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에 해당되는 글 477건

  1. 2022.10.12 [세일즈 걸]
  2. 2022.10.12 [자기만의 방]
  3. 2022.10.11 [리턴 투 서울]
  4. 2022.10.09 [성덕]
  5. 2022.10.09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6. 2022.09.12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7. 2022.09.12 [성적표의 김민영]
  8. 2022.09.12 [풀타임]
  9. 2022.09.12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10. 2022.08.18 [베르히만 아일랜드]
빛의걸음걸이2022. 10. 12. 22:55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롤은 부모의 강권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 공대에 진학했다. 강의 시간에는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학교와 집을 오갈 때는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 빠져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 어느 날 친하지 않은 같은 과 친구가 다리를 다쳤다며 당분간 알바를 대신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유는 그곳이 섹스샵이고 사교적이지 않은 사롤이 비밀을 지켜줄 것 같기 때문이다. 얼결에 수락하고 알바를 시작한 사롤에게는 섹스샵에 진열된 다양한 물건들도 찾아오는 손님들도 전혀 몰랐던 세상의 일, 때로 배달을 나가서는 상상도 못했던 별천지 같은 상황을 조우한다.

 

가게를 지키고 배달을 나가는 것 외에도 중요한 일과는 퇴근길에 정산된 돈과 고양이 사료를 사서 섹스샵 사장 카티야의 집에 들르는 것이다. 카티야는 넓고 세련된 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는 중노년의 여성, 비싸 보이는 가구들와 장식품들로 채워진 우아한 공간에 어울리는 화려한 차림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서먹하게 시작되지만 기침을 심하게 하는 걸 기억해 약을 사다주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내성적이고 조용해 보이지만 자신에게 주눅들지 않는 사롤에게 카티야는 금세 호감을 느낀다. 사롤 역시 카티야의 독특한 개성과 비밀스러운 카리스마에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고, 여러 사건들과 함께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가까워진다.

 

사롤의 집은 낡고 작은 아파트, 슬리퍼를 직접 만들어 시장에 내다파는 부모와 미취학 아동인 동생이 함께 산다. 평범한 소시민인 부모에게 사롤은 똘똘하고 믿음직한 맏딸이지만 각각 생업과 육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느라 적당히 데면데면한 사이다. 늦은 귀가의 이유를 묻는 엄마에게 알바 사실은 대충 둘러대고 방에 들어가 그림에 몰두하다 잠드는 사롤에게는 낙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따금 동네 한 구석에서 어릴 적부터 친구인 종수와 나란히 앉아 시덥잖은 수다를 떨거나 담배를 피우고, 종수가 키우는 개 빔과 노는 정도가 영화에 나오는 사롤의 여가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선망으로 한국식 이름을 쓰는 종수는 배우를 꿈꾸지만 스스로도 가능성을 별로 믿는 것 같지 않고, 사롤 만큼이나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젊은이로 보인다.

 

집과 강의실과 동네 한 구석에서, 섹스샵과 카티야의 집이 추가된 사롤의 동선과 반경은 점점 확장된다. 배달 나간 모텔에 들이닥친 단속반에게 잡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하고, 카티야의 고객인 수감자에게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함께 먼 길을 이동해 교도소에 들르고 초원에 닿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선입견과 다른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며 더 가까워지고, 자신의 방에서 투신하는 사람을 목격한 뒤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롤을 위해 카티야는 장난스럽지만 진지하게 주술을 시전하기도 하고 과거의 깊은 상처를 털어놓기도 하며 두 사람은 나이를 초월한 친구처럼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마냥 앳된 느낌이었던 사롤은 부끄러움 없이 손님들에게 제품 설명을 할 수 있게 되고 섹스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커져간다. 

 

하지만 배달 나간 부잣집에서 중년 남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자 사롤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이고 반신반의하면서도 믿었던 카티야에 대한 신뢰를 철회한다. 섹스샵을 그만두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온 사롤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여러 경험과 사건을 통해 조금 달라졌다. 섹스샵과 카티야는 답답한 현실에 잠식된 채 학교와 집을 오가던 사롤에게 다양한 삶과 어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 일탈의 용기 같은 것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됐다. 약간의 우여곡절을 거쳐 재회한 두 사람에게 이전과 같은 친밀한 시간이 돌아올 수는 없고 이내 소원해지지만, 좌충우돌 성장 중인 사롤은 조금 더 과감해지고 한참을 잊었다가 찾아간 카티야의 집에서 새 주인을 통해 선물 상자를 전해받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꿈꾸던 미대생이 된 듯 화구통을 메고 경쾌하게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롤의 뒷모습으로 긴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시작은 산뜻하다. "Banana"라는 타이틀 자막과 함께 거리의 큰 쓰레기통을 향해 고정된 카메라, 속도감 있게 지나가는 사람들 중 누군가 버린 바나나 껍질이 쓰레기통 앞에 떨어지고 젊은 여성이 그걸 밟고 넘어지는 것이 첫 번째 에피소드. 이어 다리에 붕대를 감은 그 여성이 찾아가는 사람이 바로 사롤이다. 무료하게 학교와 집을 오가는 사롤이 버스에 앉아 헤드셋을 쓰자 음악이 화면 밖으로 흐르고 버스 안은 영롱한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앵글의 가장자리에 있던 버스 안 다른 자리의 남자는 남자는 이동한 포커스의 중심에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그는 이후 초원에서도 광장에서도 밴드와 함께 등장해 영화 속 경계를 오간다. 사롤의 무채색 일상이 음악으로 인해 황홀하게 혹은 강렬하게 채색되고 전환되는 감각적인 장면이 중반까지 몇 차례 등장하는데 자연스럽고 인상적이다.

 

신기했던 건 중반부 이후 특히 카티야가 자신의 사연을 넋두리하는 즈음부터 희한할 만큼 이전의 리듬을 잃고 지루하게 전개되었다는 것. 전반부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옛날 문예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소녀가 낯선 존재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게 되는 성장 영화의 공식에 충실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몽골이라는 낯선 배경과 감각적인 연출과 과감한 효과가 몰입의 키라고 느꼈는데 전반부와 판이하게 달리 느껴지는 후반부의 느린 호흡과 맥 없는 전개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중반까지 적당한 텀으로 등장하던 센스 넘치는 타이틀 제목도 후반에서는 사라졌던 것 같고 말이다. 그럼에도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사롤의 뒷모습에 이어지는, 어느새 구면이 된 밴드의 연주로 마무리되는 엔딩의 소격 효과와 개방감 덕분에, 긴 영화의 마지막이 시원하고 유쾌하게 느껴졌다.

