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5. 23:10


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도발적이고도 무심하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불감증에 걸린 투명인간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고, 아무 데나 돌아다니며 구경꾼처럼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태어나지 않아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몸에 달겨들거나 눈 앞에 펼쳐지는 일들이 자극적이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모기가 물어도, 강아지가 핥거나 짖어도, 여자아이가 인사를 하거나 울어도 심지어 강아지가 물어도 아이는 무관하다.
 

아무런 상관은 없었지만,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간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강아지에게 물린 여자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엄마. 아니, 엄마에 의해 여자아이의 엉덩이에 붙여진 반창고!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가기는 했지만 대체로 무욕한 존재였던 아이에게 갑작스레 반창고를 붙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버렸고, 마침내 아이는 태어난다. 순간 이라부의 주사 페티시즘이 떠올라 어이없음과 동시에, 언젠가부터 나오기 시작한 각양각색 디자인 반창고의 존재 의의를 알 것 같았다. 물론 반창고만은 아니리라. 아이들은, 실은 누구나 이렇게 작은 욕망에 의지해 삶을 지탱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넘겨 첫 문장을 읽으며, 그럴 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러겠다고 선뜻 말하고 싶을 만큼 반갑기도 했다. 오래 전이라 기억도 희미한 연극 '장 아누이의 반바지'를 보며 머리 속에 각인된 장면, 극의 흐름과 뚝 떨어져 "난 저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아!" 였던가 하는 대사가 폐부를 찔렀던 때가 떠올랐다. 스물 무렵부터 가끔씩 맥락없이 출몰하곤 했던 '차라리 안 태어났다면...' 이라는 부질없는 소망, 십 여년 품고 살다보니 온전히 진심은 아닐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마음 바닥에 들러 붙어버린. 그저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삶에 대해 너무 발랄한 것보다 조금은 멈칫하는 게 나은 것도 같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허무를 어쩌지 못해 난처하기도 하다.   
 

태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태어난, 갓 태어난 이 아이처럼 정직하고 직접적인 욕망으로만 사람이 살 수 있다면 그 매개는 반창고이거나 연필이거나 하늘이거나 사람이거나... 그 무엇이라도 문제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버려서(?) 세상과 사람과 사물과, 너무나 많은 것과 '상관'되어 버린 후에도 태초의 그 사소하고 작은 욕망을 눈여겨보며 마음에 담고 살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소통에 목말라하면서도 한 편 마음 속으로는 끊임없이 '상관 마!'라고 외치며 사람들 속에 있는 존재의 모순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한때는 내게만 유난히 삶이 버겁다고도 생각했지만 조금씩은 인정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사는 일은 그렇게 힘들고 지난하다는 것,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엄청나게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아이의 반창고 정도면 그만일지도 모른다는 것. 상처를 덮어주고 내게 밀착됨으로 인해 관계를 만들어내는 작은 것들, 끊임없이 계속되는 아무 것도 아닌 듯 사소하지만 소중한 욕망 같은 것들. 혹시 나는 붙이지도 않을 반창고를 너무 많이 뜯어서 버리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동적인 문장이지만, 이미 태어나버린 내게는 별로 유효하지 않음을 기억해야겠다.


2006-01-25 02:19, 알라딘



세상에태어난아이
카테고리 아동 > 문학/고전 > 문학일반
지은이 사노 요코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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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3:06


어쩌다보니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사람을 들여다보는 책을 연속해서 읽게 됐다. 책장을 덮고나서 생각해보니, 한 해를 마감하고 시작하면서 언제나 사는 일이 요령부득인 '나'를 돌아보려는 무의식이 작용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십 년쯤 전에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좋은 느낌으로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다른 책에는 손이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자기고백적인 이 글을 읽으며 마치 내 속의 말인 양 깜짝 놀라는 경우가 너무 잦아서 이렇게나 동류(?)인 그녀에 대한 오랜 외면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그녀의 별로 매력적이지 않음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참 말도 안 되는 이유지만 사실이다. 비쥬얼의 현혹에 매인 굳건한 무의식과 자의식은 분명 저자가 풍기는 분위기에 따른 독서 편력을 지속시킨 한 축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앓이로부터 시작된 저자의 자기 탐색은 전문적인 정신분석의 과정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자리한 유년 시절의 상처를 직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행간의 어림으로 짐작하기에 그녀는 삼십년 이상을 착하고 선하되 능력 있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으로 자신을 길들이며 지쳐왔던 것 같다. 마음을 말뚝에 매어두고 싶을만큼 휘둘리며 살아가면서도 내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단속하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마음 안에 오래 갇힌 자아가 결국 몸을 괴롭혔을까. 그녀는 정말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리고 고통스럽고 지난한 정신분석을 통해, 마음 읽기에 어느 정도 눈이 트인 저자는 수 차례에 걸친 여행의 기록과 더불어 심리/여행 에세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책을 만들어냈다.
 

