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의 [일기]를 읽고 알게 된 책, 언급된 여러 작가와 책 중에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고 궁금했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었다. 책 날개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1930년대 영국의 여성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뉴욕 출신의 작가이자 비평가로, 2004년 파리로 이주했고 파리와 리버풀을 오가며 살고 있다고 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목차는 저자의 출신지와 살며 걸었던 몇몇 대도시의 이름과 간략한 부제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이라는 제목이 충분히 명확하다고 느낀 탓인지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라는 부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독서를 시작했는데, 덕분에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한 명씩 등장하는 여성 예술가를 기대하며 관련된 이야기들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는다면 앞표지 사진에도 금박으로 박혀 있는 단어인 플라뇌즈(flâneuse, flâneur 산보자를 뜻하는 남성 명사를 바꾼 말)가 될 테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플라뇌즈(flâneuse)에 대해 "명사, 프랑스어에서 온 말, 보통 도시에서 발견되는 한량, 빈둥거리는 구경꾼을 가리키는 단어 플라뇌즈의 여성형"(23쪽)이라고 가상의 정의를 내린다. 미국 교외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딜 가든 차를 이용하는 성장기를 보냈지만, 출신지를 벗어나 공부하고 일하면서는 도시를 걸어다니며 감각하고 탐구해왔다. 여러 도시의 무수히 많은 골목와 길을 걸으며 저자는 '걷기'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과 의미를 사유하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길을 걸었던 여성 예술가들을 소환하고 상상한다. 1990년대 이후 저자가 걸은 거리에는 백 년 이상의 시간을 공유하며 먼저 걸은 여성들이 있었다. 저자는 당대에는 도전이거나 불온한 행위로 여겨졌던 '여성이 도시를 걷는다는 것'에 내재된 전위성을 발견하고 공명하면서, 시대의 한계 속에서 도시를 걷고 기록을 남긴 여성들의 흔적을 따라가고 호흡한다.
목차에 등장한 여러 도시 중 며칠이라도 내가 머물며 걸었던 곳은 파리와 베네치아 뿐이고 저자가 설명하는 거리와 동네 들은 낯설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여러 번 등장하는 도시도 있지만 한 챕터마다 한 사람의 주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이름만 알았거나 영화나 책을 보았거나 아예 초면이거나 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상당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발산하는 매력에 더해 저자(와 역자)의 글 자체가 가진 힘이라고 느껴졌는데 저자는 과거와 현재,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조화롭게 엮어 기술하는 일에 대단히 재능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중층적인 시간이 겹쳐진 도시라는 공통의 무대를 배경으로 과거의 여성 예술가와 현재의 저자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우연 혹은 주관적인 영감으로부터 감추어졌던 역사로 이어지는 새로운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긴 프롤로그에 이어 처음 등장하는 도시는 "롱아일랜드 · 뉴욕"이다. 저자의 고향인 롱아일랜드는 뉴욕의 교외로 "아메리칸 드림의 교외 버전이 탄생한 곳"(49쪽)이며 ""교외의 역사는 분화의 역사다."라고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배제의 역사이기도 하다."(50쪽)고 저자는 덧붙인다. 미국에 가본 적도 없고 미국 배경의 영화를 볼 때에도 교외라는 공간에 유념한 적이 없어 새로웠는데, 2차 대전 이후 건설되기 시작해 1970년대에 1,300만 명의 중산층 인구가 도시에서 이동한 새로운 삶터가 교외라는 점을 처음 알았다. 세련되고 효율적이지만 인공적이고 고립된 교외의 삶에 대한 기술은 저자가 언급한 영화 중 [아메리칸 뷰티]와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올리며 확 와닿았다. 아름답게 정돈된 동네에 자리잡은 완벽한 가족처럼 보였던 젊은 부부, 자유로운 공기를 꿈꾸는 에이프릴과 성공과 명예에 열중하던 프랑크가 맞이하는 파국은 교외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공감이 되는 비극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파리 · 그들이 가던 카페"에서는 진 리스라는 작가가 등장한다. 