 

기억이 맞다면 처음 보는 몽골 영화였는데, 마침 GV도 있어 좋았다. 감독과 조감독이 참여했고, 영어에 서툰 감독의 몽골어를 조감독이 영어로 통역하면 통역자가 다시 한국어로 통역하는 세 단계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참여한 GV에서 영어, 일본어, 불어 이외의 외국어를 들어본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비영어권 국가의 감독 모두가 영어를 원활히 구사할 줄 아는 건 아닐 테고 효율성을 따진다면 당연히 떨어지겠지만, 3중 통역을 거치더라도 다양한 나라의 작품과 제작진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필요한 것 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GV 덕분에 영화에 자주 등장한 밴드가 마그놀리아라는 몽골의 뮤지션이라는 것과 꽤 좋게 들렸던 노래들이 그들의 곡이라는 걸 알았다. 누군가 종수의 개 빔에게 초코볼이랑 비아그라를 던져주는 장면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고, 어쩐지 마음에 걸렸지만 영화적 허용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27th Biff & GV
10/12 영화의전당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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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걸음걸이2022. 10. 12. 22:3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달리는 택시 안,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주시하던 여성이 차에서 내려 한 아파트로 들어간다. 룸메이트를 구하는 앱 광고를 보고 찾아온 집이다. 한 달 후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할 계획인 그는 6개월이라는 계약 조건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난처하지만 당장 다른 방을 구할 수 없으니 나갈 때 새 룸메이트를 찾아주기로 하고 머물기로 한다. 여성의 이름은 티나, 방을 내어준 여성은 메기다.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메기는 잘하는 영어로 콜센터 재택근무를 하면서 미국으로 떠날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가녀린 체구에 과민한 상태가 되면 의식을 잃곤 하는 약한 체력이지만, 담배와 술을 달고 살며 친구들과 파티를 할 때면 대마초와 마약도 마다 않는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보이는 메기는 조지아의 현실이 답답하고, 뉴욕은 머나먼 자유의 해방구다. 미국 비자가 나올 때까지 메기의 일상에는 잦은 일탈이 함께할 것 같다. 

 

단출한 짐으로 임시 거처를 찾아온 티나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결혼 생활이 불행했고 남편의 친구와 사랑에 빠졌다. 남편과 싸우다 그가 휘두른 칼에 맞았고 남편은 감옥에 갔다. 남편의 어머니에게 티나는 자식 팔자 망친 나쁜 여자고, 자신의 어머니 역시 딸의 편이 아니다. 남자친구 베카와 함께 살기로 하고 고향을 떠나 트빌리시로 왔지만 그는 지금 멀리 있다. 유일한 기댈 언덕이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고 통화가 되어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일찍 결혼해 사회 생활 경험도 없어 보이는 티나는 무일푼 신세다. 남편과 함께 살던 옛 집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물건을 빼내 월세를 충당하고 이를 알아챈 남편의 어머니는 전화로 저주를 퍼붓는다. 와중에 티나를 찾아온 베카는 둘의 관계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한다. 사랑 하나 믿고 낯선 도시로 떠나온 티나는 혼자가 되었다.

 

두 사람의 동거는 데면데면하게 시작되었지만 서로의 다름이 의외의 보완 지점이 되며 시간이 흐른다. 차주전자도 없고 음식을 해먹는 일도 거의 없는 메기와 달리, 티나는 옛 집에서 챙겨온 차주전자로 차를 끓이고 직접 사온 채소를 손질해 뜨끈한 수프를 끓인다. 집을 드나드는 메기의 친구들은 개방적이고 친근한 태도로 내성적이고 방어적이었던 티나의 마음을 아주 조금씩 열리게 만든다. 줄담배를 피우고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만취한 파티 다음 날 쓰러져 있곤 하는 메기에 대한 티나의 거리감과 거부감도 서서히 줄어든다.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친구가 되고 티나는 메기의 친구들과도 가까워진다. 그리고 어느 날 티나는 동생으로부터 어머니가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먼 길을 함께한 메기와 친구 덕분에 장례식장에 찾아가지만 티나는 아버지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난다. 줄줄이 닥치는 나쁜 상황을 감내하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티나는 오열하고, 메기는 곁에서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짧은 시간을 함께하며 깊이 마음을 열게 된 티나와 메기는 한 침대에서 밤을 보낸다. 분위기에 취한 실수라거나 동성애나 양성애 같은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은, 우정과 사랑의 교감으로 보인다. 갑작스러운 하룻밤 이후 달라진 것은 상대를 향해 다정함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과 이해와 위로의 당사자로서 더욱 든든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분방한 일상을 보내며 자유를 열망하는 메기와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과 힘겹게 맞서고 있는 티나, 둘은 많이 다르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용기를 냈다는 점이 닮았다. 의기소침하고 적극성이 없어 보였던 티나는 언젠가 쇼핑하며 눈여겨 본 캐셔일을 얻어 경제적 독립의 기반을 마련한다. 얼마 후 메기는 고대하던 미국 비자를 얻어 떠난다. 두 사람이 살던 집 앞에 당도한 낯선 여성의 뒷모습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마지막에, 메기가 그랬듯 새로운 룸메이트를 맞이하며 현관문을 여는 티나의 얼굴을 비춘다.