언제나 '삶이 안정되면,,,' 이라고 되뇌이며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는 그녀의 여행 후일담은 온통 사람의 마음을 향한 시선으로 점철되어 있다. 혼돈과 방황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고 주의 깊게 타인의 내면을 관찰하며 인간 일반의 무의식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끊임없이 내면의 문제를 고민하며 접해 온 여러 자료들과 정신분석을 통한 본인의 경험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그녀는 정신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선배의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나 놀랐다. '마음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사람.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분명 그런 사람들이 있다. 고작 서른을 넘기면서도 '제발...' 했었지만, 이제는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그 마음 때문에,라는 건 평생을 지고 갈 자기 몫이라는 걸. 마음을 말뚝에 매어놓고 싶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로시의 환상적인 여행보다도 양철사냥꾼의 마음없음을 한없이 부러워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에 매여있는 내 모습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저 조금 무던하거나 조금 예민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바쁘거나 조금 더 무료하거나의 차이일 뿐 누구나 스스로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덮쳐버린 생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꺼내드는 비장의 카드 역시 마음의 문제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좀더 마음에 의탁하며 살아가는 편인 나는 저자의 이야기가 반쯤은 미더워지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을 자신의 삶과 결부시켜 오랫동안 깊숙히 탐독하고 받아들여왔던 저자는 비전문가라는 자유로운 위치를 십분 활용하여 무의식, 사랑, 대상 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 등 무려 스물 일곱 가지에 이르는 마음 상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석의 기술은 전문가에게 있으되, 분석의 대상인 마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까닭에 독자 역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정신분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저자의 경험적 확신 탓인지, 학계에서 이미 명확하게 규정된 개념에 대한 존중을 위해서인지,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 느끼기에 이건 좀 비약이 아닐까 싶게 힘이 들어간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목차의 사슬에 묶여, '심리'에세이라는 타이틀에 묶여, 조금은 불필요한 내용까지 의무적으로 기술하다보니 자연스런 글의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는 점 역시 다소 아쉬운 점이다.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마음 상태에 굳이 우열과 호오의 적나라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은, 무지하게 고통스러운 양 하면서도 여전히 한편 마음놀이를 즐기고 있는 자가 느끼는 양가감정이겠지만, 때로 바닥까지 까발리고 냉정을 요구하는 듯한 태도는 편하지가 않았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싶으면서도 어쩐지 승복하고 싶지는 않은 이상한 오기가 발동되는 순간이, 저자의 이야기대로 라면 실은 나의 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지점인지도 모르겠다. 내 속의 힘 세고 오래된 허무주의가 작용한 결과...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나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주고 부정적인 감정의 단초들과 직면하려 애쓰는 걸까 싶은 생각 역시 스멀스멀.
 

실은, 집필의도에는 다소 비껴간 감상이겠지만 세상 수많은 곳을 다녀본 저자의 유람이 나는 더 부러웠다. 버거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보루로서의 여행이라는 측면이 크기는 하지만, 행간에 배어있는 그녀의 삶의 고통이 전혀 과장되지 않은 것이라는 믿음 정도는 놓치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 벌써 6년 전이 되어버린 나의 여행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묵었던 로마의 민박집, 가져간 담배를 함께 피우며 유학생 주인 언니와 나눴던 얘기 중에 김형경씨가 있었다는 것도 새삼 기억이 났다. 꽤 오래 그 집에 묵으며 지냈었는데 돌아간 뒤에 무언가를 한 가득 선물로 보내왔었다고. 달랑 한 편이지만 '새들은...'을 읽었던 터라 내가 관심을 보이자 뭐라뭐라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글 속에서는 그 유학생 언니가 등장했다. 집주인과 손님으로 잠시 만났을 따름이니 인연이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니 겨우 이틀을 지내면서도 밤이면 식탁에 마주 앉아 꽤 많은 속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익명의 이방인이라는 자유로움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돌이켜보니 그 언니 역시 갇힌 마음, 혼란한 마음 때문에 많이 아파하는 사람이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마다 침대맡 스탠드를 켜놓고 일주일 정도를 띄엄띄엄 읽었는데, 그저 휘둘리고 흔들릴 뿐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탓인지... 흡입과 거부의 욕망이 수시로 번갈아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낮에는 내내 머리 속에서 책 속의 이야기들이 떠올랐고 조금씩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마음을 인위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곧 자연스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부류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뭔가 진정하지 않다고, 뭔가 건설의 냄새가 난다고 손사래를 쳐왔던 내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껴왔던 '사람은 안 변한다'는 믿음은, 단지 그러고 싶은 내가 만들어왔던 거였나. 워낙에 초심자인 탓이 크겠지만, 거의 내 모든 것인 마음에 대해 적잖은 화두를 던져준 책이다.   


2006-01-06 21:50, 알라딘



사람풍경김형경심리여행에세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형경 (예담,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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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3:03


'공중그네'는 이상하게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비쥬얼의 현혹에 꽤나 매인 눈을 가지고 있는 나는, 활자로 표현된 이미지에도 무척 혹하는 편인데... 사실 내가 아니라도 닥터 이라부는 거의 괴물에 가까운 그로테스크한 외양을 자랑하는 인물인 고로,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는 그의 좌충우돌 치료기가 썩 내키지는 않았다. 무지하게 웃기다는데, 읽을 때의 내 마음 탓인지 저자가 내미는 에피소드에의 공감만큼, 어이없는 이라부의 언행에 유쾌한 웃음이 따라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하는 마음으로. 촌스러운 연두색 바탕에 [화제의 베스트셀러 <공중그네> 제2탄! 못 말리는 웃음 폭탄 '이라부'의 엽기 처방은 계속된다!] 라는 노골적인 카피를 떡하니 드러낸 책표지를 보며, 솔직히 말하면 거의 절망적인 마음이 일기도 했으나... 얇고 날렵하니 부담은 없겠다 싶어 내친 김에 '인 더 풀'까지 하는 생각이었다.
 