진 리스는 1890년 서인도제도에서 웨일스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과 크리올 형통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1919년 파리로 갔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문명 세계의 중심지였던 그곳에서 그는 "다른 사람과 같은 사회적 기준에 따라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극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곤란한 지경에 종종 빠졌다."(76쪽) 다혈질의 무국적자인 남편과 결혼했고 임신한 몸으로 여권도 없이 파리에 도착했고 얼마 후 아이를 잃었다. 불안정하고 좌충우돌인 생활 중에 글을 발표할 기회를 얻었고 당시 명망 높은 편집자이자 작가였던 포드 매덕스 포드의 영향 아래 성장하며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키웠다. "진 리스로부터 나는 스스로를 낭만화하지 않는 고통의 미학을 배웠다."(71쪽)는 저자는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없이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사샤(소설 [한밤이여, 안녕]의 주인공) 같은 인물을 보며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도 많다. 나는 그게 수동성이라기보다는, 너무 쉽게 애착을 느끼는 싱글 여성이 어떤 일을 겪더라도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 일도 겪지 않으려면 어떤 것에도 애착을 주지 않아야 할 텐데, 하지만 애착이 없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75쪽) 되묻는다. 그리고 파리에서 만난 롱아일랜드 출신 남자와의 '굴욕적인' 연애를 떠올리고, 자신의 [한밤이여, 안녕]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전이된 '리스의 인물들의 혼란'을 기록한다. 진 리스의 작품을 언젠가 읽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곤경과 모순과 절망의 시간이 잦았던 그의 소설이 실연 후 런던에서 산 공책 몇 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저자의 파리와 만나 어느 정도는 재해석되었을 이야기들이 새로웠다.
이런 식으로 "런던 · 블룸즈버리"에서는 버지니아 울프가 등장한다. 파리로 건너가기 전 진 리스도 살았던 블룸즈버리는 "정치 개혁의 온상이기도 했고 여성참정권 운동과도 연관이 깊었다."(124쪽) "바버라 그린은 "버지니아 울프가 거리를 대범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먼저 행진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124쪽) 자신을 매혹시키는 도시를 걸으며 느끼는 정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의 의미를 축소시키지 않은 채 단어와 글로 표현하려 했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걷기와 쓰기 역시, 이전에 걸었던 여성들에게 일정 부분 빚지고 있었던 셈이다.
"파리 · 혁명의 아이들"과 "파리 · 저항"의 주요 인물은 조르주 상드다. 혁명의 도시 파리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은 19세기 후반 나폴레옹 3세 시기, 오스만 남작의 도시 정비 이후라고 한다. 저자는 공사 중인 파리의 도로 아래에 덮여진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등 거대한 봉기의 흔적들을 생각하고, 20세기 저항과 진압의 현장을 표시한 동판들을 보며 걷는다. 그리고 1804년 아망딘 루실 오로르 뒤팽으로 태어나 조르주 상드로 기억되는 삶, 남장을 하고 자유롭게 거리를 걸으며 일상과 소설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킨 일화들, 그러나 혁명이 비껴간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1832년에 이런 평등한 결혼을 꿈꾸었다는 것만도 매우 대담한 일이었다. 당시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상드에게 입회를 권유하였으나 상드는 자신은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대답했다고 한다"(162쪽) 저자는 남성 작가의 책으로 오인된 첫 소설 [앵디아나]가 표방한 이상, 시대의 억압을 개인적 전략으로 우회한 상드의 선택, 이후의 경험과 행보 등 여러 면모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쇼팽의 연인'이라는 대표적인 수사로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로서 할애된 꽤 긴 분량에서 쇼팽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그가 쓴 글을 한 편도 읽지 않은 나의 무지와 더불어 여성이 축소되는 한국적 맥락도 기능한 탓이 아닐까 싶어졌다. "저항"에서는 1848년과 1968년, 2015년 파리 동시다발 테러 등 현대의 시간까지 포괄하며 행진과 바리케이드, 연대와 기념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대문자 혁명과 별개로 목도되고 의미화되는 저항의 여러 면모들이 기술된다. 바라보고 궁리하고 함께 걷기도 하며 글로 재현한 혁명의 시간들은 결국 쓰는 이의 입장과 주관성의 세계 속에서 재구성된다.
