마주하고 분석하는 일이 아닐까.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녀의 연구에 진심의 박수를 보낸다.


2005-10-06 00:49, 알라딘




대한민국은군대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 여성학 > 남성학/남성문제
지은이 권인숙 (청년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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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49


윤대녕이 변했느니 아니니, 조용히 말이 많다. 혹시 그가 변하고 싶었다면 변했다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편이니까. 짧기는 했지만 조금 여유가 있었던 추석연휴, 오랜만에 엄마아빠집에 갔다가 열다섯부터 스물아홉까지 십오년 동안 살았던 내 방, 늘 혼란하고 늘 소란한 영혼의 안식처였던 그 곳에서 선물처럼 내게 온 그의 새 책을 읽었다. 십수 권의 책을 내면서도 짐짓 외면하는 듯 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했으나, 내게는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는 은어를 낚던 그가 이제는 바다로 나아가 호랑이를 낚겠다고 하는 것도 별로 새롭지 않았다. 그의 소설을 이야기할 때 너무나 당연히 따라붙는 존재의 비의니 시원을 향한 여정이니 하는 말들, 이제는 하나의 관용구처럼 되어버렸지만 숨이 붙어있는 한 존재를 앓을 수 밖에 없는 누군가를 위해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여전히 새로운 변주다. 모두다 같은 영혼이 없듯이, 모두다 같은 길을 거슬러가더라도 결코 같은 길은 아니다. 그래서 난 그의 책을 기다리고,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나이듦이 결코 일률의 속화가 아님을, 언제나 비슷한 이야기로 지겨우리만치 비루하게 자아를 좇는 그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 처치곤란의 삶들에 감사한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반복되어도, 결국 타고난 것들은 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소설의 기저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깔려있다고 믿는 내게, 윤대녕의 남자주인공들은 모두 작가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소설에는 늘 스테레오 타입화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성마르고 건조한 사내와 예민하고 불안한 여인,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글을 쓰는 영빈과 그림을 그리는 해연, 그리고 그들의 곁을 맴도는 히데코. 회사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다가 첫 책을 묶어내고 권고사직을 당한 영빈,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다 마침내 전업작가의 길을 결심하고, 제주도로 내려간 그는 심지어 전업낚시꾼처럼 되어버린다. 삶의 고비인가 싶을 때마다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호랑이를 잡겠다는 결심조차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그의 주인공.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시대를 관통한 젊은 날의 그는 가족들과도 조화롭지 않았고, 가족과 시대를 뒤로 하고 떠난 그 곳에서 인류 최초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바닥을 맞추며 자신의 근원을 만나는 듯한 경이로움을 접한다. 수족관과 물고기 그림으로부터 일상의 구원을 얻는 해연,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행복하게 자라던 그녀는 아무 일 없는 일상에 지쳐버린 엄마의 배신과 아빠의 무기력으로 인해 커다란 삶의 균열을 맞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다를 떠돌며 물고기를 낚던 아버지를 결국 바다에 내어주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생활의 바다에 내던져진다. 자기 나라를 떠나 한국에 체류하는 히데코, 그녀 역시 일찌감치부터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떨치던 동급생 사기사와 메구무를 향한 야릇한 동경과 동일시 그리고 일종의 질시 속에서 한 편 소녀적의 연정이 남긴 불가해한 낙인과 이별로 인해 생의 바닥과 같은 공포와 혼란 속에서 방황을 거듭한다. 내 존재의 뿌리가 어디인가를 의식적으로 생각지 않아도, 존재의 중력으로부터 떨어져나간 듯 부유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실은 우리 삶의 본질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당위적인 추구가 있다. 읽다보면 나는 자주 안심이 된다.
 