전편에 이어 여기서도 다섯 명의 내담자 등장, 한층 업그레이드된 그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온 세상 남자들의 스토킹에 시달리는 과대망상 도우미, 체면 치레 및 이미지 관리의 강박으로 마음길 막고 살아가는 아비를 대신해 잔뜩 화내고 있는 자식 덕에 곤경에 처한 소심한 이혼남,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몸의 이상 징후를 병적인 수영에의 의존으로 해결하려는 회사원, 또래 속에서 자신의 위상 높이기만을 유일한 존재가치로 삼는 휴대폰 중독 고등학생,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과도한 불안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며 좌불안석하는 논픽션 작가. 그리고 전편에서는 짙은 혐의 정도로 넘어갔던 이라부와 마유미의 증상(?)도 한 가지씩을 덧붙이자면, 일명 주사 페티시즘과 혹시 노출증.
 

각 단편의 이야기는 (다소간 마음이 풀린 탓인지) 재미있었고, 특히나 누군가와 소통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진심이 닿지 않는 허약한 연대에 휘둘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인간 관계 속에서 튀어야 한다거나 같아야 한다거나 혹은 끼어야만 한다는 믿음은,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혼자서는 도저히 안도할 수 없는 인간의 약함이 부여잡는 미덥지 못한 동아줄일 뿐이다. 하지만 너무나 극단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조금이라도 불편한 함께의 상황에는 지레 기겁을 하고 차라리 혼자임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내 모습도 실은 그들과 별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실은 그보다...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으로 빚어지는 일상사 속의 스스로를 생각하니, 자의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바람직하거나 멀쩡하고자 하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내 마음 속에는 늘 은연 중, 일관되지도 않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기준이 떡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 조금 딱딱하다면 뭐랄까, 내 기준에서 최소한 멀쩡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책 속에서 단 한 번 직접 언급된 주사 페티시즘과 노출증,이라는 말이 머리 속에 한참을 맴돌았다. 통쾌하기도 했고 시원하기도 했다. 나는 역시 스스로 어떠해야만 한다는 관념에 매여 무척이나 부자유스러웠던 걸까. 대체로 멀쩡한 척 하려는 게 오히려 더 문제였던 걸까. 모두 어딘가 조금씩은 고장난 채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돌보고 때로는 치료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 나로 향하면 언제나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책 말미에 붙은 옮긴 이의 말은 사뭇 우주적이고 자못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이미 그들이 하염없이 초현실적인 인간임은 알고 있었건만, 이라부와 마유미에 대한 그리고 이라부 신경과라는 배경에 대한 너무나 도식적이고 진지한 설명은 분명 아연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소위 사회인에게 요구되는 그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방식을 고수하는 지하실의 2인조에게 이미 살짝 호감을 느껴버린 관계로, '깊이에의 강요'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옮긴 이의 사족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이미 꽤 멋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타자의 시선이나 종용과 무관하게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러저러한 당위의 명제들이 떠올랐다. 책장을 덮은 후에는 진한 공감으로 밑줄을 그었던,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대한 마유미의 대답이 머리 속을 맴돈다. "친구 없는 놈, 떼거리로 노는 거, 나, 안 좋아하거든." 가끔 중얼거리고 싶은 마음에 드는 말이다.


2006-01-01 06:52, 알라딘



인더풀(INTHEPOOL)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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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3:01


무척 지난한 일상이라며 자탄에 빠져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리뷰를 보고 주문 했었다. "인더풀"과 함께 날아온 책은 일단 가격대비 권수에서 만족, 당장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바쁘기도 했거니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지만 일제--;;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리감도 작용. 또한 관심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마루야마 겐지 외에는 기억에 남는 작가도 없고, 고유명사에 대한 단순기억력은 꽤 훌륭하다고 자평하는 편임에도 이상하게 일본 이름에는 약한 편이라 의식적으로 저어하기도 했다. 한 편 대책없이 분방하게 뻗어만가는 얕은 관심과, 정비례하여 얄팍해지는 밀도에 대한 알량한 단속이기도. 그러나 오랜만에 마음 먹고 책을 읽어보자 하고 시작한 독서가 뭔가 지지부진하게 마음 언저리에만 떠돌고 마는 것 같아 일종의 테스트 겸 집어들었다. 어제 읽은 자비에르식으로 말하자면, '내 안의 동물성이라는 타자가 영혼이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 책읽기를 혼자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동중독자의 피를 타고난 내가 연달아 냉정한 별 세 개의 리뷰를 올릴 턱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게나 재미있다는 이 책마저 별무감동이라면, 그건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 인정하고 대책을 강구해보려는 심사였다고나 할까.
 