 

9일과 10일 상영에는 있었던 GV는 없어 아쉬웠지만, 영화 시작 전 감독의 메시지를 담은 짧은 영상이 상영됐다. 조지아의 트빌리시에서 친구들과 저예산으로 찍은 영화이고, 티나 역을 맡은 배우가 공동각본으로 참여해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으며, 독일의 공동제작자 덕분에 후반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자기만의 방'은 거의 100년 전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의 책 제목,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말은 여성의 주체적인 삶의 조건을 상징하는 유명한 문장이다. 영화는 '자기만의 방'을 공유한 티나와 메기를 통해 동시대 조지아를 살아가는 두 여성의 전환기를 잔잔한 드라마로 보여준다. 티나의 전사가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과 다른 개성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녹아드는 과정이 좋았고, 우연한 만남과 한시성을 전제로 한 관계가 만들어내는 의미와 확장의 가능성도 새롭게 다가왔다. 조지아 영화여서 선택했는데 실내 촬영분이 많아 도시 배경을 별로 볼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레이스커튼을 통과해 비추는 햇살의 질감이 느껴지는 그들의 아파트가 어느새 친숙한 공간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영화들이 이미 존재할 것도 같지만 나라마다 당대 젊은 여성들의 현실을 담은 [자기만의 방]이 제작된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7th Biff
10/12 롯데시네마센텀시티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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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10. 11. 23:5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옛 노래 “꽃잎”을 헤드셋으로 듣고 있는 테나 앞에 프레디가 나타난다. 서울의 한 게스트하우스, 프레디는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된 후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은 참이다. 애초의 목적지는 일본이었지만 악천후로 항공편이 변경되어 느닷없이 닿게 된 고향이다. 게스트하우스 알바생인 테나는 불어교사였던 엄마 덕분에 프레디와의 소통이 가능하고, 두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노래들을 좋아하는 게 닮았다. 

예정에 없던 며칠간의 짧은 한국 체류 동안 적극성 만랩인 프레디의 시간은 바쁘게 흘러간다. 근처의 술집에서 또래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고 와중에 서로 호감을 느낀 남자와 밤을 보내고, 자신의 입양을 주선한 하몬드입양센터에도 찾아간다. 생부가 군산에 살고 있고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소식에 테나와 동행해 군산에도 간다. 어줍잖은 영어로 통역을 돕는 고모가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원가족과의 만남은 어색하기만 하고, 어린 시절 떠나보낸 딸을 오래 마음에 담고 살았던 아빠의 간곡한 마음은 부담스럽다. 

2년 후 프레디는 다시 한국에 왔다. 이번에는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이태원에 자리를 잡았다. 젊음이 넘치는 공간에서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유분방한 일상이다. 다시 만난 한국 가족들과의 서먹함은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다. 갑작스러운 첫 만남에서 미안함과 애틋함을 담아 신발을 사주고 읽을 수 없는 문자를 거푸 보내던 아빠는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잊지 않고 이메일을 보냈다. 아빠가 사준 신발을 버리고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찾아온 아빠를 격하게 거부했던 프레디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빠의 진심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5년 후 한국을 재방문한 프레디는 한층 세련되고 화려한 외양이다.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만난 무기브로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하며 남자친구를 동반해 아빠의 가족들을 만난 프레디에게서는 서툰 다정함과 성숙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오랜 시간 띄엄띄엄 한국을 방문하며 수소문했던 친엄마를 찾았다는 소식과 함께, 하몬드입양센터에서 긴장된 만남이 성사된다. 말이 잘 통하지도 않지만 외롭고 혼란스러운 속내를 드러내기보다 짐짓 냉정함을 가장하고는 했던 프레디도 친엄마를 만나는 자리에서만큼은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다시 1년 후, 프레디는 등산복 차림에 커다란 백팩을 메고 어느 산 속 숙소에 도착한다. 몇 년씩 시간을 점핑하며 옷차림과 화장으로 다채로운 개성을 발산하던 모습 대신 화장기 없이 자연스러운 차림이다. 방을 부탁하고 바로 로비의 화장실에 들어간 프레디가 확인하는 전화기 속 메일함에는 수취인불명을 알리는 메시지가 뜨고, 주머니에서 꺼내 확인하는 작은 종이에는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어렵사리 찾은 친엄마의 이메일 주소는 불명, 영화는 아무것도 보태어 설명하지 않고 착잡하지만 차분한 표정으로 로비로 나가 피아노 앞에 앉는 프레디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영화제 상영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노트에는 열 줄이 채 안 되는 내용의 설명이 담긴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후보에 오르는 등 화제가 된 작품이 아니라면 유일한 정보에 의지해, 어느 부분에서 감이 오면 내맘대로 기대를 얹어 선택한다. 이번에는 "선한 의도지만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이모(김선영)의 어색한 통역처럼, 웃픈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실제 이민자이자 예술가로 활동 중인 박지민의 놀라운 데뷔는 가장 멋진 걸크러쉬 캐릭터를 완성한다."라는 문장 그리고 GV가 있다는 사실에 솔깃했고, 좋아하는 김선영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에도 끌렸다.

 

감독은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으로 프레디처럼, 성장하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문화적 충돌 상황을 일상적으로 겪었고 작품에도 많이 반영했다고 한다. 각자의 이야기는 모두 고유하지만 그것만으로 반짝일 수는 없고, 이 영화도 당연히 감독의 경험 이상의 많은 고민이 녹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게는 뭔가 헐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한 강조는 없었지만 "놀라운 데뷔", "가장 멋진 걸크러쉬" 라는 소개 속 표현에 은연중 기대치가 높아졌던 건지, 괜히 신났던 마음이 영화를 보며 조금씩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달까.

 

심란함을 감추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대체로 텐션 과잉인 프레디 캐릭터가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았고, 반복되는 'n년 후' 덕에 서사의 호흡이 끊기는 느낌이어서 비현실적인 설정이 아님에도 어떤 부분에서는 만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프레디의 존재감 못지 않게, 복잡하고 화려한 서울 도심과 아빠의 원가족이 살아가는 지방 소도시 그리고 마지막 유럽 어디메까지 공간적 배경도 중요한 것 같았는데 대비가 확실한 만큼 작위적인 느낌도 들었고 말이다. 초반에 적지 않은 비중으로 프레디와 함께하는 테나가 'n년 후'가 시작되며 아예 사라진 것도 아쉬웠다. 우연하고 임시적인 만남이었으니 반드시 다시 등장할 필요는 없지만 처음 본 배우의 딕션과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보고 싶었던 김선영 배우는 불참이었으나, 감독과 프레디를 연기한 박지민 배우 그리고 오광록 배우가 참석한 GV는 좋은 시간이었다. 객석에 계시던 박지민 배우 아버지의 발언과 편지 낭독 덕분에 영화에서 주효했던 친아빠와의 감정적 대립과 교감이 환기되었고, 영화에 옛 가요들이 나왔던 이유가 궁금했는데 감독의 대답을 통해 해소되었다. 현지의 전문 스태프가 있더라도 외국인 감독이 타국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 건 어려운 일일 것 같고, 왜 캄보디아가 아니라 한국을 택했는지도 궁금했는데 질문하지 않았으므로 답을 듣지 못했다. 지금의 한국이 문화콘텐츠 강국이고 아시아 영화의 중심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있기 때문일까, 불어 구사가 자유로운 한국인 배우 때문일까도 싶었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이후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매우 영화제용 영화를 본 느낌이다.