영빈과 해연, 히데코와 메구무. 어쩌면 억지스런 우연이 만들어낸 그들의 인연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반드시 만나야 할 같은 피를 지닌 사람들은 우연이건 필연이건 결국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알아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이 붕괴된 성수대교의 한 귀퉁이건, 집 근처의 지하까페이건, 인파로 북적이는 신촌기차역 주변이건, 사실 그건 관계가 없다. 비현실의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 중 두 사람은 어쩌면 행복한 미래를 예감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결국 생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떠나고 만다. 삶은 결국 살아남은 자의 몫이듯, 고독과 혼란 또한 온전히 살아남은 자가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아빠가 된 작가의 주인공은,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지 심지어 불안해하는 여인을 달래며 일상을 버티는 일에 대해 독려한다. 마침내 호랑이를 잡으면, 세상과 화해하고 타인과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일까. 다 큰 어른의 성장기를 보는 듯, 아주 조금은 물러진 작가의 촉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세파에 찌든 항복이거나 더이상 어찌할 수 없는 물러섬이라기보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불가해한 삶의 비밀이 혹은 존재의 비의가, 결국은 새로운 삶의 잉태와 성장을 지켜보면서 나이듦 역시 하나의 성장임을 긍정하는 순리와 같은 화해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작가가 스스로 밝히는 청년으로 살았던 80년대와 90년대로의 회귀와 거기서부터 내딛는 발걸음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존재를 탐색하는 작가를 굳이 광장으로 거대담론으로 불러내는 억지 의미부여는 아니었으면 하고 바란다. 나에게는 여전히 걸개그림이 주는 격정과 벅찬 감동 만큼이나 손바닥만한 엽서가 주는 미세한 떨림과 공감이 절실히 필요하니까. 


2005-09-21 02:18, 알라딘



호랑이는왜바다로갔나윤대녕장편소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윤대녕 (생각의나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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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48


뉴스를 보다보면 아무래도 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무척이나 개인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편인 내가, 과연 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이 될 만큼이나 절망적인 일들 투성이다. 도대체 우리만 그런 건지 내가 모르는 다른 나라들도 다 그런 건지, 초등학생처럼 순진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다. 지난 여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세계체제론 강의를 들으며 조금은 위안을 받기는 했다. 내 삶이 온전히 얹혀진 이 체제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당위적인 모순의 정점에 와있구나. 그렇다면 과연, 이 체제는 얼마나 탄탄하고도 무서운 것인가. 이 정도면 망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너무 깊숙하게 세계는 자본주의적으로 재편되어 왔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뭐지? 쉽게 지치고 무기력에 빠지는 나는, 없다. 라고 단언하고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조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뒤에는 이미 두 세기 전의 사람이 되어버린 덥수룩한 수염의 할아버지, 마르크스가 있었다.
 

사실 나는 마르크스를 모른다. 제목으로만 너무나 친숙한 '자본론'은 책장 한 번 들춰본 일이 없고, 그나마 두께가 얄팍하다는 '공산당 선언'도 읽은 일이 없다. 하지만 어쩐지 좋은 사람 같은 느낌. '잠들지 못하는 희망'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트리어의 마르크스 생가를 찾은 저자는 이 할아버지가 누구냐는 물음에,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세상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던 위인"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그는 김수영의 시 한 구절을 차용해 "아들아, 마르크스를 알 때까지 자라라."라고 중얼거린다. 그에게 있어 마르크스와 사랑은 동의어라며. 아무 것도 몰랐지만, 그 전에 어렴풋하게 마음 속에 있었던 마르크스는 나에게도 일종의 '사랑'이 되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세계이긴 하지만 끝내 버릴 수는 없는 양심이라는 게 내 가슴 한 구석에서 반짝이고 있는 한, 앞으로도 마르크스는 내게 사랑 비슷한 것의 동의어로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 '잠들지 못하는 희망'처럼. 희망이 늘 가능성과 함께 걷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저 마음 속의 작은 불이 잠들지 않을 정도로만 깜빡여준다면 살 만한 거라는 생각과 함께. 몇 년이 지나 나도 트리어의 그 곳에 갔었다. 그리고 마치 아는 사람인 양 반가운 마음으로 나는 그 집의 곳곳을 어슬렁거렸다. 내가 조금 큰(?)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착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역사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쩌면 당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조금 고맙고 송구했던 것 같다.
 