실제로 가봤다는 사람 별로 많지 않고 나 역시 아무리 영혼이 소란해도 가 볼 생각은 차마 안하는데도 불구하고(정신과라서가 아니라 워낙 병원행을 기피하는 관계로), 정신과가 언제부턴가 꽤나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과 의사들의 활발한 저작활동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흔히들 하는 말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두가지 쯤의 정신병리적 징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사이코 드라마니 하는 매스컴의 영향으로 현실의 양극단이 공존하는 매우 모순적인 공간이라는 인식, 혹은 거리감도 없지는 않은 것 같지만, 철 없는 편견 속에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불리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게 이제 정신과는 은연 중 친숙한 장소가 되어버린 것 같다.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구성이 조금 독특하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에 각각의 독립된 주인공이 등장하고 의학박사 이라부는 붙박이 감초처럼 지하 상담실과 내담자의 공간을 넘나들며, 각 단편 주인공들과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연작 형식이다. 1인용 소파에 짧고 굵은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이라부 박사와 깊이 파인 가슴과 짧은 미니스커트 가운을 입은 나른한 간호사 마유미,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하기도 한 2인조 치료팀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온 환자에게 자기 관심의 피력과 대책없이 엉뚱한 해결책 제안 그리고 비타민 주사 한 방과 당황스런 무관심이라는 독특한 처방과 진료로 일관한다. 각자 자신이 처한 치명적인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 진료실을 찾은 내담자들은, 마음 깊은 곳의 욕망 혹은 내심의 소리에 대해 스스로 마음과 귀를 열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라는 시스템의 일원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스스로를 보살필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라부 박사의 진료는 상담이나 치료와는 거리가 먼, 의사의 말이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철없음과 솔직함의 극치를 보여줌으로써 내담자가 반면교사를 얻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억압을 해제하고,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고, 나아가 실천하는 것까지. 하여 이라부는 여류작가를 만나면 글을 쓰고, 야구선수를 만나면 캐치볼을 하고, 심지어 서커스단원을 만나 공중그네 묘기까지 선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사실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을 너무 어렵고 복잡한 문제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했다. 포커페이스가 없이는 성공은 커녕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할 수 없다는 믿음이 확고한 세상, 하지만 그런 세상의 흐름을 탓하는 사이 이미 너무 뒤쳐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의 엄습, 마음 열 만한 친구 하나 없고 많은 것을 비밀리에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들, 그러나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이미 자정능력이니 하는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현실. 대체로 문제는 욕심에서 비롯되지만, 하염없이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물론 아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재미는 있었으나, 아무래도 너무나 긍정적이고 천진난만한 이라부 박사의 진료는 내 코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흔쾌히 마음열기가 잘 되지 않고, 그리고 약간은 천성적으로... 음.


2005-12-24 12:43, 알라딘



공중그네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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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3:00


꽤나 전부터 맘 속에 꼽아놓고 독서 후의 동질감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2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은 어찌할 수 없었나보다. 내 방구석을 심히 좋아하는 나는, 온전히 자의의 바쁨이 아닌 동안에 무척 자주 내 방 여행을 꿈꾸는 편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늘 측면 표지로만 익숙해버린 많은 책들과 씨디들, 온갖 영화 브로셔와 상자들과의 씨름 생각으로 마음은 부풀어 갖은 계획을 하지만 실상 바라던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는 무엇부터 해야할 지 몰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게 내 모습이다. 그렇다면 크게 공감없음이란 독후감은, 단지 200년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차이일까.
 

저자는 42일간의 시한부 가택연금을, 돈 들 것 없는 내 방 여행으로 바꿔놓았다. 역사에 밝지 못해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황은 잘 알 수 없지만, 어쨌건 하인과 개 한 마리와의 동거가 가능하고 의식주의 문제 해결에 아무런 애로가 없는 그는 매우 여유롭게 주어진 시간을 만끽한 듯 보인다. 정해져 있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견디어내면 당위적으로 자유의 시간이 온다는 확신은 '갇혀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절실하게 만들지 않는다. 남다른 자의식과 자기애를 가진 사람의 경우라면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타인과의 관계로 얽히고 설킨 현실로부터 놓여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계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니 방구석에서 7주를 버티거라~ 하는 벌이라면 나라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 내심 부러웠다. 옮긴 이의 해설에 의하면,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저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꽤 많은 문학대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독창적이면서도 거침이 없는 문체'라는 찬사에는 무표정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으나, 그것이 근대 이전의 규범적이고 틀에 박힌 양식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에 국한된 것이라면 공감에 대한 열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게 별 의미가 없다.
 

능청스러운 유머를 행간에 날리며 심히 분방하게 저자는, 자신의 방과 자신의 맘과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책 속의 문장은 분명 설명적이고 지시적이다. 접근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갖가지 매체로부터 홍수를 이루며 쏟아져나오는 무한량의 정보 속에서 취사선택의 갈등 및 가치 판단을 끝도 없이 해야만 하는 지금과의 비교는 당치도 않겠지만. 분명 정보를 독점하는 계급이었을 그가 풀어내는 사색의 기록은 그 당당함과 선구자연하는 문체에 비해 별로 새롭지 않았다. 시의성 혹은 개인적 심의성의 문제를 들먹이는 것은, 오래된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모르나... 끝도 없이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내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혼과 동물성이라는 존재의 이분법에 대한 저자의 천착은, 혹시 그 시대에는 매우 독특하고 놀라운 것이었을까? 미안하지만 오래된 책에서 느껴지는 고답적인 멋과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절에서 연유하는 미지에의 향수와 사색의 밀도에서 나오는 어떤 진정성 같은 것을 바라는 내게는 너무 헐렁하거나 도저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나는 한낱 방구석 여행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2005-12-22 22:25, 알라딘



내방여행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프랑스에세이
지은이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 (지호,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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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58


그런 거 있다. 관심과 취향과 코드는 너무나 일치하나, 어딘가 나와 맞지 않는 경우. 게다가 나 역시 매우 소중히 여기는 대상에의 열정(?)과 정보를 나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판단될 경우라면 살짝 난감해지면서도 어쩐지 외면할 수는 없는 불편한 느낌 같은 것. 그 속내는 설령 아무 의미없이 저자거리를 떠돌며 회자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만은 속에 꼭 감춰두고 간직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며, 어리석은 욕심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공유하고픈 대상을 만나기 전까지는 감히 '나도 그래' 라는 동류의식을 표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동호를 통해 나누며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것과는 미묘한 차이로... 이를테면, 내밀한 자의식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만 같은 아주 개인적인 어떤 대상 말이다.
 