(음... 이렇게 쓰다가는 끝도 없을 것 같다.) 대체로 재미있었지만 흥미가 조금 반감됐던 부분은 나의 감수성으로는 온전한 수용이 버거웠던 특이한 예술가 소피 칼이 등장하는 "베네치아 · 복종"과 뒷부분에 약간 반전이 있지만 저자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던 "도쿄 · 안에서"였다. 가장 즐겁게 읽은 부분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중심으로 아녜스 바르다의 이야기가 가득한 "파리 · 동네" 그리고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더욱 놀랍고 인상적이었던 마사 겔혼의 이야기가 담긴 "모든 곳 · 땅에서 보는 광경"이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텍스트로 옮긴 수준으로 느껴지는 글은 흥미로웠고, 알고 보니 변화에 취약하고 불안도가 높은 내게 "그렇지만 나는 바르다의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떤 것도, 어떤 상황도 제자리에 멈추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늘 바뀐다. 바르다의 세계에서 아름다움, 의미는 예기치 않은 것에 있다. 흐름으로부터 나온다."(356쪽)는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지금의 내가 새기고 즐기고자 조금씩 애써야 할 방향이다. 종군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마사 겔혼에 대한 저자의 기술 중에도 기억하고 싶은 두 부분이 있었다. "겔혼은 저널리즘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소설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보기 위해서는 사실과 허구 둘 다 반드시 필요했다."(364쪽) 그리고 "겔혼은 자기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공감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겔혼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뛰어들어, 뚜렷이 선을 그어야 할 곳에서 허구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382쪽) 타격감은 크지 않지만 은은하게 충격적인 어떤 끝을 최근에 경험했고,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 소설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 달 넘게 하던 차에 만난 확인의 문장이다. 소설이라, 쉽게 할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챕터인 "뉴욕 · 귀환"에서는 시작부터 존 디디온이 나와 반가웠는데 "디디온은 젊음이 사라짐에 따라 가능성이 좁아지는 듯한 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서쪽 캘리포니아로 돌아간다."(396쪽)는 문장에서, 지명과 무관하게 엄청난 공감을 느꼈다. 뉴욕이 저자의 최종적 귀환지는 아니었고 '유대-이탈리아-아일랜드 혈통'이 뒤섞인 미국인이자 파리 시민권자인 저자는 "정체성과 소속감의 기이한 조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저항감이나 후회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디에서 방향을 돌릴까, 어떤 길을 따라갈까. 어떤 길을 따라간다면 다른 길로는 가지 않게 된다. 어떤 것에 대해 쓴다면 잘 읽히게 하기 위해 배제해야만 했던 다른 많은 것들을 저버리게 된다. 문장 하나하나가 교차로다."(408쪽) 라고 쓴다. 그리고 "뿌리를 경계하라. 순수함을 경계하라. 고정성을 경계하라.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을 경계하라. 유동성, 비순수성, 혼합을 받아들이라."(409쪽)고 호미 바바를 인용하는 저자의 말이, 잠시 주술처럼 마음을 흔들었다.
기억하고 싶거나 흥미로운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책을 읽다 보니 엄청 많은 페이지에 표시가 남았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나는 잔재, 질감, 우연, 만남, 뜻밖의 틈새를 찾으려 했다."(18쪽)고 적었는데 그러한 비공식적이고 비정형적인 부분의 관찰은 물론, 저자는 역사적 사실과 주요 인물의 삶, 당시의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 관련한 후대 연구자들의 의견과 평가 등도 자주 인용하며 소재와 주제에 매우 깊이 천착한다. 비평가이자 연구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학술적인 부분을 포함해 방대한 내용이 된 것 같고, 작가로서 체험한 그 도시에서의 내밀한 경험과 사유까지 더해져 더욱 풍부한 텍스트가 되었다고 느꼈다. 모든 부분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작은 이야기들을 무수히 엮어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미욱하게도, 그러나 덕분에 어느 시기 이후 범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여성’ 서사가 실은 ‘여성 서사’라고 말해지는 한 충분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처음 할 수 있었다. 이미 전형적 이미지를 가진 대도시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그러나 설득력 있게 재이미지화하면서, 기존의 남성 서사와 남성들을 대척점에 세우지 않으면서도(헤밍웨이는 좀 세운 것 같다.) 몇 세대에 걸친 여성의 역사를 통해 독자를 '고무하는 책'이라고도 느껴졌다. 이렇게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다 싶어 사야겠다고 생각했고, 누군가들과 함께 찬찬히 이야기 나누면서 읽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지한 덕에 즐거운 독서였는데,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로런 엘킨 지음•홍한별 옮김
2020.7.31.1판1쇄 2020.8.28 2쇄펴냄, 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