하워드 진은 단 한 권의 책으로 참 좋아져버린 할아버지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을 자신의 삶에 당당히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책을 읽고 난 반해버렸었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 멋지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적지 않은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마르크스에게 정신을 빚지고 있는 것 같다. 하워드 진이 뉴욕의 소호로 불러들인 마르크스, 정말 쉽고 짧지만 정말 지당하고 온당하고 마땅한 이야기들 투성이다. 나같은 독자를 위해 작가는 마르크스를 친근하게 소개하고 싶었나보다. 두껍고 어렵고 불만투성이인 책을 써댔던, 박제가 되어버린 옛 사람이 아니라고. 그가 분석한 상황들은 단지 현상만 조금 달라졌을 뿐, 본질적으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가 했던 모든 예측이 온전히 다 맞아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가 신이 아닌 이상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심지어, 마르크스를 대신해 고백을 한다. '자본주의가 옹케 살아남는 재간이 있다는 것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한 사람에게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모두 맡길 수는 없는 법. 이만한 분석틀을 남겨줬으면 좀더 살 만하게 다듬고 고쳐가는 일은 후대의 몫인 게 분명할 것 같다.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어 껍데기만 남은 사람들이 여전히 돈이라는 허상을 좇아 그 껍데기마저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마르크스의 입을 빌어 저자는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은 하지 맙시다. 그냥 이 지구의 엄청난 부를 인류를 위해 쓰자고 합시다.' 대체 왜 안 되는 걸까. 
 

길거리 독서의 나쁜 점은, 메모하거나 밑줄 그을 수 없다는 거다. 메모하거나 밑줄 긋지 않고도 행간의 느낌이나 감흥을 기억할 만큼 명석하지도 못한 나에게는 더욱 불리하다. 뭔가 책을 날리는 것 같은 느낌. 행간 곳곳에 예리한 유머가 번득거려 자주 킥킥대며 읽기는 했지만, 정말정말~ 하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전부 그저 흘러버리는 것도 같아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이 책의 가격. 이 작고 얇은 책이 9,800원이라는 거금의 액면가를 붙이고 나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망자의 불시착을 위한 왕복 노자라고 생각하려해도 영 마땅치 않다. 인터넷 서점의 난립(?)으로 책값의 거품이 이미 상당히 붙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건 좀 너무 했다 싶다. 재림한 마르크스도 그를 불러들인 하워드 진도, 물신화된 자본주의의 제왕을 따라잡기에는 내공이 좀 모자라는 모양이다. 우리더러 좀 더 분발하라는 걸까.


2005-09-21 01:14, 알라딘



마르크스뉴욕에가다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연극 > 영미희곡작품
지은이 하워드 진 (당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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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45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예전에,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저녁이었다. 오빠 친구가 이사를 가며 줬다는 새끼고양이. 새끼고양이라는 것이 준다고 넙죽 받아올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4학년인 오빠도 알고 있었는지, 저녁을 먹고 있는 밥상 위에서 조심조심 이야기를 꺼냈고 반신반의하는 할머니와 엄마 앞으로 주섬주섬 내민 오빠의 손에는 정말 새끼고양이가 있었다. 우리만큼이나 어린 그 고양이는 홀로 감당해야 하는 낯선 환경이 당황스러웠는지 내내 밥상 밑을 파고들며 냐옹거렸고, 동물이라고는 가까이해 본 적 없는 나는 혹여나 그 고양이가 내 발치에 올까 싶어 동동거리며 먹는 둥 마는 둥 저녁상 앞에서 불안해했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차지한 거실을 지나 화장실에 가는 일조차도 막막하기만 했던 그 첫날 밤 이후로, '나비'라 이름 붙여진 그 새끼고양이는 나의 고양이가 되었고 나의 동생이 되었다. 1년 쯤 나와 같이 살았던 그 고양이를 오빠와 나는 서툰 손길로나마 정말 사랑했다. 안고 업고 토닥이는 우리의 손길에 대한 나비의 화답은 주로 할큄과 상처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 인생에 유일했던 애완동물인 나비 덕분에 나는 개보다는 고양이 쪽에 손을 드는 부류가 되었다. 
 

책을 펼치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시인과촌장의 노래 '고양이'(물론 한편에서는 대상이 고양이가 아니라 다른 어떤 부류라는 설도 있지만)였다. 그대는 정말 아름답군 고양이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랍군 고양이 창틀 위로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는~ 의인화를 넘어 저자에 의해 인간 이상으로 거듭난 고양이 나옹, 대상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의지의 깊이를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제일 좋은 것도 사람이지만 때로 제일 무서운 것도 사람인 세상에서, 사람 이상의 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위로이고 감사다. 예전에 내가 택했던 것은 노래와 책, 그리고 사람이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마음 속에 또는 곁에 있으면서도 변치 않고 기복이 심한 나를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대상들. 관계에 지치고 사람이 부담스러웠던 그 시절에는, 적어도 '변치 않는'다는 사실에 내 마음 모두를 안심하고 맡긴 채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내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림이 남겨준 여백은 예전 생각들로 채우며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녀가 부러워졌다. 숨 붙은 대상을 향한 그녀의 하염없는 사랑과 그를 향해 해줄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자식이 아니고서야, 사람인 누군가에게 그와 같은 간곡한 마음을 바칠 수 있을까. 무방비상태인 채로 그녀의 사랑을 받고 그녀로 하여금 일하고 살아가고 꿈꾸게 만드는 나옹과, 극진히 정성을 다해 사랑할 줄 아는 그녀의 마음과 그만큼 표현할 줄 아는 재주가 참 부럽다. 