무슨 대단한 나만의 보석이라도 되는 양 장황하게 써놓고 보니 좀 우습지만... '프라하'와 '길'은 내게 그런 대상이다. 이미 너무나 세속화(?)되어 굳이 개인적인 의미 부여를 한다는 게 머쓱하면서도, 여전히 밀실에서 혼자 품고 싶은 대상들. 물론 나 이전의 무수한 누군가들 역시 자기만의 프라하와 자기만의 길을 마음 속에 담고 있었을 테고, 함부로(?) 떠들지 않겠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과 나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놓치지 않겠다는 내딴에는 작은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큰 기대 없이 제목에 '언급'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펼쳐봤었던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며, 이 책에도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대로 수수한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고, 디자인엔 영 문외한인 터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 아닌 듯도 한 저자의 이름도 그냥저냥 별무감하여 편견 없는 기대를 가지기에 무난했었던 것 같다. 오랜만의 여유로운 새벽에 읽을꺼리로 적당하다 싶어 펼쳐보니... 본문 지면에까지 신경을 쓴 빛 바랜 책장연하는 디자인이 사소하지만 사려 깊은 배려 같이도 느껴졌고, 사진이 꽤 많이 쓰였음에도 재생지 느낌에 두께에 비해 가벼운 무게도 괜찮다 싶었다.
 

하지만 음... 이것은 글을 담은 책.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불만스러움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저자는 디자인 분야에서는 꽤 알려진 프로페셔널인 듯 한데, 좀 무례한 이야기지만 꼭 이런 류의 글까지 써서 책을 내야 했을까. '그냥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세요'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 맴돈다. 개인적으로 저자를 짝사랑하여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여행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 아닌 이상, 혹은 '프라하'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언급이라도 모두 환영이라는 광활한 심사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이 책은... 반 이상이 아쉬움이다.
 

물론 무릇 책이라 함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라는 규정은 없으니 내용이야 쓰는 사람 마음일 테고, 유수한 출판사에서 나름 상품성을 인정하고 기획 출판 되었을 터이지만... 이렇게나 글 빼고 나머지가 대체로 훌륭한 책이, 굳이 글이 중심인 책으로 나와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실은 그래서 책 읽고 바로 자려다가 벌떡 일어나 서평 올린다고 컴퓨터를 켜버렸다.) 주말마다 공중파를 타고 마지막에는 덕수궁 돌담길 풀팅까지 마다 않았던 '프라하의 연인'도 있었던 마당에, 내 마음 속의 프라하니 뭐니를 말하는 것도 심히 민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은 좀 달라야한다는 고루한 믿음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읽지도 않은 주제에 이런 바람을 가져도 되는 지는 모르겠다만 그리고 이미 여행기도 과잉인지 한참이지만, 정말 좀 눈 밝고 글 잘 쓰는 '작가'의 너르고 비범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으로 나와야 할 이유가 있는' 여행기를 만나고 싶다.


2005-12-21 03:38, 알라딘



프라하에서길을묻다혼자떠나는세계도시여행
카테고리 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 유럽기행
지은이 이나미 (안그라픽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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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57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에 관한 <통한>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주노동자 운동, 특히 중국동포의 집에서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김해성 목사님의 글과 그 곳을 드나들며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작가의 사진을 엮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 88년 올림픽 이후라고 하니 어언 20년을 바라본다. 어려서부터 단일민족의 판타지를 교육으로 주입받아온 우리에게 다른 피부의 사람들, 특히나 우리보다 높은 채도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시선과 무관심에도 그들은 이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이주노동자 뿐 아니라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농촌의 신부들과 일명 '꼬시안'이라 불리우는 혼혈 2세 아이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몇 년 전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공론화한 '아시아 아시아'라는 코너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느낌표>에서는 이제 이주여성과 아이의 고국 방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지는 것만 생각한다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다치고 때로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야했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이제 많이 개선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책이 쓰여진 것도 벌써 몇 년 전이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펼친 책장에는 조용한 흑백사진에 박제된 듯 박혀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아주 조용한 통한의 기록, 일주일이면 한 두 차례의 장례식이 어김없이 치러지고 쉼터 지하의 창고에는 납골당에서마저 거부당하고 혼령만을 떠나보낸 이주노동자들의 유골 수십 기가 쌓여 있다고 했다. 고용허가제도 시행되고 있고 국민의식도 많이 개선되었으니 이제는 아닐꺼야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언론의 보도와 우리의 관심이 사라졌을 뿐 여전히 타국에서 질곡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현실은 지속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마저 미안할 만큼, 고통 받으며 죽어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해성 목사님이 계신 성남은 특별히 중국동포의 집이라는 이름을 함께 걸어놓고 있는데, 그래서 이 책에서도 중국동포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이 땅을 떠난 사람들, 일제의 침략과 수탈 속에서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나 강제징용, 학병, 정신대를 피해서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사람들의 2세들은 지금 법적으로 우리의 동포가 아니라고 한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으로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중국동포의 고국 방문이 진행되고, 여행이나 친지와의 만남 등을 이유로 들어온 그들이 미등록노동자로 일하게 되면서 이 땅에서 함께 한 것이 벌써 십 오년이 더 지났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같이 잘 사는 나라가 아닌 탓에 그들은 아직도 '동포'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나라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겠다는 부푼 꿈을 품고 한국행을 결행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되돌아간 것은 '나랑 너희는 달라'라는 우월감 속의 인권 탄압과 산업재해와 무거운 빚과... 그런 것들이라고 한다.
 