27th Biff & GV
10/11 CGV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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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10. 9. 23:48

 

 

어느 날 연예인 J에게 푹빠지고 톡톡 튀는 개성으로 성덕이 된 여중생은 세월이 흘러 다큐 감독이 된다. 첫 기차, 첫 방송 출연, 첫 외박, 그리고 또 수많은 처음들. 인생의 많은 처음에 J가 있었고, 사인회에 한복을 입고 찾아가 눈길을 끌고 그가 주인공인 방송 프로그램에 덕후의 대표격으로 출연했던 감독은 팬덤 내의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에너지의 덕질로 일찌감치 스타의 기억에도 각인됐을 감독은, 그가 싸인하며 적은 글귀대로 열심히 공부해 전교 1등을 되찾고 서울의 한 대학 영화과에 진학한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올인했던 J가 성범죄자가 된 후, 그를 좋아했던 팬들과 누군가의 덕후였던 팬들 그리고 미처 몰랐으나 비슷한 처지임이 확인된 조감독 등 소위 우상의 추락과 충격을 경험한 이들을 인터뷰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낮게 울려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궁서체로 쓰인 커다란 제목이 줌아웃되는 인트로, 영화가 시작되는 곳은 창원 어딘가에 있다는 성덕사다. 감독의 첫 번째 내레이션은 "나는 정준영의 팬이었다." 성범죄자가 된 연예인을 사랑했던 감독은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전국의 성덕사를 찾아보고, 그곳에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았을 감독이 후에 성범죄자가 된 연예인을 좋아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게 안타깝지만, 실제 사건의 무게와 개인에게 미쳤을 엄청난 영향에 비해 웃프고 발랄한 영화의 분위기를 인상적으로 예고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다큐 촬영을 결심한 계기는 J의 범죄 사실이 알려지고 유죄가 확정되고 수감되고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팬들의 존재였다는데, 탈덕한 감독의 시선은 범죄자에 대한 팬심을 유지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성찰에 무게를 둔다.

 

다큐에는 J뿐 아니라 성범죄를 저지른 여럿의 남성 연예인들과 그로부터 상처받은 팬들이 등장한다. 한동안 사회면을 요란스레 장식하며 추락한 스타를 사랑했던 팬들은 배신감과 실망을 넘어, 그들이 몰입했던 마음과 시간 그리고 추억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감내한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을 것이고 차츰차츰 밝혀지는 사실들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왜 그런 사람을 좋아했는지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SNS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여지는 연예인의 모습은 아무리 진실되게 느껴진다고 해도 연출에 가깝고, 이미 기울어진 마음은 고도의 이미지메이킹을 넘어설 수 없다. 그게 아니라도, 누구도 타인이 드러내지 않거나 감추려는 이면을 알 수 없다는 걸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범죄자로 밝혀진 연예인을 마음을 다해 좋아했다는 것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자신의 스타를 옹호하며 2차 가해를 벌이지 않는 이상, 팬 역시 스타의 범죄에 있어 피해자다. 파렴치한 성범죄가 밝혀지며 탈덕한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명백한 범죄 사실이 확증되었음에도 자신이 몰두했던 대상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심리를 알기 위해 감독은, 박근혜 지지자들의 시위 현장에 찾아가 목적을 숨긴 채 참여 관찰을 하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엽서를 쓴다. 누구에게나 내 덕질은 특별하지만, 대상이 누구든 덕질의 기저를 이루는 감정과 메커니즘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스타와 팬이라는 일 대 다의 일방적인 관계에는 구체적이고 상호적인 감정과 일상적 교류가 불가능하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그 공허는 팬들간의 공감대와 일체성으로 메워진다. 불특정다수의 팬덤을 향한 스타의 메시지는 팬심이라는 마법의 스펙트럼을 거쳐 개별화되고, 팬이 스타에게 있어 자신의 고유성을 체감하는 드문 순간은 한없이 증폭되어 덕질에 가속을 부여한다. 이 모든 것이 실체 없이 허망한 감정 놀음 같기도 하지만, 덕질과 팬심을 그렇게 치부한다면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 역시 그러할 것이므로 덕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속되는 사회 현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감독은 J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 성범죄로 물의를 일으킨 남성 연예인들의 팬들 여럿을 인터뷰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낸다. 배신감에 비난을 퍼붓는 이도 있고 스타의 범죄가 미치는 비가시적이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성찰하는 이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굿즈 장례식을 하면서 단호했던 마음에 균열이 일고 의외의 양가적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 하는 감독의 모습이었다. 겪지 않았다면 좋았을 성장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때의 개인적 몰두만은 아닌 덕질과 팬질의 사회성이 환기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됐다. 기부나 챌린지 등을 통한 '선한 영향력'의 확산이 연예 활동의 클리셰가 된지 오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연예인 개인이 단죄되고 매장되면 그뿐 범죄가 갖는 다층적인 파장을 주목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상처와 혼란 속에 커다란 감정의 진폭을 오가는 당사자인 감독 그리고 유사한 경험과 공감대를 가진 인터뷰이들의 목소리가 반가웠고, 사실상 평생 덕질 중인 내 마음을 비춰볼 수 있었다.   