2005-08-26 03:22, 알라딘



TOCATS(고양이에게)
카테고리 시/에세이 > 테마에세이 > 포토에세이
지은이 권윤주 (바다출판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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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44


기대가 너무 많았던 것일까? 몰바니아, 조금은 피곤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리 많이 다녀보지는 못했고, 어딘가 낯선 곳과 새로운 길도 좋아하지만 여행안내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참 떠나고 싶어할 때 알라딘 메인 화면에 뜬 이 책이 내 눈에는 대문짝만하게 보여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마침 오랜만에 들러본 김작가의 소장함에도 들어있기에, 나도 모르게 속에서 기대가 증폭되었다보다. 하여... 손에 들어온 다음 바로 읽고 싶었지만, 부러 어딘가 떠나는 길에 즐거운 상상을 보태 읽어주리라~ 하며 휴가길 대전행의 동반자로 골라들었다.
 

일단 기획은 신선하다. 론리플래닛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대체로 거기서 거기인 여행정보 책자들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기자니 초반에는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혼자 가는 길인 것이 아쉬울 만큼, 읽다보면 옆 사람 한 대 툭 치며 이거 봐라~ 하고 싶을만큼의 위트와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 여행지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참으로 일관되게 구성해놓은 신소리들이 청량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이야기들. 누군가 웃음은 반복과 반전이 만들어낸다고도 했었지만, 조금 질리기 시작했다.
 

동유럽에 어딘가에 자리한, 세상에 없는 작고 황폐한 나라. 기존의 여행서들이 보여왔던 정보의 독점에 기반한 권위주의를 매우 당황스러운 방식으로 격파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왕 뒤집는 거 조금 따스하게 뒤집을 수는 없었을까. 초반부에 나를 매료시켰던 빛나는(?) 유머들은, 200쪽에 달하는 분량을 채우며 매번 신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중반을 넘기며 나는 그들이 구사하는 유머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하찮은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그 위악과 그 조소가 마침내 지겨워졌다. 물론 내 지식의 짧음과 내 사유의 얕음으로, 여러 명의 저자들이 나름 속 깊은 함의를 보태어 적어놓은 것들을 많이 놓쳤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비틀고 뒤집고 조소하는 거, 힘없는 땅에 대한 오리엔탈리즘보다는 문명의 중심인 양 오만을 떠는 비싼 땅에 대한 외곬의 개김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촌스럽게도 따스하고 인간적인 거 좋아하는 내게는, 딱 절반만 좋았던 여행이었다.


2005-08-20 01:41, 알라딘



우리는몰바니아로간다
카테고리 자기계발 > 화술/협상 > 유머
지은이 산토 실로로 외 (오래된미래,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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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26


역시, 내가 좋아하는 마음산책. 며칠 동안 알라딘 메인화면에 떠있는 저 착해보이는 파랑을 보며, 어쩐지 사줘야할 것만 같아 주문을 했다. 사실 저자의 그림은 김영하와 함께 한 작업에서만 접해 보았고, 그나마도 난 만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인지라 그저 괜찮네~ 정도의 감상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터였는데. 표지에 나온 아이 사진과 '옥수수-빵파랑'(책을 읽고보니 '옥수수빵-파랑'이 맞겠지만,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렇게 느꼈다.)이라는 짐작조차 안되는 제목의 조합이 내게 연상시킨 느낌은, 뭔가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팔아먹는(?, ㅎㅎ) 천진한 듯 난해한 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어서 사실 약간의 갈등도 없지 않았었다. 물론 읽고난 지금의 느낌은, so good!
 