자본과 노동이 함께 이동하는 세상에서,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건 이주노동자건을 막론하고 그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노동력을 수입했더니 사람이 들어왔다'라는 말은, 우리의 해외 인력 도입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무성의하며 부주의하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부분이다. 물론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우리의 문제들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단시간에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이제 인력의 송출국에서 유입국이 되었다고 해서, 그야말로 '당한 놈이 더 한다'는 속설을 꼭 우리 사회가 실천하고 확인해야만 하는 걸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몇 달 전, 김해성 목사님의 아이들과 친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서 크레파스와 물감의 살색이 살구색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찾아 그렸던 바로 그 살색, 우리 사회의 편견이 무의식중 얼마나 많은 것들에 차별의 경계선을 담담히 그어왔는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이주노동자들과 관련한 문제는 이제 그들에 대해 어떻게 하자, 라는 입장이 아니라 우리 안의 나와 네가 조화로울 수 있는 연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고민할 때인 것 같다. 핍박 받고 아파하고 죽어나가야만 동정의 시선으로 잠시 돌아보고 마음 아파하는 반복 속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묻히고 있다.


2005-11-18 02:47, 알라딘



노동자에게국경은없다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사진/영상 > 국내사진집
지은이 김해성 (눈빛,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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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56


미주정상회담 뉴스는 꽤 신선했다. 시위대를 비추는 화면에 등장한 게바라, 세계혁명을 꿈꿨던 고향 남미에서 부활한 그가 깃발로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팬시가 되어버린 그를 일상의 도처에서 조우한다. 각종 시위의 포스터와 컴퓨터 바탕화면이나 공책에서, 심지어 한 때는 스타우트 흑맥주와 함께 동네 슈퍼에서도 그를 만났다. 이제는 내 휴대폰 고리에도 달랑달랑 그의 얼굴이 붙어있는 마당에, 더 이상 무어라 불평할 것도 없다. 실천문학사의 평전 출간 이후로, 게바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어떤 가치 지향도 동반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흔해져도, 처음 만났던 녹록치 않은 감동의 파장은 어찌할 수가 없어 나는 '체 게바라' 라는 이름이 붙은 그 어떤 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 책도 단지 그런 의미로 내게 왔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심드렁한 마음도 기억이 난다. 살짝 신선한 기획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조합이기는 하지만... 대략 성의없어 보이는 표지 디자인하며, 중요하지만 참으로 관습적인 관용구를 갖다붙인 제목하며, 굳이 나오지 않았어도 될 책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물욕으로 화해버린 나의 책탐은 이 책을 책꽂이로 직진시켰다.
 

 97년 서거 30주년을 기념해 조용히 출간된 몇 권의 책들은 다소 허접했지만, 그저 이미지와 단편의 정보로만 흠모하고 있던 대상에 대해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여서 정말이지 페이지 넘기기를 안타까워하며 숙연히 읽었었다. 그리고 먼저 감동한 저자의 감흥이 다소 거슬리기는 했지만,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실천문학사의 평전으로 나는 평범한 독자로서 그에 대해 알 만한 것은 다 알아버린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평전 이후 동어반복의 극치를 보여주며 다양한 기획으로 출간된 많은 책들을 접하는 심정은 그다지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혹시나 싶어 나오는 족족 사들이며 책장에 꽂아놓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나는 체 게바라와 관련된 대부분의 국내 출간서적를 '소장만 하고 있는' 이상한 전작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이동 시간은 길고 가방은 무거웠던 며칠 전, 작고 가볍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뽑아들었다. 별 기대없이, 그저 너무 진부하지만 말아달라 속으로 주문을 하며 펼쳐든 책의 서장은 '혁명과 유토피아'로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혁명과 유토피아를 향한 저자의 기대와 전망이 요동치고 있었다. 시큰둥한 시작에 비해 작은 판형에 깨알같이 들어찬 이야기들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게바라와 마오쩌둥의 인생을 혁명 키워드에 맞춰 재구성한 내용은, 아주 새롭지는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이 충실하고 성의 있었다. 중간중간 이해를 돕기 위해 들어간 설명들은 적절했고, 관련된 명언(?)들을 사이사이 골라넣은 것도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을 것 같다. 분량의 명백한 한계로 담보하지 못한 깊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소 남발된 간지는 나름 편집의 취향이라고 해두자. 게바라의 일생을 다룬 몇 권의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실은 몇 년 전의 독서였기 때문에 많이 잊혀져있었고, 솔직히 이름 외에는 별달리 아는 것이 없는 마오쩌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중국공산당 혁명에 대한 관심이 새삼 일어났다. 표지 디자인과 제목만으로, 그저 상품으로 시장에 내던져지는 게바라표 기획으로 의심했었던 것이 미안해질 만큼 작지만 알찬 내용으로 가득했다. 150쪽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을 성공적으로 담아낸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저자는 게바라와 마오쩌둥에 대한 각별한 애정, 혁명과 유토피아에 대한 버릴 수 없는 희망을 동시에 간직한 사람이 아닐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주변의 누군가에게 성의껏 들려주며, 함께 꿈꾸고픈 내심을 비치는 저자의 의도가 느껴져 읽는 내내 마음이 열려있었던 것 같다. 한 시대를 살았고 이미 수많은 책으로 그 인생이 알려진 이들이기에 새삼스럽게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은 무책임한 재생산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더 이상 목숨 거는 일 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어버린 혁명. 어쩌면 가벼워진 무게만큼이나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린 그것은 결국 유토피아의 꿈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현실의 반영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억울한 혐의를 무릅 쓴 이런 시도가, 일상의 아이콘처럼 가벼운 것이 되어버린 혁명과 유토피아에의 꿈을 잠시나마 일깨워주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섣부른 의심에 대한 미안함과 사는 일에 파묻혀 짐짓 외면했던 벅찬 가슴 뜀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이런 요동은 물론 광활한 인생을 살다 간 두 주인공에게 빚지는 것이지만, 이런 책을 만들어준 저자와 출판사에도 충분히 감사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책날개에 소개된 몇 권의 vs 시리즈를 검색으로 찾아볼 수 없는 걸 보니, 내 리뷰가 처음인 걸 보니, 아마도 이 책은 그저 묻혀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모르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입문서로, 그들을 이미 섭렵(?)한 독자들에게는 오랜만에 다시 만나 꿈꾸게 해주는 다이제스트로, 손색이 없는 책인데.. 아쉽다.


