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도발적이고도 무심하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불감증에 걸린 투명인간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고, 아무 데나 돌아다니며 구경꾼처럼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태어나지 않아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몸에 달겨들거나 눈 앞에 펼쳐지는 일들이 자극적이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모기가 물어도, 강아지가 핥거나 짖어도, 여자아이가 인사를 하거나 울어도 심지어 강아지가 물어도 아이는 무관하다.
아무런 상관은 없었지만,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간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강아지에게 물린 여자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엄마. 아니, 엄마에 의해 여자아이의 엉덩이에 붙여진 반창고!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가기는 했지만 대체로 무욕한 존재였던 아이에게 갑작스레 반창고를 붙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버렸고, 마침내 아이는 태어난다. 순간 이라부의 주사 페티시즘이 떠올라 어이없음과 동시에, 언젠가부터 나오기 시작한 각양각색 디자인 반창고의 존재 의의를 알 것 같았다. 물론 반창고만은 아니리라. 아이들은, 실은 누구나 이렇게 작은 욕망에 의지해 삶을 지탱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넘겨 첫 문장을 읽으며, 그럴 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러겠다고 선뜻 말하고 싶을 만큼 반갑기도 했다. 오래 전이라 기억도 희미한 연극 '장 아누이의 반바지'를 보며 머리 속에 각인된 장면, 극의 흐름과 뚝 떨어져 "난 저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아!" 였던가 하는 대사가 폐부를 찔렀던 때가 떠올랐다. 스물 무렵부터 가끔씩 맥락없이 출몰하곤 했던 '차라리 안 태어났다면...' 이라는 부질없는 소망, 십 여년 품고 살다보니 온전히 진심은 아닐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마음 바닥에 들러 붙어버린. 그저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삶에 대해 너무 발랄한 것보다 조금은 멈칫하는 게 나은 것도 같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허무를 어쩌지 못해 난처하기도 하다.
태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태어난, 갓 태어난 이 아이처럼 정직하고 직접적인 욕망으로만 사람이 살 수 있다면 그 매개는 반창고이거나 연필이거나 하늘이거나 사람이거나... 그 무엇이라도 문제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버려서(?) 세상과 사람과 사물과, 너무나 많은 것과 '상관'되어 버린 후에도 태초의 그 사소하고 작은 욕망을 눈여겨보며 마음에 담고 살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소통에 목말라하면서도 한 편 마음 속으로는 끊임없이 '상관 마!'라고 외치며 사람들 속에 있는 존재의 모순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한때는 내게만 유난히 삶이 버겁다고도 생각했지만 조금씩은 인정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사는 일은 그렇게 힘들고 지난하다는 것,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엄청나게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아이의 반창고 정도면 그만일지도 모른다는 것. 상처를 덮어주고 내게 밀착됨으로 인해 관계를 만들어내는 작은 것들, 끊임없이 계속되는 아무 것도 아닌 듯 사소하지만 소중한 욕망 같은 것들. 혹시 나는 붙이지도 않을 반창고를 너무 많이 뜯어서 버리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동적인 문장이지만, 이미 태어나버린 내게는 별로 유효하지 않음을 기억해야겠다.
2006-01-25 02:19, 알라딘
|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려진, 외로운 개 (0) | 2011.05.15 |
---|---|
재미있고 친절한 길잡이 역사책 (0) | 2011.05.15 |
절반쯤은 인정, 그게 나였어. (0) | 2011.05.15 |
황당한 든든함, 지하실의 2인조 (0) | 2011.05.15 |
골 때리는 "의학박사ㆍ이라부" (0) | 2011.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