 

센스와 유머가 상당한 감독의 영화는 자주 웃음을 선사했는데, 아프고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아보는 일이 꼭 우울할 필요는 없다는 점 그리고 몰두했던 오랜 시간과 아름다운 기억 모두가 그 대상으로 인해 무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좋았다. 누군가를 인생의 전부인 듯 사랑한다 해도 누구나 별개의 인간일 수밖에 없고, 한 사랑의 배신과 실망이 다음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 조민기를 좋아했던 엄마를 인터뷰한 부분도 좋았는데 밤에 일하느라 혼자 잠들어야 했던 겁 많은 딸을 걱정하던 시절 J 에게 고마웠다는 말도, 거제에서 만난 친구가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고인을 좋아하는 것뿐이라며 정약용을 언급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죽은 사람만이 변치 않는다는 걸 깨달은 사춘기 시절 이후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 유쾌한 씻김굿 같은 느낌도 들었고 결국 다다른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성하기를 바란다. 죽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만큼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공감이 됐다. 좋은 영화였고, 엔딩타이틀에 등장한 유일한 삽입곡 “박근혜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때문에 마지막에 한 번 더 웃었다. 


10/9 cgv서면 임권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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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10. 9. 23:35



어렸을 적에 호암아트홀인가 어디에서 물방울 그림을 봤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희미한 기억이어서 정말로 직접 봤던 건지 애매한 기분도 들지만, 상영 소식을 접하고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처럼 영롱하고 투명한 그림을 보며 놀랐던 마음이 떠올랐고 '물방울'과 '김창열'은 나란한 단어로 익숙하기도 해서 궁금해졌다.

 

영화는 어느 산골 계곡물의 소용돌이와 저화질 속 어떤 폭발과 자욱한 연기가 오버랩되며 시작된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인트로 장면에는 남자 목소리의 프랑스어 내레이션이 깔리는데 주인공은 김창열 화가의 둘째 아들이자 공동 연출을 맡은 감독이다. 겹겹이 세워진 물방울 작품들과 함께 등장하는 노인이 된 화가,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늘 침묵하던 아버지를 회고하며 현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카메라 속 화가의 움직임은 느리고 자주 클로즈업되는 무표정한 얼굴은 어두운데, 그가 머무는 공간에 내리쬐는 햇살과 이따금 보이는 어린 아이들의 활기와 대비적으로 느껴진다. 화가의 일상은 빛바랜 책을 읽고 수첩에 줄을 긋고 명상하고 차를 마시는 정적인 모습이다. 촬영하며 건네는 아들의 말에 답하기 위해 굳게 다문 입을 여는 화가는 고독과 침묵이 익숙한 사람의 분위기를 풍긴다. 

 

화가가 첫 번째 물방울을 그린 것은 1971년, 40대 초반에 뉴욕을 거쳐 정착한 프랑스에서였다고 한다. 생활을 겸하던 마구간 작업실에서 뒤집어 놓은 그림에 맺힌 물방울들이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것을 경험하고 앞으로 자신이 그려야 할 것은 물방울이라고 다짐했다고. 화가는 이후 50년간 수많은 다양한 물방울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물방울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역사의 질곡을 피할 수 없었던 과거의 비극적인 경험과 닿아 있다.

 

1929년 북한 지역에서 태어난 화가는 한국전쟁 시기 수많은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어렵사리 살아남아 남한에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뉴욕을 거쳐 프랑스에서 자신의 혼을 담은 물방울을 만나기까지, 그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들이 어렸을 적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와 달리, 9년간 면벽수행하며 잠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자른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는 에피소드는 그가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어린 시절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늘 침묵하는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거리감을 고백하며, 영화 작업을 시작한 이유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화가는 물방울을 그리는 이유가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이고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물방울만을 그려왔던 화가의 모습은 한결같았을 것이고 어린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는 기이하고 의문스러운 대상이었을 것 같다.

 

감독의 내레이션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림에만 몰두하며 구도자처럼 살아가는 듯 보이는 화가가 작품으로 인한 혜택이나 특권을 거부하지는 않았고 인기나 유명세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화가가 이룬 거대한 성취를 나열하지 않는 영화는 기록으로 남은 영상을 통해, 해외의 전시회에서 팬들과 사진 촬영을 하거나 극진한 예우를 받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데 초반에 보여졌던 침잠하는 존재의 다른 모습이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시대의 아픔이 그에게 남긴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양가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수행하듯 그리는 삶도 인생일 수밖에 없고 누구도 생활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초월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느 밤 거실에서 화가는 아내와 함께 아들이 빔 화면으로 보여주는 고향의 모습을 본다. 그에게 고향은 숱한 죽음과 비참을 마주해야 했던 청년기 이전의 순수한 기억을 담지한 시공간, 그러나 호랑이가 나오는 맹산과 수영할 수 있는 강이 있었던 그곳에서 위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이 마른 강의 흔적뿐이다. 핵실험장으로 회자되는 풍계리,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되는 연기가 포말로 다시 물과 샘으로 바뀌는 모습의 정체도 그것이었다. 전쟁의 참화로 인한 상처와 숱한 죽음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반평생 넘게 물방울을 그려온 화가의 고향에, 이제는 미래의 전쟁 위험을 우려하게 만드는 핵실험장이 위치하고 있다.

 