2005-11-07 04:50, 알라딘



20세기가장완벽한인간체게바라VS대륙의붉은별마오쩌둥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청소년정치사회
지은이 김영범 (숨비소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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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54


부제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기독교 평화주의'다. 저자의 책 두 권을 다 가지고는 있는데, 가끔 매체에서 접하는 글만 봤고 책은 처음 봤다. 저자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책날개에 소개된 정도였을 뿐이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많이 놀란(?) 부분은, 그가 상당히 믿음 좋은 골수(!) 기독교인이라는 것이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며 특히나 인간의 무기력을 조롱하는 듯 지구 곳곳을 뒤흔드는 대자연의 재앙을 보면서, 여전히 잠재적 기독교인이라고 뻔뻔히 믿고 있는 나로서는 슬슬 좋은 교회 찾아 나서야 하나하는 생각도 했던 터라 정말 제대로 된 기독교인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 상당히 컸다.
 

언젠가 연말 텔레비전의 시상식을 보며, 우리나라에 정말 많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음에 새삼 놀란 일이 있었다. 세상 부러울 것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화려한 연예인들이 눈가에 물기를 머금고 울먹이며 최고의 감사를 돌리는 대상이 태반은 하나님이라니. 어렸을 적 주워들었던 성경 이야기들이 떠오르면서,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는데도 세상은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너무나 단순한 결론이지만, 부시와 이명박을 필두(?)로 너무나 많은 이상한 기독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사실 당연하다. 세상에는 문익환 목사님이나 홍근수 목사님 같은 분만 있는게 아니라 참으로 목사라 이름 붙이기 뭣한 사람들도 버젓이 교회를 지키고 앉아 세금도 안내는 각종의 헌금을 거둬들이고 있으니까.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는 이단 종교의 문제(여호와의 증인과 일부 안식교의 문제)로 치부되어 오랫동안 관심받지 못하다가, 2001년 오태양씨의 선언 이후 비종교적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청년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 역시 큰 관심은 받지 못한 채 조용히 감옥행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군사주의와 한국사회를 다뤘던 지난 학기 한홍구 샘의 수업 덕분에, 나와 별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군대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많이 극복되기도 했고, 실제로 같이 수업을 들었던 교육학과 샘 중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분도 계셔서 이 책의 이야기들이 많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직 종교적 양심을 근거로 하는 병역거부조차 인정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서 비종교적인 이유의 병역 거부까지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지만, 사회의 평균적인 인식 정도에 비해 소수인 개인의 양심과 진보는 놀랍고 감동적이다. 
 

책의 부제에 충실하게, 저자는 기독교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의 문제를 주로 거론하고 있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현재 방황하는 영혼에 속하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접하는 교회와 성경의 이야기가 꽤나 신선하게 와닿았다. 보수 기독교 신앙을 신실하게 지켜왔음을 자부하는 저자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가 평화주의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온당하고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매우 간곡히 전한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 세속화된 기독교가 권력과 결탁하여 정당한 전쟁이니 거룩한 전쟁이니 하는 이름으로 자행해 온 역사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교와 희생으로 기독교 평화주의를 실천해 온 소수 종파들에 대해 조용히 역설한다. 중세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유일하게 평화주의 입장을 견지했던 재세례파, 그리고 그의 후예들인 퀘이커와 메노나이트, 아미쉬 등의 종파들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기독교 평화주의를 지켜오고 그들의 삶 속에 평화를 내면화해 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명맥을 유지하며 살 수 있기까지 겪었던 박해와 함께 양심과 국가의 문제를 극단적 선택의 문제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합리적 사회의 일면 등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이단 종교에 대한 특혜로 치부하고 그에 대한 격렬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대해 씁쓸한 안타까움과 실망을 표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본인의 전공 영역은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고는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참으로 적합한 문제제기자이자 필자라는 생각이 든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99% 이상이 종교적 이유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른바 정통 기독교를 표방하는 주류 기독교의 그에 대한 입장 비판이 무신론자의 싸잡은 교회 비판으로 오해될 수 있을 터이니 저자의 신실한 신앙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사전에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단지 양심의 진지성만으로 해결될 리 없는 이 문제에 대해, 논증 책임의 문제나 '만약 누가 네 가족을 죽이려 한다면'으로 시작되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질문의 부적절성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법학자이자 변호사인 저자의 전문성이 빛나는 부분이다. 또한 이 책의 장점은 매우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동화책을 제외하고는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존대말로 된 책이었는데, 마치 강연을 듣는 것처럼 친절하고 겸손한 문체로 씌어진 이야기들이어서 결코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것 같다.
 