'my favorite things, 행복해지고 싶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제목만으로 짐작할 수 없었던 책의 내용은 표지에 자그마하게 써있는 저 두 마디로 해결된다. 사실 이런 것들은 내가 무지 좋아하는 분위기다. 박민규가 쓴 추천의 말 제목도 마음에 와닿는다. '다 싫어 다 싫어 다 싫어 이건 좋아!', 나도 그런 편이다.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무척 분명하다. 문제는 그 기준과 이유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은 편이라는 것이지만, 암튼. 저자는 쉰다섯 가지의 좋아하는 것들을 쭉 열거하며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았다. 작가의 경쟁력과 변별력은 주종목인 만화에 있겠지만, 늘어지지 않는 간결하고도 가벼운 문체. 유쾌한 글솜씨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글 쓰는 사람들을 간혹 부러워하고는 했었다. 쉽고 가볍고 그러면서도 자기 표현은 다 해결되는.
 

책장을 넘기며 그의 글에 공감하고 만화에 킥킥대면서(만화를 보고 킥킥댄다는 것은 내게 꽤 중요하다, 나는 정말로 아연하리만큼 만화에 대한 몰이해를 보이는 타입이다.) 나도 모르게 머리 속으로 나의 페이보릿 씽스를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었다. 아저씨, 동유럽, 그 중에서도 프라하, 오베르쉬르우아즈, 혼자있거나 혼자살기, 아이다호, 리버피닉스, 길버트그레이프, 쟈니뎁, 서태지, 커피, 커피우유, 담배, 우리조카, 쿠바, 회색, 내가 만든 상자들, 내가 꾸민 수첩 혹은 공책들, 케테 콜비츠의 판화 몇 가지, 체게바라, 김두수, 이원재, 김현식의 노래, 산울림, 김창완아저씨의 나직한 목소리, 성공회대학교와 선생님들, 공연 전의 암전, 예전 대학로, 예술의 전당 서예관 옥상, 말 잘 들을 때의 아이들, 그리고 뭉뚱그려 꽤 많은 노래와 책과 연극 등등등
 

'행복해지고 싶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라는 책표지의 문장이 마치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사실은 우리 모두 이미 충분히 알고 있던 거였는데. 사소하지만 마음을 밝혀주는 '좋아하는 것들'로 인해 우리는 삶의 괴로움을 잊을 수도 있을 만큼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내심 만화만 되면 나도 쓰겠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의미 있는 건 이우일 작가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들을 통해서,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뒷편으로 혹은 마음의 저편으로 묻어버리고 잊혀져버린 것을을 또는 너무나 늘 누리고 있어 미처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로 인한 사소한 행복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정말 그렇다. 좋아하는 건 그저 생각만 해도 또 눈이 닿기만 해도, 너무 좋은 것이다. 그 소중함을 까먹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2005-08-08 02:01, 알라딘



옥수수빵파랑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이우일 (마음산책,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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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25


세상을 다 잡아먹을 듯한 소란도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다. 가끔 세상은 정도 이상으로 흥분하고, 이상하리만치 금세 그 소리들이 잦아들곤 한다. 고 이은주와의 사랑 운운으로 온 포탈사이트가 시끌벅적했던 게 언제였나. 전인권 아저씨의 책이 나왔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조용히. 가끔은 냄비세상의 좋은 점도 있다. 너무 소란하게 나올 필요는 없는 책이니까.  '인권이 라이프' 이후로 그는, 더이상 한때(혹은 여전히) 한국록의 전설이었던 '들국화'의 보컬로 소개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들국화의 전성기는 90년대 이전에 이미 지나갔으니 당연한 것일런지 모르지만, 왕성한 활동기를 갓 지났을 때 그들의 존재를 알고 들국화의 음악에 외로이 열광했던 중학생이었던 내게 전인권이라는 소리꾼은 미디어에 의해 급부상한(?) 독특한 아우라의 대중문화 아이콘은 분명 아니다.
 

전인권이라는 개인에게 특별히 열광했던 적은 없지만, 나는 동아기획의 양대산맥 김현식-들국화가 있던 그 시절의 음악에 영혼의 빚을 톡톡히 지고 있는 사람이다. 노래가 없었다면 나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망가졌거나 비뚤어진 인간으로 성장했을 것이고, 사람보다 노래에 더 마음을 의지했던 나의 성장기에 특히나 동아기획은 대략 절반 가량의 자양공급원이었다. 그리고 들국화 1집, 2집, 라이브, 추억들국화 ... '우리'가 실렸던 들국화 3집, 전인권의 개인 음반, 삼청동 초입에 있었던 전인권까페, 아저씨와 전인권, 미사리의 전인권 까페 등은 개인적으로 내게 각인된, 소중한 에피소드다.
 