오래 누적된 의구심과 부분적인 나름의 해답을 독백하는 아들의 내레이션과 이따금 등장하는 선문답 같은 부자간의 대화, 아이들이 잠시 등장할 때 말고는 내내 정적인 화면, 감독이 직접 작곡했다는데 지나고 보니 잘 기억나지 않는 은은한 음악 등이 어우러진 이 영화에는 시네마 에세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내심 감응보다는 정보를 원했던 것인지, 내게는 화가가 오십 년이나 물방울을 그린 이유를 알게 된 것이 유효했던 것 같다. 귀여운 손주와 가위바위보를 하는 장면 이후였던 것 같은데, 영화 말미에 화가는 인생에서 후회되는 것이 지나친 진지함이었다고 말한 부분이 아내와 나란히 누워 편안한 표정으로 노래를 읊조리던 장면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한 인간이 소화하기에 버거운 무게를 지고 생을 보냈던 예술가의 고뇌에서 그토록 생생한 물방울이 탄생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깊은 우물을 인식하며 성장한 아들은 우주로 날아간 허블 망원경의 다리에 맺힌 물방울을 통해서도 아버지의 물방울을 사유한다.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걸까. 만남을 통해 다른 물방울이 되는 물방울, 하나의 물방울을 그리는 일과 수천 수만의 물방울을 그리는 일을 통해 개별과 전체를 아우르는 화해와 치유를 희구했던 아버지의 예술과 정신이 아들의 카메라를 통해 그 비밀을 세상에 조금 내보인 영화라고 느껴졌다. 2016년에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는데 언젠가 가보게 된다면 영화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10/9 cgv서면 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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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9. 12. 11:22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즈넉한 시골 동네를 배경으로 교복을 입은 여고생 하나와 남고생 둘이 어울려 놀고 있다. 가게에서 산 쌍쌍바의 쭈쭈바 버전 아이스바를 사이 좋게 나누자 여자 아이의 손에는 두 개의 아이스바가 놓인다. 어떤 감정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없는 세 사람의 평화롭고 풋풋한 한때는 아련한 과거다. 어른이 된 나츠미와 아츠히사, 타케다는 여전히 함께지만 그들을 둘러싼 밀도와 온도는 달라졌다. 아츠히사와 결혼한 나츠미는 다섯 살짜리 딸 스즈를 키우는 전업주부, 아츠히사와 타게다는 각자의 일을 하며 함께 중국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부부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세 사람, 아츠히사는 어딘가 무심해보이고 나츠미의 수다 상대는 타케다다.

 

감정 표현도 말수도 없는 아츠히사는 타케다와 함께 배우는 서툰 외국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 그나마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딸 스즈와 놀아줄 때도 다정한 말보다 침묵의 그림자 놀이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츠히사의 방식이다. 사치코와 교제하며 약혼한 사이였던 아츠히사는 어떤 계기로 나츠미와 관계를 맺었고 임신으로 인해 두 사람은 결혼했다. 표정 없는 얼굴과 꾹 닫은 입술이 한결같은 아츠히사와 달리 나츠미에게는 어린 시절의 밝은 기운과 활력이 느껴지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는 집안의 공기는 건조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의 부모도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형도 말수가 없고 속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오랜만에 만난 가족은 어색하리만큼 조용하고 와중에 시어머니는 나츠미를 달가와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회사에서 조퇴한 아츠히사는 집으로 돌아와, 낯선 남자와 섹스 중인 나츠미를 발견한다. 순간의 충격으로 몸의 균형을 잃은 아츠히사에 의해 미닫이 방문의 유리창 하나가 부서지고, 조마조마하게 유지되던 두 사람의 관계도 부서진다. 미닫이 방문에 끼워진 반투명유리처럼 두 사람 사이를 채우던 뿌연 감정의 일부가 파멸적인 방식으로 사라졌다. 아츠히사로 인해 외로웠고 이따금 아츠히사의 전 약혼녀 사치코를 떠올리며 괴롭기도 했던 나츠미는 결별을 선언한다. 혼자가 된 나츠미는 타케다를 찾아가 고독하고 버거웠던 결혼 생활을 털어놓고 어렸을 적의 마음을 끄집어내지만, 우정이 소중한 타케다에게는 이미 지난 일일 뿐이다.

 

함께 살던 집에서 나온 아츠히사는 혼자가 되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는 타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음악을 하며 미래를 꿈꿨던 타케다만이 여전히 그의 곁에 있다. 함께 술을 마시고 그의 집에서 잠을 청하다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 오버스러운 뮤지션의 메시지에 혹해 공연에도 가면서, 아츠히사는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잃은 상실감을 떨쳐보려 애쓴다. 고향의 부모님댁에 홀로 찾아가 뒤늦게 이혼 사실을 전하는 아츠히사도 받아들이는 가족들도 무덤덤할 뿐 별 반응이 없다.

 

나츠미는 불륜 상대였던 남성과 동거를 시작했다.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놀고먹는 그는 나츠미에게 또 다른 삶의 무게를 더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나츠미의 고단함에 사채빚 연대보증이며 콜컬 제안 같은 낯설고 위험한 세계의 일들을 보탠다. 충동적인 사랑과 임신 때문에 결혼한 아츠히사에게서 느꼈던 감정적 갈증과 사무치는 고독은 차라리 우아한 권태였을지 모른다. 스스로의 선택과 스즈를 책임지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나츠미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인내를 발휘한다.

 

돌이킬 수 없는 파탄과 전락에 예기치 못한 전기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츠히사의 형 히데다. 지박령처럼 고향집에 붙박혀 즉석라면과 맥주와 함께 등장하고 아츠히사에게 뜻모를 미소와 엄지척을 날리곤 했던 그가 흰 옷을 차려입고 길을 나섰고, 아츠히사와 나츠미가 살던 집 앞에 도착해 마침 음료수를 사러 나온 동거남을 미행한 끝에 돌로 수차례 쳐서 죽인다. 수감된 히데를 면회한 아츠히사와 부모님은 허름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어색한 가족사진을 찍고, 주변 공원을 산책하던 중 멀리 보이는 감옥 건물을 배경으로 다시 한 번 가족사진을 남긴다.

 