나날이 느끼지만 군대라는 집단은, 우리 나라를 지키는 특수집단으로만 보기에는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다양하고 심대하다. 군대와 굳이 결부지어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며 국가에 의한 국민 동원의 일상화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군사주의를 신경망처럼 깔아놓았다. 그 위에 군사주의를 내면화한 집단들이, 교회는 교회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양심과 가치를 말살하고 국가와 결탁된 자신의 논리를 주입한 신도를 찍어내고 학생을 찍어내고 근로자를 찍어내며, 오늘 날에 이르렀다는 무서운 생각.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힘이 센 국가안보와 체제수호라는 곶감은 때가 되면 출몰해 정말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에너자이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같은 시나리오로 지겹도록 반복되는 그런 광경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런 세상에서 사문화된 양심이 부활할 틈새가 있기는 한 걸까 싶어 절망스럽기도 하다.
 

강정구 교수의 컬럼으로부터 시작되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검찰청장의 사퇴로 논란이 뜨거운 요즘. 특히나 이번 주는 방송 삼사의 토론 프로그램이 모두 그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우연히 그 토론 프로그램들을 다 지켜보며... 과연 그토록 명백하게 헌법에 천명된 양심의 실질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라는 애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녀사냥을 일삼는 수구꼴통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 역시 관용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양심이라는 것을 폐기처분한 듯 보이는 자들의 뻔뻔함을 보며 한없이 가슴이 갑갑해짐을 느낀다. 수구들이 말하는 사회 일반(그 일반이라는 것도 의심스럽지만)의 의식에 부합하지 않는 사상을 가진 이들의 양심의 자유는 발설되지 않고 표출되지 않을 때까지만 유효하다는 주장은, 뒤집어 보면 그들이 말하는 안보와 사회 통합에 저해가 되거나 위험할 소지가 있다면 다 잡아넣어도 무방하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관용의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대체복무 입법 추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데, 이미 공익근무니 산업체 특례니 하는 등의 대체복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하나 추가하는 것이 반대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엄청난 국가안보의 구멍인지 국민적 해이를 가져올 일인지 나는 의아스럽기 그지 없다. 그리고 한없이 폭력적인 그들의 주장에 맞설 대안이 오로지(?) '관용'이라는 것이 많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양심으로부터 뿌리내린 관용이 인해전술을 시작한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변화는 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 정도로 희망을 갖기로 했다. 기독교인이 적어도 천만명은 될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일독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는 유쾌한 자각으로부터 우리 사회에 변화가 도래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2005-10-15 19:12,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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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두식 (뉴스앤조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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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52

내 별점이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만... 줘놓고도 세 개는 마음 아프다. 하지만 이 책, 절반의 포인트는 기획에 있다는 자의적 판단 하에, 굳이 이런 형식을 빌지 않더라도 그는 충분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꾼인 것을. 나는 그의 글이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 고유한 아우라로 인해 반짝반짝 빛나기를 꽤 진지하게 바라마지 않는 순진한(?) 독자다. 헌데, 아무리 그가 트렌드에 민감한 얼리어덥터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하여, 영리하게도 서문을 빌어 친구의 빈 방에서 이것저것 슬쩍 훔쳐보는 수준으로 슬며시 이 책의 기능을 규정했다고 해도... 또한,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마음산책에서 나왔다고 해도. 다소간은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서는 개인적으로 노출증과 관음증의 행복한 만남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게다가 인터넷의 익명성에 비하면 대체로 실명이 드러난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어떤 진정성까지 겸비한, 싸이라는 대중적인 매개물을 통해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들은, 온전하게(?) 활자화되었을 때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날릴 수도 또 개인적인 메세지로 다가갈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싸이의 위력에 기대지 않아도 김영하만이 가진, 의심의 여지 없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독특한 비틀기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부담없는 촌철살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싸이의 패러디인지 오마쥬(설마~)인지는 모르나 마음산책답지 않게 조잡스럽고 뭔가 헐렁한 표지와 편집에서 나는 솔직히 빈정이 상해버렸다. 이러려면 차라리 전자책으로 낼 것이지.
 

물론 주절주절 늘어놓은 불만만큼 이 책이 영 형편 없지는 않다. 태생이 승부욕이라고는 없는 주제에 선착순 사인본 백 권에 도전하고 당시 지리멸렬한 일상에 대한 환기의 돌파구로 이 책의 독서를 선뜻 결정할 만큼 개인적인 기대가 높았던 탓에, 책장을 넘기면서 '이건 좀? 이건 아닌 듯...' 했던 느낌들이 증폭이 되어버린 감도 있다. 책 출간과 함께 낭독회를 열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나름 실천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는 반가움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싸이스럽게 너무 날려주시는 짧고 쿨한 이야기들이 뭔가 완결점이 없고 부유하는 느낌이어서 문득, '정육점 여인에게서'를 읽었을 때의 그 허탈감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혹시 이 양반도 늙어가나' 하는 매우 주제넘는 우려도 잠깐씩 고개를 들기는 했다. 차라리 한참을 잊었다가, 매우 무료한 어느 날 방바닥 긁으며 뒹굴거리다 조우한 채로 다시 본다면 더 낫지 않을까.


2005-10-06 01:17,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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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영하 (마음산책,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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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