이 책에는 1972년부터 2005년 지금,까지의 전인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노래에 관심없는 기성세대들이 그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아마도 대마초가 아닐까 싶은데, 너무나 그답게 이 책의 본문은 '환각의 정체'로 시작된다. 그리고 삼청동 산자락에서 태어나 자라며 산의 버찌와 온갖 나무 열매들로 배를 채우던 어린 시절, 춘길이 형님을 필두로 한 동네의 지인들과 함께 삼청공원을 주무대로 삼아 노래를 연습하고 꿈꾸던 청년 시절의 이야기. 가난하고 지리멸렬했지만 꿈이 있었던 낭만적인 시절의 명동과 종로, 신촌, 흡사 강호의 고수들처럼 외로이 자신의 음악을 연마하던 이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고 서로를 알아보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글에서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한이 아닌 현재를 사랑하는 자의 과거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이 한껏 느껴진다.
 

연배만이 아니라 활동과 역량으로도 그는 이미 기인의 풍모를 가진 거장의 반열에 올라있지만, 스스로 회고하는 젊은 날의 모습에는 제대로 된 '소리꾼'이 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가 잘 나타나있다. 지금의 그를 보면, 전인권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타고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무대에 선 다른 뮤지션들을 보고 주눅들어 하는 젊은 시절의 그의 모습이나 노래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고달프게 떠돌던 모습들은 그가 얼마나 꾸준히 노력해왔는지를 잘 느끼게 해준다. 비루하다고 느껴질 만큼 곤궁하고 보잘 것 없었던 젊은 날의 그, 하지만 스스로를 '행운의 사나이'라 칭할 만큼 낙관적이고 운명적으로 자신을 믿었던 그의 모습은, 그리고 나이답지 않게 너무나 천진하게 자랑도 하고 유치함을 드러내는 모습은, 전인권이라는 인간에게 최소한 위선과 가식은 없으리라는 개인적인 믿음을 더 두텁게 해준다. 어쩐지 그의 편이 되어주고 싶어진다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우리'라는 노래가 나올 때부터, 그가 지향하는 것이 어떤 단순함과 명료함 같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쉬운 가사들의 반복, 허전하리만큼 단순하고 솔직한 멜로디, 겸손하고 막힘없이 속에서부터 끌어내지르는 목소리, 솔직히 말하면 말로는 다 설명이 안되는 전인권스러운 많은 것들.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정말로 단순하고자 하는 것 같다.(생각해보니 이미 그는 '단순하게'라는 노래도 만들어 불렀다.) 투명한 것일수록 긴 설명이 필요없듯이, 그는 세상의 이해를 받기 위해 전전긍긍 사설을 붙이지 않는다. 조금은 엉뚱하고 일반적이지 않을지라도,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식으로 성장해왔고 이제 그 세계에 대해 적잖은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더욱 따뜻해졌던 것은, 그가 자신이 마주쳤거나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애정과 정직한 동료애였다. 책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김민기, 이장희, 한대수, 유현상, 엄인호, 들국화의 전 멤버들(특히 몇 년 전 타국에서의 사고로 저 세상으로 간 고 허성욱님에 대해서는, '잘 있냐'로 시작하는 담담하지만 눈물 나는 편지를 따로 싣고 있다.) 등. 그리고 그가 살아오면서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명 혹은 가명으로 언급되는데, 뭐랄까. 책 속에 빠져 읽다보니 전인권의 친구들 모두가 잘 되는(?) 날이 꼭 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다른 개성과 초야에 묻은 실력과 어떤 자존심 혹은 어떤 비운 등으로 세상에서 빛나지 못했지만, 뮤지션 전인권의 상찬을 넘치게 받는 사람들, 그리고 내게는 특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그리고 그에 대한 진심어린 인정과 깍듯한 예우, 정말 멋졌다.
 

사실 읽는 입장에서 보면 책이 조금 맥락없이(?)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 자유롭게 내뱉는 독백 형식의 구어체에서 한번씩은 생뚱맞은 대화체가 튀어나오기도 해서 잠깐씩은 아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낯설음에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참 전인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상당히 공들여 편집되었다는 느낌이다. 말미에 덧붙인 컬러 화보도 그렇고, 중간중간 간지처럼 들어간 모노톤의 사진들과 그의 시(?), 노래 가사들. 정성껏 만들어진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 좋다. 지나친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들국화와 전인권의 노래는 그렇다치고 이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노래들은 씨디로 함께 담아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노래연습에 골몰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탓에, 꽤 많은 노래들이 언급되는데 모르는 노래들이 대다수고 궁금하기도 하다.
 