동거남의 죽음은 나츠미에게 해방이 아니라 더 깊은 질곡이다. 멋모르고 연대보증한 사채빚을 요구하며 조폭들이 집을 찾아오고 나츠미는 살아생전 고인이 건넸던 불량스러운 제언을 기억해낸 것 같다. 스즈를 엄마에게 맡기고 대도시로 떠난 나츠미는 콜걸이 된다. 성매수자에 의해 다치고 죽는 콜걸의 비극적인 뉴스를 이따금 접했지만 또 한 번의 피할 수 없는 선택, 그리고 뉴스 속의 주인공들처럼 나츠미도 목숨을 잃는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치르는 장례에 타케다와 함께 찾아간 아츠히사는 전 장모의 분노와 원망을 살 뿐이다. 로비로 물러나 자리를 지키는 아츠히사, 유리창을 통과한 햇살에 문 밖으로 나온 스즈가 아빠와의 그림자 놀이를 기억하며 다가오지만 곧 외할머니의 제지로 돌려세워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운전하는 타케다와 조수석에 앉은 아츠히사를 실은 차가 어느 동네의 골목길로 들어선다. 긴장한 듯 상기된 표정으로 골목을 살피는 아츠히사의 눈에, 코너에 자리한 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 스즈가 포착된다. 스즈를 발견한 타케다가 차를 세우고 천천히 후진하며 아츠히사를 독려하지만 그는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한다. 마음에 가득한 감정들을 좀처럼 꺼내지 못한 채 담아두고만 살아가던 아츠히사와 그런 친구의 곁을 지키며 격려하는 타케다, 둘은 결국 한계에 이른 듯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대폭발시키고 만다. 마침내 차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선 아츠히사, 눈물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스즈에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춘기를 함께 보낸 세 사람 사이를 오갔을 감정선이나 전사를 보여주지 않는다. 언뜻 무구해보이지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도 같은 인트로 뒤에 이어지는 것은 여전히 청춘이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의 현재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어 속엣말을 전혀 꺼내지 못하는 아츠히사, 그런 아츠히사를 잠시 사랑했지만 곧 숨막히는 외로움에 잠식된 결혼 생활에 지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나츠미, 그들 곁에 조용히 함께하며 자신의 사랑을 접어두고 우정을 택한 타케다. 한 시절의 파탄과 소멸을 조용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이상한 설득력을 갖춘 이상한 캐릭터들의 힘으로 전개되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고통을 내보이는 데에 급급한 세상에서 조금은 이채롭게 느껴졌던 아츠히사는 원인을 제공하는 대신 더 깊은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이기적이고도 슬픈 존재였다. 어릴 적 타케다에 대한 마음을 접고, 아츠히사와 사랑하고 결혼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아픈 선택의 연속 끝에 세상을 떠나는 나츠미는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웠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가장 의문스러운 존재였던 히데는 박정범이 연기한 덕에 더욱 놀랍고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그의 수감 이후 전에 없는 아츠히사 가족의 가족스러운 행태가 어딘가 불안을 야기하던 존재가 마침내 일을 친 후의 안도감인지, 사라진 후에야 느끼는 소중함을 담은 것인지, 둘 다인지 애매하고도 우스꽝스럽고도 짠하게 느껴졌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지도 않았고 그럼에도 희한하게 여러 장면들이 마음에 남아 복선이나 암시가 없었던 어떤 사연들을 상상하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다. 아츠히사와 타케다의 우정은 실은 우정 이상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나츠미가 사랑하는 사람은 불륜의 상대가 아니라 타케다였겠지? 약혼녀 사치코의 불임 고백은 아츠히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 같은데, 튀는 느낌인데도 씬으로 삽입된 이유가 뭘까 뭐 그런 것들. 생각해보면 잔잔한 분위기에 비해 상당히 많은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는데, 일본판 포스터를 크게 장식한 엔딩시퀀스의 대폭발이 결국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까도 궁금하다. 나는 이전 감정들과의 진폭이 너무 큰 그 장면이 많이 민망하여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인간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말하는 존재, 말하지 못한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감독은 강조하고 싶었을까.


9/10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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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걸음걸이2022. 9. 12. 11:20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귀여운 면도 있었지만 홈비디오 질감의 촬영과 무맥락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시쿼스들은 대체로 오글거려서 민망했다.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짧은 단절 이후의 만남에서 서로에게 느끼는 이물감과 위화감, 어긋나는 소통과 침묵의 순간들의 공기와 감정 정도에만 공감이 됐던 것 같다. 학창시절과 연루된 재미있거나 특이한 에피소드들을 알뜰하게 삽입한 것 같았는데 때로 억지스럽거나 조화롭지 않게 느껴졌고, 각자 따로 노는 이야기들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정교함이 많이 아쉬웠다. 분방하더라도 신선한 임팩트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세대감성의 차이라고 하면 그렇구나 하겠지만 대체로 부담스럽고 조야하게 느껴져서 너무하네 싶을 때가 적지 않았다. 초반에 산나의 하버드 설정부터 꽤 뜨악했는데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었고, 사건이나 상상의 씬을 툭툭 던져 놓는 천연덕스러움이 가끔 아연했다. 보편적인 학창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영화라기보다, '성적표'를 매개로 학창시절과 변화하는 우정의 어떤 부분들을 크게 확대했으나 많이 덜컥거리는 영화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온 사람의 인색한 감상이라면 미안하지만, 자비에 돌란의 영화들을 선사하는 엣나인의 픽에 의아할 때가 간혹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었다.



9/10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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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걸음걸이2022. 9. 12. 10:1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잠든 인물의 숨소리와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영화는 첫 장면부터 긴장감을 안긴다. 이어 기상한 여인은 아침부터 바쁘다. 어린 두 아이를 얼르고 챙겨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기고 역으로 향하는 다급한 출근길. 파리 교외에 살고 있는 그가 파리 시내의 일터에 닿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다. 역에 몰린 사람들은 대중교통 파업으로 제 시각에 도착하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급히 편성된 대체 열차에 빈틈없이 탑승한다. 그 속에 포함된 쥘리 역시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숨가쁘게 뛰어 출근카드를 찍는다.

 

쥘리는 고급호텔의 룸어텐던트로 일한다. 조장쯤 되는 그는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의 민원을 접수해 해결하고 신입의 교육을 도맡는 중에, 은행의 대출금 입금 독촉 전화를 받고 양육비를 보내주지 않는 전 남편에게 독촉 전화를 한다.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출근길과 마찬가지로 전쟁이다. 약속한 시각보다 늦게 도착한 이웃집에서 아이들을 넘겨받고, 이런 식이면 아이들을 계속 봐줄 수 없다는 할머니의 하소연과 경고를 마주한다. 보는 사람도 기진맥진한 하루일과는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 해내야 끝이 난다.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선택한 파리 교외의 생활은,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쥘리의 안간힘과 희생으로 겨우 돌아간다. 아이들을 맡아주는 이웃집 할머니는 동네마트 취업 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도 했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쥘리의 늦은 귀가가 반복되자 결국 더 이상 어렵다고 선언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아이들을 데리고와 눕히는 쥘리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할머니가 흘렸던 말을 떠올리고 동네마트에 찾아가보지만 믿을 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경제학 석사이자 시장 연구 전문가였던 경력을 살리기 위해 이력서를 접수하고,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사의 눈을 피해 면접에 참여하는 과정도 지난하기 그지없다.