뮤지션 전인권. 엄청난 마이너리티와 엄청난 샤우팅, 이 두가지 외에 사실 내가 그에 대해 실제로 아는 건 거의 없지만, 그의 책을 열심히 읽고 그래도 그의 노래를 이십년 가까이 관심 있게 들어온 리스너의 입장에서 작은 바람이 있다. '인권이 라이프' 이후의 그, 자의건 타의건 미디어에 의해 복제되고 유포되는 엉뚱하고 자유로운 사자머리 뮤지션 전인권의 이미지와 그 가벼운 매커니즘이 더 이상 인생을 건 그의 노래와 마이너리티를 훼손(?)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 음, 아무려나... 일단은 전인권 화이팅,이다.


2005-08-07 04:39, 알라딘



전인권걱정말아요그대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전인권 (청년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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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24


문익환 목사님의 평전을 읽고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그 언저리를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이다. 저자는 문익환 목사님의 조카, 그러니까 문동환 목사님과 캐서린 문의 딸이라고 한다. 1970년대에 8년간 그들이 만들고 생활했던 공동체 '새벽의 집'에 대한 기록이다. 귀농이니 공동체니 하는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종종 접하곤 한다. 하지만 일상이며 인생인 그들의 귀농과 공동체를, 브라운관을 통해 혹은 활자를 통해 전해지는 것만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렇게 소개되는 사례들은 현재적으로 성공적인(?) 진행형이어선지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겪었을 난관과 시련보다는, 그런 것들을 극복한 이후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더욱 부각이 되기 마련이고, 나처럼 문외한인 도회지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감행할 수는 없지만 부러운 여유로움과 일종의 낭만으로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새벽의 집'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자의 성장 경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을 찾아 얻어낸 기록들로 생생히 되살아난 이 책에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더불어 함께하기 위해 이겨내야만 했던 좌절과 시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의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일상을 공유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강고한 신념만으로 가능한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이 피상적인 언어를 넘어 각자의 삶으로 구현될 때에는 미처 생각할 수도 없었던 많은 문제들이 불거져나오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유년의 경험을 가질 수 있겠지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감내해야했을 어른들은 공동체적인 가치를 위협하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협 속에서 적지 않은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공동체에 대한 거창한 그 무엇 대신 마치 성장소설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져있다. 소녀의 일기장을 펼쳐놓은 듯, 어린 날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천진한 놀이들이 세세하게 묘사되고 읽다보면 절로 흐믓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또 어두운 시대에 저항하며 고난의 삶을 살아온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라는 독특한 환경이 배경이 된 그녀의 일상 이야기 역시 단편일지언정 현대사의 뒷 이야기를 훔쳐보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결국에는 각자 제갈길로 흩어졌지만 '새벽의 집' 공동체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한계보다는 가능성과 희망 쪽에 더 마음이 기울게 해주는 것 같다.
 

언젠가 '공동체와 협동조합'이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갖은 공동체 이야기들을 섭렵하던 친구가 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온 일이 있다. 나는 워낙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인간이라 진지하게 '공동체'라는 것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 농활이다 공활이다 하면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정도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일이 그나마도 공동체라면 내가 가진 공동체 경험의 전부다. 그리고 그 기간은 목표가 있는 시한부였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잘 화합하며 지낼 수 있었던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온전히 전유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없는 생활은 솔직히 상상만 해도 갑갑하고 끔찍하다. 물론 공동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들이 24시간 살을 맞대고 개인적인 일상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려나 내게 공동체라는 것은 이기적인 내 존재의 한계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공동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것과 물리적으로도 공동체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어떤 차이와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2005-08-07 02:46, 알라딘



새벽의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문영미 (보리,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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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23