 

영화는 파업으로 인한 교통난, 홀로 책임져야 하는 두 아이의 보육, 수차례의 시도에도 연결되지 않는 전 남편과의 통화, 오지 않는 양육비와 경제적 곤란, 다사다난한 일터와 단절된 경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 등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쥘리의 일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와중에 다가오는 아이의 생일파티를 위해 트램펄린을 주문하고, 대체교통편이 배정되지 않은 막막함 가운데 파업 집회에 참여하러 가는 이웃의 차를 얻어타고, 여행에서 돌아온 유일한 동네 친구의 연락과 도움을 받고, 새 직장의 면접을 위해 나름의 수완을 발휘하며 땡땡이 친 일이 발각된다. 자신이 담당한 교육생이 해고된 데 이어, 결국 쥘리마저 해고 통보를 받고 나름의 연대감을 공유하던 동료에 의해 일터의 출입도 금지된다.

 

겹겹의 무게에 짓눌린 일상을 버티며 쥘리가 마지막 희망으로 부여잡은 건 2차 면접까지 보고 온 새 직장의 취업이었다. 과거 작은 물류업체에서 일하며 분석과 비판의 글을 남겼던 대기업, 하필 면접자는 쥘리의 흔적을 발견해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고 가부와 상관없이 알려주겠다던 면접 결과 연락은 오지 않는다. 해고자가 된 쥘리는 잠시 숨을 돌리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원하는 대로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 그리고 절박함에 몇 차례나 먼저 전화를 했음에도 연결되지 않아 마음을 접었던 그곳에서, 출장으로 늦어졌다며 면접자가 최종합격 통보 연락을 해온다. 영화의 엔딩은 안도와 환희로 환한 웃음이 피어나는 쥘리의 얼굴이다.

 

한 사람의 한 시절을 그저 따라가듯 군더더기도 주변 서사도 거의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엄청 몰입이 됐다. 쥘리를 연기한 배우 로르 칼라미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가 가장 큰 이유였고, 쥘리의 상황 만큼이나 급작하게 느껴지지만 앞서가지는 않는 음악도 한 몫한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보다 주인공의 현재에만 주목하는 미니멀한 접근이 좋았고, 온수기를 수리하는 레오 아버지와 얼굴이 가까워졌을 때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맞춘 쥘리의 급발진과 머쓱해하는 순간 그리고 그에 아무런 서사도 보태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나 동동거리면서도 대중교통 파업에 대해 존중하고 지지하는 쥘리의 대사도 기억에 남았다. 



9/10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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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9. 12. 10:00

 



굉장한 웰메이드 로맨스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홍보글에 담긴 영화계 인사들의 찬사들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부유하는 율리에의 모습은 청춘기의 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누구나 생각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현실로 옮기고 안절부절 좌충우돌하는 상황이 많이 유난스러워서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게 컸던 것 같다. 적당히 성공하고 나이든 남자 악셀과 함께하며 느끼는 그늘과 소외감을 표현하는 부분들은 익숙한 클리셰여서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헛헛한 마음으로 모르는 이들의 결혼 파티에 들어간 율리에와 눈이 맞은 에이빈드가 즉자적인 끌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우는 장면들에서 서로의 소변 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좀 당황스러웠는데, 새로운 세대의 에로티시즘인지 북유럽 감성인지 그저 이 영화가 고심한 별난 에피소드인지 모르겠다. 파티드레스를 입고 홀로 담배를 피우는 첫 장면, 악셀이 커피를 내리는 사이 뛰쳐나간 율리에가 에이빈드와 키스하고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멎은 순간의 연출 정도는 인상적이었는데 2시간 넘는 영화에 이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고. 에이빈드의 파트너가 뭔가 부당하게 희화화되어 묘사되는 느낌이 들어 좀 불편했고, 율리에와 에이빈드 사이에 금세 찾아든 권태의 패턴은 너무 예측가능했고, 악셀의 투병은 개연성 없이 훅 들어온 느낌이어서 시큰둥했다. 나름 센스있고 유쾌한 멜로드라마를 기대했는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각각의 소제목이 붙은 열두 개의 챕터에 무척 계산된 에피소드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했을 것임에도 때로 늘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그냥 십수 년에 한 번씩 이삼십 대의 청춘으로서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인데, 꿈과 낭만을 잃어버린 내가 너무 꼬장꼬장하게 본 것도 같지만... 놓칠까봐 우려했던 마음이 약간 억울해졌다. 실은 제목에도 약간 삐딱한 마음이 들었는데, 원제를 직역한 걸까 뭘까? 암튼 내게는 여러모로 물음표를 선사한 영화였다.  


9/10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김기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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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22. 8. 18. 00:45

 

 

포뢰섬의 아름다운 풍광이 멋졌다. 전설적인 영화감독과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도 흥미로웠는데 아쉽게도 나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보지 못했으므로 사상누각 같은 흥미로움이었다. 크리스와 토니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영화가, 크리스의 작업 진전과 더불어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중후반부는 꽤 신선한 느낌이었다. 현실과 영화 속 영화를 경계없이 넘나들고, 영화 속 인물과 영화 속 영화의 캐릭터들이 조우하는 장면 같은 것들. (언제적...)[레스트리스]에서 발산하던 신비로움 대신 삼십대 생활자의 면모가 충만한 에이미, 미아 와시코우스카의 등장이 반갑기도 했고 초반부터 독립적인 듯 의존적인 크리스 캐릭터가 나는 좀 편치 않았기 때문에, 묵음 처리된 징징거림처럼 느껴졌던 토니를 향한 크리스의 태도가 드러나지 않는 중반 이후부터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홍보물이 전하는 미디어들의 극찬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고, 아이와 포옹하는 크리스의 모습으로 끝나는 영화의 피날레는 사실 좀 의아했다. 설마 결국 모성, 뭐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짐짓의 아이콘처럼 느껴졌던 크리스의 마음과 태도에 이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영화들 중 가장 기대했는데 좀 아쉽지만, 아는 만큼 보고 느낄 수밖에 없으니 그러려니. 


8/17 cgv서면 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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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