2년 하고 한 달이 좀 모자라는 것 같다. 2003년 7월, 서천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오가는 길 기차 안에서 읽었던 이 책. 조금 일찍 사두고서도 어딘가로 떠나는 길 위에서 읽고 싶어 아껴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나는 2년 여 전에 이 책을 읽으며 만나러 갔던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 정취는 좀 없지만 이번엔 KTX를 타고 대전으로. 오랜만에 만날 친구 생각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사진은 전혀 모르지만, 김홍희라는 사진작가의 노력과 열정과 진정성 같은 것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나는 그를 도도하지 않은 자존심과 추레하지 않은 일상성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굴비낚시'를 필두로 마음산책에서 줄줄이 나온 내가 좋아하는 책들 중에 으뜸이기도 했다. 양장본도 아니고 빤빤하지도 않은 종이에 실린 사진은 오히려 인간적인 느낌을 주어 편안하고, 사진과 글이 서로를 얽매지 않아 부담스럽지도 않다. 인물이나 구조물이 부각되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대체로 풍경 일색인 어두운 사진들도 마음에 든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자 답게 그는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이 책에서는 그 중 일부의 경험들이 아주 개인적으로 녹아있다. 일기거나 메모 쯤으로 끄적여놓았던 예전의 기록을 다시 들춰낸 듯한 그의 글들은, 묘하게 마음 속에 각인되는 힘이 있다. 방랑과 죽음, 동경(東京)이라고 크게 이름 붙여 나눈 그의 이야기들 속에는, 가슴이 뜨거운 젊은 영혼이 지나온 삶의 여정이 수줍은 고백처럼 담겨있다. 치열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부드럽게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방랑의 자격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는 그럴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사랑에 빠졌던 곳"이라고 간단히 답한다는 저자는 '방랑'이라 이름 붙인 책의 글머리에서도 단호히 말한다. 중요한 것은 머문다는 것! 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듯이 떠남은 결국 돌아옴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어쩌면 여행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났다. 2년 전 돌아오는 길에서 마음 속에 새겼던 언젠가 변산행. 다시 무언가 시작해야 할 시점이 오면 그때는 혼자서 변산에를 다녀와야겠다. 


2005-08-04 01:18, 알라딘



방랑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사진/영상 > 국내사진집
지은이 김홍희 (마음산책,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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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21


어릿광대와 레지스탕스, 어린 시절부터 본업보다 더 열심히 부르는 곳이면 어디건 달려가 우스꽝스런 광대짓을 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이라고 화자는 생각했다. 한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아버지의 비밀을 짐작할 수 없었던 어린 소년에게, 교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아버지가 어울리지도 않는 광대짓에 영혼을 거는 것이 창피하고 끔찍했다. 아버지의 광대짓에 대해 불만스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온 가족이 함께 '다리'라는 영화를 관람한다. 그리고 뒤편에 침착히 앉은 아버지를 배경으로, 삼촌은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지난 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아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어릿광대짓과 결코 좋아할 수 없었던 삼촌과 숙모, 그리고 그가 태어나기 이전 세상의 소용돌이에 대해서. 어린 날의 반목과 갈등을 거쳐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아들은, 자신이 경멸했던 가족들을 회상하고 아버지를 대신해 역사의 심판을 지켜본다. 
 

반백년 전의 반인륜적 범죄로 마침내 법정에 서게 된 모리스 파퐁이라는 인물의 재판을 배경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소설은, 거대한 역사의 광풍이 당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어떠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개인의 삶에 각인된 역사의 상흔은, 공적 청산과는 별개로 개개인의 내밀한 일상에 파고들어 쉽게 아물지 않는 생채기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역사의 심판과 개인의 속죄를 연결시켜 생각하기에 참으로 지난한 우리의 현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고, 세계 대전의 폭풍이 휘몰아쳤던 전장 - 유럽의 과거 청산 이야기는 흡사 소설 속의 일인 양 멀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리뷰어의 말대로, 옮긴이의 말을 서두에 배치한 것은 이 책의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독자보다 한 발 앞서 너무나 감동해버린 역자는 거의 스포일러 수준의 장광설로, 독자 몫의 감동을 오히려 반감시켜버린 것 같다. 탐정소설을 주로 써왔다는 작가의 이력을 염두에 두고 기대할 만큼 거대한 반전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극적인 부분이 분명 있는데 서두에 읽은 역자의 말이 뇌리에 남아 김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이 작은 책의 힘은, 거대한 역사 속에서 시련을 맞은 개인의 삶과 양심이 어떻게 그 진정성을 회복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결과론적인 낙관을 보여준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2005-08-03 23:49, 알라딘


 

처절한정원(개정판)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미셸 깽 (문학세계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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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